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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26화 (126/172)

#126화. 몰래 가입을 했어여……

이 세계관에는 위협이 되는 빌런 집단들이 너무나 많다.

얼마 전에 박살을 낸 흑사회가 바로 그런 곳이다.

물론 그것은 상당한 운이 따라 주어 가능했던 일이다.

아직 남아 있는 다른 빌런 집단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직 활동 시기가 많이 남아 있는 만큼 천천히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안일한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얼마 전 이수정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나를 자극했다.

“호에에…… 다 옮겨 가는 고애오…….”

바로 흑사회의 주요 인원들이 전부 발할라의 집회와 여타 빌런 집단들에게 옮겨 갔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에는 흑사회를 없앤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면…… 마치 발할라의 집회가 흑사회를 흡수해 버린 꼴이 되는 것 아닌가.

죽 쒀서 개 준 꼴이나 다름이 없었다.

어쩌면 이로 인해 발할라의 집회가 본색을 드러내는 시기가 더 빨라질지도 모를 일.

어떻게든 그쪽 상황을 알아봐야만 했다.

“하와와…… 븝미쟝이 해야 하는 고애오…….”

그건 다른 누군가에게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내가 행해야만 하는 일.

그에 나는 이수정에게 작은 부탁 하나를 했다.

“아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 요즘에 일 너무 많이 시키잖아, 솔직히. 이건…… 아…….”

“미아내여, 언냐야. 그래도 좀 도와주는 고애오!”

본래 광대 위까지 내려갔던 다크서클이, 더 짙어져 광대 아래로 내려오려는 이수정.

그 모습을 보니 살짝, 아주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내가 지금부터 해낼 대부분의 일들에 이수정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이러다가 배신하는 것 아닌가,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이렇게 막 다루는 게 잘해 줄 때보다 배신할 확률이 더 적으니까.

이수정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진짜 이 사람이 누구야? 어떻게 보면…… 살짝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알아서 뭐 하게여, 언냐야. 빨리 시키는 거나 하는 고애오.”

“……너무하는 거 아니야?”

순간 뜨끔해서 쌀쌀맞게 말하자, 이수정은 상처받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저래 놓고 속으로는 좋아할 거면서. 진성 마조 같으니.

“훌쩍.”

코를 먹으면서 자판을 두들기는 이수정.

나는 그녀에게 내 다른 모습…… 그러니까, 불사신선을 흑사회 빌런 신분으로 둔갑시켜 발할라의 집회에 전향 신청을 하도록 했다.

일단 외부에 거의 노출된 적 없는 모습이고, 불사신선과 내가 같은 인물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현재로써 검선밖에 없다.

“자, 됐어. 그런데…… 이거로 그쪽에서 속아 줄지는 모르겠는데.”

“괜찮아여, 언냐야. 그 정도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신분으로 완벽하게 발할라의 집회 단원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물리적으로도 불가한 것이, 지금 내가 불사신선이 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4시간가량…… 이건 실상 소모적인 것이었다. 이때까지 거의 변신하지 않아서 모인 시간이니까.

최근 들어서 변신 특성 레벨이 상승하는 바람에 그나마 이 정도지, 다시 이만한 시간을 모으려면 얼마가 걸릴지 까마득했다.

만약에 내 정체가 들키기라도 한다면?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0에 수렴했다.

“어차피 그 옵바 언냐야 들은 안 믿을 고애오.”

흑사회에서 온 인원들이 아무리 전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발할라의 집회 입장에선 바로바로 단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철저하게 신분 증명이 된 사람일수록 되레 의심도 높아질 확률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대부분의 신입 단원들을 외부로 돌릴 것이다.

내부 정보를 캐내거나 하기 힘든 파견근무를 위주로, 궂은일만 최소 1년은 시키겠지.

나는 그편이 훨씬 편했다.

얻는 정보의 질이 다르더라도, 훨씬 안전하니까.

게다가 대략적인 동향만 알면 되는 것이, 그쪽의 계획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스타드 드 프랑스 테러 사건]

[차원관문 개방 및 공물준비]

[대규모 의식 진행]

[해양 몬스터의 광폭화와 대형 크루즈선 3척 완파]

…….

머릿속에 떠오르는 녀석들의 계획만 하더라도 십수 가지였다.

어떤 식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는 정도만 인지하면 다 사전에 알고 예방할 수 있었다.

“이거 답변은 언제 올까여?”

“아마…… 한 사흘 정도? 그 정도면 될 거야. 일단 안 걸리길 빌어야지…… 급하게 한 거라 조금 조잡할 수도 있어서.”

3일 뒤라…….

내 생각보다 빠르다.

나는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거 모애여.”

그리고 그로부터 6시간 뒤, 저녁 시간.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익일 오전 11시, 해당 좌표로 집합하도록]

3일은커녕, 바로 당일 답변이 왔기 때문이었다.

*    *    *

“……이럴 거면 왜 오라고 한 걸까여?”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곧바로 불사신선 상태에서 변신을 해제했다.

방금, 발할라의 집회에서 준 좌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적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심사는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하지 않고 자기네 단원의 징표를 나눠 주는 거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입을 벌리면 예의 그 틀딱체가 나올 것 같아 걱정했는데, 말도 한마디 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막 줘도 되는 건가여…….”

오른속에 들린 황동색의 팬던트.

이것이 발할라의 집회 단원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이 팬던트의 색깔로 외부에서 계급 차이를 확인한다고 한다.

황동–청옥-적색-흑색-백색 순이라고 했나.

나야 계급을 올려 봤자 아무 의미도 없지만, 소속 빌런들은 아마 계급을 올리려고 혈안일 것이었다.

나는 팬던트를 가방에 그대로 넣었다.

이걸 내가 들고 있는 모습을 들키면 안 되었으니까.

지금 저쪽 단원이 된 것은 ‘불사신선’이지 내가 아니었다.

“호에.”

터벅터벅.

잠시간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다시금 대로변으로 나오려고 할 때.

어디선가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발걸음 소리가 어디로 향하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아마도, 발할라의 집회 이번 신규 단원.

그러니까 흑사회에서 변절한 이가 아닐까 생각이 되었다.

내가 빠져나온 동선을 그대로 따라와야만 이 골목길에 들어올 수 있었다.

죽일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하지만 이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내가 저번에 흑사회 간부를 죽인 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하급 간부들이었다.

심지어는 다른 한 놈한테는 죽을 뻔했고. 그놈이 멍청한 덕에 살긴 했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일 좋은 방법은 길드원들을 불러와서, 조져 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곧바로 단말기를 꺼내 길드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근처에…… 아무도 없네.

하필 타이밍이 영 안 맞는다.

신입 길드원들 같은 경우에는 다들 1,000위 초반, 개중 한 명은 세 자릿수 랭킹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이다.

웬만한 빌런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법한 이들이라 기대를 해 봤는데, 막상 주변에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일단, 대충 견적이나 보자.

나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어, 그러니까…… 별놈들이 없긴 한데. 희한한 녀석 하나를 발견해서 지금 쫓아가고 있었거든.”

수십 미터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인다.

그러자 녀석의 통화 소리가 들려왔는데, 나는 그 내용에서 놈이 나를 따라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쪽으로 나보다 앞서 온 다른 빌런은 없었고, 또 희한한 녀석이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불사신선이었으니까.

마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음에도 빌런들의 시선을 꽤나 끌었었다.

“그런데 놓쳤어. 갑자기 싹 사라지더라고. 냄새가 안 나 이제. 다른 사람 냄새가 나긴 하는데…… 그건, 뭐, 이 근방에 사는 사람일 테고.”

냄새?

나는 순간적으로 주위에 마력 장막을 펼쳤다.

어떤 방법인지는 몰라도, 저놈은 특정한 사람의 체취를 기억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비슷한 특성이 세계관 안에 꽤나 많아서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흑사회 단원 네임드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진 녀석이 있었나?

잠시 턱을 괴고 고민해 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놈이 없었다.

되레 히어로라면 있기는 하다. 라이칸스로프가 아님에도 그런 능력을 가진 남자가…….

“어, 잠깐만. 갑자기 냄새가 끊겼…….”

“호에에.”

아, 시발. 실수였나?

냄새라는 말 때문에 놀라서 마력 장막을 펼쳤는데, 저 녀석은 냄새가 끊겼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것 같았다.

시선도 마침 이쪽을 향하는 것 같아 빠르게 준비했다.

도망칠 준비를.

타다다다닥!

하지만, 저쪽이 더 빨랐다.

지팡이를 타고 날아오르려는 순간, 뒤에서 그놈이 나타난다.

“기다려!”

너 같으면 기다리겠냐.

나는 전속으로 상공을 향해 활강했고, 뒤에서는 뭐라고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왜…… 망치…….”

망치로 잡아서 패 버리겠다는 건가.

나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 수밖에는 없었다.

“무시무시한 고애오…….”

*    *    *

협회 직속 히어로 한영오.

그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발할라의 집회 쪽 수상한 동향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물론, 흑사회의 내분 때문에 빌런들이 대거 흡수되고 있다는 정보.

그 이상의 것을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부에 스파이를 심으려고 해도 이미 협회의 전적이 있는지라 놈들이 기가막히게 구별해 냈으니까.

그에 차라리 목적을 바꿔 집회 장소를 미리 알아내어, 그곳으로 향하고 또 빠져나오는 빌런들을 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존나 잘 도망다니네…….”

도망치고 추적을 피하는 데에는 이미 도가 튼 이들이 바로 빌런들이었으니까.

아무리 추적에 용이한 특성이 있다고는 해도 한 사람 잡아내기도 힘든것이 현실이었다.

그렇게 허탕만 친 채로 수 시간이 지나고, 포기하려던 찰나.

그는 특이한 사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에 마나가 없어? 저놈은 뭐야……?’

생물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마나가 존재하지 않는 희한한 녀석.

일시적으로 몸에 있는 마력을 모두 소진한 채로 전투를 벌이는 특성, 물론 존재했다.

본신의 힘을 수 배로 끌어다 쓰기 위해 몸에 무리를 주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가 본 사람은 그런 부류가 아닌 것 같았다.

평상시에도 그냥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

그에 호기심이 솟은 한영오는 그를 쫓았다.

“어디 갔어?”

하지만 또 허탕.

아까전까지 잘만 나던 그 빨간머리 남자의 냄새가 사라져 버렸다.

그에 협회 직원과 통화를 하며, 경과를 보고하고 이만 철수하려고 마음을 먹었던 때였다.

‘……이건 또 뭐야.’

갑자기 느껴지는 강렬한 다른 냄새.

무언가 달큰하면서도 사람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희한한 것이었다.

그것이 신경 쓰이면서도, 본래 목표가 아니니 무시하려 애썼다.

하지만 자신의 말에 맞춰, 갑자기 사라지는 냄새에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누군지는 몰라도 방금까지 통화를 엿듣고 있던 게 확실했으니까.

“기다려! 도망가지 말고!”

후웅!

한영오의 외침을 무시하고, 이내 상공으로 치솟아 버리는 그 존재.

그는 잠시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쟤가 왜 여깄어…….”

이미 작은 점으로 사라졌음에도, 대놓고 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그녀.

한영오는 다나의 팬카페 4단계 우수 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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