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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43화 (143/172)

#143화. 알을 훔쳐여!

결국엔 악룡의 알은 원래대로 유출된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시점에서 벌써 알이 빌런들의 손에 들어간다는 경우의 수는 상정하지 못했다.

게임 내에서는 대략적으로 이 시점이다, 하는 정도의 언급만이 나왔는데…….

그게 뭉뚱그려 지금 펜타곤의 1학기였다.

그래서 학기 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계속 경매장을 살폈는데…… 때마침 이수정이 사라진 시기와 경매장이 접근 제한을 건 시기가 같았던 것이다.

당연히 나로서는 펄쩍 뛸 수밖에 없는 일이었고, 그에 이수정은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헤으으응…….”

……물론 본인은 그걸 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전화를 들었다.

뚜우우.

조용한 방 안에 발신음이 울렸다.

그에 무슨 일인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던 이수정도 깨어나 나를 바라봤다.

물론 닥치고 짜져 있으라는 내 손짓에, 그저 찌그러졌지만…….

“여보세요?”

“아, 언냐야. 지금 길드 사무실에 있나여?”

“그렇지? 무슨 일 있어? 지금 펜타곤에 있을 시간 아니야? 원래 외부로 전화 못 하지 않나…….”

“밖에 나왔어여.”

“밖을 어떻게…… 너는 나올 수 있긴 하겠구나.”

수화기 너머로 납득했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지금 내 전화를 받는 것은 패스파인더에 새로 영입한 길드원들 중 한 명.

세검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히어로 랭킹 703위의 메이 린이었다.

부계가 중국 쪽이라 이름이 그러한 것이지, 실제로는 한국에서 나고 자란라 토종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이.

다만 그와 별개로 그 부친이 중국에 연이 많아, 그쪽으로도 발이 굉장히 넓었다.

실상 한국의 중국인 유학생들(물론 히어로들)이나 한국 길드 소속 중국인들과는 거의 다 아는 사이라고 해도 될 정도.

처음에 그녀를 영입할 때는 그런 요소들을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에서는 그 하나하나가 모두 내게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학교 밖으로 나오면서까지 연락을 한 이유는? 나 바빠 지금.”

“그 드라마 보는 건가여…….”

“어, 맞아. 이거 재밌더랑.”

메이 린은 최근 들어 길드 사무실에서 옛날 드라마를 보는데 맛 들여 있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 이를 테면 나츠키나 J. 그리고 내가 보고 있으니 친해지겠다는 일념으로 같이 붙어서 보던 것인데 이제는 아예 거기에 빠져 버린 모양이었다.

올해로 29살, 그 긴 시간 동안 영화나 드라마를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었나.

그녀를 보고 늦바람이 무섭다는 게 뭔지 실감하고 있었다.

“언냐야…… 이거는 드라마보다 훨씬 중요한 고애오…….”

“지금 백창수가 여주인공이랑 키스하려던 와중에 멈췄는데, 이거보다 중요하다고?”

키스신은 인정이지.

……가 아니라, 시발.

“중요하다니까여!”

“아으, 귀 아파. 얘는 목청이 왜 이렇게 좋아.”

에잉, 하며 마치 노인 같은 말투로 중얼거리는 메이 린.

그제야 나는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언냐야만 해 줄 수 있는 일이에여…… 물론 이거는 길드 일은 아니지만여…….”

“나만 할 수 있는 일? 그런 게…… 있긴 하니?”

메이 린은 잘 모르겠다는 듯 내게 되물었다.

확실히 그녀의 능력은 상당히 뛰어나긴 하지만, 길드 내 인원들 중에서조차 최고는 아니었다.

검선을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언냐야, 혹시 수마회라고 아는 고애오?”

“알지, 당연히…… 그건 나 아니라도 누구 물어봐도 알걸?”

메이 린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긴 하지.

딱히 그녀가 중국인 혼혈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한국인 누구에게나 물어봐도 절반 이상은 안다고 답할 정도로, 중국에서는 유명한 빌런 집단이었으니.

“혹시…… 거기 옵바 언냐야 들이랑 알아여?”

“뭐, 몇 다리 건너면…… 그럴수도 있겠지. 근데 내가 본토 쪽 일에는 관심이 없다 보니까 잘은 모르고.”

언뜻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히어로에게 빌런들을 아냐고 물어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도 메이 린도 딱히 그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빌런과 히어로가 서로 적대하는 관계가 아닌, 희한한 중국의 세력 구도 때문이었다.

“그러며는 언냐야…… 혹시 지금부터 븝미쟝이 말하는 것 좀 들어줄래여……?”

“일단…… 들어보고 그쪽이랑 뭐 문제 생긴 거야?”

“븝미쟝이 그런 거는 아니구여…… 일단 들어보는 고애오.”

어찌 됐건 그래도 꽤나 긍정적인 대답.

그래도 설득하는 데에 꽤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게는, 호재였다.

절대로 뺏길 수는 없지.

나는 노트북 화면 위에 떠오른 경매장의 [완료] 표시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제 편한 방법은 물 건너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려운 길을 택할 차례였다.

*    *    *

블랙마켓에서 구입한 물건은 어떤 방법으로 배송되는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가 자율적으로 합의하고 이행하는 것이었다.

그 정체가 노출되지 않도록, 판매자와 구매자에만 블랙마켓 내부에서 일대일 대화방을 열어 주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부는 물품을 블랙마켓 쪽에 위탁하고, 판매자 쪽에 배송하는 역할을 대행시키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 악룡의 알을 판매한 사람의 방식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아쉬운 일이었다.

일단 그 악룡의 알을 판매하는 이가 누구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유적 던전에서 우연히, 정말 운이 좋게도 알을 습득한 러시아의 중위권 수준 히어로.

만약에 그가 아직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당장 그를 찾아서 알을 강탈해 버리는 것이 최선책.

하지만 이미 악룡의 알은 블랙마켓의 손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므로 이제는 블랙마켓에서 알을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와와와…….”

하지만 그게 말이 쉽지, 실상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블랙마켓을 후원하는 빌런 집단, 혹은 빌런은 아니더라도 양지보단 음지에 가까운 단체들은 그 수가 굉장히 많고 또한 세계적이었다.

만약에 자칫 잘못 건드렸다간…… 이쪽이 박살이 난다.

그렇기에 아주 조심해서, 섬세하게 계획을 준비해야만 했다.

거기에 더해 아주 압도적인 힘 또한 필요했다.

“옵바야…….”

“지금 들려준 이야기들이 다 사실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검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자여. 븝미쟝은 거짓말 못 하는 고애오…….”

결국 나는 검선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되도록 그를 활용하는 일은 줄이고 싶지만…… 지금은 사안이 너무 중대했다.

방 한쪽에서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그의 여동생이 눈에 들어왔다.

폰으로 뭘 보는지 저 혼자 무슨 노래 가사를 따라부르고 있는 아이.

검선을 여타 일들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이유가 이것이었다.

물론 그가 위험에 처할 만한 일은 웬만해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계획에서도 검선보다 강자가 끼어들 만한 여지는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 외부에 노출되는 것 하나로도 검선은 위험했다.

지금 당장에 검선의 목에 내달린 척살령만 해도 여러 건일 테니까.

빌런들만 기백 명을 하룻밤 만에 갈아 버렸는데, 원한 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븝미쟝도 스스로 하고 시펐는데…… 힘든 고애오.”

나는 분명히 강하다.

이제는 그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신체 스탯이 5, 5, 5고 뭐고, 이제쯤 되면 그런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

물론 여타 일상생활에서 불편함이라든가, 그런 것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제대로 된 전투에서는 내 신체 스탯이 10, 10, 10 이건 5, 5, 5건 딱히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정상급이라는 건 아니었다.

당장 지금 이번 일이 끌어들인 또 다른 히어로, 메이 린만 하더라도 내가 단독으로 이기기가 힘든 사람이었다.

앞으로 1년.

그 뒤에는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건 그저 미래일 뿐,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옵바야는 길드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와주는 고애오.”

검선 같은 경우에는 엄밀히 이곳 건물의 세입자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스스로 동생을 낫게 해 준 은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마저도 당시에는 정당한 거래였고.

그러니까 그가 나를 도와줘야만 하는 이유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검선은 분명 움직여 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

검선은 자신의 동생을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내게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길드 인원들은 모두 동원하나?”

“아……니여? 다는 아니에여…… 오히려 몇 명 안 가는 고애오…….”

“그러면 돌봐 줄 사람은 있겠고. 그러면 상관없다. 같이 가도록 하지.”

돌봐 줄 사람은 있겠고.

그 대목에서 나는 실소를 할 수밖에는 없었다.

나름 한국 상위권 히어로라는 이들을 당연하다는 듯 보모로 고용하겠다는 저 태도에서.

물론 그럴 만한 급이 되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    *    *

러시아와 동아시아를 연결하는 항구.

블라디보스토크항.

그곳에는 커다란 선박 하나가 정박해 있었다.

대형 화물들을 잔뜩 옮겨 싣는 인부들의 모습과 그 주변의 경비병들을 제외하면 사뭇 평온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그 화물들의 정체를 알고 난다면 그 광경을 그런 식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합법적인 검수 과정을 모두 거쳤다는 화물들.

하지만 ‘검수’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그저 황당한 것이었다.

“여기, 목록입니다.”

출항하기 전 물품들을 검수하기 위해 온 이.

그는 선박 측에서 나온 관리자가 뽑은 목록들을 대충 살펴봤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함을 느낀 듯, 눈을 크게 떴다.

물론 그것은 선박에 들어찬 화물들 중에 이상한 품목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왜 이거밖에 안 넣었지?”

“이달에는 출항하는 선박이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음 달에는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쯧, 그래도 저번 달보다 줄어든 건 좀 그렇군. 일단은 넘어가지만…… 다음 달에도 이런 식이면 그냥 한 번 뒤집어 놓을 줄 알게.”

관리자가 준 물품 목록 사이에 숨겨져 있던 봉투.

그 속에 담긴 돈의 양이 평소보다 적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예. 다음에는 정말 신경 쓰겠습니다.”

“가 봐. 이만큼으로 해결해 주는 것도 나라서 가능한 거니까, 혹여 나중에 가서 헛소리라도 하는 날에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벌써 4년째 하고 있는 일인데…….”

“네놈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퉷, 땅에다 침을 뱉은 남자는 감독관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선박의 관리자는 그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다가, 들리지 않도록 욕설을 뇌까렸다.

“저 욕심만 그득한 돼지 새끼…… 얼마를 처받아 먹어야 만족하는 거야?”

그 또한 마찬가지로 가래침을 뱉었다.

물론 명백히 감독관이 사라진 방향으로.

블랙마켓에서 위탁된 물품들을 포함해, 여러 마약과 불법적인 무기들이 담겨 있는 선박.

관리자는 그곳에 올라타기 위해 천천히 걸어갔다.

“……우리도 지금 가야겠지?”

“뒤따라 가는 고애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있던 한 무리의 남녀들.

그들 또한 선박을 향해 움직였다.

“헤으응…… 븝골이 큐웅…… 하는 고애오…….”

이상야릇한 소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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