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아가야가 건강해졌어여!
“언니!”
“하와와와, 븝미쟝은 언니 아닌 고시애오…….”
“헤헤헤.”
폭 하고 안겨드는 갈색 머리의 소녀.
귀여운 인상에 해맑은 표정이라 병색은 없어 보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이 애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검선이 자신의 동생을 위해 마련해 둔 은신처.
물론 은신처라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 구조기는 하지만…… 사실 아무리 숨겨 봤자 흑사회의 손 밖으로 도망치기란 불가능한 것이었으니, 보안이라도 제대로 하자는 심산이었을 것이다.
“오빠는 안 와요? 며칠째 안 보여서…… 언니는 오늘 벌써 세 번째 왔는데.”
“하와와…… 옵바야는 바쁜 고시애오.”
“치이, 맨날 바빠.”
토라진 듯이, 입을 삐쭉 내밀며 팔짱을 끼는 검선의 여동생.
따지고 보면 검선이 바쁜 이유는 모두 이 애 때문이지만…….
이제 겨우 9살. 얘가 여타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금방 올 거예여. 그보다 손 줘 봐여.”
나는 살살 달래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내가 이것을 ‘놀이’라고 인식시켜 놓았기에 아무 거부감 없이 내민다.
작고 여린 손과 팔뚝.
그 사이의 손목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마나를 불어넣어 혈맥을 전체적으로 훑기 시작했다.
……역시나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몸 안에 들어 있는 소량의 마나와 함께 섞여 있는 혼탁한 기운.
이것이 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 원인이다.
켈드라…… 뭐 어쩌고 하는 이름의 병원체였는데, 이름이 더럽게 길어서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굉장히 드문 확률로 발생하는 특이한 희귀 질환.
이것에 걸리면 체내의 마력이 이 기운에 의해 잠식되어 점차 몸 전체에 마력이 사라져 간다.
살아 있는 모든 인간들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히어로들처럼 다량의 마력을 지니고 있진 않지만, 만약 그것이 없다면 사람은 생을 이어 나갈 수 없다. 그것을 직접적으로 운용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애의 몸에는 다량의 마력이 돌고 있다.
그것은 내가 검선에게 알려 준 처방전 덕분이었다.
강제로 몸 안의 마력을 활성화시키고, 부작용없는 마력 증대를 도와주는 약을 먹임으로써 일시적으로 상태가 매우 호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저 혼탁한 기운이 존재하는 한, 이 아이의 몸에서는 계속해서 마력이 새어 나간다.
그러니까, 내가 저걸 직접 없애야만 했다.
“조아여.”
나는 긴장을 떨치려 손을 한 차례 털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아이의 손으로 내 마력을 흘려 넣었다.
“언니…… 나…… 아파…….”
“미아내여, 좀만 참는 고애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자신의 것이 아닌 마력이 몸에 들어온 것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나는 반대쪽 손을 꼭 잡아 주며 안심을 시켰다. 이 정도로 참는 것만 해도 충분히 대견한 일이었다.
“으으…… 끄으…….”
아이의 손이 땀으로 축축해지고, 점차 떨리기 시작했다.
진통을 위해 사전에 마법을 걸어 놓았음에도 그러했다.
꽤나 견디기 힘들 법한 격통일 것이다. 아마 웬만한 성인들도 소리를 지르며 괴로워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만 의연하게 참아 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되려 안쓰러웠다.
검선을 닮아서 유난히 인내심이 뛰어나다거나……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고통을 수없이 겪어 왔기에 참아 낼 수 있는 것일 터다.
어느새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버린 침대 시트.
아이는 힘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언니…….”
“다 끝났어여…… 조금만여…… 조금만…….”
나는 반복적으로 같은 말을 되뇌었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이미 그 혼탁한 기운이 자리 잡고 있는 위치는 파악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 위치가 문제였다.
급작스럽게 늘어난 마력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난 기운은, 가장 민감하면서도 체내 마력이 풍부한 곳에 자리 잡았다.
그곳은 바로 심장.
잘못 건드렸다가는, 일을 그르치기가 십상이었다. 그렇기에 굉장히 조심히 접근했다.
하지만 이제 이 짓거리도 끝이었다.
조심스럽게 그 기운 주변에 내 마력을 얇게 덧씌운다.
심장에는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도록, 마치 스푼으로 떠내듯 기운을 분리하고는 그것을 곧바로 흩뜨린다.
그리고 완벽하게 소멸한다.
나는 점차 돌아오기 시작하는 아이의 혈색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잘 자.”
치료가 고되었는지, 곧바로 수마에 빠져드는 아이.
요 며칠간의 노력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띠링.
“하와와…… 바깥에도 병이 있는 거예여…….”
그때,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렇게 타이밍이 딱 맞나 싶었다.
[흑사회 별동대가 접근 중. 대략 2분 이내 도착 예정.]
이수정이 보낸 메시지였는데, 아무래도 검선이 제대로 깽판을 부린 모양이었다.
그는 나…… 정확히는 그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 존재하는 괴집단을 신뢰하며 이쪽의 안전을 부탁했다.
그렇다면 그 신뢰에 보답해 줘야겠지.
나는 이수정이 찍어 준 좌표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송했다.
[그럼 여기 가서 대기하고 있을게. 길드원들 다 데리고 왔어.]
최근, 현역 히어로 세 명을 추가 영입한 패스파인더 길드.
그 길드원 전원의 첫 전투가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 * *
“……제대로군.”
검선은 흑사회 건물을 초토화시킨 뒤, 곧바로 동생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자신과 거래한 집단이 동생을 보호해 주겠다고 했고, 그가 몰래 협회에서 히어로들 몇몇을 빼 와 배치해 두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그것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여동생이 있는 건물, 그 주위에는 전투의 흔적조차 없었다.
대신 그로부터 꽤나 떨어진 근방에의 풍경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반쯤 파괴되어 버린 구조물들.
그리고…… 군데군데 널려 있는 흑사회 빌런들의 시체들.
그들의 몸에 남아 있는 흑마력으로 인해 전원이 빌런들의 시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지 근처의 인적이 드문 곳이라 민간인이 휘말리진 않았지만…… 아마 당분간 꽤나 귀찮을 것 같았다. 이 인근에 개인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검선 하나뿐이었다. 그 때문에 협회에서 조사랍시고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떠날 테니, 상관도 없나.”
검선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미 흑사회를 친 시점에서 히어로로서 삶은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복수랍시고 지금까지 그가 해 온 모든 일을 까발릴 테니까.
빌런과 내통한 히어로는 그야말로 매국을 한 이들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아마 이날 이후로 그가 대중에게 모습을 공개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만족할 수 있었다.
결국에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으니까.
탁탁탁.
층계를 오르는 발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경쾌했다.
검선은 조심스럽게 동생이 잠을 자고 있을 방으로 향했다.
철컥.
문이 열리고 내부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어?”
그리고 그는 얼빠진 얼굴을 한 채,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왜 이제 온 거야.”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겨우 5살 때부터, 병마와 싸워 오던 바람에 항상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만 누워 있던 그 아이가, 발그레한 홍조를 띠며 그를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분명 호전되기는 했어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혈색이 완연히 돌아온 모습으로 종종거리며 검선을 향해 달려오는 여동생.
“기다렸잖아, 나랑 놀기 싫어서 맨날 늦게 오는 거지? 치.”
기다렸다.
정말, 오랜 시간 기다렸다.
“……오빠? 왜 울어.”
검선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순간을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좋아서, 너무…… 좋아서.”
“누가 좋아서 이렇게 울어. 좋으면 이렇게, 웃어야지.”
씨익, 호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동생의 입꼬리.
검선은 억지로 그를 따라 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그는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닌 괴상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게 뭐야. 오빠 되게 못생겼어, 지금.”
꺄륵, 웃으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검선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
“고마워.”
건강해 줘서.
* * *
[감사합니다.]
검선으로부터 온 한 줄의 메시지. 나는 그것을 보고 조금 뚱해졌다.
“이게 다예여? 이이익…….”
내가 해 준게 얼만데…….
뭐, 뽀찌라도 좀 주던가, 이거 입 싹 닦으려고 하네.
물론 이미 거래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다 받긴 했지만서도, 나는 거의 두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릿속의 지식과 이곳의 서적들을 뒤적여 가며 병을 고치는 방법을 알아내었다.
게임에서 언급된 것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리란 건 내 오만이었으니까.
초회 시도가 완벽히 물거품으로 돌아간 뒤, 수많은 시간을 들여 겨우 성공해 낸 것이었다.
“완전 짠돌이에여…… 납븐 옵바야애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대충 할 걸…… 하기에는 그 애가 너무 불쌍하긴 했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속 한구석이 쿡쿡 찔려 왔다.
어렸을 때부터 병상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해 왔다는 작고 여린 애.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 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떠올릴 때면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건.
결국에 내 목표는 달성했다.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될 흑사회에게 실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핵심 전투 인원들은 모두 살아 남은 게 아쉽긴 했지만, 그들은 검선도 확실하게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들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연구’를 담당하던 이들이 모두 청소되었다는 것.
그러니까 내가 이곳에 온 초기에 끌려 들어갔던 인공던전이나, 후일에 나올 지옥에서 소환된 마족들의 난동 같은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인원을 보충하고, 다시 시작하면 어떻게든 사건이 발생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본래 시기보다 2~3년 이상은 늦췄음이 분명했다.
“……최근 논란에 휩싸여 있는 국내 랭킹 6위의 히어로, 통칭 검선이 자취를 감추고 잠적했다는 소식, 어제 들려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그가 소유한 서울 근교의 한 건물에서 다량의 시신이 암매장되었다는 소식을…….”
조금 아쉬운 것은, 검선이 원래 스토리처럼 자취를 감췄다는 것일까.
나는 tv에서 들려오는 뉴스 소리에, 채널을 바꿔 버렸다.
“악! 왜 바꿔!”
“옵바야 뉴스 조아하는 고애오?”
“아니, 방금 소식은 들어야지. 요즘 제일 핫한 이슈인데.”
……이 사람은 얼마 전에 우리가 물리친 흑사회 빌런들이 검선의 동생을 노리고 온 거란 걸 알까.
나는 눈을 반짝거리면서 말하는 남자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최근에 길드 가입을 신청한 사람 중에, 원작에도 나오고 개인의 정의관도 괜찮은 몇 명을 뽑았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이 남자였다.
국내 랭킹 1,300위, 방패전사 강훈.
내가 말해 주지 않은 탓이었지만, 이 사람은 그때의 전투가 검선과 엮인 일이라는 걸 꿈에도 모른다.
“……여기여.”
“아니야, 뉴스 질렸어. 그냥 딴 데 보자.”
“옵바 혹시 청개구리인가여?”
“그런 말 자주 듣지.”
우헬헬, 하며 방정맞게 웃는 그 모습에 얼굴이 차게 식는다.
아무래도 좀 길드원을 잘못 뽑은 것 같다.
띵동.
그렇게, 그와 내가 시트콤을 찍고 있던 때.
길드 현관에서 벨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가여어.”
길드원이라면 벨을 누를 이유가 없었다.
그러니까, 외부 사람이라는 뜻인데…… 기자들은 이미 정문에서 알아서 쳐 내어졌을 테니, 무언가 정말 용건이 있어서 찾아온 사람일 터였다.
뭐, 투자자? 아니면 포션이나 무기 발주를 부탁하려는 사람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연 나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서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언니!”
“호에에에?”
내 품속으로 폭 안겨 오는 조그만 여자애.
그 뒤에 서 있는 것은…….
“그 모습으로는 초면이군.”
검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