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중국 최고층 빌딩 중 하나인 스카이빌딩.
그곳이 습격당했다는 보도가 뉴스를 통해 들려왔다.
테러를 통해 빌딩이 무너진다거나 하는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22층에 있던 사무실과 그곳에 보관되고 있던 물건 전부가 파손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소식.
그것을 들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빌런들에게 분개했다.
표면적으로 그 22층을 소유하고 있던 것은 ‘히어로’들이었으니까.
“표면적으로는 말이지…… 거기, 왕 쳉의 소유지?”
“명의상으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이번에 그 위치가 밝혀진 셈이죠.”
“속 좀 쓰리겠구만. 아무래도 꽤나 신경 써서 지키고 있던 모양인데 말이야…… 혹시 그 이클립스…… 그것도 거기 있었나?”
이클립스.
7년 전, 브라질의 한 던전에서 발견된 마창.
사용자가 평범한 이능력자일지라도 절대적인 힘을 얻게 된다고 알려진 물건.
지금 세간에서야 행방이 묘연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 암암리에 수마회의 수장인 왕 쳉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니…….”
“아니야, 범인이 가져갔을 수도 있을 것 아닌가.”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겠군요. 그럼 이번 일은 그걸 노린 거라고 봐야 할까요?”
“이유야 그 본인만 알겠지.”
또 다른 중국 4대 빌런 집단 중 하나인 팔색회의 장.
그는 턱을 괸 채 펜대를 만지작거렸다.
이번 일을 벌인 놈들이 누구일까…… 수마회를 적극 견제하고 있던 다른 빌런들일까, 아니면 정부 측일까…….
“왕 쳉이 우리를 의심할 수도 있겠군.”
“……네, 사실 이미 공문이 날아왔습니다. 공문이라기보단…… 협박문에 가까운 것이지만요.”
“협박문이라. 이 시점에서 그렇게 행동해서 좋을 리가 없단 사실은 알고 있을 텐데…… 그만큼 중요한 물건이 있었던 건가?”
“예, 아무래도.”
정말로 이클립스를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이유가 있던 것인지.
그것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이번 일에서 보인 수마회의 태도에 대해서 모두들 문제를 제기할 것이란 사실이었다.
‘신중하지 않으면 죽을 거다.’
팔색회의 수장은, 한때 왕 쳉과 함께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간의 상념일 뿐.
그는 곧바로 수마회가 걷게 될 몰락의 길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 * *
중국에서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작전.
그것이 끝난 뒤, 길드원들은 각자 휴식을 취했다.
애초에 나부터가 너무 힘들기도 했고, 또 미안했던 탓에 따로 상여금까지 잔뜩 쥐여 주며 휴가 다녀오라고 배려해 주었다.
그에 이번 작전에서 배제되었던 길드원들은 어리둥절해했다.
물론 대부분은 내가 자세한 내막을 말해 주기 이전에도 무언가 일이 있었구나 하고 스스로 납득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아니, 왜 난 안 줘? 나는 왜?!”
“언냐야…… 언냐야는 이번에 안 갔자나여…….”
예를 들면…… 이 은발 적안의 미친년이라던가.
요즘 들어 좀 유순해진 것 같더니, 또 자기가 이 구역의 최강 미친년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지랄을 시작한다.
그걸 잠재우기 위해, 대략적인 내막을 알려 주었더니 이번에는 다른 걸로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면 나는 왜 안 데리고 갔는데? 아하, 나 같은 건 쓸모도 없다 이거야? 진짜 어이가 없어 가지고. 그러려면 나 길드에는 왜 불러들인 건데?”
“언냐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여…….”
나는 쭈굴 대면서, 겉으로는 그 말을 부정했다.
하지만 내심 ‘쓸모도 없다’라는 단락에서는 일부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리아와 나츠키 혹은 신하연.
J……는 조금 예외로 두더라도.
이번에 새로 영입한 1학년 생도들까지.
아카데미에서 재학 중인 길드원들은 당장 쓸모를 보고 영입한 것이 아니었다.
근 일이 년 내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이들을 모은 것이었기에,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것이었다.
당연히 당장에야 6~700위권의 다른 길드원들이 훨씬 강한 것이 당연했다.
말이 600등, 700등이지 다른 대형길드에 가도 충분히 1군 주력 멤버로 기용될 만한 인재들이니까.
이번 작전에서 기용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어떤 팀을 만들 때는 무조건 수준이 맞는 이들로 짜야만 했다.
만약에 구멍이 생긴다면 그 하나 때문에 전체적인 파티의 질이 떨어지니까.
물론 이런 말들을 대놓고 했다가는, 안 그래도 자존심 강한 나츠키가 발작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웃으면서 그녀를 살살 달랬다.
“언냐야, 왜 그래여…… 조오는 언냐야 다칠까 바 그런 거져…….”
“뭘 다칠까 봐야. 그게 더 짜증 난다니까? 본가에서도 항상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서 핑계 대고 그랬었는데…… 으흑? 뭐 하는 거야?”
“하와와…… 그만 화 푸는 고애오.”
나는 나츠키의 팔뚝을 슬쩍 찔렀다.
그러자 마치 전기라도 탄 듯, 파르르 떨며 반응을 해 대었다.
“앗, 잠깐만. 진짜…… 으으흣!”
얘가 왜 난리지.
나는 잠시간 나츠키의 이상 반응에 대해 의아해했다.
“호에에.”
그리고 이어 떠오르는 편린 하나.
약성에 어느 정도 면역이 생긴 후로, 도핑의 양을 줄이긴 했지만, 나츠키는 여전히 영약을 계속 섭취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영약 중에서는 약성이 도는 동안 신체 일부분의 감도가 굉장히 민감해지는 것도 있었다.
그게…… 팔뚝이냐?
나는 연달아 나츠키를 쿡쿡 찔러보았다.
그때마다 파들거리면서 손사래를 치는 모습에,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퍼져 나갔다.
“아항, 안 돼, 다나. 그마내…… 하아아앙!”
“언냐야, 화 풀 고애오?”
“그래, 그러니까 제발…… 으흐윽?”
재미가 들린 나는 한동안 나츠키를 계속해서 괴롭혔고, 그것은 위층에서 검선이 내려올 때까지 지속되었다.
“……미아내여.”
나는 곧바로 그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정서상 어린아이한테 별로 좋지 않은 소리가 났음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 * *
이번 일에 대한 수확.
그것을 세 번째로 크게 얻은 것은 다름 아닌 강훈이었다.
“내 생애 최고의 행운이야, 이게. 어쩐지 이놈이 나를 막 안아 주세요, 하고 소리를 치더라니까?”
“지랄, 정신병원에나 가 봐라.”
강훈의 자랑질과 주접에 질린 길드의 원거리 사수, 송유진(899위)이 질색을 했다.
이번 선박에서 있었던 이른바 약탈질…… 그곳에서 얻은 강훈의 방패가 감정 결과 유물들 중에서도 중급 이상이라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출처를 숨기느라 무진 애를 먹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돈을 뿌려 가며 힘을 쓴 끝에 그것은 온전히 강훈의 소유가 되었다.
“저게…… 그런 물건이라니까. 어이가 없네.”
“뭐, 그쪽에서도 우리 역사 속 장군들은 잘 모를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인 거겠지.”
강훈의 그 모습을 보고 은근히 배 아파하는 길드원들.
정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동슬라브족의 지휘관이 쓰던 방패라는데, 외관으로 봤을 때는 어디 철물점에다가 내다 버려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내 눈도 어디다 내다 버려야겠고.
처음에 저걸 봤을 때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내가 미웠다.
물론 내가 먼저 주웠어도 강훈한테 지급이야 했겠지만, 그걸 빌미로 길드에다가 수수료를 더 많이 바치게 할 수 있었는데.
은근히 하는 짓이 밉살스러워서 저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자면 배알이 뒤틀렸다.
“……이거, 좋군.”
수확을 두 번째로 크게 얻은 사람은 검선이었다.
사실 검선은 순수하게 검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검으로 극의에 올랐고, 주무장이 검이라 그런 것일 뿐.
그 칭호를 얻은 지 수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는 그의 손에 쥐여 있는 무기가 어떤 것이건 크게 상관이 없었다.
물론 본인도 검을 가장 애호하기는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것이 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옵바야…… 부수면 안 대여…….”
“살살하지.”
살살하겠다면서, 저 입가에 미소는 무슨 뜻일까.
나는 수련장의 강화된 격벽에 잔뜩 나 있는 상처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번 수마회의 일에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수장인 왕 쳉의 애병인 이클립스였다.
여러 가지 이능을 사용할 수도 있고, 그 창 자체의 성능도 굉장히 뛰어난 물건.
그것을 지금 검선이 들고 있었다.
콰앙!
딱히 마력의 파동을 날려 보낸 것도 아니었다.
흔히 오러라 부르는 그것 말이다.
단지 일반적으로 근접계 각성자들이 싸울 때 행하듯 마력을 담아 창을 단순히 휘두르고 찔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파가 자연히 발생되어 격벽에 거대한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진짜 뼈도 못 추리겠는데.
안 그래도 강한 사람이 사기급 무기까지 갖추니, 과연 대적할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하와와와…….”
나는 수련실의 문을 닫고 나왔다.
저걸 계속 봐봤자 내 배만 살살 아파 올 뿐이었다.
“억울한 고애오…….”
분명, 수확이 가장 큰 것은 나였다.
그 입수난이도와 강력함으로만 치자면, 내가 원래 목표했던 이 악룡의 알이 가장 월등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봤자 무슨 소용인가.
내가 다룰 것도 아니고, 폐기시켜야 하는 물건인데.
처음에 든 생각은 어떻게 내가 이용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례로 기본적으로 그 성질이 악하다고 알려진 자이언트 스네이크, 드라쿤 같은 생물들도 그 알을 성력으로 축복한다거나 하는 과정을 거치면 길들일 수 있다.
다만 곧바로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크닐 나는 고애오…….”
하지만 악룡 같은 경우에는 그딴 게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마회도 그딴 생각을 하다가 박살이 났으니까.
물론 지금도 조만간 비슷한 꼴을 당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원작에서 말이다.
오만하게 악룡을 테이밍하려던 대가를 길드 건물에 직격으로 작렬한 브레스 한 방으로 모두 갚아 버렸다.
뭐, 어쨌건 내가 소유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닌, 정말로 참사를 막기 위해 획득한 물건이다 보니…….
이런 생각을 지금에서야 하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닫는 것도 금방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난제.
“……이거 어떻게 부수나여?”
나는 눈앞에 놓인 알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며칠간 이 알을 부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처음에는 간단히 다른 용종의 알을 부수듯 부숴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충격을 가해도 알은 부서지지 않았다.
심지어 메카닉까지 동원해서 밟아보고, 후려쳐 봐도 그저 멀쩡했다.
방금 수련실에 갔다 온 것도 사실 그것 때문이었다.
검선이라면 부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검선이 전력으로 알을 공격했음에도, 여전히 알은 멀쩡했다.
무슨 껍질을 오리하르콘으로 만들었나.
나는 한탄할 수밖에는 없었다.
“어떡하져…….”
수마회처럼 마력석을 갖다가 흡수시킨다거나 하는 염병만 하지 않으면, 이 알의 부화시기는 후년쯤 될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에 재앙이 발생한다는 점은 똑같은 것 아닌가!
“모르게써여…… 이거는.”
적어도, 이건 인간의 지식으로는 답이 없었다.
그렇기에 수천 년간 이능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살아 온, 다른 종족의 지식을 빌려야만 했다.
그중에서 나를 허튼 생각 없이 도와줄 만한 이들…….
심지어는 그 용종을 자신들의 영물로 섬기고 있는 종족.
“아가야, 오랜만에 나가는 고애오.”
꾸웅……!
나는 곧장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악룡의 알을 든 채, 요정용을 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