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에여……
하프포낙스로 인해 혼란이 찾아온 지도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 와중이었다.
협회와 일부 공익 목적으로 세워진 길드들은 적어도 국내만이라도 이들을 색출해 내고자 노력했다.
어쨌건 하프포낙스 같은 경우에는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니까.
어떻게든 색출해 내서 하나씩 잡아 죽인다면, 완전히 없애 버리는 것이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다만 그 수사는 상당히 지지부진했다.
제대로 된 혼란을 야기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빌런 집단이 그 수사를 방해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하프포낙스에 대한 거짓 정보를 흘린 뒤, 출동한 히어로들을 습격하는 일이 다수 발생하면서 신고자에 대한 검증 또한 철저해졌다.
물론 그렇게 되면 진행속도가 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어쨌건 그 일주일간 죽인 하프포낙스의 수는 채 두 자릿수가 되지 못했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그냥 빌런 새끼들도 이참에 그냥 다 잡아다 찢어 죽이면 그만 아니냐고요.”
“진정하고…… 그게 안 되니까 지금 이 상태잖아.”
“그게 왜 안돼? 별 되지도 않는 것들이 히어로랍시고 목에 힘주고 다니니까 이 사태인 거 아니에요.”
개중에서 오성길드.
오로지 공익 목적으로 개설된 몇 개 되지 않는 길드 중 한 곳.
동시에 이번 하프포낙스 소탕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곳이기도 했다.
“우리가 제일 많이 잡았어요. 그런데…… 겨우 네 마리라고. 누가 개체 수가 거의 천 마리 가까이 된다고 했었나?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네 마리면 결코 많은 게 아닌데. 그런데도 제일 많다고요, 우리가. 나는 지금 부끄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지.”
“그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이 정도라고요.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 이게. 지금 이 상황 정상화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할지 아무도 몰라요.”
사실상 일상생활 자체가 굉장히 경직되어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이나, 이유 없는 외출 자체도 자제하는 상황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포가 아주 조금씩, 상황을 좀먹어 가고 있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사람조차 믿을 수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물론 하프포낙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기에 실제 피해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 존재만으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몇십 마리씩은 잡아야 한다니까요? 그래야 사람들이 안심을 하지…….”
“그래, 알겠으니까 진정 좀 하라고. 연지야.”
오성길드의 김연지, 그녀는 작금의 사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각기 하프포낙스를 잡겠다며 나선 히어로들이, 막상 빌런들의 수작질에 겁먹어선 움츠러든 모습이 보기 한심했다.
“사람 구실을 하는 놈들이 없다고요. 지금 여기 공헌한 숫자만 봐도, 우리 오성 아래 2등이 협회 히어로들인데…… 겨우 두 명이고.”
“잠깐만, 2등이 아닌데? 3등이잖아.”
“네?”
히어로 협회 메인 페이지에 걸려 있는 순위 표를 디밀던 김연지는, 동료 히어로의 말에 다시 그것을 확인해 보았다.
“뭐야……? 왜……?”
협회라고 표시되어 있는 순위 표 한 자리.
그것은 분명 히어로 협회 소속원들이 처치해 낸 하프포낙스의 숫자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원래 2마리에서 현재 3마리.
하지만 순위는 한 단계 하락했다.
그것은 협회뿐만이 아니라, 오성길드도 마찬가지였다.
4마리를 처치하여 1위를 지키고 있던 오성길드의 순위가, 방금 2위로 내려갔다.
그리고 새로 1위에 등록된 길드.
“패스파인더?”
그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 옆에 적혀 있는 ‘37’이라는 숫자조차도…….
* * *
“확인 다 된 거져?”
“네, 확인되었습니다. 확실히 모두 코어가 맞고……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이 잡아 오신 건지…….”
“븝미쟝은 뭐든지 잘하는 고애오!”
무작정 내뱉는 내 호언에 협회 직원이 목덜미를 긁적거린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머쓱해져서는 곧바로 인사를 한 후 건물 밖으로 나가 버렸다.
“하와와와…….”
방금 내가 협회에 제출하고 온 것은 하프포낙스의 코어였다.
정신체인 하프포낙스 하지만 녀석들은 일정 이상의 타격을 받으면 유형의 물질 하나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코어.
마치 검붉은 색의 보주와 같이 생긴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힘을 회복하여 하프포낙스로 부활하게 된다.
물론 그 전에 파괴해 버리면 그만이었지만.
“도플갱어 씨, 고마운 고애오…….”
실제 도플갱어로 진화하기도 하고, 엄밀히 따지자면 다른 종이지만 많은 부분이 비슷한 둘.
그런 만큼 도플갱어는 내게 하프포낙스를 구별할 수 있는 오라 패턴을 알려 주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단기간에 많은 놈들을 잡을 수 있었다.
실상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하프포낙스 자체의 전투력은 보잘것없는 수준이었으니까.
무서운 것은 일정 수준의 마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소위 일반인들의 그림자 속에 숨어 정기를 빨아 간다는…….
마치 귀신과 같은 이미지 때문이었지 실상 별거 아니었다.
물론 이게 도플갱어로 변하면 또 다른 이야기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도 거의 없다.
도플갱어가 일단은 내 편이니까.
“이대로면 금방 끝나겠는데여…….”
하프포낙스 대란은 원래 게임 기준으로 5~6월쯤이 되어야 끝난다.
그것도 현재의 예상보다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이루어진 것인데, 소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이들 중 하나가 오라 패턴을 자력으로 연구해 냈기 때문이었다.
나는…… 딱히 감도 안 잡히는데 말이지.
이런 연구 위주의 마법 같은 경우에는 내 전공이 아니기도 했고.
이 몸으로 전투 마법사라니 그것도 참 웃기는 얘기긴 하지만…….
“미아내여 옵바야…….”
그 오라 패턴을 알아낸 마법사가 푸른마탑의 부탑주였나?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그 공을 내가 뺏어가야만 할 것 같았다.
도플갱어를 만나고 온 뒤 며칠간 하프포낙스를 잡는다고 진땀을 뺐더니, 정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오라 패턴만 알면 금방 소탕할 수 있는 녀석들이니, 다른 이들에게 알려서 다 같이 잡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
겸사겸사 나와 길드가 얻는 이득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고.
“븝하.”
“어, 다나 왔어?”
협회를 나온 나는 곧바로 길드로 향했다.
길드 내에는 이미 각자 하프포낙스를 잡으러 나간다고, 인원들이 다수 비어 있었다.
아직도 상층 공방에서 무기를 만들고 있을 라이카와 김수혁을 제외하면, 지금 나를 맞이해 주는 일리아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로 들어온 길드원들은 J를 포함하여 총 5명.
이제 전투 인원만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어엿한 길드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개중에서도 전력만 따지자면 이미 중견 길드급은 되고도 남는 수준.
일리아는 은근히 지금 패스파인더의 상황이 꽤나 부러운 눈치였다.
“수련장도 있는데 여기서 하는 고애오?”
“아아, 그냥. 가만히 있자니까 몸이 근질거려서.”
“어쩔 수 없잖아여 언냐야…… 지금 상태로는 안 되는걸여.”
“그래…… 그런데 조금 짜증 나네.”
일리아는 그 누구보다도 하프포낙스들을 잡으러 나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작은 문제가 찾아왔다.
바로 심법에 대한 문제.
정통 무학을 사용하는 히어로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심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심법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완벽하지가 않다.
애초에 이쪽 세계관에서도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깽판을 치기 시작한게 100년도 되지 않은 일인지라……. 옛날에는 완벽하다고 평가되었던 수많은 마법과 무술들이 지금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경우도 허다했다.
물론 일리아가 익힌 심법은 상당히 뛰어난 완성도를 가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일정한 경지를 넘는 과정에서 생기는 심법의 불안정.
마치 일전에 나츠키가 영약을 과다복용 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만약에 언냐야가 나갔다가…… 납븐 옵바 언냐야 들 만나며는…….”
“그래, 저항도 제대로 못 하겠지. 알고 있어.”
후우.
한숨을 내쉬는 일리아의 얼굴에서 진한 아쉬움이 묻어 나온다.
사실 그놈의 정의감으로만 친다면 일리아를 따라올 만한 사람이 없었다.
지금에야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해 댄 터라 원작과 같은 열혈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지금도 여전하다.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좌선을 하는 것인지, 정말로 심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인지.
가부좌를 튼 일리아는 한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다.
사실, 저건 내가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다.
마력에 관해서는 내가 일리아보다 훨씬 이해도가 높으니까.
무슨 연구와 노력을 통해서 알아낸 무언가가 있고, 그 덕분에 이해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 자체가 무식하게 많다 보니 자연히 깨달음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 눈에는 일리아의 문제가 대번에 보인다.
조금만 길을 터 주면, 금방 저 불안정한 상태를 타개할 수 있다.
하지만…… 좀 그러기가 싫다.
일단 가식적인 이유를 대자면…… 이렇게 도움을 줬을 때, 일리아가 얻는 것이 적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움을 받어 해결한 것과, 자신이 직접 활로를 뚫어 이 상황을 타개한 것.
당연히 후자가 얻어 가는 것이 더 많을 수밖에는 없었다.
“언냐야…….”
“응, 왜?”
그리고 솔직한 이유를 대자면…….
“마나 씨가 원래대로 돌아오며는…… 밖으로 나갈 거져?”
“당연하지. 지금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데. 우리가 빨리 해결해 줘야 하는 거야. 그게 힘을 가진 사람들의 의무고 책임인 거니까.”
“그러며는 길드에 아무도 없겠네여…….”
“어, 그렇지? 나츠키 걔는 그래도 가끔 들어오긴 하던데. 그래도 금방 나가더라.”
일리아가 나가면, 길드에 정말 아무도 없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내가 더럽게 심심하다는 것이 진짜 문제였다.
수련? 솔직히 말해서 대략 1시간정도 하고 나면 족히 몇 시간은 쉬어 줘야만 했다.
그것이 내 체력의 한계였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그냥 드러누워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이는 게 다인데, 그래서야 정말로 그냥 시간을 죽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밖에 나가서 다시 하프포낙스들을 잡기에는 너무나 힘들었고…….
길드에서 이렇게 말벗이라도 해 줄 사람이 있어야 내가 좋은데.
“으으…….”
하지만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약해진다.
원래 내 성격대로면 그냥 생까고 관망했을 텐데, 요즘 들어 유난히 정에 약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쩔 수가 없는 고애오…….”
나는 신음을 흘리며 좌선을 하고 있는 일리아의 뒤로, 슬쩍 다가갔다.
그러고는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응?”
“아무것도 아니에여, 언냐야.”
슬쩍, 위를 올려다보는 일리아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손바닥을 통해 마력을 조금씩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뒤틀려 있는 기혈을 정상적으로 만들고, 마력의 활로를 뚫어 준다.
원래라면 굉장히 세심하게 진행해야 하는 과정이지만, 일리아의 몸은 가진 바 마력에 비해 굉장히 튼튼했으니…… 이렇게 무작정 헤집어 놔도 크게 상관이 없다.
“하아암…… 왜 갑자기 잠이 오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도 못한 채 5분 만에 마력 시술을 당해 버린 일리아.
그녀는 하품을 하더니 곧바로 그 자세 그대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호에에……?”
어떻게 사람이 가부좌를 튼 채로 잠이 들 수가 있지?
황당하면서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나중에 찍어 뒀다가 두고두고 놀려야지.
나는 곧바로 전화기를 꺼내었다.
[부재 중 전화 1,462]
[안 읽은 메시지 2,081]
“호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