#122화. 마이쪙
박형욱, 펜타곤 현 128위 생도. 특성은 화염 저항과 파이어 피스트.
상당히 알기 쉬운 정보들만이 모여 있는 스펙.
만약 길드 관계자가 본다면 이렇게 평가를 내릴 것이었다.
‘일단 후보에는 올려놓고, 그 우선순위는 뒤로 빼놔. 상위권 애들 영입 못 하면 이런 애들이라도 데려와야지.’
분명 영입 순위에 들어가지도 못할 정도로 낮은 스펙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우선순위에 두기에는 상당히 아쉬운 수준.
박형욱은 스스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른바 주제 파악이 확실하게 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조금 더 나은 환경의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외적으로 ‘쓸 만하다’라는 평가가 내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렇다면 가장 좋은것은 대련이었다. 최소한 자신보다 위 등급에 있는 대상을 상대로 어느 정도 비등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머릿속에 수많은 생도가 난립했다.
신하연? 아니, 그녀는 분명 무기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박살을 낼 것이다.
장선우? 절대 안 된다. 안 그래도 일대일에 특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하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상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던 때였다.
“뭐? 다나…… 걔?”
“어, 대련 한 번 하면 일단 관심은 받겠지.”
“그런데 걔 팬덤한테 욕 뒤지게 먹을 거 아니야. 건드는 사람 있으면 하나 잡아서 죽일 기세던데 거의.”
“말만 그렇지, 뭐. 그리고 펜타곤 안에서 대련은 누구나 하는 건데…… 그거 가지고 뭐라고 그러겠어?”
물론 대련은 누구나 하는 거긴 한데, 여러 명이 몰려가서 대련 거부도 못 하게 강제로 하게 만드는 건 치졸한 일이지.
박형욱은 머릿속에 떠오른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애초에 이들 또한 그 사실을 모르고 말을 한 것은 아닐 테니까.
다나 크리스틴이라…….
박형욱은 잠시간 머리를 굴려보았다.
입학 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랭킹 1위에 등극한 천재 마법사.
다만 그와 대비되는 처참한 수준의 신체 능력으로 인해, 과거에 대련 신청을 꽤나 많이 받았었다.
물론, 몇 차례 도전자들을 가볍게 정리해 내고, 시험 때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 주며 의심을 종식시켰지만…….
‘그래도 어쩌면……?’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었다.
결국에는 마법사. 그것도 극단적으로 공격에 치중되었으면서, 신체 능력까지 굉장히 뒤떨어지는 마법사다. 어쩌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박형욱은 그 무리와 함께 다나에게 향했다.
그리고 대련 신청에 성공했다.
와아아아!
“하아…….”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환호성.
박형욱은 그것을 들으며 두근거리는 심장을 다잡았다.
저 중에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지.
“두고 봐.”
이번 대련으로 나를 다시 보게 하겠다. 박형욱은 그렇게 자기 스스로에게 다짐하며, 대련 시작과 동시에 튀어 나갔다.
결국 영창하기 이전에 몰아붙이면, 끝내 버릴 수 있다.
간극은 대략 50M. 이 정도라면 2초 정도면 접근하는 것이 가능했다.
일단 달라붙은 뒤 드잡이질을 하면 바로 리타이어시킬 수…….
콰드득!
“커, 억?”
그때,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충격.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는 즉시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펜타곤의 대련은 외부에서도 관전하러 오는 일이 있었다. 다른 학교 내부 교육 장면에 대해서는 정식 답사를 요청해야 하지만, 대련장만큼은 예외였다. 물론 대신 관람비를 내야 하지만…… 그 관람비로 대련장의 시설을 관리한다고 한다.
오늘의 대련은 유독 사람이 많이 몰렸는데, 매치업 중에 요즘 화제가 되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나 크리스틴.
요즘 들어 주가가 치솟고 있는 생도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전에 그녀와 작은 인연이 있었던 신화 길드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보러 오길 잘했지?”
“그래…… 아니, 아니야. 안 보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소수 정예로서 유명한 비영리 목적의 길드 신화, 그곳의 길드장.
그와 함께 온 것은 천마 길드의 갈성혁이었다.
“왜, 좋은 구경 했잖아. 소환수의 순간 전이를 1학년 생도가 사용하는 거…… 아니, 그냥 생도 수준에서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아?”
“신기한 게 아니라, 말이 안 되는 거지…… 좋은 볼거리기는 하네. 실전이었으면 쟤 죽었겠다.”
모두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나 크리스틴과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중위권 육체계 생도와의 싸움.
유쾌한 반란을 기대했던 일부의 사람들 또한 어깨를 한 차례 으쓱일 뿐, 결과에 의아함을 품지는 않았다.
시작으로부터 대략 1.2초 만에 리타이어.
박형욱의 뒤로 순간 전이된 거대한 땅의 정령이, 그의 뒤통수를 잡아 한 대.
그리고 들어 올린 다음 니킥을 박아 넣는 순간, 심판의 대련 중지 콜이 나왔다.
만신창이가 된 채로 실려 나가는 박형욱을 보며,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쟨 도대체 뭔 자신감으로 덤빈 거야? 덜떨어진 놈 같은데…… 딱 자기 수만 생각하네.”
“그래서, 별로?”
“누구 말하는 거야? 방금 실려 나간 놈 말하는 거면 한 트럭을 줘도 안 써.”
갈중혁은 냉랭하게 답했다.
대련표를 보면 누가 누구에게 대련 신청을 했는지 나온다.
멍청하게 자기가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시비를 건 것도 모자라서, 대련에서도 바보 같은 모습을 보여 줬다. 아마 천마 길드가 아닌, 다른 길드에서도 그에게는 러브 콜을 보내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면, 쟤는?”
“이미 소속 있잖아. 자기가 길드 차렸더만. 그래서 안 보는 게 나았을 거라고 한 거야.”
“왜, 배 아프냐?”
“존나 쓰리니까 그만 얘기해.”
신화 길드장은 낄낄대며 갈성혁을 놀렸다.
어차피 그 같은 경우에는 영리 목적의 길드가 아닌, 마치 친목회 느낌으로 상위 길드원끼리 만든 길드였으니 그리 아쉬울 것이 없었던 탓이었다.
길드에서 하는 일도 대형 괴수의 격퇴 및 빌런들의 추적.
일종의 결사대처럼 운영되는 곳이었다.
반면 천마 길드는 최근 국내 길드 랭킹을 올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저런 신예 한 명 한 명이 아까웠던 것이다.
정말로 속이 쓰린 듯,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던 갈성혁은 신화 길드장에게 질문했다.
“지금 가서 접촉하면 안 되겠지?”
“그러다 걸리면 뉴스 1면에서 나오겠지. 재밌긴 하겠다. 한 번 해 봐.”
“짜증 나네 진짜.”
갈성혁은 투덜거리면서, 신경질적으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연초 하나를 입에 물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끊었다며.”
“몰라, 씹. 난 먼저 간다.”
“뒤에 하는 경기는 안 보고?”
“웬 듣도 보도 못 한 놈들이더만, 안 봐.”
손을 흔들며, 천천히 관중석 바깥으로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신화 길드장은 오늘 천마 길드의 운명을 대략적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저 새끼, 또 사건 터지는 거 아니야?”
길드원들 데려다가 줄빠따를 때리는 바람에, 가혹 행위로 입건이 된 적도 있는 그였다.
아까 분명히 작게 혼잣말로 스카우터들한테 밥버러지니, 쥐어 패야 한다느니, 했던 것 같은데…….
“야, 야. 너 애들한테 손대면 안 된다? 6년 전이랑 지금이랑 많이 달라, 진짜 잡혀가.”
신문 1면에 나면 재밌긴 하겠다는 농담을 하긴 했지만, 신화 길드장은 진짜로 친우가 경찰에 잡혀가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는 갈성혁을 따라가며 폭력은 안 된다며 재차 만류했다.
* * *
“옵바야, 너무 약한 고시애오…….”
대련의 결과는 굉장히 불만스러웠다. 진짜 반 죽여 놓으려고 했는데, 단 한 방에 리타이어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몇 군데의 외상으로 끝나 버렸다.
갈빗대 서너 개 정도 나갔으려나.
원래 계획은 바인드 마법으로 묶어놓고, 4대 원소 마법을 무한으로 즐기려는 거였는데…… 땅의 정령이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저쪽이 약한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둘 다인가.
“옵바야들, 븝미쟝 응원해 줘서 고마운 고애오!”
나는 관중들을 향해, 한마디 남기고 대련장의 아래로 사라졌다.
우렁찬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채웠고, 그 사이사이 몇몇 역한 이야기들이 들려왔지만, 이 악물고 무시했다.
“하와와…… 그거는 아닌 고애오…….”
그런데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시발 너랑 결혼을 왜 해. 몇몇 놈들이 외치는 미친 소리에 절로 대꾸가 나왔다.
나는 곧바로 대기실을 빠져나와 숙소로 향했다.
진짜, 말도 안 되게 피곤했다. 도대체 왜 하필 오늘 쪼르르 달려와선 대련을 신청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온몸이 석화가 된 것처럼 그저 뻣뻣했다.
“호에에.”
숙소로 가던 중에 신기한 광경도 볼 수 있었다.
저 사람들도 왔던 건가.
신화 길드장과 천마 길드장.
각기 다른 분야에서 국내 최정상 길드를 이끄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저 둘이 꽤나 친하다는 언급이 나왔었나.
“지금이 조은 고애오…….”
스토리가 진행되며 둘이 반목하게 되는 건 꽤나 나중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훨씬 더 선명했던지라, 나로서는 저 두 사람이 친하게 어울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게 상당히 어색했다.
……일단은 괜히 발견되기 싫어서 기척과 마력을 숨긴 채 두 사람의 경로를 우회했다.
저번에 나를 서큐버스로 오해한 전적이 있는 신화 길드장 그리고 봉미선이 와도 못 말린다는 화난 갈성혁. 굳이 마주쳐서 좋을 조합이 아니었다.
“다녀온 고시애오오…….”
나는 문을 빼꼼 열며 들어왔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없어야 했다.
이곳은 나와 일리아가 같이 쓰는 숙소였으니까.
일리아는 내 대련 소식도 듣지 못한 채, 그녀가 수강한 ‘몬스터와 지리’ 수업의 실습을 나갔다. 아마 족히 한 시간은 있어야 돌아올 것 같은데…….
“응애.”
“쉬이잇, 아가야…… 조용하는 고애오…….”
하지만 이곳에는 다른 이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요정용이었다.
“맘마 조…… 배고팡…….”
“아라써여. 보채지 마라여…… 그리구 이미 줬자나여!”
녀석은 내 말에 한쪽 방향을 슬쩍 쳐다봤다.
그곳은 내가 아침에 미리 음식을 놔두고 간 곳이었다.
사람 음식도 잘 먹는다는 것을 안 뒤로, 나는 내가 먹는 식단 그대로 녀석에게 줬다.
오늘도 펜타곤 식당에서 미리 음식들을 사 와서 놔두고 갔는데…… 꽤나 많이 뒀다고 생각했는데도 진즉에 다 먹어 치운 모양이었다.
“응애.”
녀석은 입을 쩍 벌리며 손으로 입을 탁탁 두드렸다.
에휴, 왜 내가 이 녀석을 데리고 와선.
펜타곤 내에 애완동물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냥 상주하고 있는 길드원들에게 돌봐 달라고 하려 했는데, 개학 전날부터 하루 종일 울면서 떼를 써대는 탓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뭐,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아무리 교육을 해도 행동거지가 변하질 않았다, 이 녀석은.
이젠 그냥 포기한 상태였다.
“아가야, 이거 먹는 고애오.”
“마이쪙.”
일단 급한 대로 초코바 하나를 넘겨주자, 우물거리며 기쁘게 받아먹는다.
나 먹으려고 놔둔 건데. 다시 사면 그만임에도 뭔가 얄미웠다.
“케윽, 켁…….”
“호에에? 아가야 왜 그러는 고애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의 상태가 이상했다.
목을 부여잡고 켁켁거리더니, 무언가 이상 반응을 보이는 녀석.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개나 고양이는 초콜릿을 먹이면 안 된다는 상식이 번뜩 떠올랐다.
그…… 파충류도 안 되나?
“말도 안 되는 고애오!”
아니, 진짜 동물이 아니라 용이잖아.
신발 가죽도 씹어 먹는 놈이 무슨 초콜릿 하나로…….
새 특성을 습득합니다!
이건 또 뭐야.
이 상황에 무슨 특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