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도플갱어 씨!
겨울의 끝이 다가오고, 새싹이 싹틀 봄이 다가오기 시작하는 2월.
어쩌면 신정(新正)보다도 더 새해가 다가왔음을 절감하는 이 시기에, 협회에서 소속 히어로들을 급하게 호출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또 별 같잖은 거로 소집한 거면 내가 오늘은 그 대머리 새끼 팔 한쪽은 분질러 버릴 거야.”
“난 그 반대쪽. 씹새끼. 말만 번지르르하게 동등한 관계니, 뭐니…… 개소리 말라 그래.”
실상 협회 소속 히어로라는 것은 별것이 없었다.
협회에서 활동에 따라 지급하는 보수는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취급 또한 그리 좋지 못했다.
다만 입회하기 위한 절차나 조건 등은 굉장히 까다로운지라 어중이떠중이는 참가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상당수의 히어로들 사이에서 협회는 굉장히 좋지 않은 인식이 잡혀 있었다.
대우도 형편없는 주제에, 다른 길드와 함께 겸업을 하는 것에도 제한을 많이 두었으니까.
항상 명예를 부르짖지만, 사람이 명예만 먹고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협회에 들어간 이들은 그만한 포부 같은 것이 존재했다.
돈보다는 사람들을 구호하는 히어로의 본질에 충실하자는 마음가짐.
하지만 그조차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바람에, 최근에는 소속 히어로들 사이에서 불신이 싹트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이곳에 소집된 히어도들에게는 각자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이렇게 막상 불러 놓고는, 별것 아닌 일들과 주의 사항을 공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야, 저거 백색 아니냐?”
“맞는데? 소원마탑 탑주잖아.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어?”
하지만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본 히어로들은 무언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결지에 모인 히어로들의 숫자만 거의 200명가량.
협회 전체 인원이 387명인 것을 생각하면, 거의 절반 이상이 참석한 것이었다.
개중에서 사실상 명예직으로, 자유로이 행동하는 백색 계급의 히어로들까지 소집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한 길드나 단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거물들.
아무래도 공무를 처리하다 온 사람도 있는지, 얼굴에 짜증들이 한 가닥씩 끼어 있었다.
만약에 저런 사람들을 불러서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면, 협회도 꽤 곤란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정말로 중요한 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을 자각한 순간 장내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각자 친분이 있는 히어로들끼리는 서로 무슨 일일까, 예측하기 시작했다.
“무슨 몬스터라도 나타난 건가? 변종 집단으로…….”
“그건 그냥 공문 돌려도 되고. 최소한 그 변종이 필드나 던전 밖으로 나온다든가 하는 일 정도는 일어나야지.”
“갑자기 요즘 이상 징후도 없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내가 보기에는 차라리 빌런 새끼들 짓일 확률이 높아. 요즘에 동태가 영 수상하잖아. 그…… 발할라의 집회 말이야.”
“……그쪽보다는 몬스터가 낫지. 그 미친놈들은 진짜 뭘 할지 예상이 안 가니까.”
수많은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적어도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이기 시작했다.
“일단…… 확실한 건 우리가 좆될 확률이 높단거야. 방금 집회 참석 안 한 놈한테 연락해 봤더니, 다른 장소에도 여기 인원만큼 불러 놨다는데.”
“그럼 전원 호출 아니야? 시발, 뭐 진짜로 어디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적어도 국가적 명운이 달린 일임에는 분명하다는 것.
최소 4,000등 이내 히어로 387명.
이 전력은 우습게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히어로 순위가 단지 무력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는 해도, 그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거기에 협회 인원들 같은 경우에는 반강제적으로 전투 경험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정말로 나라라도 하나 침략하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이 정도 인원이 단번에 모일 만한 일은 드문 것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히어로들끼리 서로의 예상을 말하고 있던 와중.
한 남자가 집회 장소 내부로 들어왔다.
“……그래도 이쪽이 본회의인가 보네.”
그 남자를 보자마자, 히어로들은 적어도 이쪽에 모인 이들이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은 분명 60대 후반 정도의 연로한 외모였지만, 몸만큼은 20~30대 청년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수준인 남자.
그는 현재 나이 116세의 히어로 협회 회장이었다.
“아, 아.”
삐이.
마이크와 스피커 사이의 공명음이 울려 퍼지고, 동시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협회장은 단상에 올라가 아래에 있는 히어로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분명 긴장했으나, 그와 동시에 결연함이 가득한 표정들.
역시 협회에 소속된 히어로들이란 대부분이 제정신이 아닌 종자들이다.
그것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그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지금부터는 그런 제정신이 아닌 이들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일단, 갑작스럽게 호출을 한 점 미리 사과 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다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에 몇몇 히어로들의 얼굴이 풀어진다.
연장자가 저렇게 저자세로 나오는데 언제까지나 꽁해 있을 수가 없는 터다.
“이후 잡다한 이야기는 각설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협회장은 곧바로 어투를 바꾸고는 밑에 대기하고 있던 협회 직원들에게 지시를 했다.
개중 한 직원이, 옆에 놓인 종이 뭉치에 대고 마력을 불어 넣자 각각의 종이들이 히어로들에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파라라락!
상공을 어지러이 날아다니던 종이들을 각자 제 위치를 찾아갔고, 히어로들 전원이 같은 종이를 받게 되었다.
“……이게 뭐야?”
몇몇 히어로들의 입에서는 침음이, 대부분의 히어로들의 입에서는 의문스러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침음을 흘리는 히어로들의 특징은, 대체로 나이가 든 원로들이라는 것.
그들은 받자마자 이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메뉴얼?”
그 종이에 적힌 것은 일종의 메뉴얼.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움을, 또 어떤 이들에게는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그것.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 마주치면…… 이렇게 대처하십시오?”
“이게 뭔데……?”
히어로들은 그것을 읽음과 동시에, 단상 위를 올려다봤다.
이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달라는 듯이.
이미 일전에 이런 사태를 겪었던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이번에도 그때의 일이 반복되는지 말해 달라는 듯이.
단 한 사람만이 그러하지 않았다.
그 사람은 종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하와와와…… 다행인 고시애오…….”
* * *
1. 자신이 아는 이와 마주치면, 먼저 그와 거리를 두고 대화를 진행해 보십시오.
2. 그 어떤 일상적인 대화라도 좋습니다. 만약 상대가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거나, 혹은 어눌한 어투와 이상한 어휘를 사용한다면…… 곧바로 도망치거나 히어로를 호출하십시오.
3. 가장 좋은 방법은 이미 검증된 사람들끼리만 뭉쳐 다니는 것입니다. 의문스러운 ‘그것’은 다수를 대상으로는 힘을 쓰지 못합니다.
―주의
이 공문을 다른 이에게 보여 주지 마십시오. ‘그것’을 제외한 국민 모두에게는 이미 공문이 발송된 상태입니다. 만약 공문의 내용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 즉시 2번 메뉴얼의 대처 방법에 따라 행동하십시오.
―주의
본 메뉴얼의 배포 시점으로부터 24시간 후로부터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의 외출이 금지됩니다. 단, 특정 목적으로 인해 부득이한 경우 협회에 미리 허가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알 수 없는 메뉴얼의 전문.
이것은 사흘 전 협회를 통해 전 국민에게 발송되었다.
단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공문에서 ‘그것’이라고 모호하게 표현된 대상.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나이 든 이들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림으로 인해 사태의 심각성을 모두들 자각하게 되었다.
하프포낙스.
이세계의 말로는 ‘기만’.
본래 수인, 엘프, 드워프 등등.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은 정말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프포낙스, 그들 종족은 지성체임에도 이쪽으로 이주하지 않았다.
아니 이주를 막았다. 이종족들 선에서.
그들은 태생이 사악하다고 평가받는 종족.
언뜻 보면 복제 슬라임과 비슷한 외형과 행동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일종의 정신체인 하프포낙스는, 대상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든 뒤 정기를 빨아먹는다.
그 정기란 흔히 말하는 마나뿐만이 아닌 대상의 생기.
단적으로 영혼을 흡수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흡수가 진행되고 나면, 하프포낙스는 그 대상과 같은 모습을 취하게 되고, 대상은 역으로 형체가 없어지며 끝내 소멸하게 된다.
“무시무시한 고애오…….”
대상으로 바뀐 하프포낙스의 경우에는 그와 같은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도플갱어처럼 신체를 대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외형만 따오는 것이기에.
애초에 정신체에 불과한 그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은 딱 그 정도뿐이었다.
다만 무서운 것은 그 하프포낙스들이 앞서 말한 도플갱어가 되었을 때.
도플갱어 킹으로 불리는 개체들이 하프포낙스에게 마력을 배당하면, 그들 또한 도플갱어가 된다.
히어로 판타지 원작에서는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하프포낙스의 숫자가 상당수 불어나고 있을 때, 뜬금없이 도플갱어 킹이 나타나 그들과 접촉함으로 사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딱히 그들이 빌런 편이니 히어로 편이니를 따지지 않았기에, 그나마 수습할 수 있었지만…… 만약에 빌런 쪽에서 도플갱어들이 히어로들을 교란시키기 위해 행동했다면, 메인 스토리는 그대로 배드 엔딩으로 끝났을 것이다.
“정말로 다행인 고시애오…….”
그런 하프포낙스.
예비 도플갱어들이 지금 갑작스럽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이 시기였나? 나는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도플갱어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하프포낙스에 대한 언급은 ‘이전부터 계속해서 증식되어 왔다’ 정도.
개발사가 귀찮아서 설명을 넣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원래 시기보다 모종의 이유로 앞당겨진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시기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하프포낙스 또한 무고한 희생자만 늘어나지 않는다면, 증식하든 말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이러케…… 그렸었나여?”
나는 땅바닥에 마력석 몇 개를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언뜻 보면 흙바닥에 장난치는 초등학생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이게 다 지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니까.
내가 생각해도 조금 웃긴 이야기이긴 하지만.
“후아, 다 된 건가여?”
나는 손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 전 협회에서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때만을 기다려왔다.
이것은 환계로 향하는 마법진.
일전에 내가 환계로 향했을 때 만났던, 그 녀석을 다시금 만나러 가기 위함이었다.
도플갱어 킹.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계약한 환수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