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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50화 (150/172)

#150화. 하와와한 아조시들이에여

검선은 귀국 후에도 행동을 조심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여 중국 쪽에서 뒤를 밟혔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단지 개인 대 개인의 문제였다면, 검선은 이렇게 조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 무술(武術)의 천하제일인이라고 손꼽히는 샤오 밍조차 그는 이길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집단으로서의 중국은 그로서도 벅찬 상대였다.

일전에 있었던 전투에서 그 무서움을 몸소 경험해 보기도 했다.

4 대 1, 5 대 1……  후에는 거의 10대 1까지 늘어난 전력 차.

결국, 그 불리함을 이겨 내고 전선을 밀어내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검선의 기억 속에는 그들의 존재가 명확하게 박히게 되었다.

그렇기에 거의 길드 내에서만 생활했다.

본래는 여동생과 시간을 보내다가, 동생이 외출하고 싶다면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지금에서야 그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나가려면 혼자 나가는 편이 옳았으니까.

“오빠, 나 친구들 만나고 싶은데…….”

“지금은 안 돼. 미안.”

그는 칭얼거리는 동생을 달래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정규교육을 밟는 것이 힘든 동생의 상황상, 방금 말한 ‘친구들’이란 근처 주거 단지에 사는 아이들을 말하는 것일 터였다.

오래간 보지 않으면 다시 사이가 멀어질 아이들.

그것을 물론 알고는 있었지만, 안전에 대한 문제보다는 사소한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

“치이.”

“조심해, 현아야.”

입을 삐죽 내밀면서 검선보다 빨리 층계를 뛰어 내려가는 동생에게 다급히 소리쳤지만, 이어 그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풋.”

이미 너무나도 건강해진 모습.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발달이 빠를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러할 것이었다.

'현아도 각성하겠지.'

양친이 모두 히어로였기에 그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성자들은 모두 그 이전에도 비범한 능력들을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모계 쪽도 부계 쪽도, 심지어는 검선마저도 육체 관련 특성을 지니고 있었으니 아마 여동생 또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제는 딱히 지켜줘야만 하는 여린 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언니이이이.”

“어, 왔어? 이리 와!”

검선이 층계를 모두 내려왔을 때는 흑발의 한 여성이 여동생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메이……린이었나.

아까까지 중국인들을 그렇게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싶어 웃음이 삐져나왔다.

“어, 안녕하세요.”

그녀 쪽에서도 검선을 보고는, 곧바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패스파인더 길드원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는 보통 이러했다.

처음에는 협회와 히어로 사회에 공표된 내용만 듣고 적대감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으나, 여동생과 관련된 사정을 듣고는 모두 이해해 주었다.

최근에 있었던 중국에서의 일 또한 그에 대한 인식을 좋게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여타 그러한 것들을 모두 제하고서라도, 그 경지만 봐도 존경할만한 사람이기는 했다.

검선은 그 인사에 가볍게 응대하며 지나쳐 갔다.

그러고는 동생의 곁으로 가 앉았다.

“…….”

“…….”

“우아앙.”

처음의 그 분위기는 사라진 채,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메이 린으로서는 검선에게 섣불리 말을 걸기가 뭐했고, 검선은 딱히 입을 열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결국 어색함을 이기지 못한 메이 린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다.

이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오강우…… 아, 아! 실수에요 죄송해요.”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메이 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오강우라는 이름은 검선의 본명이었다.

‘미친년아!’

일전에 히어로 사회에서 떠돈 소문 중 하나가 검선을 본명으로 부르면 제명에 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관절차를 밟을 때 본명을 말해야 함에도 별호인 검선으로 부르는 것이라고.

그 소문에 대해 너무나도 익히 들어온 메이 린이었기에, 조금 전 일에 대해 수많은 자책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도대체 왜 갑자기 그게 번뜩 떠올라선 입에서 튀어나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죽었다…….'

싸하게 가라앉은 검선의 표정을 보고, 메이 린은 마음속으로 절망에 빠졌다.

저건 분명히 화가 난 것일 터였다.

평소에도…… 저런 표정이야 자주 짓고 다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검선은 별생각이 없었다.

되려 조금 생경한 기분에 휩싸였다.

‘이름으로 불려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어느 시점부터, 단순 무력으로서는 국내 최강이라는 평가가 뒤따르면서.

그는 본명으로 불려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경외를 담은 것인지, 아니면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소문 탓인지.

물론 그것에 대해 딱히 불만은 없었기에 딱히 바로잡고자 하지도 않았다.

“내가 네 친구냐?”

“네, 네?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요…… 정말 저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입에서 뭔가 뱉었는데…….”

“농담이에요.”

“……?”

불호령이 떨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이던 메이 린.

그녀는 ‘농담’이라는 말을 잠시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검선을 바라봤다.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 어차피 나이도 별로 차이 안 나는데.”

“아, 아? 그런가요?”

“네, 저희 두 살밖에 차이 안 나요.”

메이 린은 순간 머릿속으로 셈을 하고 나서야,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면식으로만 보자면 두 살 많은 게 아니라, 어리다고 해도 믿겠지만…… 평소 이미지가 있던지라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저희 현아 잘 놀아 주셔서 고마워요. 가끔 린 씨 얘기하더라고요.”

“아, 아니에요. 오히려 현아가 저랑 놀아 주는 거죠…….”

평소에 듣던 딱딱한 말투가 아닌, 일상적인 말투로 이어지는 대화.

메이 린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도 계속 이어진 대화.

검선으로서는 진심으로 길드 사람들에 대한 감사가 있었고, 메이 린으로서는 검의 길에서 최고에 오른 사람이었으므로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이 이어져, 어느새 순식간에 친밀해진 두 사람.

그에서 대화 주제가 점점 여타 다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으로 좁혀지던 때.

“그러니까, 제가 그때 뭐를 했었…….”

“븝하!”

급작스럽게 난입한 불청객 하나.

그 때문에 대화가 끊기고 말았다.

“옵바 언냐야 들 모 하고 잇섯서여?”

천진하게 물어보는 다나.

그에 어느새 감정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가까워져 있던 둘의 거리가 슬쩍 벌어졌다.

“크흠.”

“아, 으흥.”

*    *    *

길드로 돌아오자마자 본 광경은 꽤나 이질적인 것이었다.

뭔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지, 해맑은 표정으로 떠들고 있던 메이 린 그리고 그것을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미소로 화답하고 있던 검선.

둘이 뭐라도 있는 건가? 그런 생각에 둘을 훑어봤지만, 딱히 그런 느낌은 없는 것도 같았다.

뭐, 서로 친하게 지내면 좋지.

검선도 이제는 이곳 길드에서 꽤나 오래간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니까.

가입까지 해주면 참 좋겠지만…… 그걸 굳이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잘댔네여! 언냐 옵바야, 둘 중에 한 명 저랑 같이 가야 하는 고애오...”

“같이? 어디를?”

아까까지 무언가 약간 원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메이 린.

그녀는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였다.

저번 일도 있고 하니, 또 자기 도움이 필요한가 싶은 거겠지.

물론 이번에는 딱히 콕 집어서 메이 린이 해결해 줘야 할 일이 아니었다.

“강릉이여. 거기 있는 하와와한 아조시들을 만나야 하는 고애오…….”

“하와와한 아저씨……?”

도대체 두 단어 사이에 무슨 연결 고리가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는 듯.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메이 린.

하지만 검선은 강릉이라는 단어만 듣고 대략적인 내용을 유추해 낸 모양이었다.

“드워프인가?”

“마자여, 옵바야!”

땅딸보라느니 하는 멸칭으로 자주 불리는 드워프들.

그들은 지구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종족들 중 하나였다.

첫째가 뱀파이어같은, 인간과 공생하지 못하는 종족이라고 하면 둘째가 바로 드워프들이었다.

기본적으로 장인들이 대대로 배출되는 종족인지라, 환영받지 못할 이유가 있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말하자면 굉장한 꼰대였다.

거기에다가…… 종족차별주의자이기도 했다.

“가서 딱히 좋을 일이 없을 텐데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옵바야는 못 가겠네여.”

순간 떠오르는 검선의 살벌한 표정.

그것은 드워프와 관련된 어떤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오는 것이었다.

과거 그는 드워프들의 마을에서 깽판을 친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겨우겨우 마음에 드는 검을 얻겠다고 요구하는 재료를 다 구해 왔더니 드워프들이 퇴짜를 놓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분노한 검선에 의해 마을 기물들이 박살이 나고 난 후에야, 검을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실상 마을에는 출입금지 조치가 떨어진 상태였다.

“어차피 별반 다른 대장장이들과 차이도 없는 녀석들인데 말이야…… 따지자면 여기 길드 대장장이들이 더 뛰어 날수도 있을 테고.”

“호에에에.”

만약에 드워프들이 듣는다면 펄쩍 뛸 만한 이야기였으나, 전자는 모르더라도 후자의 이야기는 나 또한 공감했다.

수많은 발전을 거듭한 라이카와 김수혁의 물건들은 드워프제보다 결코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애초에 이번에 이클립스를 얻기 이전까지 사용하던 검.

그것이 바로 드워프들이 만든 검이었으니, 검선의 그 비교가 꽤나 정확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갠차나여 옵바야. 저도 알고 있서여…….”

물론 나는 검선의 이런 이야기에 대해 동의함에도, 생각을 접지 않았다.

드워프들의 마을에 가는 이유는 무기를 의뢰하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

악룡의 알을 봉인할 첫 번째 요소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러면 언냐야가 따라오는 고애오!”

“내……가?

“기에 언냐야 말고 언냐야가 더 어딧서여? 다 나가구 없잖아여. 언냐야만 지금 백수인 고애오.”

“아니, 걔네가 백수지 왜 내가 백수야? 대부분 휴가 나갔잖아…… 나는 반납하고 길드에 있는 거고.”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메이 린.

그녀는 내가 따로 준 휴가 또한 거부했다.

실상 직접 현장에서 뛴 것이 아니다 보니, 휴가를 굳이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마음이 갸륵하기는 하지만…… 어쨌건 지금 내게는 사람이 필요했으니, 당장 눈앞에 있는 그녀가 당첨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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