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게임을 하는 고애오……
2학기 들어서 나는 대부분의 몸을 쓰는 수업을 듣지 않았다.
물론 그것들을 모두 땡땡이쳤다는 말이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성적이 1위건 말건 가차 없이 바로 유급이었겠지.
펜타곤 측에서도 그걸 인정해 줄 리가 만무했다.
나는 단지 그 수업을 모두 패스했을 뿐이다.
일단 마법 쪽으로 진로를 정했으니, 그러한 수업들이 꽤나 많이 시간표에서 빠지게 되었다.
공통으로 들어야 하는 수업 같은 경우에는 다른 이론 수업으로 학점을 대체했다.
대부분의 생도들은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다.
이론 수업은 대체로 시험을 굉장히 자주 치는지라, 성적을 얻기가 힘드니까.
하지만 나는…… 대강 반만 실력으로 풀고 반은 찍어 버리면 무조건 최상위의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아니, 왜 내가 2등인데. 1등 한 번 해 보겠다고 광마법 이론만 이 주 동안 공부했는데!”
“하와와와와…….”
“하와와만 하지 말고, 아 진짜!”
씩씩거리면서 몸을 부들거리는 나츠키. 그녀의 손에는 시험 성적표가 들려 있었다.
이론 전체 8등, 개중에서 몇몇 과목은 2등이나 3등의 성취를 이뤘다.
아무리 펜타곤의 전체 성적 비중에서 2할밖에 차지하지 않는 이론이라곤 하나, 여기서 뒤떨어진다면 상위권이 될 수 없었다.
그 예로 일리아가 있었다.
이론 최하위권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6~70위까지 상승시킨 일리아.
그 덕에 종합 순위에서 최상위권의 성적을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종합 20위 내로 진입할 수 없었겠지.
“야, 니가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마법 쪽에서 다나를 이기겠냐?”
“광마법 이론은 마법이랑 직접적인 연관 없거든! 너는 몇 등인데.”
“난 170등. 어차피 점수도 별로 안 주길래 포기했거든. 그런데 다 포기했는지 100등부터 300등까지 점수 다 비슷하더라.”
히히, 웃으며 말하는 일리아.
그에 나츠키는 짜증 난다는 듯 몸을 부들거렸다.
그 모습에 마음 한구석이 쿡 하고 찔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공부를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거의 반 이상은 찍어서 맞힌 문제라…….
“하아…….”
천장을 바라보며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을 흘리는 나츠키. 세상의 덧없음을 한순간에 느껴 버린 자의 허탈감이랄까, 그런 게 묻어 나왔다.
마치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아아아아악!”
“아이, 씨. 깜짝이야.”
……모습에서 갑자기 장르가 바뀌었다!
급작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서는 나츠키.
학기 초에 봤던 그 모습이 돌아오는 것 같아 나는 슬쩍 물러서며 호에에에, 하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너, 따라와.”
그러고는 갑자기 나를 지목한다.
“저, 저여……?”
“그래, 따라와!”
“븝미쟝을 오또케 하려는 고애오…… 막 이렇게 저렇게…….”
“헛소리하지 말고 따라오라고.”
불똥이 떨어질 것 같이 이글거리는 눈을, 내게 디미는 나츠키.
나는 구원의 뜻으로 일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흘끔거렸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 고개를 살살 돌렸다.
“언냐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믿었던 그녀의 배신으로 인해, 나는 속수무책으로 나츠키에게 끌려갔다.
와따시를 어디로 데려가는 데스우…….
* * *
물론 나츠키가 나를 뭐 어디 골목길에서 암살이나 하려고 끌고간 것은 아니었다.
일리아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장난으로 받아 준 것이었고.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자기 동아리에 들어오라는 2학년 생도들이 나를 붙잡아 두고 있을 때, 일리아가 저만치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달려와서 그들을 때려눕힌 적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일리아는 허락되지 않은 교내 폭력으로 2주간 징계…….
교내 청소를 하게 되었었다.
아무튼, 나츠키가 나를 데려온 곳은 그런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곳이었다.
펜타곤 내에 있는 유흥 시설 중 하나인 게임 랜드.
일전에 갔던 가상현실 게임장도 이 게임 랜드 안에 포함된 시설이었다.
“사람 디립따 많네. 이 새끼들이 처 빠져 가지고. 진급하기 전에는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언냐야…… 그렇다기에는 저희도 여기 왔는데여…….”
“우리는 경우가 다르지.”
언뜻 들으면 내로남불성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는 나츠키의 말.
하지만 깊게 파고들어 보면 그것이 사실이었다.
나츠키가 가진 것은 실로 압도적인 재능.
게임 후반부에 등장하는 대상의 재능과 힘을 파악 가능한 빌런 중 하나가, 나츠키를 보고 한 말이 있었다.
‘재능만 따지자면 제일’이라고……. 물론 그 시점에서 나츠키보다 강한 사람은 널려 있었다.
본래 히어로 판타지의 나츠키는 노력이란 것을 몰랐다.
그저 싸가지, 재능만 믿고 노력은 하지 않는 나태함의 절정.
그랬기에 아름다운 외형과 큰 비중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기 투표 순위가 낮았던 거겠지.
물론 나츠키는 여러모로 자극을 많이 받아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성격이 모난 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유순해졌다.
“야, 이 씹새끼야. 너 방금 내 팔 치고 갔지.”
“어, 어. 미안해…….”
……아닌가?
아무튼, 여러모로 바뀐 나츠키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일리아나 신하연 그리고 장선우 또한 성장 속도가 기존보다 빠른 것 같지만 나츠키만큼의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일리아와 신하연의 경우에는 내 결속 특성으로 인한 성장 보너스까지 받고 있음에도 그러하다.
나츠키가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가 본래는 얼마나 나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언냐야…… 그래서 여기는 왜 온 고야요?”
“왜 오긴, 게임하러 왔지. 보면 몰라? 여기서 게임 말고 뭘 하게.”
“조오기, 그냥 스무디나 하나 사서 의자에 앉아 쉴 수도 있고여…….”
나는 게임 랜드 안에 영업을 하고 있는 스무디 가게를 쳐다봤다.
던전이나 필드에서 자생하는 과일들로 만드는 스무디.
이따금 게임을 할 생각이 없어도 찾아와서 사 갈 정도로 맛있었다.
꿀꺽, 침을 삼키는 나를 본 나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일단 음료부터 하나 챙기고 시작을 하는 게…….
“바로 게임부터 하자. 뭔 스무디야, 이년아.”
“호에에에?”
나는 그대로 그녀의 손길에 따라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와 동시에 점점 멀어져 가는 스무디 가게의 모습.
버둥거리면서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했지만…… 스텟이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바에야 어떻게 반항하겠는가.
나는 어느 테이블로 그대로 끌려갔고, 곧바로 게임을 하게 되었다.
반쯤…… 강제로.
투타타타타.
그 테이블은 어느 게임 랜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총 게임.
물론 겉으로 보기에나 그렇다는 것이지, 내가 기억하는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호에에에, 이것도 가상현실인 고애오?”
옆에 놓인 고글과 커다란 헤드셋.
아무래도, 이것도 가상현실 게임인 모양이었다.
앞에 놓인 총기 또한 실제 그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묵직했다.
나츠키는 말없이 나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오늘 어떻게든 날 이겨 먹을 속셈인 모양이었다.
푹.
머리에 헤드셋과 고글이 씌워지고, 주변의 소리와 광경이 모두 사라진다.
그리고 마치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게임 랜드가 아닌, 어디를 모티브로 했는지도 알 수 없는 창고인 것처럼 느껴졌다.
“호에에, 븝미쟝 무서운 고애오…….”
이건, 딱히 엄살이랄 것도 아닌 게…….
이런 게임의 특징이 귀신이나 좀비 같은 괴물들이 튀어나오고, 그걸 총으로 죽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 속에서 좀비 같은 괴물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옆에서 흐흐흐, 하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약간 머리에 열이 올랐다.
나츠키는 분명 이걸 미리 해 봤을 것이었다.
그러니까, 곧바로 여기로 향했겠지.
내가 절대 해 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끙챠.”
나는 총을 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대로 괴물이 나오면, 그걸 반응해서 쏠 수 있을까?
상당히 의문이 드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불가하다.
나는 그렇게 판단하고는 곧바로 총기를 바닥에 내려놨다.
“뭐야, 왜 총을 버려?”
그 모습은 인게임에서도 보이는지라, 옆에 있던 나츠키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당연히 무거우니까 그렇지.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학기 초에 내 스탯을 겪어 봤던 그녀이니,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냥 제대로 날 한 번 골려 주려는 속셈이겠지.
하지만 이대로 당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옆에 놓인 플라스틱제 칼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인게임의 내 캐릭터 또한 칼을 들게 되었다.
“야, 이 게임 단도 겁나구려. 이거 이동속도도 느려서 마음대로 몸이 안 움직인다니까?”
그래도 마지막 양심이 있는지, 미리 내게 경고해 주는 나츠키.
하지만 나는 그저 콧방귀를 뀌었다.
과연 그렇게 되는지, 한 번 두고 보자.
STAGE 1
그때, 곧바로 시작되는 스테이지.
나는 미리 파악해 둔 장소로 달려갔다.
나츠키는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 해……?”
내가 달려간 곳은, 어둑한 창고에 한 줄기 빛이 흘러드는 통로.
그러니까 쉽게 말해 입구였다.
아마 이곳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오겠지.
상식적으로 괴물들이 나오는 곳으로 달려간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 전법이었다.
당연히 거리를 벌리고, 총으로 제때 사격해 죽이는 것이 정석적인 플레이.
하지만 나는 총을 들지 않았기에, 이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게임을 해 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비슷한 FPS 게임은 많이 해 봤거든.
지금 내 상태를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플레이가 바로 이것이라고 확신했다.
쿠어어어어!
나츠키 쪽과 내가 있는 방향의 입구에서 각각 괴물들이 나타난다.
기괴한 형상의 몬스터들. 하지만 다들 실제 있는 몬스터들인지라 크게 무섭지 않았다.
한때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던 놈들인데 뭐가 무섭겠는가.
비록 그때는 모니터 앞이기는 했지만…….
나는 단도를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향해 그것을 찍어 내었다.
푹.
타격음과 함께 키에엑, 하는 소리를 내며 경직되는 몬스터.
나는 그 틈을 타서 몸을 빼내고는, 곧바로 한 차례 더 칼을 휘둘렀다.
캬르르르륵!
몸을 비틀며 쓰러지는 첫 번째 괴물.
그때, 동시에 첫 녀석을 죽여 낸 나츠키가 감탄을 흘린다.
“오……?”
생각보다 좀 한다는 듯한 어투.
하지만 나는 그저 침음을 흘렸다.
마음대로 몸이 따라 주지 않아서?
혹은 질 것 같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만약에, 내가 이것마저 이겨 버린다면…… 나츠키가 얼마나 삐질지 가늠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츠키는 캐릭터의 움직임이 굉장히 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현실 스펙이 워낙에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지금 나는 마치 온몸에 각성제를 투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딱 성인 남자 수준의 스펙, 내게는 그 정도만 되더라도 마치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덤비는 고애오!”
호기로운 내 외침과 난도질되는 몬스터들.
그와 동시에 나츠키의 목소리가 점점 얼어붙었다.
이대로 지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20분 뒤, 결판이 났다.
결과는…….
“흐흥, 역시 안 되지. 그래. 내가 게임은 그래도 잘하거든…….”
나츠키의 승리였다.
그 이유는, 어이없게도 게임 중 이뤄진 내 탈진 때문이었다.
“헤으응…….”
캡슐 속에 누워서 하는 형태가 아닌 이 게임.
결국에 몸을 움직여야 하는지라, 내 현실의 체력도 소모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고애오오…….”
나는 분한 마음에, 다른 게임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체력이 소모되지 않는, 모든 것이 공정한 게임으로.
하지만 나츠키는 입술을 슬쩍 내밀며 말했다.
“응 안 해, 너 개 못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