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죽여야 살아여……
“그러니까, 형씨, 씨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나는 그 얼굴에 그 말투가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손까지 부들거리면서 열분을 토하는 여자 빌런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잘 모르겄는디…… 내는…….”
“형씨는 호구야? 아니면 뭐 거서 돈이라도 받았어? 하아, 참.”
그녀가 지금 분개하는 이유는 발할라의 집회 태도 때문이었다.
실상 이번에 발할라의 집회에서 시킨 첫 임무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수준도 안 되는 놈들을 데려다가, 수준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경비원만 수십 명인 곳에 들어가서 물건을 빼 오라니.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여자는 그나마 동급 기준 실력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다른 두 놈들은 전혀 아니었다.
그러니까…… 대놓고 미끼로 쓰고 죽여 버리려고 했다는 뜻이겠지.
우리가 박물관을 습격하고 1시간이 지난 후, 다른 지역에서 발할라의 집회 단원들이 소동을 벌인 것이 결코 우연일 리가 없었다.
“정식 단원이고 뭐고 난 이제 빠지고 싶다고. 그거 뒤에 맡긴다는 게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렇기에 불만을 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 임무까지 개판이니, 나도 이들의 입장이었다면 분명 분노했겠지.
“뭐, 말이라도 좀 해 보던가 형씨. 왜 아까부터 주둥이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해?”
“거…… 쒸뿔…… 그럼 뭐 어쩔거여…… 빠지등가……! 꼭 요점 것덜 보면…… 근성이…… 읎어 가지곤…… 에잉…….”
굳이 말을 하게 만드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꼬우면 하지 말아라는 논조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투덜거리는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물론 그 고약한 말투는 그대로였다. 내가 누구보고 말투 가지고 얘기할 바는 못 되는 것을 둘째 치고서라도…….
연보라색 머리칼의 이 여자 이름은 이엘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흑사회가 분열되면서 발할라의 집회에 입단한 녀석이었다.
그날 박물관에서 집결지까지 도망친 이후로,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하다 이번 임무를 받고 다시 대면하게 되었는데…….
무슨 10년 지기 동료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처음 임무 때 대면했을 때도 별반 다를 바가 없긴 했지만, 사실상 자기 목숨을 구해 준 거나 다름이 없어서일까. 한 치의 의심조차 없이 덜컥 나를 믿고 있는 모습이었다.
보는 눈만 없었더라면 내 칼이 자신의 목을 벨 수도 있었으리란 걸 알았다면.
이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
“그나저나 형씨, 형씨는 그…… 암부 쪽 사람이랬지?”
이엘라는 화제를 돌리며, 동시에 내 쪽으로 붙어 왔다.
아까 떠올린 상념 때문에 조금 거북한 기분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피하기에는 이상함을 느낄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말은…… 최대한 아끼는 게 좋겠지.
이 모습에서 나오는 말투는 사람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것이라, 되도록 지양하게 된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이어 이엘라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귀에 속삭였다.
“그러면, 형씨. 사람 찔러 보면 어떤 기분이야?”
사람을 찔러 보면 어떤 기분이냐니.
나는 잠시간 의아해져서는 그녀를 바라봤다.
확실히 흑사회 내부의 ‘암부’라는 조직이 히어로들과의 대인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기는 하나, 다른 빌런들도 대인전을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안 하면 그게 히어로지 빌런이겠는가.
“아니, 그런 눈으로 보지 말구. 형씨. 내가 경험이 없거든…… 그렇다고 사람 안 죽여 봤다는 게 아니란 말이야.”
내가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자 이엘라가 눈에 띄게 부끄러워한다.
책이라도 잡힐까, 손을 내저으며 변명하는데, 그 변명의 내용이란 게 자기가 사람을 죽여 봤다는 것이었다.
……안 궁금한데.
그 변명의 내용이 사실이건, 아니면 애송이 취급받기 싫어서 꺼내는 거짓이건 내가 그녀에게 보내는 감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형씨. 진짜라니까? 아니면 내가 그때 생긴 상처라도 보여 줘야겠어? 여기…….”
훌렁.
한참 동안 변명을 하던 그녀는, 당장 나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건만, 저 혼자 찔려서 화를 펄펄 내었다.
그러더니 증거를 보여 주겠다며 겉옷을 벗어 던져 버렸다.
“거…… 젊은 처자가 그러면은…….”
“아니, 씨. 형씨도 서른 안 넘어 보이는구만, 무슨 노땅 말투야 계속. 아니, 여기 보라니까? 자!”
부끄럼도 없는지, 셔츠를 들어 올려 자기 옆구리에 팬 긴 흉터를 보여 주는 그녀.
뽀얀 속살이 드러남에 조금 민망했지만…… 원래 모습이 아닌지라 별 반응이 오진 않았다. 사실 음심(淫心)조차 들지 않는 것이 조금 의아하기는 했다. 혹시 틀딱 컨셉이라 진짜 안 서는 건가…….
“알았응께…… 갖다 집어넣어…… 퍼떡……!”
“쳇.”
내가 그 모습을 보고 느낀 감상은 하나뿐이었다.
육체 단련은 안 하는 녀석이구나.
사이킥 계열의 특성을 가졌다고 들었는데, 타고난 스탯 성장 이외에 3대(힘, 민첩, 체력) 스탯 단련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 군살이 좀 붙어 있었다.
이엘라는 그 뒤에도 한참을 재잘거렸다.
그냥 천성이 그런 사람인가.
나는 그 모습을 눈에도 귀에도 담아 두지 않으려 했다.
안타깝지만, 그녀는 곧 죽어야 했으니까.
내 손에.
결국 빌런이라면 예외는 없었다.
* * *
발할라의 집회에서 내린 임무는 일주일 뒤에 수행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날 함께 집결할 장소를 미리 이야기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끼면서 사용했음에도 벌써 1시간 30분가량을 사용한 상태.
만약에 이번 임무에서까지 들키지 않고, 정식 단원으로 승급한다면 시간 부족은 더 심해질 것이었다. 그러니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었다.
“하와와와…… 피곤한 고애오…….”
육체적인 피로는 물론 없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나 피로했다.
본래 몸으로 돌아오니 더 그런 느낌이었다.
단지 육체적인 부분에서 그런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연약한 몸이라는 사실이 최근에서 체감이 되었다.
이엘라, 겉보기에는 그다지 나쁜 사람 같지 않았다.
되레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감각에 따르면…… 선인.
하지만 빌런 중에서 선인이 있다는 소리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원래 착한 사람이었을지라도, 그 틈바구니에 섞여 일하다 보면 본성 또한 더럽혀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렇기에 다음 임무에서 무조건 죽여야만 했다.
하나라도 더 많이 빌런들을 죽여 없애야, 무고한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
그들을 죽임으로써 살린다.
모순되는 말이지만, 그것이 히어로들의 가치였다.
턱.
그때 어깨 위에 손바닥 하나가 얹힌다.
나는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싱긋 웃고 있는 일리아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한 손에 초코칩 쿠키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우유가 담긴 기다란 글라스를 들고 있었다.
“먹을래?”
“괜차나여…….”
머릿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한가득하였기에, 식욕도 죽어 버린 느낌이었다.
쑥.
“으붑?”
……아니었나?
순간 입속으로 쑥 들어오는 무언가.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씹었고, 동시에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져 갔다.
“뇌가 녹는 거 가타여…… 헤으응…….”
머리부터 발끝까지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왜 이 세상은 초코칩 쿠키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가.
그런 통한의 외침이 뇌리에서 메아리를 치고 있었다.
한동안 오물거리고 있던 쿠키가 식도 너머로 사라지자, 진한 아쉬움이 온몸을 감싼다. 나는 일리아를 향해 슬쩍 손을 내밀었다.
“언냐야…….”
“어, 왜?”
“하나만 더 주세여…….”
“아까는 안 먹는다면서? 내가 다 먹을 건데?”
“……너무하는 거 아니애오?”
그거 길드 비품비로 산 거잖아.
내 돈인데……!
순간 무언가 배신당한 기분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그러자 일리아는 참지 못하겠다는듯,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면서 볼을 꼬집었다.
“푸흐흐흐…… 아, 농담이야 농담.”
“아파여, 언냐야! 왜 꼬집…… 으웁.”
순간 고통에 입을 벌리자 아까와는 달리 커다란 조각 하나가 입으로 넣어진다.
작은 구강에는 꽤나 부담스러운 크기였으나, 이를 악물고 침으로 녹이며 씹었다.
“넘허 커여…….”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일리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었다.
이상하게 점점 길드원 하나하나 날 놀려 먹기 시작하는 느낌인데…….
원래 안 그랬던 일리아도 이렇게 변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다.
잠시간 나는 그 원흉이 누구인가 고민해 봤다.
“벅벅, 밥 내놔!”
“언냐야네여…….”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던것 같다.
저 이상한 말투에 맛이 들렸는지, 오늘도 호령을 하며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나츠키.
내 위신이 바닥을 치는 원흉이야 쟤 말고 또 있을까.
방어구를 훌렁훌렁 벗어 던지더니, 거의 속옷에 가까운 차림으로 소파에 드러눕는 나츠키. 정말 상전이 따로 없었다.
“답이 없는 고애오…….”
자기 할아버지 눈치도 있고, 들어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나츠키를 끌어들인 게 나였던지라, 뭐라고 하기도 그랬다.
어쨌건 그녀 나름의 애로 사항을 모두 뒤로한 채 나를 따라온 것이었으니.
그냥 저꼴을 안 보는 게 속 편하지.
나는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언니! 기다렸잖아! 오빠도 나가고 심심했어…….”
“호에에, 옵바야는 어디간 고애오?”
“음…… 몰라! 그래도 요즘에는 맨날 같이 있으니까…… 나도 안 물어보거든.”
검선과 동생이 따로 쓰는 공간.
검선은 외출을 했는지 보이지 않았고, 그 여동생만이 혼자 남아 있었다.
요새 하루 종일 붙어 있더니 무슨 일이 생긴 거지.
사실 지금 검선은 외부로 돌아다닐 만한 형편이 되질 못했다.
당장 밖에 나갔다가 얼굴이 노출된 사진 한 번 찍히거나, 목격담이라도 들려온다면 그 즉시 난리가 날 테니까.
물론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만…… 그래도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랑 놀자 언니. 혼자 놀면 심심해…….”
“알겠어여!”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나는 잠시간 어울려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나이대 애들은 뭘 하고 놀까?
나는 잠시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 꼼지락거리며 준비를 하는 것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무슨 인형 놀이 같은 거라도 하나…….
“……이게 모예여?”
“언니 고스톱 몰라? 맞고!”
아니, 십, 무슨 고스톱이야.
화투 패를 가지런히 모아 오는 모습에 나는 기겁을 했다.
익숙한 듯이 모포 하나를 탁, 펼치고는 패를 섞는 손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잠깐만여…… 잠깐만여…… 먼가 이상해여 이거는…….”
“쫄리면 죽으면 되는 거야, 언니.”
“아가야……!”
머리가 뎅,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잠시간 벙쪄 있는 나를 뒤로하고, 꿋꿋이 패를 섞던 그녀는 내게 화투패 몇 장을 던져 주었다.
툭.
너무나 자연스러운 손목 스냅.
나는 그것을 보며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쳤다.
“왜, 언니?”
“혹시…… 이런 거 어디서 배운 고애오?”
“요거 보고.”
“요거여……?”
지목을 받은 것은 흰색 테두리의 스마트폰.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일 수 있었다.
……저게 자라나는 애들한테는 최고의 빌런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