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49화 (149/172)

#149화. 븝박해결이애오!

장로들의 회의는 정확히 3시간 하고도 30분가량이 더 흘러서야 끝났다.

나는 그것이 끝나자마자 그들에게 곧바로 달려갔고, 장로들은 급작스러운 방문에도 굉장히 반색하며 나를 맞이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악룡의 알을 꺼내기 전까지는.

꿀꺽.

겨우 대여섯 정도 들어올 만한 나무로 만들어진 비좁은 공간.

옆 사람이 침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오는 이곳이 오로지 조용하다.

“이게…… 그러니까, 그 알이란 말입니까?”

엘프 장로들 중 가장 큰 권한을 가진 대장로.

침묵을 깨고 입을 연 것은 바로 그였다.

“마자여. 확실한 고애오!”

“허어…… 어찌하여 이곳에까지. 250년 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군요…….”

250년전이면 도대체 언제야?

엘프들이 이주하기도 한참 전이니, 나로서는 그 배경을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게임 상에서 스토리 외전격으로나 넣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은, 내게 있어서 쥐약과도 같은 부분이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해결한 일들은 그 게임 속 지식들도 단단히 한몫했으니.

이번에는 그것이 통하지 않아, 이렇게 물어보러 온 것이기도 하고.

“그래서여…… 이거 어케하는 고애오? 븝미쟝은 모르겟소요!”

“말씀드리기에 참 민망한 이야기이기는 하나…… 사실 저희도 잘 모릅니다.”

“호에에?”

몰라?

아니, 이미 앞에 겪은 적이 있다면서.

어떻게든 해결을 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아닌가?

“결국에 저희는 부화를 막지 못했으니까요. 당시에 대륙 절정의 고수로 불리던 이들이 겨우 악룡을 처치하여……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참 대단했죠…… 하고 중얼거리는 장로의 모습을 보며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에는 지금 답이 없다는 거 아니야?

당연히 이쪽에서도 악룡이 부활한다면 막아 낼 수야 있다.

스토리상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엘프나 드워프…… 혹은 수인들이 이주하기 이전의 그 대륙과 현재 지구의 전력차는 크지 않은 것 같았으니까.

실제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기는 해도 막아 내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싫은 것이었다.

물론 무고한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것이 싫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미래에 전력이 될 이들이 죽어 버린다면 내 주변의 이들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차라리 히어로가 아니라 일반인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를 수도 있었으나, 이곳에 와서 맺은 모든 인연은 대부분 히어로들이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내 눈으로 보기에는 그저 미친 사람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알을 어떻게든 파괴하거나 봉인하는 방책이 필요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업서여……?”

엘프 장로들은 내 사도라는 신분(물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지만)을 제하고도, 이 외모에서부터 굉장히 약했다.

엘프들의 생애는 육체적으로 그 기능이 절정일 시기, 그러니까 20대 초반 정도까지는 인간들과 동일한 속도로 성장하다가 후에 그 외모 그대로 오랜 기간을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볼 때마다 어린 엘프가 생각난다나.

그럼 다른 인간들을 볼 때도 그런 감상을 느끼냐…… 하고 물어봤더니 돌아온 대답이 굉장히 냉정했다.

혹, 사도께서는 어린 망아지를 보고 인간 아기를 볼 때와 동일한 감정을 느끼십니까?

그러니까 그들 시선으로는 인간종이 대충 그런 느낌이란거겠지.

‘각성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 그쪽 대륙에서 인간들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고 하니, 그런 인식이 자리 잡을 만도 하다.

지구에서야 한반도의 절반만을 사용하는 작은 나라, 개중에서도 구석에 짱박혀 있는 처지지만…….

“……한 가지, 있긴 합니다.”

대장로는 한동안 계속 침음을 흘리다가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

그리고는 이어 주변의 다른 장로들을 모아 잠시간 머리를 맞대었다.

그 소리가 꽤나 컸음에도,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왜냐면…… 저들만 아는 언어로 말했으니까.

대륙 공용어랬나? 지구에서 태어난 엘프들은 아예 모르기도 한다는 그 언어였다.

“모애오! 븝미쟝 왕따시키는 건가여?”

“아, 아닙니다. 잠시 동의를 구해야 할 것이 있던지라.”

대장로는 내 목소리 설설 기며, 이어 무엇을 합의했는지.

그리고 그 떠올린 방책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거를…… 다여?”

“네, 그렇습니다!”

어때,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대장로.

그 의기양양한 태도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그들이 말한 그 방책이란…… 결국에는 내가 거의 모든 것을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븝빠지게 해야 하는 고애오!”

븝빠지게…….

*    *    *

엘프들의 마을 구석에 위치한 한 나무집.

애초에 집이라는 공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엘프들인만큼, 몇 없는 이런 공간들은 굉장히 중요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장로들의 개인실이라든가, 혹은 회의장 내지는 정령들의 쉼터 등등…….

일반적인 이들의 사유 공간으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나무집을 만든다고 해도, 나무를 베어 판자를 만든다든가 하는 방법을 일절 쓰지 않는 엘프들이지만…….

성장 촉진 마법과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도 순리에 거스른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법칙을 깨고 오롯이 개인적인 공간으로서 마련된 이곳.

장로가 아닌 이로서는 굉장히 예외적으로 인정받은 사유지 안에 두 엘프가 들어가 있었다.

렐과 세리아.

조금 전 다나가 장로들에게 가기 이전, 함께 있던 엘프들이었다.

“흐응…… 흥…….”

개중 렐은 무언가 신이 난 듯, 콧노래를 부르며 세리아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세리아의 특이한 연초록색 머리칼이 나풀거리며 점점 헝클어졌다.

평소 그리 온건하지는 않은 세리아의 성격상, 분명 화를 냈을 법한 상황이지만. 그녀는 그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세리아, 참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나는 분명히…… 그렇게 설계하지 않았는데.”

“…….”

뜻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는 렐, 세리아는 그에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다.

머리를 다 정돈한(실제 헝클어뜨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렐은, 세리아의 앞으로 돌아가 얼굴을 마주 보았다.

평소에도 그리 생기 있는 눈은 아니었지만, 멍하게 세리아의 동공.

그 흐리멍덩한 눈은 일견 소름이 돋을 법도 했다.

분명 살아 있음이 분명한데, 눈은 사자(死者)의 것을 하고 있었으니.

렐은 그 모습을 보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질적인 광경에 두려웠음일까?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반응을 보자면 그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너무 귀여워 세리아…….”

렐은 그녀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더니, 턱을 잡아 세리아의 고개를 들었다.

약간 벌려져 있던 그녀의 입이 닫히더니 이어 눈꺼풀이 슬쩍 내려갔다.

아까 전 참느라 고생했던 파괴적인 욕구가 온몸을 지배하는 듯했다.

그녀는 당장에라도 그 욕구를 실현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어야만 했다.

대신 혀를 내밀어 세리아의 귓불을 슬쩍 핥았다.

스릅…… 하는 소리에 세리아의 비었던 동공이 슬며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이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하며 한발 물러서는 렐.

그와 동시에 세리아의 의식이 온전히 돌아온다.

“으……응?”

마치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하품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세리아.

렐은 그녀를 보며 한쪽 입술을 슬쩍 밀어 올렸다.

“일어났어요, 세리아?”

“어, 어? 렐……?”

의식은 되찾았으나, 아직 몽중에 있는 듯 두리번거리며 눈 앞의 렐을 찾는 세리아.

렐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정신을 되찾도록 도와주었다.

“여기 있어요. 잠은 잘 잤나요?”

“어…… 내가 잠이 들었어?”

“많이 피곤했나 보더군요. 기억에 없으신가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자는 걸 여기까지 옮겼는데.”

“아, 아……? 으으으…….”

확, 하고 붉어지는 세리아의 얼굴.

아무래도 많이 민망했던지, 목덜미에까지 불이 난 듯 붉어지는 그녀의 안면을 렐은 웃으면서 바라봤다.

'정말, 귀엽다니까요…….'

마치 목각인형처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던 모습의 세리아.

그 모습을 다시금 회상하자니 온몸이 떨려 오는 듯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모습이 그것이 아닐까.

렐은 그녀 이전의 몇몇 엘프들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렐은 대강 그것을 가늠해 봤다.

“일 년…… 정도일까요.”

“어, 뭐라고 했어?”

“아니에요, 세리아. 잘 잤으면 이제 밖으로 나가죠. 사인 장로님께서 저랑 세리아를 이상하게 보던데, 가서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일단 아파서 쓰러졌다고 둘러댔거든요. 장로님이 직접 돌봐 주시겠다는 걸 겨우 말렸어요.”

“……고마워.”

기면증도 아니고, 필름까지 끊겨 가며 잠이 들었다고 말하기는 역시 그랬겠지.

세리아는 순간 렐이 떠올린 지혜에 감사하며, 집 밖으로 나갔다.

*    *    *

“언냐야? 업서서 찾았자나여.”

“아, 미안…… 그…… 조금 아파서?”

“아팠어여? 어디가여!”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픈 건 아니었는데. 아픈 게 맞나? 아니 맞긴 한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횡설수설하며 어지러이 손을 파닥거리는 세리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 잠시간 의아해하는데, 뒤에서 예의 그 나와 닮은 엘프가 다가왔다.

“잠시 아프긴 했죠. 그래도 지금은 멀쩡해졌어요.”

“아, 맞아. 렐이 돌봐 줘서 금세 나았어…… 응, 그랬지.”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하는 세리아.

후후, 하고 특유의 여유로운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 렐이라는 엘프.

나는 그녀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거, 뭔가 좀 이상하단 말이야.

아까 께름칙하던 그 표정도 그렇고.

내가 히어로 판타지를 허투루 한 게 아니거든.

게임 플레이 당시에도, 대강 내가 삘이 꽂힌다 싶으면 대부분 나쁜 연놈들이었다.

물론 그 적중률이 100퍼센트는 아니었던지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스토리에서라도 나온 인물이었다면 그러려니 할 텐데.

세리아도 저 엘프도 원래 게임 스토리에는 나오지 않은 이들이다 보니 뭐라고 판단하기가 애매했다.

……모르겠네.

그저 포커페이스를 취하고 있는 렐.

대놓고 나 수상합니다, 하고 티를 내고 있지만, 정작 꼬투리를 잡을만한 구석은 없었다.

마기나 악기가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 빌런들이나 재앙들 특유의 오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직감뿐, 그것만으로 의심하기에는 근거가 너무나 부족했다.

지금 당장에는 이쪽 일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고.

―아가야.

나는 슬쩍,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었다.

그리고 녀석을 은밀하게 렐의 곁에 붙여 놓았다.

아까 확인했을 때 그녀의 정령술 수준은 나보다 한 단계 아래였다.

그 서열 관계가 명확한 정령들이니, 아마 바람 녀석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겠지.

잘 감시하고 있어.

나는 그렇게 명령을 내려 두었다.

시스템을 통해 얻은 정령술과 관련된 특성.

그 덕분에 이런 특수한 잠행 같은 경우에는, 녀석과 내 거리가 멀리 떨어지더라도 마력 소모가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렇게까지 해 뒀는데 큰 문제는 생기지 않겠지.

나는 손을 탁탁 털며, 세리아와 렐에게 인사를 한 뒤 그대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이제부터 얼마간은 정신없이 바쁠 예정이었으니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