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언냐야…… 저예여……
“네? 발할라의 집회……요?”
“그래, 지금 그쪽에서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거든. 흑사회 쪽 빌런들이 다 거기로 붙는 중이더라고…….”
“그런데 그걸 왜 저한테…….”
유시아.
협회 소속 적색급 히어로인 그녀는, 어느 날 그보다 상위 등급인 청색급인 한영오의 호출을 받았다.
적-청-흑-백으로 구별되는 협회 히어로들의 계급.
한 단계 차이라고는 하나, 실상 경력으로 보나 뭐로 보나 까마득한 선배인 한영오.
“내가 이미 위쪽이랑 얘기 다 해 놨어. 니 특성이 잠입 임무랑 잘 맞잖아.”
“아니, 그렇기는 한데요…… 선배, 저 임무 마치고 돌아온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런 험지를 막 선배가 아무렇게나 정해 가지고…….”
“그래, 미안하게 됐어.”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과의 말에, 유시아는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거대 빌런 집단에 제멋대로 후배를 집어넣고는 한다는 소리가 ‘미안하게 됐어’라는 말인가?
그녀는 한영오를 매섭게 째려봤지만, 막상 당사자는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되레 품속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주며 추가로 무언가를 요구했다.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사진이잖아.”
“사진인 건 알겠는데…… 얘 걔 아니에요? 펜타곤에…….”
그 사진은 현재 이곳저곳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생도이자 길드마스터인 다나 크리스틴의 것이었다.
굳이 사진까지 보여 줄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너, 거기 들어가서 찾아봐. 정확하지는 않은데…… 그쪽에 얘가 있을 수도 있거든.”
“에? 무슨 소리예요, 선배. 얘가 거기에 왜 있어요.”
무슨 아닌 밤중에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유시아는 의아했지만, 한영오의 표정은 그저 진지했다.
“자세한 건…… 말해 주기가 조금 그래, 그냥 한 번 찾아봐.”
“선배, 방금 제가 굉장히 강한 직감이 딱 떠올랐거든요? 혹시 선배 지금 얘 찾으려고 저를 거기다가 처박으시는…….”
“아무튼, 수고 좀 해라.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대답은 하고 가셔야…… 선배, 선배! 아 저 개색…….”
한영오는 그대로 거대한 짐을 지운 채 떠났다.
사실 그가 아니라도 협회에서 예의주시를 하는 바, 그녀가 파견될 가능성이 상당히 컸지만…… 그럼에도 유시아는 한영오가 괜스레 미웠다.
얼마 뒤, 유시아는 발할라의 집회에 정식으로 투입되었다.
그녀의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책까지 협회에서 미리 마련해 둔 뒤였다.
“이엘라? 이엘라…….”
실제로 흑사회 소속의 이엘라라는 빌런.
그녀는 협회 히어로들에 의해 구금된 상태였기에 유시아가 특성을 사용할 수 있었다.
대상과 같은 모습으로 변할 수 있고, 동시에 기억의 일부까지 읽어 낼 수 있는 그녀의 특성.
“되게 특이하네.”
사투리 억양이 꽤나 섞인 말투.
거기에 그녀가 즐겨 입는 특이한 복색은 유시아의 본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부단히 노력한 끝에, 어느 정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어 진행된 잠입 임무.
처음 심사에서, 예상과는 다르게 굉장히 쉽게 통과되었기에 순조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 주어진 임무는 말이 안 되는 수준의 난이도.
경비원들이 가득 들어찬 박물관을 털라는 것이었다.
‘……살아나가면 기적이겠는데.’
임무 중에 빌런 이외의 다른 이들을 해쳐서는 안 되는 협회의 규율 때문에 유시아는 정말로 죽을 뻔했다.
만약에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대로 경비원들을 죽일 수 있었다면 훨씬 수월했겠지만…… 애초에 하지 못하는 이상에야 쓸데없는 상정이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그녀는 죽지 않았다.
“형씨, 고마워!”
그녀가 이대로 죽는구나 싶던 때 나타난 남자.
특이한 빌런 네임을 쓰는 불사신선이라는 이에 의해 겨우 살아나올 수 있었다.
비교적 과묵하고, 이따금 입을 열 때는 그 분위기와는 영 맞지 않는 늙은이의 말투를 사용하는 남자.
‘이런 사람이 왜 빌런을 하는거지?’
그를 보며 유시아는 약간의 의문을 느꼈다.
기도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빌런같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이어 고개를 저었다. 종장에는 여차하면 죽여 버려야 할 사람이었다.
‘죽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시아의 무력은 분명 이엘라보다는 강하나, 그뿐이었다.
정순하고 거대한 기도, 마력과는 다른 그 ‘힘’에 대해서 깊이를 책정하는 것조차 불가했다. 만약에 싸운다면 지겠지. 그런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그로부터 또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유시아는 그저 황망하게 메시지를 바라볼 수 밖에는 없었다.
죽다 살아온 박물관에서의 임무 이후, 다음으로 내려진 임무. 유시아는 이번엔 정말로 죽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그렇기에 협회 측에 요청했다.
이번 임무를 포기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해당 던전 진입하는 길드 공략조랑 이야기해 뒀으니까, 같이 들어가게 됐다는 그…… 불사신선이라는 빌런도 같이 죽이고, 클리어하세요.”
“그 사람을 죽이라고요?”
“그 반응은 뭡니까? 혹시 그새 정이라도 든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물론, 그 자체에도 꺼림칙한 느낌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길드의 공략조와 함께한다고 하더라도 그 ‘불사신선’을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면 실행하면 되겠네요. 이번 임무에 대해 철수 불가하다는 답변밖에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뚝.
“아니, 여보세요. 잠깐만, 미친년아!”
칼같이 끊기는 연락에, 유시아는 그저 절망에 빠졌다.
이건, 진짜로 죽었다고.
그리고 실제로 임무에 투입된 지금에서도 죽을 것만 같았다.
[죽여버릴까?]
“헤윽……?”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와 함께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
그녀가 전투 능력이 부족함에도, 적색의 정식 협회 소속 히어로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주변 대상의 내심을 읽을 수 있는 그 특성이 발현되었다.
[지금 안 죽이면…… 늦는데.]
불사신선, 그 특이한 이름의 빌런이 떠올린 생각 때문이었다.
단지 그것을 의식만 했을 뿐인데도 다리가 풀려 버렸다.
조금 전까지 유지하고 있던 마력의 움직임도 그대로 끊겨 버린 채로.
……실금이나 하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쒸뿔…… 머여……?”
실로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단지 생각뿐이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고 그렘린을 상대하는 불사신선의 모습에, 유시아는 안도감과 함께 두려움을 느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쉽게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남자.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쉽게 ‘동료’를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남자.
이런 이들이 ‘진짜’ 빌런이구나. 유시아는 소름이 끼쳤다.
저 남자가 자신을 죽임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발할라의 집회로부터 받는 보상이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
단지 그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저 남자는 그 작은 이득을 위해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악인.
유시아는 도리어 그제서야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다.
너무나도 두렵지만,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뭐……혀……! 퍼떡 안 따라오고……!”
“아따, 알았어 형씨!”
그의 부름에 유시아는 손을 등 뒤에 숨긴 채, 마석으로 작동되는 호출기의 버튼을 눌렀다.
공략조와 함께, 이 남자를 죽여야 했으니까.
* * *
저거 눈빛이 영 꼬롬하네.
뒷꿍꿍이가 있어 보인다는 뜻이었다.
아까 전의 전투 이후로, 무엇 때문인지 이엘라는 나를 꺼리고 있었다.
잠시간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내 살기를 느낀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일이 약간은 복잡해진다.
이엘라는 분명 나보다 훨씬 약하다.
내 본신과 비교하나, 이 모습과 비교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닭 모가지 잡아 비틀 듯 단순하게 잡아 죽일 수는 없었다.
되레 거세게 저항해 올 경우에는 나도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경계를 풀고 있던 아까 전이 죽일 타이밍이었는데.
놓친 것이 상당히 아쉬웠다.
“형씨, 여기가 보스룸인 것 같은데?”
죽일까, 살릴까.
그 생각에만 빠져 있던 사이 어느새 보스룸에 다다른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직 제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탓이었다.
“……왜 그래, 형씨?”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건, 분명히 내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순간 그녀의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달려들었다.
“형씨! 왜 그래!”
반사적으로 소리치며 뒤로 블링크(Blink) 마법을 사용하는 그녀.
이엘라가 마법사는 아니었으므로, 아무래도 아티펙트의 힘을 빌린 것 같았다.
거 비싼 거 쓰는구만.
촤아아악.
나는 순간 돌진했던 지점에서 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다시 멀어진 거리만큼 도약했다.
순간 경악한 이엘라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일반적인 속도는 아니었다.
중상위권의 히어로가 마력을 진심으로 이끌어 냈을 때나 발휘할 수 있는 속도.
“죽어!”
그에 이엘라는 악다구니를 쓰며 내게 능력을 사용했다.
천장과 바닥 등에서 날아오는 돌무더기.
나는 그것을 검을 꺼내어 쳐 내 버렸다.
카가가가각!
“……말도 안 돼.”
거의 대부분의 것들, 개중에서도 위협적인 부위로 날아오는 돌들은 바로 쳐 내었다.
쳐내지 못한 것들은 그대로 얻어맞을 수밖에는 없었으나 몸의 내구력이 워낙 높은지라 쉬이 버틸 수 있었다.
이엘라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터벅.
“오, 오지 마!”
손을 부들부들 떨며, 단검을 꺼내드는 이엘라.
지금 저거로 날 막아 보겠다는 건가.
나는 잠시 어이가 없어졌다.
타악.
순간 다가서며 단검을 들고 있는 쪽의 손목을 쳐 내었다.
챙, 하며 지면에 쇳덩이가 부딪친다.
“……죽여, 이 괴물 새끼.”
“허…… 거…… 쒸불…… 처자가 말버릇이 고약하구먼…….”
이전과는 다르게 침잠한 말투로 말하는 이엘라의 모습.
나는 그에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하던 말투는 그냥 컨셉질이었던 건가.
“……어이……? 이건…… 또…… 뭐시당가……?”
죽여 달라면 죽여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독하게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천하의 악독한 새끼! 개새끼! 죽어서 지옥에나 떨어져 씹놈아!”
온갖 저주의 말을 퍼붓는 이엘라…….
아니, ‘유시아’의 모습.
“허어…….”
나는 그제야 지금까지 느꼈던 꺼림칙한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하마터면 아군을 그냥 베어 버릴 뻔한 것 아닌가!
“죽이라고 이 좆같은 새끼야! 죽여!”
“호에에에…… 언냐야, 납븐 말은 안 되는 고애오…….”
“……?”
잠시 뒤, 찾아오지 않는 죽음과 갑작스럽게 달라진 말투와 목소리.
그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어……?”
그녀는 잠시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아……! 아?”
그러고는 알아챘다는 듯 손가락질을 하더니 괴상한 소리를 질러 내었다.
“으에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