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조기 진급 안 해여!
“그러니까…… 던전 보상만 싹 빼서 나오는 게 최선이었다?”
“네, 선배. 안 그러면 저 죽었다니까요?”
“지레 겁먹고 엄살떨다가 기회를 놓친 건 아니지?”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해요?”
유시아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며 분개했다.
히어로 협회 개인실에서 이루어지는 경과보고.
그녀는 자신이 자칫하면 그대로 죽어 버릴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장장 20여 분에 걸쳐 설명했다.
“이건 미안하군. 내 실수야.”
“……진짜 뻔뻔하시네요.”
하지만 경과보고를 받는 사람…… 그러니까 유시아를 사지로 보낸 그 한영오는 무언가 더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만을 보낼 뿐이었다.
그것이 물론 담당자로서 역할이기는 하나, 아무리 그래도 과하지 않은가.
“발할라의 집회 쪽에선 말이 안 나왔나?”
“네, 그쪽에서도 납득했어요. 애초에 그쪽에서는 살아 돌아올 거란 예상 자체를 못 한 모양이더라고요.”
“하기야…… 그럼 남원길드 쪽이랑 이야기하면 끝인가?”
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몸짓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불만에, 한영오는 조금은 머쓱한 듯 곧바로 그녀와 헤어져 상층으로 향했다.
홀로 남겨진 유시아.
그녀는 한영오가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도 잘 넘긴 모양인데.
유시아는 안도하며 이내 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언냐야, 끝났어여?]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유시아는 그것을 들으며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에 싸늘한 태도로 대하던 저 한영오보다 얘가 몇 배는 두려웠다.
하지만 또 그 감정과는 너무나 괴리가 큰 외모와 목소리.
그것들을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또 방심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모든 일의 원흉은…… 이쪽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이번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부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그녀였다.
다나 크리스틴, 독 사과처럼 외견과는 다른 무서운 속내를 가진…….
“방금 끝났어요.”
[잘해써여, 언냐야! 고마오요…….]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을 한 건데.”
[그런데 언냐야, 왜 또 존대하는 고애오?]
그걸 몰라서 묻냐, 하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지만, 겨우 참아내었다.
라면 한 그릇과 바꾼 그 지장이 찍힌 마력 계약서.
유시아는 그것이 너무나 두려웠다.
“아, 알았어…… 편하게 할게.”
하지만 그렇기에 원하는 대로 해 줘야만 했다.
유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나에게 말을 놓았다.
물론, 실상을 알고 보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가 패스파인더 길드에서 체결한 계약서.
그것을 어길 시에 받는 페널티는, 얼굴에 작은 트러블이 생기는 정도의 저주.
그러니까 계약 위반을 했다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지만, 신체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는 페널티를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유시아는 그저 지레 겁먹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여, 편하게 말해여, 언냐야.]
물론 그것 또한 계산한 영역 안에 있는 것이었으니, 뭐라 말해 줄 필요가 없었다.
단지 웃으며 그녀와 대화할 뿐.
‘진짜 악마도 저리 가라네.’
진실을 모르는 유시아로서는 그저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웃음소리가 악마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 * *
2월, 펜타곤의 생도들이 가장 바쁠 시기이다.
1학년들 같은 경우에는 계열 선택의 확정을 하고, 2학년은 졸업반 수업과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3학년들은 모두 졸업하게 되며…… 앞으로 자신이 어떤 곳에서 일하게 될지 사실상 결정을 내린다.
이에 대부분의 생도들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때.
주연 등장인물들 또한 그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창이라니까!”
“둔기가 맞아!”
“둔기는 개 씨벌, 무슨 타구봉법이라도 가르쳐 주게? 애초에 얘가 쓰는 워해머는 개중에서도 비주류잖아!”
“워해머만 쓰란 법 있냐? 그러면 니 새끼야말로 얘 창 쓰는거 본 적은 있어서 이러는거고?”
“어, 봤고. 관심 있대잖아! 니가 뭔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고함성.
생도들이 그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며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귀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조금만 더 있으면 주먹다짐이라도 하겠는데.
목소리의 주인들은 현재 2학년 생도들 중 창과 둔기류를 사용하는 학년 2위와 6위 생도.
내가 대체로 위의 학년에는 인재가 없다고 생각하기는 하나 그래도 최상위권은 말이 또 달랐다.
이번 세대보다는 못하나 그래도 분명히 해당 세대의 최고 엘리트들.
그들을 이렇게 싸우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신하연이었다.
확실하게 주무기를 선택하지 않은 신하연.
대체로 사거리가 길거나, 중량이 묵직한 무기를 선호한다는 걸 제외하고는 딱히 알려진 바가 없었다.
지금껏 제일 많이 사용해 온 것이 그녀의 키보다 약간 큰 워해머이긴하나…… 최근에는 그것마저 다른 무기로 바꾸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줬다.
그렇기에 지금 2학년 생도들이 찾아와 그녀를 설득하려는 것이었다.
각자 자기 계열의 무기를 택하라면서.
그것은 다른 어떠한 의도도 없는 순수한 호의.
정말로 펜타곤다운 광경이 아닐수가 없었다.
나는 그에 약간의 감동을 느꼈다. 후배의 길을 도와주기 위해 저렇게 적극적으로 나선다니. 쉬이 볼 수 없는 광경…….
“저기…… 선배님들, 그렇게 싸우지 마시고.”
“좀 빠져 있어 봐!”
“조용히 하고 있어!”
“아니, 두분 다 저 설득하러 오신거 아니셨어요……?”
……아닌가?
신하연의 어이없다는 듯한 말 이후로,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다시금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시작하는 두 생도.
어쩌면 저 둘은 그냥 싸우기 위해 구실을 잡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미 전교에 저 둘의 사이는 유명했으니까.
심지어 히어로 판타지에서도 이따금 나오던 장면이었다.
“하와와와…….”
나는 저 싸움의 결착을 알고 있다.
신하연은 그 둘 중 어느 길도 선택하지 않는다.
그녀는 졸업 때까지 계속해서 주무기를 선택하지 않고, 그저 고중량의 커다란 무기만을 계속해서 바꿔 가며 사용한다.
그리고 끝내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전투 도끼.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그냥 처음으로 얻은 그녀의 무기가 전투 도끼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떤 무장을 사용하나 그녀에게는 상관이 없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저기 가서 ‘하연 언냐야, 언냐야는 망치보다 도끼가 어울리는 고애오……’ 같은 소리를 지껄일 이유 따위는 없단 뜻이겠지.
“……다나 크리스틴? 3번째 말한다.”
“호에에!”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눈앞에 있는 상담 담당 교관이 내게 소리를 쳤다.
이따금 이렇게 딴생각에 빠져 버리면 다른 것은 아예 느껴지지 않는다.
내 민감한 기감을 상회하는 특성 때문인가…… 그 덕에 마법 수련에서는 상당한 성취를 얻을 수 있었지만 이럴 때면 조금 불편했다.
“정말 한 학년 먼저 진급하지 않아도 되겠나? 이미 다른 교관들과 모두 상의하고 주는 제안이다.”
“괜차나여. 그냥 다른 옵바 언냐야 들이랑 같이 할래여…….”
“……동급생들인데 무슨.”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는 교관.
아무래도 펜타곤 쪽에선 내 편의를 봐주기 위해 상당히 고심했던 사안인 듯했다.
그 마음이야 고마웠지만…… 내 입장에선 굳이 빨리 진급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태양여명단의 이름을 빌려 빠져나갈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길드장이다보니, 길드 관련 일들로 학교를 마음대로 빠져나가기도 쉬웠고.
굳이 펜타곤에 다니지 않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출입이 가능한 공간이라면, 활동에 제약도 없었다.
게다가 펜타곤만큼 양질의 수업을 해 주는 곳도 없었다.
이 학교 안에 있는 교관들을 전부 모으면, 작은 도시 하나는 가볍게 부숴 버릴 수 있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스쿼드가 완성된다.
지금 당장에서는 나와 비견할 수도 없을 만큼의 강자들.
그들로부터 수업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런데 내가 미쳤다고 그걸 뻥 차나.
심지어 생도들에게 주어지는 세금 감면 혜택 또한 강력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굉장히 많은 양의 돈을 절세할 수 있었다.
아마 상상도 못 한 일이었겠지.
지금껏 생도 시절에 길드를 만든 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처럼 이렇게 중견 이상의 길드로 성장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린 경우가 없었다.
최근에는 이 사안에 대해 국회에서 얘기가 나왔다고 했나.
물론 얘기를 꺼낸 의원들만 뒤지게 욕을 먹었지만…….
아무튼 내가 이곳에 다니면서 얻는 이득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조기졸업을 선택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아무튼. 알겠다. 2학년 담당 교관들만 고생이겠구나.”
“수고하신 고애오…… 옵바야.
“교관님이라고 불러.”
이제는 익숙해졌다는 듯 냉담하게 말하는 담당 교관.
내 말투가 딱히 계도가 안 된다는것을 깨달은 뒤로는, 저 교관님이라고 부르라는 말 또한 겉치레가 되었다.
그는 그대로 상담실 왼쪽의 문으로 나갔고, 나는 그 반대쪽에 열려 있는 문을 통해 나왔다.
저쪽은 계단, 이쪽은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
방향이 갈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개학한 지 사흘째.
시끄러웠던 펜타곤 내부의 분위기도 많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아니, 정확히는 가라앉다 못해 침몰한 상태였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심한거 아니니.”
교관들 중에서도 성향이 유순한 마법 과목 교관들.
그들은 그저 교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푹푹 쉬었다.
대부분의 생도들이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도들 입장에서야 내년부터 듣지도 않을 마법 수업이었으니, 들어봤자 의미가 없는것이긴 했지만…….
교관들 입장에서는 회의감이 드는 광경일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러려고 교관을 자원했나…… 하고.
“븝미쟝 궁금한 게 있는 고애오…….”
“어, 다나, 그래…… 오늘은 뭐니?”
물론 나로서는 나쁠것이 없는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교관을 혼자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었으니까.
이미 나머지 마법 적성 생도들은 현재까지 나간 진도를 복습하는 것만 해도 벅찼으니, 실상 제대로 된 수업을 듣는 것은 거의 나 하나뿐이었다.
“아하…… 오호…… 이건 꽤…… 수식을 이렇게 바꿔 보면 더 좋을 수도 있겠는데? 음, 잠깐, 아니야, 계산을 실수했구나…….”
내가 나름대로 개량해 온 마법 수식들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의아해하기도 하는 교관, 그는 즐거운 표정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수정해 나가며 나와 의견을 주고받았다.
“호에에에, 그러며는 여기서 흐름이 역방향으로 뒤집히는 거 아닌가여? 마나 씨가 막혀 버리는 고애오…….”
“아니지, 물론 이쪽에서 일반적인 마법들은 흐름이 뒤틀려 버리지만…… 환영마법 같은 경우에는 여기서 자극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
거의 일대일 과외가 되어 버린 수업.
그것을 시기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생도도 있었으나, 이내 자기 주제 파악을 한 듯 시무룩해졌다.
나랑 교관이 주고받는 대화를 한 톨도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뭔 소리야?”
“언냐야는 몰라도 대여…… 다시 자는 고애오.”
교관과 내가 말을 주고받는 소리에, 잠에서 깬 일리아.
나는 그녀의 말캉한 볼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다시 그냥 재웠다.
“에휴.”
교관은 차게 식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으나, 뭘 어쩌겠는가.
다른 근접 계열 생도들도 다 이 모양이었으니…….
일리아에게 죄가 있다면 내 옆자리에 앉은 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