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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36화 (136/172)

#136화.

내가 저번에 환계에 왔을 때 떨어진 장소와 이번에 오게 된 곳은 분명히 다른 곳이었다.

뭔가 지정된 좌표에 떨어지는게 아닌 건가?

마법진에 뭔가 문제가 있어서 잘못된 곳에 떨어진 줄 알았는데.

“하와와와…… 여긴 또 어딘가여…….”

원래 게임 내에서는 환계에 이동하게 되면 자동으로 소환의 전당이란 곳에 도착하게 된다.

그게 인게임 퀘스트상 오는 것이건, 진짜 소환수와 계약하러 오는 것이건.

물론 후자의 경우가 잘 없긴 하지만 나는 이미 전자의 경우를 게임 내에서 겪어 봤다.

그렇기에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나는 미소를 띠며, 계약했을 당시 만들어진 링크를 찾아냈다.

소환자와 소환수 간에 이어진 맹약. 그것은 환계에서 더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나 씨!”

이어 마력을 일으키고, 의지를 전달한다.

이곳으로 와 달라고.

아마 곧바로 의지가 전달되었을 것이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이 어디선가 전달되어 온다.

저쪽에서의 답신이겠지.

“……?”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은 뒤, 잠시간 벙쪄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답신으로 전해져 온 의지는 분명…… ‘부정’ 그것도 정확한 어투를 따지자면 ‘응, 안가’ 정도였다.

아니 시발, 왜…….

나는 다시금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번에는 조금 더 간절하게.

‘급한 일이니까 제발 와 줘.’

우웅.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빠르게 답신이 전해져 온다.

그리고 나는 이마를 짚은 채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돌아온 답신은 ‘응, 니가 와’였다.

“도대체 누가 주인인 건가여…….”

보통 환수 계약이란 소환자가 환수보다 강하기에, 주종 관계가 성립이 된다.

하지만 이 썩을 놈의 새끼는…… 분명히 나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까 비교적 중립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재앙 중 하나에 포함이 되었던 것이고.

아마 시간이 지나도 이 구도는 변하지 않겠지. 그게 좀 열받았다.

“……가면 되잖아여.”

굳이 현실에 현현시키고 싶지 않아서 환계까지 찾아왔는데.

물론 녀석을 환계 바깥으로 끄집어내려면 막대한 양의 마나가 필요하고, 지금 내 수준으로는 얼마 소환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겹치기는 했지만…….

……아무튼.

나는 한숨을 쉬며 이어 주문을 영창했다.

평소에 쓰지 않던 마법인지라 숙련도가 비교적 떨어져서, 소리 내어 영창해야만 했다.

“나라가여!”

느릿한 속도로 공중에 떠오른 나는, 이어 녀석의 존재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지팡이만 멀쩡했어도 이걸 타고 날아갈 건데, 환계 이동의 매개가 되는 것이 이놈인지라 자칫 여기서 막 사용하고 다니다간 망가질 위험성도 있었다.

그러니까…… 대략 시속 30~40km.

시골 경운기 수준의 속력으로 날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한참 걸리는 고애오…….”

어림잡아도 30km는 훨씬 넘어 보이는 거리.

그러니까 적어도 1시간 이상은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날아가면서 뭘 해야 할지를 한참 동안 고민해야만 했다.

*    *    *

“머리가 아야 하는 고애오…….”

으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나는 지상으로 내려왔다.

대략 2시간가량, 먼 거리를 날아오며 내가 한 행동은 다중 영창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일단 플라이 마법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다른 마법들을 사용하는 것.

물론 평소에도 하던 연습법이었으나, 지금의 경우에는 플라이 마법의 유지가 풀리면 안 되었으므로 상당히 하드코어 했다.

만약에 연산하다가 실수로 마법을 풀어 버리면, 그대로 지면으로 추락할 것이었다.

물론 박살이 나기 전에는 지팡이가 날 구해 주겠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좀 무서웠다.

나는 지금까지 꼭 쥐고 있던 지팡이를 공중에 띄워 놓았다.

환계로 이동한 지도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지라,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온 지팡이.

이걸 타고 왔으면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2시간 동안 날아왔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여기는…… 어딘가여.”

나는 환계에 오고 나서 뱉은 말을 또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또 저번에 봤던 저택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었다.

일단 이전번처럼 누군가 거주하는 곳임이 확실한데, 현대식 건물이 아닌 중세 성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 마왕성이라고 해도 납득할 만한 분위기, 온통 검은색으로 점철된 주위의 사물들.

퍼져 나오는 음기까지 더해져 꺼림칙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호에에…… 무서운 고애오…….”

나는 자연히 몸을 떨었다.

사실 도플갱어의 원래 이미지대로라면 이런 곳에 사는 게 더 어울리기는 한다.

그런데 저번에 봤던 곳이 자기 거주지라고 이미 말을 했던 상황에서, 갑자기 여기로 장소를 옮겼다는 게 크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취향이 완전 정반대로라도 바뀐 건가?

착.

“호에에에!”

나는 등허리에서 사뿐하게 감겨오는 감촉에, 순간 놀라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압도적인 완력의 차이 덕분에 이내 얌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리 부근에 감겨온 손은 누가 봐도 고운 여성의 손. 거기에서 그 정체를 곧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도플갱어 씨?”

“어머, 이제는 그렇게 부르는 건가요? 조금 서운하네. 저번에는 언냐야, 하고 부르셨었는데.”

“옵바야로도 변할 수 있자나여…….”

“흐응, 그건 그렇긴 하네요.”

순간 나를 감싸던 손이 투박한 남성의 손으로 변화한다.

그에 온몸에 느껴지는 거부반응.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부들거리자, 곧바로 녀석의 손이 풀린다.

“……진짜 엄청 싫어하네요.”

당연하지, 시발.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 뒤에서 살포시 백허그를 한다고 생각하면…… 당장에라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처음의 모습으로 변한 도플갱어가 있었다.

역시나 그 손은 J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일리아나 나츠키, 신하연처럼 무기를 다루는 이들의 손은 그리 곱지 못하다.

매일매일 그 살이 터지고 굳은살이 박이기를 계속하는데 어떻게 고울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J는 그녀의 특성과 암기를 사용하는 전투 방식을 사용하는 데다 그에는 딱히 수련 또한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가까운 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손이 곱다.

“찾아오라고 해서 미안했어요. 하지만 이쪽에서도 움직이기가 곤란한 상황이라…… 기껏 초대받아 놓고 마음대로 뛰쳐나가면 초대한 사람 입장에서 영 그렇잖아요?”

“초대한…… 사람이여?”

“네. 정확히 말하면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건 그렇게 말하는 편이 알아듣기가 쉽죠?”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도플갱어 특유의 분위기와 말투, 그리고 J의 모습이 합쳐지자 굉장히 생경했다.

아마 그녀는 평생 저런 말투를 쓰지 않겠지.

당장 어제도 ‘띨빵아!’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기 사는 사람이 초대한 거예요. 집 되게 예쁘죠?”

“그, 그러네여…….”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아까 내가 무섭다고 생각했던 그 음산한 성.

나는 억지로 긍정했지만 당장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저런 곳에 사는 환수라면 분명히 악성향.

지옥의 악마들과 계약한 흑마법사들이나 소환할 법한 녀석임이 분명했다.

짝!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이야기했더니 궁금하다고 했었는데. 혹시 한번 보실래요?”

“누, 누구를여……?”

“저기 사는 사람 말이에요.”

마침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짤깍짤깍 치며 웃는 도플갱어.

그 모습의 이면에서 나는 악마와도 같은 잔인함을 볼 수 있었다.

이 새끼, 분명 지금 즐기고 있다. 내가 무서워하는 걸 알면서.

“괘, 괜차나여…… 븝미쟝…… 다음에 보기로 해여!”

“에이, 그러지 말고. 되게 관심 있다고 했다니까요? 막 마촉으로 정기를 빨아 먹으면 어떤 느낌일까, 손으로 머리를 으깨면 감촉이 어떨까…….”

“호에에에에에!”

나는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그저 뒷걸음질을 쳤다.

괜히 이런 곳에서 객사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턱.

하지만 나는 어딘가에 부딪치게 되었다.

딱 내 키와 비슷한 어떤 장애물에 의해.

그리고 그 장애물은 말을 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말은 한 적도 없잖아. 어디서 막 지어내는 거야?”

“에헤헤.”

그 말에 머쓱하다는 듯이, 웃음 짓는 도플갱어.

그런 말은 한 적도 없다라…… 그렇다면 지금 내가 부딪친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대번에 보게 되면 소스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의한 것이었다.

“호에……?”

하지만 그런 내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검은색 레이스가 달려 있는 드레스를 입은 채, 무표정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 백발의 여자아이.

그녀의 머리에 동그랗게 휘어진 채 자란 자그마한 뿔이 마족 계열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아가야……?”

텁.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의 머리에 손바닥을 살포시 얹었다.

알 수 없는 충동. 그리고 그녀가 나보다 조금 작다는 것을 깨닫자 웃음이 올라왔다.

“흐후히히…….”

그에, 여자애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 들어간다.

잠시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그 자그마한 입술을 떼었다.

“……왜 초장부터 빠개 이 씹련아. 살기 싫냐?”

“호에……?”

*    *    *

“당신도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그렇게 겁이 많으면서 무례하게 그런 행동이나 하고 말이에요.”

“……미아내여 도플갱어 씨.”

“미안할 것까지는 없긴 한데…… 어쨌든 계약자니까 수호의 의무도 있고. 그래도 그런 행동은 하는 게 아니에요. 여기 저보다 강하신 분들도 꽤 있답니다?”

도플갱어보다 강한 환수들이라니, 잘 상상이 가진 않지만, 녀석이 괜스레 날 겁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닐 것이었다.

내 의지도 아닌, 이 몸뚱어리의 충동적인 행동 때문에 방금 나는 죽을뻔했다.

방금 마주친 여자애는 임프 퀸이라고 했다.

수명이 다 되어 환생해야 할 것을, 잠시간 환계에 머무르고 있는 중이란다.

당연하지만 그 힘은 재앙급이라고 불리는 도플갱어와 거의 맞먹는 수준.

실상 나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도 지워 버릴 수 있는 초월자 중의 한 명이었다.

죽여버린다라고 외치는 그 여자애를 진정시키느라 도플갱어가 한참 진땀을 빼야만 했고, 나는 연신 도플갱어에게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명확하게 내가 잘못한 것이 맞으니까.

내 의지건 아니건…….

“뭐, 사과는 그만하면 됐어요. 그거보다 왜 찾아왔는지 이제 듣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냥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는 건 아닐 테고. 만약 그렇다면 저야 기쁘지만.”

눈을 반짝거리면서 나를 쳐다보는 도플갱어.

그 모습이 순간 털부숭이 펜타곤의 기초 체력 단련 담당 교관으로 변해 있었다.

온몸에서 머슬,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그 모습으로.

진짜 존나 부담스럽네. 이거 악취미라니까.

“사시른여…… 부탁하고 시픈 게 있어서 온 고애오.”

“부탁하고 싶은 거? 그게 뭔데요?”

영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

나는, 대략적으로 지금의 사태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론 후일에 도플갱어가 어쩌고…… 하는 스토리의 이야기는 제외하고.

잠시간 이야기를 듣던 녀석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걸 왜 저한테 얘기하는지 모르겠네요.”

“호에에?”

그거야…… 니가 내 소환수니까, 개자식아.

순간 튀어나오려는 말을 다시 집어넣느라, 무진장 애를 써야만 했다.

“왜…… 안되는데여?”

“안 된다고 얘기한 적 없어요. 왜 얘기하냐고 했지.”

그게 그거 아닌가?

고개를 왼쪽으로 꺾자, 도플갱어는 내 의문의 정체를 눈치챈 모양이었다.

“당연히, 계약자니까 시키는 대로 도와주는 게 맞는다는 소리였어요. 굳이 여기까지 와서 물어볼 필요도 없는 얘기잖아요?”

“옵바야……!”

너, 이 녀석.

진짜 좋은 놈이구나?

나는 순간 감동해선 도플갱어에게 안길 뻔했다.

그러나 녀석이 변해 있는 그 교관의 팔 아래, 삐져나와 있는 털을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이건 생리적으로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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