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동아리를 만드는 고애오……
펜타곤은 학년마다 그 생활공간이 거의 분리되어 있기에, 휴게 시설을 제외하고는 학년끼리 서로 마주칠 일이 없다.
그나마 마주치는 것도 2학년과 1학년 정도, 3학년 생도들 같은 경우에는 휴게 시설에 갈 여유도 없는 생활을 이어 나가기에 실제로 나도 작년 3학년 생도들은 대면한 적이 없다.
“……언냐야는 안 바빠여?”
“어차피 길드 넣어 준다면서. 그리고 토토 시스템이랑 게임기 하나 손볼 거 있어서 온 거야. 이것도 다 일이라고.”
“일이긴 하져…… 도둑도 직업이라면여…….”
당당하게 교칙 위반을 일이라며 하고 있는 이수정.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아무리 그래도 3학년 생도면서 수업도 째 버리고 저렇게…….
“어, 다나! 여기 있었네. 오늘 실전 수업은 왜 빠진 거야? 다들 너 찾았는데 교관님이 너 오늘 빠진다고 알려 주더라고.”
“하와와와와…….”
……나도 그닥 다를 게 없나?
맞은편에서 나를 보고 달려온 동급생이 건넨 질문에,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허구한 날 수업 빼먹는 건 나도 똑같은 것 같은데.
아니, 그래도 난 적어도 보충은 꼬박꼬박 하니까…… 다르지.
“뭐, 사정이 있어서 빠진 거겠지만…… 워낙에 바쁘니까. 아니, 이걸 물어보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혹시, 다나 너 동아리 창설하는 거 관심 있어?”
“동아리여……?”
갑자기 웬 동아리?
내가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그쪽에서도 나를 의문스럽다는 듯 쳐다봤다.
“우리 이제 2학년이니까 원하는 동아리 창설할 수 있잖아. 몇몇 애들 지금 동아리 개설 신청한다고 난리야. 일단 동아리 창설하고 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외부로 빠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활동 보고서 같은 거 작성해서 제출하면 외부 활동도 대체 가능해!”
아, 그렇지.
나는 그제야 동아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펜타곤에서는 2학년이 되면 동아리를 개설할 수 있다.
이를테면 작년에 나츠키가 가입했던 역사 동아리라든가…….
원래 작년에는 대부분 동아리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2, 3학년 생도들이 그리 활발히 홍보하지 않았었고, 다들 그 시점에서는 동아리에 들어가서 얻는 이점이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다른 모양이었다.
나만의 동아리를 개설하고, 그걸 펜타곤에 남길 수 있다는 것.
거기에 겸사겸사 외부 활동도 빼고, 자유 탐사 시간을 한 달에 하루 정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큰 메리트였다.
물론 교관들이 아무 동아리나 개설할 수 있게 해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몇몇 생도들은 새 동아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펜타곤에 남아 있는 동아리는 내가 알기로 11개.
매년 2~3개씩 부원 부족 따위를 이유로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올해도 2~3개 정도 만들어지겠지.
“그래서 말인데 다나아…….”
“안 해여, 옵바야…….”
“말, 끝까지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 주는게…….”
“가입 안 한다구여.”
나는 매달리는 그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걸어갔다.
이 녀석은 내가 알기로 평소에 사진 찍는 걸 취미로 삼는 놈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 사진들은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괴수들의 사진이었다.
따로 다른 사람들이 죄다 기피하는 괴수 생태학 따위를 신청하는 놈이었으니, 만들려는 동아리가 뭔지는 뻔했다.
나는 고름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트롤의 사진 따위를 찍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해 가면서까지…….
* * *
“부장……이여?”
“어, 들어올래?”
“……아니여.”
“야, 나도 작년에는 생각 없었어. 근데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장황하게 연설을 시작하는 나츠키.
그녀의 손에는 역사 동아리 부원 신청서가 몇 장 들려 있었다.
작년에 그녀에게 동아리 가입을 제의했던 생도들이 졸업해, 부원이 모자라게 되어 그녀가 부장이 되었다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내게 가입 신청을 하라고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 반도의 역사에 담긴 그 선조들의 얼…… 그걸 잊으면 안 되는 거야.”
토종 일본인의 입으로 듣는 한국사 강의라, 이거 좀…… 신박하긴 한데.
뭔가 작년에 세뇌라도 받은 건지, 어디선가 광기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냐야…… 혹시 다른 나라 역사는 취급 안 하는 고애오?”
“다른 나라 역사? 어…… 안 해. 작년에는 적어도 안 했어.”
“그러며는 왜 한국사 동아리가 아니라 역사 동아리인가양…….”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선배들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거니까.”
나츠키는 한 차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다만 사소한 문제라는 듯, 금방 그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고는 내게 다시금 물었다.
“그래서 가입할 거야 안 할 거야. 빨리 말해.”
“안 한다니까여…….”
거기 가입했을 때 미래가 눈에 선한데, 잘도 가입하겠다.
만약 가입하게 된다면 이번 동아리 공연 때 나츠키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인 거에양!’ 하고 외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아쉽네…… 이상하다, 왜 다들 가입을 안 하려고 하지…….”
입을 삐죽 내밀고는 축 가라앉은 나츠키.
도대체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역사가 어쩌고 하고 중얼거리면서 사라진다.
나츠키야 원래도 정상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저 동아리에 뭔가 있는 것 같다.
동아리라…….
어제 뜬금없이 게임 랜드에서 마주쳤던 동급생의 가입 권유도 그렇고, 다들 동아리 개설이나 기존 동아리의 부원 모집을 한다고 난리였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자유 활동과 외부 활동 면제를 위함이었다.
요즘 들어 더 심해진 외부 활동은 이제는 펜타곤 생도들을 현역 히어로처럼 부려 먹기 시작했다.
그나마 히어로들은 보수라도 주지, 생도들은 아무 이득도 없이 무급 봉사를 하는 것이었으니…… 불만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지금 다들 동아리에 목숨을 거는 모양이었다.
물론 나한테는 별세계 이야기지만.
국내 상위권 길드장이자, 태양여명단 성녀.
생도로서는 말도 안 되는 직함을 두 개나 달고 있는 나였기에, 빠지려면 얼마든지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거 좀 빠진다고 나한테 태클을 걸 사람도 없었다.
당장 얼마 전에 있었던 하프포낙스 건에 대해서 내 공이 컸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마당에…….
“다나!”
“언냐야, 왔서여?”
“혹시 동아리 가입할래?”
“호에에?”
……이건 또 뭔 소리야?
또다시 들리는 ‘동아리’ 소리에 나는 그저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까지 동아리 타령인가.
“언냐야는 무슨 동아린데여…….”
“검술 동아리!”
“돌아가여…….”
“힝…….”
예상했다는 듯 크게 실망하진 않으면서도, 고개를 푹 숙이는 일리아.
애초에 이 체력으로 검술 동아리에 가입하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러면…… 그거라도 해 줘”
“그거여……?”
“사실…… 우리 대련할 때 조금 위험하잖아? 그냥 수련용 목검 가지고 해도 부상 위험도 있고……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있는데…….”
왜 이렇게 설명이 장황해?
우물거리면서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잠시 의문을 느꼈다.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고…….
철컥.
“호에에?”
그때, 그녀가 급작스럽게 내 손목에 무언가를 채웠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것의 스위치를 작동시켰다.
순간적으로 몸 전체를 훑는 마력.
나는 그에 저항하려다가, 그 마력 자체가 내게 적의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만히 있었다.
무엇보다 일리아가 내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 또한 한몫했다.
“이게…… 먼데여?”
마력의 움직임이 모두 끝이 난 뒤, 나는 일리아에게 질문했다.
도대체 이게 뭐냐고.
아무래도 검술 동아리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물건 같은데…….
“어, 이거…… 그 학기 초에 너랑 나츠키랑 대련할 때 썼던 거 있지?”
“기억나는 고애오.”
“그래…… 그거야. 정확히 말하면 조금 하위 버전이기는 한데…… 아무튼 다나 네 신체 정보를 기억시킨 거거든? 대련 때 이거 차고 대련하려고. 그럼 아무도 안 다칠 테니까.”
어…….
아?
뭔가, 좋은 생각인 것 같긴 한데…….
내 입장에선 뭔가 또 기분이 더럽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지금은 길드마스터, 직속 상관이기도 한데 이런 식의 대우는…….
“미안, 다나. 꼭 필요해서…… 대신에 이거라도 먹으면서 화 풀어. 응?”
“언냐야! 지금 븝미쟝을 뭐로 보는 고애오…… 이런 거에…….”
나는 일리아가 내민 밀크 카라멜을 보며 분개했다.
고작 이딴 거로 내가 넘어갈 것 같…….
“호에에…….”
입안에 달콤함이 찾아오자, 순간 올라왔던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입안에서 그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만, 한 번만 봐주는 고애오…….”
* * *
수많은 생도들이 동아리를 창설하려고 노력해, 결국 예상보다 더 많은 숫자의 신규 동아리들이 개설되었다.
직접 개설하지는 않았더라도, 작년 말에 가입한 일리아가 검술 동아리 부장이 되고 나츠키가 역사 동아리 부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여기서 주변인 중에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은 마지막일 줄 알았다.
워낙 다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이들이라(장선우만 빼고) 부원으로서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의외로 예의 그 씹덕 성기사, 이안이 동아리에 가입했다.
웬 고대 생물학 동아리인가 하는 신설 동아리에.
그런 케케묵은 학문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관심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인원이 많은 그 수상한 동아리.
나는 한동안 그 동아리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무슨 동아리길래 1학년이고 2학년이고 3학년이고…… 무려 42명이나 가입했을까.
그리고 그 의문은 정말, 정말 우연히 해소되었다.
과연 이게 운 스탯의 영향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이! 예이! 예이! 예이!”
“호에에에……?”
펜타곤의 구교사 뒤쪽의 허름한 작은 건물.
잘 오르지 않는 체력 스텟이지만, 혹시나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산책을 하던 내가 가끔 오던 곳.
그곳에서 어떤 남자들의 광기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지?
내 예민한 청력이 아니었더라면, 들리지 않았을 소리.
아무래도 저급하나마 방음 마법이 쳐져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건물로 조용히 다가갔고, 이내 그 안을 들여다봤다.
이어, 놀랄 만한 광경을 목도했다.
잔뜩 모여 있는 생도들과 그 앞에 틀어져 있는 2D 애니메이션 아이돌들의 공연 영상.
그들은 그것을 보며 그 누구보다도 열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서 가장 크게 소리 지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안이었다.
“미카쨩 최고다아아아!”
“……모 하는 고애오?”
뚝.
내 중얼거림과 동시에 멈추는 애니메이션.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