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이기는 팀 븝미 팀이에양!
창고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마회의 빌런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알을 빼앗겼다는 걸 눈치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장에 항구 전체에 보안이 뚫려 버렸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 왔고, 실제로 외부로 통하는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했으니까.
“이게 무슨 일이야?”
“조금 전에 항구 쪽에서 허가받지 않은 인원들이 파악되었답니다. 하필 저희 물품을 이송하던 배에서 하선한 것 같다는데…….”
“뭐? 그럼 당장 잡아 와야 할 거 아니야!”
“그게…… 행선지를 명확하게 모르겠답니다. 지금 게이트를 봉쇄하고 찾고 있긴한데…….”
“당장 같이 가서 찾아와! 지금 이러고 있을 때야?”
수마회의 이번 담당자인 라오 첸은 몸을 떨며, 부하들에게 역정을 냈다.
황급히 이곳저곳으로 사라지는 그들을 보면서도 그는 분노가 사라지지 않음에 심호흡을 했다.
‘제기랄! 왜 내가 담당일 때만 이런 일이…….’
그는 억울했다.
지금껏 항구의 보안이 뚫린 적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블랙마켓에서 배송하기에 알맞은 위치에 있는 수마회의 창고.
그것이 이곳 항구 근처에 숨어 있는지라 매번 이쪽 항구에서 물건을 수령했다.
그것이 벌써 10년째!
적어도 요 10년간은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부 담당 하위 빌런들을 제외하고는 간부들밖에는 모르는 사실이었으니까.
수마회의 비밀 창고가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도, 블랙마켓이 매번 이쪽으로 물품을 배송한다는 사실도.
‘만약에 악룡의 알이나…… 아니면 우리 쪽에서 시킨 여러 물품이 도난당했다면…….’
혹여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들 수마회에 피해가 없다면, 넘어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문책과 경고만을 받고 넘어갈 만한 사안.
하지만 그 물건들 중 어느 하나라도 사라졌다면 이미 목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라오 첸은 그에 황급히 달려갔다.
바로 블랙마켓에서 물건을 적재해놓은 그 선박으로.
“어이.”
하지만 그 움직임은 몇 초 뒤에 곧바로 멈추게 되었다.
의문의 목소리에 라오 첸은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분명히 ‘너는 누구냐’ 따위의 말을 하려고 했을 터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그럴 틈도 주지 않았다.
우드드득!
섬찟한 소리와 함께 라오 첸의 고개가 돌아가 버렸다.
그대로 즉사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
그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엎어져 고개를 처박았다.
“네가 그 빌런이렸다…… 들은 것과 똑같은 모습이군. 황갈색의 장발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 부하들은 다 다른 곳으로 보낸 모양이지?”
이어 목소리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엄청난 격통에 끊어질 듯한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던 라오 첸.
그는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정체를 알아봤다.
‘……검선?’
분명 일전에 먼곳에서나마 본 적이 있던 남자였다.
대략 4년 전, 그가 아직 수마회의 간부로 승급되기 이전.
한국 쪽에서 파견된 히어로들 중에 섞여 있던 검선이라는 별호를 쓰는 남자.
그날 그의 칼에 베여 죽어 나가는 빌런들의 모습을 라오 첸은 보았었다.
시간이 지나기는 한 것일까.
그 때보다 되려 젊어진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 그를 본 라오 첸은, 그저 상실감과 허탈함에 휩싸였다.
‘제기랄…… 이건 답도 없군.’
이번 일을 일으킨 주동자가 검선이라면, 이쪽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어떻게던 숨이 붙어 있는 상태인지라, 혹여 부하들이나 항구에 고용된 이들이 이쪽으로 온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검선이라면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리고도 남을 만한 강자였다.
최소한 수마회 고위 간부들은 불러와야 겨우 대적할 수 있을것이었다.
“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군…… 그냥 내 얘기나 듣는 편이 네놈한텐 훨씬 좋을 거다.”
그런 라오 첸을 바라보며, 검선은 한 걸음 한 걸음 그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그가 엎어져 있는 자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라이터를 꺼냈다.
핑.
지포 라이터에 불이 붙고, 느적하게 연초를 꺼내 든 검선이 그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시야를 어지러이 만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던 검선은 이어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맞거나, 동의하면 오른손을 들고 반대라면 왼손을 들어. 잘만 한다면 내가 단숨에 죽여 주지.”
단숨에 죽여 준다.
언뜻 듣는다면 말을 잘 들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라오 첸은 그 뜻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쪽 간부가 되기 이전, 그는 민간인이건 히어로건 고문을 하는 기술자 중 한 명이었으니까.
산 채로 포를 떠서 소금에 절인다든가, 끓는 물에 머리를 억지로 처박는다든가 하는…… 그런 것들을 실행하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렇기에 검선이 말하는 보상. 그 자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라오 첸은 순순히 오른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던 검선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좋아, 너희는 수마회 소속…… 근처 창고지기들이다. 맞나?”
검선이 어째서 그 사실을 아는가.
그것은 이제 라오 첸에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된 바에야 이번 일의 실행범이라면 그쯤은 알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턱.
슬쩍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오른손.
라오 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최대한의 움직임이었다.
“창고는 어디에 있지?”
‘그걸…… 내가 어떻게 대답하란 말이야?’
잘 나가다, 갑자기 주관식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 나오자 라오 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검선 또한 그 실수를 금방 눈치채고는 말을 정정했다.
“……그러고보니 대답을 못 하는군. 좋아, 너희 창고는 북쪽으로 3키로정도 떨어진 70층짜리 푸른 빌딩. 그곳에 있지?”
라오 첸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검선이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확신을 가졌다면 이런 심문조차도 할 일이 없었을 테니까.
'거짓을…… 말한다?'
지금 검선이 물어본 곳은 창고와는 꽤 거리가 있는 지역이었다.
만약에 여기서 오른손을 들어 맞다고 대답한다면, 검선은 그를 죽이고 곧바로 빌딩으로 이동할 것이었다.
원하는 편안한 죽음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수마회를 배신하지 않는 길.
하지만 라오 첸은 그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새끼들, 같이 죽어 봐라!’
하필 오늘 임무에 자신을 배당한 상부에 대한 분노.
그것이 알량한 의리보다는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난 가족도 없는 몸이다.’
만약에 다른 빌런들 같으면 할 수 없는 선택일 터다.
수마회를 배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그 가족들부터가 바로 위험에 처할 테니.
하지만 라오 첸은 날 때부터 고아인 몸이었다. 지킬 가족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왼손을 들었고, 이어 검선은 기다렸다는 듯 여러 장소를 불렀다.
‘……더럽게 많군.’
검선은 중간중간 미리 적어 놨던 리스트를 봐야만 했다.
다나가 불러 준 장소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번 일에서 그녀가 검선을 부른 이유는 바로 이 일 때문이었다.
근처에 있는 수마회의 창고를 알아내어 그곳을 부수는 것.
패스파인더 길드원들이 행한다면 그 흔적이 남을 가능성이 있지만, 검선이 움직인다면 문제가 없다는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어차피 검선은 현재 쫓기는 몸이었고, 그에 타국의 빌런 집단 하나가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무력으로는 국내 최강급의 강자인 검선을 어떻게 건드린다는 말인가.
은신처로 사용하고 있는 패스파인더의 건물 또한 다른 이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장소였으니, 애초에 찾아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한 일이었다.
“그럼…… 스카이타워. 거기가 맞다는 뜻인가?”
라오 첸의 오른손이 드디어 올라갔을 때.
검선은 단번에 그의 숨을 끊었다.
축 늘어지며 그대로 절명하는 라오 첸.
그 모습을 바라보며, 검선은 고개를 저었다.
“……상종하기는 싫은 부류군.”
분명 다른 이가 아닌 라오 첸이었던지라 일이 쉬웠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충성이나 의리 따위는 찾아볼수도 없는 모습.
물론 그 또한 일찍이 여동생을 위해 협회를 배신했던 적이 있었으므로, 어찌보면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마찬가지였지만…… 그럼에도 검선은 그를 혐오했다.
쓰으읍.
연초가 다 탈 때까지, 잠시 자리에서 기다리던 검선은 이윽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이어 아스라히 보이는 까마득히 높은 거대한 건물.
그곳으로 곧바로 달려 나갔다.
* * *
“그러케 된 고애오…….”
“그러니까 지금 검선님……이 혼자 가셨다고?”
“그러면 어떻게 해.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 하나?”
“아니에여. 우리는 먼저 가야 하는 고애오.”
나는 길드원들에게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검선이 차에 타지 않은 이유와 왜 하필 그만 따로 행동했어야 했는지까지도.
그에 대해 다들 납득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불편해했다.
“좀, 그러네. 우리는 바로 귀국하는데.”
“어쩔 수 없지. 수마회 쪽에 들키면 길드 자체가 풍비박산이 날 텐데.”
수마회는 이번 일로 굉장히 분노할것이었다.
블랙마켓의 물품들을 도난당한 것도 모자라서, 비밀 창고까지 불에 탈 것이었으니.
그 외에 크게 중요한 인력들은 아니더라도 빌런들까지 일부 목숨을 잃을것이었다.
중국 내에서 세력 다툼을 하고 있는 다른 빌런 집단이 공격을 가했을때나 얻을 만한 피해.
만약에 그 정체가 우리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곧바로 국내에 숨어 있는 수마회의 인원들과 합쳐 본토의 빌런들을 대동해 우리 길드원들을 척살하려고 할 것이었다.
그건 솔직히 말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길드하우스에 24시간 박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나같이 암살에 특히 취약한 이들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었다.
“옵바야밖에 맡길 사람이 없었어여…….”
“아니, 널 탓하는 건 아니지. 당연히. 다나, 우리 안전부터 생각해서 한 일이니까. 그런데 조금……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부끄러워서.”
하지만 검선은 어떠한가.
그는 그런 암살 따위에 굴할 인물도 아니었다.
게다가 혼자서 깽판을 친다면, 다수 인원이 투입되는 것보다 그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훨씬 적기도 했다.
여러모로 이번 일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번 일만 원하는 대로 된다면.
나는 제발 모든 일들이 잘 굴러가기를 빌었다.
“옵바야들…… 제발 싸워 주는 고애오…….”
내가 준비해 놓은 안배.
그것에 제대로 걸려든다면, 이이제이.
빌런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입는 피해를 막는 것은 또한 나와 길드원들이 다시금 행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