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42화 (142/172)

#142화. 언냐야…… 좀 맞아야 해여……

"아직도 모르는 건가, 설마."

이수정은 조용히 되뇌었다.

펜타곤에서 사라진 지도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목적은 다나 크리스틴, 그 간악한 계집애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니, 아무래도 성공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래도……?"

그녀는 뭔가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다.

맨날 그렇게 혹사하고, 조금만 일이 어그러져도 가차 없이 질책하던 녀석이…… 정작 사라지니까 찾으려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고?

"짜증나."

이수정은 괜히 주변에 있던 인형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녀가 있는 곳은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 빌라.

본래 이수정이 살던 실제 거주지지만, 그녀가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말살하며 그 기록 또한 동시에 사라졌다.

그렇기에 이곳과 이수정과의 연관관계를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 삶을 관전하듯 바라본…… 이를 테면 신과 같은 존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심심해."

어차피 찾지도 않는데 은신처에서 이러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어차피 들키지도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에 몸을 비틀고 있을 때였다.

띵동.

"……?"

이수정은 순간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설마설마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냐야…… 나오는 게 조을 거애오……."

나름 차분하게 가라앉았음에도, 그 특유의 강세는 어쩔 수 없는 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히 그 계집애, 다나의 목소리였다.

도망가야 하나?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몰라도 이곳에 들이닥쳤다면 도망갈 방도는 없었다.

그냥 지금 밖으로 걸어나가 자수를 하는 수밖에…….

"흐으으……."

이수정은 몸을 떨었다.

그것은 언뜻 앞으로 닥칠 일들에 대한 공포심 때문으로 보였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와는 무언가 달랐다.

그녀의 몸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은근한 기대감, 그것은 작금의 상황과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덜컥.

이어, 자진해서 그녀가 문을 열었을 때.

눈앞에는 자그마한 그 소녀, 다나가 서 있었다.

무언가 잔뜩 뿔이 난 듯 드물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그 모습.

"언냐야…… 혼 좀 나야 하는 고애오……."

"네헤엥……."

이수정은 그에 몸을 떨었다.

*    *    *

"읍, 으브븝!"

"조용히 하는 고애오……."

나는 뒤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이수정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잦아드는 소음.

도대체 쟤는 왜 저러는지 모르겠네.

그녀는 지금 마력으로 엮어 낸 사슬에 묶여 있는 상태였다.

거기에 입까지 막아 놓은 상태인지라, 상당히 불편할 것이었다.

물론, 이수정은 그걸 딱히 싫어하지 않을 테지만…… 이상성욕자 같으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어여……."

이수정이 사라진 것을 파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가 있을만한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봤다.

제일 먼저 미래에 그녀가 가장 많이 가는 장소를 가 봤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가지 않는 듯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어 스토리에서 그녀가 가던 장소들을 하나하나 다 찾았지만, 그 또한 역시 미래에 가는 곳들인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거.

그녀가 과거에 갔거나 살았던 곳에 있지 않을까?

수 시간을 헤메고 난 뒤에 내린 결론은, 지금 보다시피 적중했다.

"도대체 왜 숨은 고애오……."

도대체 이수정은 예측이란 것이 불가했다.

만약 그녀가 작정하고 어딘가로 숨었다면, 내가 찾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수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녀의 미래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꿰고 있지 않았다면 찾을 수 없을 법한 장소였으나, 그럼에도 여타 대처들이 상당히 안일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수정은 그냥 일종의 시위를 한 것 같았다.

나한테 신경을 좀 더 써 달라는 시위.

"호에엥……."

뭐, 원작에서도 몇 번씩이나 하던 행동이었으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녀의 뒤틀린 성격 탓이었으니…….

하지만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정보가 새어 나왔을 것이고, 몬스터들의 알이 블랙마켓 경매장에 잔뜩 나왔을 텐데…….

"언냐야 거로 좀 긁을 게여. 이게 이번 벌이에여!"

"으브브븝?!"

이수정은 이건 예상치 못했다는 듯, 짐짓 아양을 떨던 아까의 ‘으브븝’과는 달리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하기야 사이트를 운영하며 피땀 흘려 번 돈을 단숨에 써 버리겠다는데,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봤자 변하는 건 없는 고야요……."

나는 그녀를 무시하고 블랙마켓을 계속해서 둘러봤다.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계정은 이수정의 것.

회원 등급을 돈, 혹은 정보 따위로 교환할 수 있는 만큼 그녀의 등급은 최고 단계 바로 아래인 플레티넘 등급이었다.

그에 사이트 내 모든 접속 권한이 풀린 상태.

역시, 돈을 지불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수정 계정을 빌려 쓰면 그만이 아닌가.

물론, 그 당사자야 피눈물이 나는 일이겠지만…… 어쩌겠는가.

오늘 일로 이수정은 내게 제대로 찍혀 버렸다.

[마수 클락캐서스의 알]

시작가 - 2,999,999$

[용아족의 알]

시작가 - 160,000$

[회색늑대 새끼]

시작가 - 70,000$

‘펫’ 카테고리에 들어가 검색하자, 수많은 몬스터들의 새끼와 알이 나왔다.

블랙마켓에 허위 매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여기 있는 상품들은 언뜻 굉장히 가격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실제로 회색늑대 같이 합법적으로 소유가 가능한 개체도 양지에서 분양받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더 저렴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따금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것.

이를 테면 지금 여기 올라온 회색늑대 새끼가 심장병 따위를 앓고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런 부분까지는 블랙마켓이 신경쓰지 않기도 했고, 사는 사람 잘못이라는 마인드가 팽배했다.

물론 알 같은 경우에는 그런 문제가 상당히 적긴 했지만…….

어쨌건 적다는 것은 없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지금 내가 찾는 알 또한 그런 거였다.

판매자가 그 알의 정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다른 용종 몬스터의 알이라고 생각하고 경매장에 올린 것이었다.

"멍청한 고애오……."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악룡의 알을 사는 놈들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어쨌건 수요가 있는 것이었으니 제값에 팔았다면 수십 배는 이득을 봤을 것이다.

나는 게임에서 나온 낙찰가와 시작가를 곰곰히 떠올려 보며, 하나하나 매물을 찾았다.

"호에에에…… 어질어질해여……."

진짜 개 더럽게 많네.

아직 매물이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고, 혹은 이미 낙찰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현재 나온 매물들 외에 최근에 낙찰된 물품들 또한 모두 살펴봤다.

검색 결과 총 1,332개.

최대한 범위를 좁혔음에도, 세계 각국 빌런과 히어로들이(물론 불법이었으므로 몰래) 사용하는 곳이다 보니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일단, 현재 경매가 진행 중인 것들 중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과 다른 요소들이 첨가되어 있었다.

실물 사진이라던가 하는 것들이.

그렇기에 검색 결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미 낙찰된 상품들을 살펴봤다.

물론, 제발 여기서 나오지 말라는 기도를 하면서…….

"호에……?"

하지만, 내 기도가 통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명예직이긴 해도 나름 성녀라는데 기도 좀 들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낙찰 일자는 4월 18일.

그러니까…… 바로 오늘이었다.

내가 이수정을 찾아 헤매고 있던 5시간 전에 이미 낙찰이 된 것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노트북을 덮고 이수정을 향해 걸어갔다.

"언냐야…… 진짜로 안 되겠어여……."

"으브븝……?"

눈을 반짝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수정.

……내가 뭘 하건 되려 기쁘게 받아들일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우우웅.

나는 마력으로 된 채찍을 꺼내 들었다.

그래, 도대체 어디까지 기뻐하나 한번 보자.

그로부터 30분 뒤, 이수정의 집에 경찰들이 찾아왔다.

사유는 ‘여자의 교성이 너무 크게 들린다’라는 주민 신고였다…….

*    *    *

중국 최대의 빌런 집단 중 하나인 수마회.

그곳에는 최근 굉장한 희소식이 들어왔다.

"허, 이게 마룡의 알이란 말인가?"

"네, 보기에는 굉장히 작아 보여도 말입니다……."

"알고 있네. 원래 용종들의 알은 그 몸집에 비해서 굉장히 작은 편이지."

이종족들, 특히 수인들을 위주로 내려오는 전설.

그곳에 등장하는 ‘악룡’의 알이 던전에서 나왔고, 그것을 굉장히 싼 가격으로 입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허탕만 친다고 했더니…… 제대로 된 물건이 굴러 들어왔군. 마력 측정은 해 봤나?"

"224입니다. 높진 않으나 역시 용종 중에서는……."

"그래, 최고군."

수마회의 수장, 왕 쳉의 입이 가늘게 휘어졌다.

앞으로 악룡의 알이 부화한 뒤, 그것을 키우고 길들이며 할 수 있는 일들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집단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발상이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야성이 남아 있는 마수들을 길들인다는 것부터 쉬이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수마회는 그 수장부터가 테이밍과 관련된 특성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몬스터들을 길들여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정통이 나 있는 집단이었다.

실제로 최근 대륙 내에서 있었던 빌런과 히어로들 간의 충돌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곳이 수마회였고, 그 중심에는 그들이 키우는 몬스터 군단이 있었다.

이 마룡은 그 군단의 명백한 장이 되리라.

왕 쳉은 알의 사진을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한동안 그렇게 즐겁게 껄껄거리던 그는, 어느 순간 무언가 떠올랐는지 얼굴을 굳히며 그의 부관에게 말했다.

"……도중에 빼앗길 염려는 없나? 정보가 우리 쪽으로 새어 나왔다면 다른 쪽에서도 그걸 알 수도 있지 않나."

"저희 쪽 정보 분석관이 알아낸 것인지라……."

"바로 그거지, 그 녀석부터 잘 감시하라고. 마룡만 우리 손에 들어온다면…… 장차 수마회가 패권을 휘어잡을 테니까……."

물론 정보 분석관이 배신할 리 없다는 사실을 부관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손속이 잔인하기로 그지없는 수마회니만큼……

실제로 일전에 배신을 한 단원 중 하나는, 지금 그 육신을 저며 육포로 만든 뒤 몬스터들의 우리에 던져준 지 오래였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왕 쳉에게 헛소리를 했다가 목이 잘려 나간 놈들의 수가 몇인지,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