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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27화 (127/172)

#127화. 아가야는 못 훔쳐여……

발할라의 집회.

그곳에서 신입 길드원들의 선별을 맡은 간부는, 잠시간 잔뜩 쌓여 있는 서류철을 훑어봤다.

10분이나 지났을까,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한 차례 저은 그는 그것들을 내던졌다.

“뭘 딱히 검증하고 말고가 있어? 그놈들이 세뇌 마법에 그냥 걸려 줄 것도 아니고. 지들이 하던 짓일 텐데.”

“그러면 어떻게 검증을…….”

“그냥 험지 외부 임무로 존나게 돌려. 알아서 떨어져 나갈 놈들은 떨어져 나갈 거고…… 남은 놈들만 나중에 검증하면 그만이잖아?”

“그러면…….”

“그래, 최근에 지정해 놓은 그쪽 지역으로 돌려. 그리고…… 이 좆같은 것들 좀 내 눈앞에서 안 보이게 치우고.”

휘적거리는 간부의 손과 함께, 부하 단원이 서류철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날, 신규 가입 신청을 한 빌런들은 모두 임무를 할당받게 되었다.

*    *    *

대전 인근에 위치한 한 박물관.

과거의 히어로들이 남긴 유품이나 빌런들에게 얻은 물건들을 전시해 놓는 곳.

그렇기에 박물관이라면 질색하는 아이들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에 더해 물품들을 안내해 주는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저기 있는 파란색 검은 누구 거예요?”

“저 검은 현재도 생존해 계신 말리스 히어로님이 젊었을 적에 쓰시던 검입니다. 그 성능 자체가 특별히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 2등급 괴수 다섯을 베었던 검으로 유명하기에…….”

“우와! 저기 방패 개 멋있어.”

“뛰시면 안 돼요!”

물론 질문을 던졌다고 해서 꼭 그 답변이 궁금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싫증을 내더니 다른 전시품으로 뛰어가는 아이들.

안내원들은 땀을 삐질거리며 아이들을 통제하려 애를 썼다.

그리고 나는 이 광경을 말없이 지켜봤다.

“…….”

쟤들은 안 말려들도록 해야 할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며 폰을 바라봤다.

[박물관의 지정된 마검 두 개를 회수하는 것이 목표다]

[임무 중 방해되는 것이 있다면 사살해도 좋다]

발할라의 집회, 나는 그곳에서 지령을 받고 이곳에 와 있었다.

대강 예상하기는 했다. 발할라의 집회에서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라는 건.

하지만 초장부터 이런 임무를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지금 회수하라고 명령받은 마검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물건인지…….

[이놈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형씨도 그렇지? XD]

물론 나 혼자 임무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프로필상 대략 10,000등대 히어로와 비슷한 스펙.

실제로는 내 원래 몸이건 불사신선 폼이건 10,000등대 히어로는 가볍게 이길 자신이 있지만…… 그쪽에서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 정도 수준인 놈한테 이런 임무를 단독으로 맡긴다?

대놓고 그냥 실패하라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세 명의 다른 빌런들과 함께 이곳에 와 있다.

그것을 좋아해야 할지 싫어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기 어린애들도 죽여야 하는 건가? 그건 좀 싫은데. TnT]

거, 시팔 말 더럽게 많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막상 죽일 상황이 되면 가차 없이 죽일 놈이다.

애초에 내가 이쪽에 잠입하면서 세운 계획 중 하나가, 이렇게 주는 임무 과정에서 같은 팀원들을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었다.

지금 메시지로 시끄럽게 떠들어 대고 있는 놈을 포함한 이 빌런들.

이들은 당장에야 발할라의 집회에 들어가겠다고 하는 중이지만, 나중에는 생각이 바뀌어 개인 활동으로 전환할 수도 있었다.

집단의 힘이 세지냐, 개인으로 활동하는 음지의 빌런들이 많아지느냐…… 그 어느 쪽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후자가 나로선 더 위험했다.

[3분 남았으니까 준비해 두라고, :p]

미리 입을 맞춘 습격 시각은 2시.

지금은 1시 57분이었으니 녀석의 말대로 3분이 남은 셈이었다.

좌측 상단 위 천장 사이 빈 공간에 하나, 관람객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검은 후드를 쓴 녀석 하나…… 그리고 저놈은 대놓고 있네. 뭔 생각이야.

나는 같이 임무를 맡은 세 명의 빌런들의 위치를 하나씩 확인했다.

미리 놈들이 무언가 사고를 치기 전에 막기 위함이었다.

59분…… 그리고 2시.

미리 이야기한 시간이 되자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교적 민간인들과 동떨어진 곳의 마검을 노리는 두 놈과 다르게, 나와 다른 한 명의 빌런은 관람객이 꽤나 많은 곳에 목표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관람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냥 한 번 쓸어버리고 시작하려는 느낌인데.

“제4관에 신원 불명의 거수자 발견. 반복한다, 제4관 신원 불명의 거수자 발견…….”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자 곧바로 경비원들이 몰려든다.

대놓고 나 빌런이오, 하고 선언이라고 하는 듯한 차림새였으니 그럴 수밖에.

놈은 검은색 망토에 보기만 해도 흉악한 생김새의 클로를 끼고,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배x맨인 줄 아나.

철컥…….

딱 봐도 일을 저지를 것 같은 태세에, 경비원들이 다들 총을 한 자루씩 꺼내 든다.

재래식 무기가 필드나 던전에서 사용할 수 없는 게 문제지, 이렇게 대인전에서는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일반 총기도 아니고, 마력 부여가 된 마탄을 발사할 수 있는 총.

개중 한 명은 심지어 건슬링거로 보였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해! 그렇지 않으면…….”

“발포한다?”

끄그그극.

녀석은 경비원 중 대장으로 보이는 이의 뒷말을 이으며,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묘한 모습으로 뒤틀리는 놈의 머리.

저놈, 시동 특성을 가지고 있는 건가.

나는 곧바로 일어서서 마력을 일깨웠다.

“안 되는 고애오!”

경비원들은 그 기묘한 광경에 그저 시선을 빼앗긴 채, 발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은 저놈이 공격을 가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 ‘시동’이 걸리고 나면 나도 처리하기가 껄끄러워진다. 그 전에 막아야만 했다.

촤르르르륵!

이어 내 몸에서 뻗어 나간 마력 사슬이 녀석의 몸을 포박한다.

끼기긱, 하던 기묘한 소리가 이어 멈추고 동시에 마력의 흐름이 막혀 버린다.

눈에 띄게 당황한 모습으로 몸을 비트는 녀석, 경비원들은 뜻밖의 도움에 당황하다가도 녀석을 제압했다.

“하와와와와…….”

괜히 위험할 뻔했네.

시간이 아까워서, 박물관 상층 근처에서 은신한 이후에 원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 때문에 괜히 잘못도 없는 경비원들을 모두 죽여 버릴 뻔했다.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조심하는고애오…….”

나는 다시금 불사신선의 모습으로 변했다.

혹시라도 다른 이들에게 들켰을 때, 내 본래 모습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웬만해서는 안 들키겠지만.

타다닥…….

나는 숨을 죽인 채 미리 파악해 둔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미리 걸어 놓은 인비저블 마법의 지속 시간은 대략 20초가량.

그 안에 저 마검을 훔쳐 내어야만 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불사신선으로 변신할 때 획득하는 스탯과 J와 결속되며 가져온 그녀의 잠행 숙련도.

이 상태의 나는 정말 귀신과 같이 움직일 수 있다.

“일단 제압해서 끌고 가고, 나머지…… 7관? 그쪽에서도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니, 가 봐!”

거기에 더해, 현재 관람객들은 전원 대피를 한 상태였고 경비원들은 다른 빌런들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결과 정말 허무할 정도로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쉬뿔…… 멋있긴 혀……!”

강력한 자색 광택을 내뿜고 있는 검.

검 손잡이에 박힌 마석은, 일반적인 마력이 아닌 끈적한 느낌의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쨍그랑!

가볍게 주변의 유리를 부숴 버린 나는, 곧바로 검을 집어 들었다.

우우우웅!

이어 ‘굶주렸다’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 특유의 마력이 내 몸을 훑었지만…… 물론 내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다. 이 몸에는 마력이 없으니까.

빨아먹을 마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이내 잠잠해지는 검.

나는 그것을 집어 든 채 7관으로 향했다.

“어어?”

달려가기보다는 날아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내 속도.

그에 경비원들은 어이없다는 듯 탄성만 지를 뿐, 나를 제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달려가자 7관 방향에서 빌런 한 명이 튀어나온다.

“형씨도 나왔구만!”

검은색 마스크와 후드를 낀 연보라색 머리칼의 여자.

조금 전에 내게 이모티콘을 섞어 가며 메시지를 보내던 그 빌런이었다.

설핏 멀쩡해 보이지만, 꽤나 격렬한 싸움이 있었던 듯, 내부가 진탕되어 있었다.

죽일까.

잠시간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차피 다른 한 명은 이미 경비원들에게 제압당하거나 죽은 모양이고, 이 년만 죽이면 이번 임무에 할당된 빌런들을 다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죽인다면, 필시 발할라의 집회 쪽에도 이야기가 흘러 들어갈 것이었다.

데리고 나간다.

나는 곧바로 그녀 뒤를 따라오는 경비원들의 발치에,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굉음을 내며 파괴되는 바닥.

튀어 오르는 석재 파편을 피하느라 다들 이쪽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스, 형씨! 이것도 받아!”

그녀는 아무래도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던지, 자신이 들고 있던 마검을 내게 던졌다.

본래 들고 있던 검보다 대략 20cm 정도 긴 검신.

졸지에 쌍수전사가 되어 버린 나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튀어 나가고 있는 빌런의 뒤를 쫓았다.

쿠에에엑!

처음에 집었던 마검에 비해 더 난폭한 기세를 보이는 대검.

그에서 나오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듣기 싫어, 왼손을 높이 들었다가 그대로 바닥에 내리쳤다.

캉!

부르르, 한 차례 진동하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는 마검.

역시 사람이건 검이건, 매가 약이었다.

“거기 서……시죠?”

경비원들은 우리를 더 이상 추격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어쨌건 공격 의사도 표하지 않은 채 검 두 자루만 챙겨서 떠나고 있었으니까.

굳이 목숨 걸고 싸울 이유가 저쪽에도 없었다.

“요점 것더런……패기가 읎어……!”

“……?”

근접해 있던 경비원 하나가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들을 뒤로하고 곧바로 발할라의 집회에서 알려 준 집결지로 향했다.

*    *    *

“2명 사망? 그리고…… 다 회수했다고?”

“네, 일단은 임무 난이도에 크게 항하고 있지는 않은 상태인데…….”

“항의가 문제가 아니고. 그냥 대놓고 실패하라고 보낸 임무잖아? 마검 상태는 확인했나?”

“네, 확실합니다. 둘 다 ‘왕자’의 물건입니다.”

“……우리 애들이 병신인 거야, 아니면 흑사회 놈들이 인재인 거야?”

최근에 배당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왔다는 보고.

그에 간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심정이 되었다.

“정말 뭐라고 말 없어? 어쨌든 두 놈이 죽긴 했잖아?”

“원래 넷 사이에 연고가 없었답니다. 흑사회 쪽은 개인주의 성향이 심한 집단이다 보니…….”

“그놈들이야 그렇긴 하지.”

사실상 협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미끼로 던져 버린 이들이 살아 돌아온 것도 모자라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그에 간부는 고민이 깊어졌다.

“실력은 입증됐는데, 문제는 신뢰할 수 있느냐 아니야.”

“……하지만 검증이 불가하죠.”

“그래, 씨발 그게 문제라고.”

실력만 보면 당장에 받아들여도 좋다.

하지만 첩자임이 아직 의심된다.

두 가지 생각의 충돌 탓에 그는 머리가 아팠다.

“씹, 별수 없구만.”

한동안 생각한 그는 이어 결정을 내렸다.

“일단, 내버려 둬. 그리고 언질해 줘. 다음 임무도 성공하면 그때 바로 정식으로 승격시켜 주겠다고.”

“그렇다면…….”

“더 독한 곳으로 보내.”

그리고 그 결정은 꽤나 가혹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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