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J 언냐야가 왔서여!
『최근 리에나 박사의 연구 결과로 불치병으로 분류되었던 고블린 괴질의 치료법이 밝혀짐으로 보건 당국에서는…….』
“하아암, 뉴스밖에 안 하네…….”
나츠키는 지루하다는 듯이 리모컨을 조작하며 빈둥거렸다.
아까 나온 뉴스 내용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하기야 저기서 언급한 ‘고블린 괴질’이란 감염자도 얼마 되지 않는 데다 비교적 경증만이 발생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저 감염이 5년 이상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안다.
질병은 몸을 천천히 잠식해간다.
초기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벼운 고열과 통증만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게 전부.
하지만 대략 1~2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신체 기능이 저하된다.
스텟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락 폭은 2~3 정도.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신체 스탯이 높은 편이 아닌지라 그 정도의 하락만으로도 치명적이었다.
조금씩 몸이 안 좋아지는 듯 하더니, 이내 2~30년은 노화가 된 것처럼 신체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영구적인 장애.
운동을 하고, 재활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복구되지 않는다.
거기까지도 어쩌면 괜찮다고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서 말한 임계점인 5년을 넘길 때.
그때가 되면 문제가 정말로 심각해진다.
몸에 찾아오던 그 증상들의 원인이 밝혀진다.
흔히 ‘고블린 괴질’이라고 불리는 그 질병의 원인은 바로 기생충.
그동안 몸속에 숨어서 신체의 정기를 빨아먹던 그 기생충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숙주는 그대로 죽어 버린다.
거기에 더해 그동안 성장한 기생충 또한 하나의 몬스터이다.
20등급대의 비교적 약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지만, 그건 히어로들의 기준.
일반인들로서는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원래라면 그 질병의 제대로 된 증상이 발병하는 3년 뒤에서나 발표될 내용.
그것이 이렇게 일찍 발표된 것에는 내 개입이 있었다.
방금 뉴스에서 말한 ‘리에나 박사’는 연구소장의 활동명이다.
연구소에서는 키메라에 대한 연구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연구를 많이 하는데 개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가 사회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
나는 그것을 앞당긴 것이었다.
단지 특성을 통해 내게 품게 된 약간의 호감과 조금의 언변으로.
“잘하고 있네여…… 언냐야.”
“나? 나는 항상 잘하고 있지. 후후…….”
“언냐야는 항상 못하고있구여…….”
“못하는 건 너죠? 어, 너죠? 아직까지 게임 져서 꽁해 있는 거야?”
……좆같네.
까불대는 나츠키를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 근본은 누가 뭐래도 게이머다.
그게 뭔 자랑이냐고 핀잔을 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나로서는 게임 재능에 대한 자부심이란 게 있다.
그런데 지금 게임 가지고 저런다고?
심지어 예전에 익명으로 하긴 했지만, 연거푸 몇 번을 이기기까지 했는데?
“흐윽, 끅…….”
“……뭐야, 왜 울어? 다나? 어어?”
“막, 한판만, 끄윽, 더, 허윽…… 하자고 했는데…….”
“야, 야, 이러면 내가 나쁜 년 같잖아.”
원래 같았으면 그 분노를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눈물샘만 자극될 뿐이었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들.
그에 나츠키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발만 동동 굴렀다.
“어, 뚝 해 봐. 착하지, 어?”
마치 애 달래 듯이 하는 그 태도에 더 짜증이 치민다.
오랜만에 찾아오는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감정의 소용돌이.
팔을 버둥거리면서 목 놓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흐끄으으윽…… 호에에에에!”
이제는 반쯤 포기한 듯, 한 발자국 물러선 나츠키.
그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표정으로.
건물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위층의 검선과 여동생마저 같이 외출을 나간 상태였다.
그렇기에 이 소란에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다행인 것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는 모습을 만약에 일리아라든가…… 일리아라든가…… 일리아가 봤으면…….
“다나! 왜 그래!”
쾅!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리아.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왜 울고 있어. 누가 뭐랬어?”
곧장 달려오며 내게 캐묻는 그녀.
육체는 그대로 목 놓아 울고 있었지만, 정신은 점점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츠키한테 엿을 먹일 방법이 뭐가 있을까.
아, 그렇게 하면 되려나.
얼마 지나지 않아 번뜩 떠오르는 방법 하나.
나는 손을 옴지락대다, 한 손으로는 일리아의 허리춤을 안았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리며 얼굴이 상기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든, 일리아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뒤이어 다른 한 손은 검지만 폈다.
마치 손가락질을 하듯이…… 아니, 그냥 손가락질한 게 맞았다.
나츠키를 향해.
“어, 어? 나,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그런 건 맞는데. 그거 가지고 울거나 한…… 응악! 악! 그만 때려!”
“뭘 했길래 애가 울어? 어?”
쥐 잡듯이 나츠키를 잡는 일리아.
나츠키는 그에 그저 도망가며, 비명을 지른다.
머리가 잔뜩 흐트러진 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츠키.
나는 그녀를 향해, 혀를 삐죽 내밀었다.
* * *
장자은.
활동명은 재스민.
연구소에서는 J.
단지 이름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그 세 가지의 삶을 모두 경험했다.
사이비에 빠져 그녀에게는 무관심하던 부모들.
그 밑에서 불행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가던 장자은.
그런 그녀를 구원한 연구소장의 밑에서 여러 가지 훈련과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던……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암살자로 길러진 J.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마치 허상이었던 것처럼, 생에 행복하다고 느꼈던 몇 달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 ‘재스민’으로서의 삶.
그동안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은인이 원하는 대로.
속한 집단의 규율대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지금에 와서는 이따금 그러한 의문이 들고는 한다.
마치 마음속 모든 감정이 마모된 것처럼.
이미 임무에 투입된 지 수 년이 넘은 이들과 같이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의 감정은 아직 경화되고, 마모되기까진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대로 점점 시간이 지나면 다른 이들처럼 ‘진짜’ 암살자가 될 것이었다.
이미 개중에서도 실력만으로 따지면 상위에 놓여 있었으니까.
사실 그건, 별로 원하지 않는다.
과연 그렇게 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최근 그녀를 괴롭게 했다.
언냐야가 행복해지는 게 제일 조은 고애오!
“푸흐…….”
이 모든 생각을 하게 만든 이.
그 특이한 말투를 쓰는 작은 여자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얼마 전에는 이곳까지 찾아와서, ‘엄마’와 무슨 이야기까지 했던 모양인데…….
그 뒤로 임무의 비중이 줄고 비교적 난이도는 쉽지 않더라도 살생을 하지 않는 임무만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노골적으로 타깃을 살해하는 임무만 주어졌던 것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악인이라면 몰라도, 연고도 없는 이를 살해하는 것은 상당히 꺼렸으니…….
처음에는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심적으로 안정을 찾은 뒤에는 그것이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J는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양손에는 짐이 한 보따리씩 들린 상태였다.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건만, 무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
그런 기분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비에 젖은 생쥐 같은 몰골로 어린 생명의 불씨가 꺼져 가던 그날.
자신을 구해 준 한 사람의 손길에 이끌려 이곳에 온 지가 10년이 넘었다.
돌이켜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럼에도 여러 기억이 잠든 장소였다.
“……어차피 몇 달 뒤면 돌아올 텐데.”
J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쓸데없는 감상이었으니.
그녀가 마음먹은 기간은 대략 6달.
그동안 패스파인더 길드에서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
모두 길드마스터인 다나와 이야기가 된 부분이었다.
언제든지 조은 고애오!
언제건, 얼마간이건 머무르라는 이야기.
단지 겉치레나 허례허식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권한 것이었다.
‘엄마도 허락했으니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의외로 그녀도 쉽게 허락해 줬다.
다만 기간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따라 6달로 제한한 것이었고.
꽤나 오랜만에 나와 보는 거리였다.
그동안 계속 잡념을 없애려 수련에만 매진했었다.
주변 동료들이 귀신이 들린 것 아니냐고 할 정도로.
개중에는 실제로 영능력을 다루는 이도 있었던지라, 어이가 없어 웃기도 했다.
신선한 햇살과 바람.
추위 따위는 그다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곧바로 머리에 헬멧을 쓰고, 바이크에 올라탔다.
우우웅.
마력석이 작동하며 이어 시동이 걸리는 바이크.
그와 동시에 자연히 은신 상태가 되었다.
J는 그 상태로 시속을 올리며 그대로 패스파인더 길드의 건물로 향했다.
“금방 오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기도 했고, 백수십 킬로가 넘는 속도로 신호도 무시한 채 달려왔기에 정말 눈 깜짝할 새에 도달했다.
“어……?”
무심하게 바이크에서 내리며 헬멧을 벗는 J의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이 소스라쳤다.
아까 전까진 보이지 않던 사람과 바이크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J는 그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그 입가에는 약간의 웃음기가 떠올라 있었다.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닌가?
남자의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지만 어째서인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쉿.”
검지를 남자의 입술에 가져다 대고, 슬며시 속삭인다.
그와 동시에 행인의 눈동자가 흐리멍덩하게 초점을 잃더니, 이내 흐느적거리는 걸음걸이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흥.”
콧소리를 내며, 그대로 그를 지나치는 J.
일반인에게 통할 정도로 가벼운 최면술은 그녀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경솔하게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윽고 J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위에서 무언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양이었다.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 이러지…….”
새로운 사람들과 만난다는 게 그녀에게는 그리 기쁜 일이 아니었다.
연구소 들어온 신입들은 무언가 기분 나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펜타곤이나 여타 임무지에서 만나는 인연들은 대부분 스쳐 지나갈 이들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서는 가슴의 떨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것은 두려움일까, 아니면 설렘일까.
J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
호에에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울고 있는 다나.
뭐 때문인지 얼굴 곳곳에 눈물 자국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그 뒤로는 낯익은 두 명의 여자.
그러니까…… 나츠키와 일리아가 서로 쫓고 쫓기며 난장을 피우는 중이었다.
이딴 게…… 길드?
어이없어하며 자리에 얼어붙은 J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온 것도 그때였다.
“아하, 네가 신입이었구나? 난 또 빌런인 줄 알고 죽여 버릴라고 했는데.”
“히익!”
생에 그렇게 놀란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들짝 놀란 J.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조금 전에 그녀가 최면술을 걸었던,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던 남자가 서 있었다.
일반인이라고 생각했다고?
J는 그 대목에서 몸을 떨었다.
그렇다면 전혀 그 체내 마력을 읽지 못했다는 소리인데, 그렇다면 실력 차가 적어도 두 단계 이상은 난다는 소리였다.
적어도 1,000위권에 근접한 히어로.
임무였다면 무조건 피했어야 할 남자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너무나도 반갑다는 듯 손을 내밀고 있었다.
그것이 굉장히 생경하게 다가왔다.
과연 그가 꺼내는 첫마디는 무엇일까.
J는 긴장하며 그를 기다렸다.
“반갑다, 나는 강훈이라고 해. 여기…… 요리사야.”
“요리사……?”
그런데, 아무래도 그 또한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