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아조시들 그게 재밋서여……?
드워프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특유의 장인정신과 보수적인 성격.
후자는 엘프나 일부 수인족들의 공통분모라고 쳐도, 전자는 그들만의 특별한 옹고집이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그 성격.
그 때문에 여러모로 골머리를 앓을 것만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무슨, 두 가지로 나누자면 작달막한 키에 툭 튀어나온 배 그리고 좆같은 성격이지.”
“호에에에. 언냐야…… 듣겠서여…….”
……이 말이 틀린 건 아닌데.
라이카는 아무래도 일전에 드워프들과 자주 접촉을 했다 보니 그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극에 달한 모양이었다.
원래 메이 린을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라이카 쪽이 여러모로 도움이 더 될 것 같아 공방에서 꺼내 왔다.
아무래도 그녀는 드워프들과 만나기 싫은 모양인지, 김수혁에게 열심히 구원 요청을 했었다.
―아니, 다나. 나는 이거 다 끝마쳐야 하거든? 그러니까…….
―어, 괜찮아! 자기야, 내가 마무리작업 해놓을 테니까 갔다 와도 돼!
―……하아.
하지만 김수혁 쪽이 눈치가 없으니, 그 방법이 통할 리가 만무했다.
결국 눈을 홉뜨며 김수혁을 바라보고는 내게 끌려오게 되었다.
“다 좋은데 눈치가 없어 가지고는 진짜…… 에휴, 내가 뭔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진짜.”
……차마 옆에 있는 나를 욕할 수는 없으니, 지금에서도 김수혁을 욕하는 라이카.
그렇게까지 싫은가?
원래 스토리상 주인공 캐릭터가 드워프와 접촉하는 건 한참 후의 일.
그때 게임에서 봤던 드워프들은 좀 싸가지를 밥 말아 먹긴 했어도, 나름 나쁘지는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그런데 지금 라이카가 말하는 거로 봐서는 완전 천하의 말종들에게나 붙일 법한 수식어를 붙이고 있으니…….
“그 아조시들이 그렇게 시른 고애오?”
“싫어, 진짜. 암고양이 년들보다 더 싫어. 진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놈들이 있다면 그놈들뿐이야.”
“그런데…… 언냐야는 그 아조시들한테 배우기도 했다면서여.”
“그러니까 더 싫어! 진짜 내가 웬만하면 다신 상종도 안 하려고 했는데 다나 너 때문에…….”
아예 몸서리를 치며 격하게 반응하는 라이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렇게 반응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미아내여…….”
단지 내가 할 것은 사과뿐이었고, 그에 라이카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하지만 점점 드워프들이 사는 마을 근처로 향해 갈수록 표정이 다시금 썩어 문드러지기 시작했다.
“저기……야.”
“호에에에, 마을 같지는 않은데여.”
이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나는 조금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쭉 뻗어 있는 산맥 근처에, 우뚝 솟아 있는 이질적인 광산.
애초에 광산이 우뚝 솟아 있다는 게 옳은 표현인지는 둘째 치고서라도, 저게 마을이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슬쩍 라이카를 바라보니 그녀의 눈에는 거짓이 없었다.
단지 엄청나게 피로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에휴우우우…….”
“아흐으으으…….”
연신 한숨을 흘리는 그녀를 보며 나는 더욱 불안해 할 수밖에는 없었다.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될지 감이 잡히질 않았으니까.
“들어가자…….”
“아랏서여, 언냐야!”
나는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그저 라이카의 뒤를 따라갔다.
원래 게임에서는 이런 장소와 장면이 등장하지 않았으니, 내게는 그저 초행길일 수밖에 없었다.
“진짜…… 광산이네여……? 여기가 마을이라구여……?”
“하루 종일 광물이랑 지내는 양반들이니까. 내가 봤을 땐 할 수만 있다면 광물이랑 잠자리도 같이하려고 들걸?”
“호에에에에, 그러며는 황새가 아가 광석을 물어다 주나여?”
“……프흑."
어이가 없다는 듯 실실 웃는 라이카.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 초행길인 나를 배려해 가며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기 입구가 이제 제 0광산이라는 곳이고…… 마을은 1광산부터 7광산까지 있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또 각각 광산을 지날 때마다 시험 같은 걸 겪어야 하고…….”
“시험이여? 븝미쟝 시험은 시른 고애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시험은 아닐 거긴 한데…… 아니, 애초에 너 아카데미에서 1등 아니었어? 무슨 시험이 싫대.”
1등이고 뭐고 시험은 당연히 싫지.
아무리 운발로 커버를 친다고 해도, 이따금 빗나가기 마련이었으니 그 확률을 줄이기 위해 나도 나름 굉장히 빡세게 공부를 한다.
시험 기간 때 한정이지만…….
“그러며는 무슨 시험인데요?”
“글쎄 이건 이제 보면 알…… 나왔네.”
더 말하기도 입 아프다는 듯, 라이카가 손을 흔들 때.
순간 광산 라인을 따라 쭉 나 있는 길의 한복판에서, 바위가 솟아올랐다.
“호에에에에!”
나는 그에 순간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는 이어 마력을 끌어 올렸다.
혹여 그 바위에서 무언가 수작질이 튀어나올까 봐, 두려웠기에 제일 먼저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함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곳에 몇 번이나 와 본 라이카가 그저 멍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단지 멍하니 서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뭐랄까.
세상에 초연해진 사람의 얼굴을 한 채로 서 있었다.
“언냐야……?”
“……이게 그 시험이란 거야. 다나 니가 해 볼래?”
손을 휘휘 저으면서 나를 바위 근처로 보내는 라이카.
이미 겁을 집어먹은 몸은 움직이기를 거부했지만, 억지로 의지를 가지고 한 발씩 움직인 결과 바위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모양의 바위.
조금 다른 점이라면 흑갈색을 띠고 있음에도, 그 질감이 굉장히 매끈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분명 광물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돌이라는 느낌인데…….
어떻게 가공했는지는 몰라도 신기했다.
“어…… 바위 씨! 뭔가 해 보는 고애오…….”
이게 그러니까 드워프들의 마을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는 시험 장치란 말이렷다.
나는 한 차례 침을 삼키며 이어 일어날 일에 대비했다.
그리고 이어 나타나는 변화.
그것은 바위 표면에 새겨지는 문자였다.
다행히 내가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되어 있었는데…… 심각한 문구인 줄 알고 집중해서 보던 내 맥이 탁 풀릴 만한 그런 것이었다.
“호에에에……?”
그 바위에 적혀 있는 문구란…….
[세상에서 가장 읽기 힘든 책은 무엇일까? 정답을 말하시오]
이딴 것이었다.
나는 순간 무언가 엄청난 뜻이 담겨있는 문장인 줄로 착각하고, 머리를 굴렸다.
세계관 내에서라면 ‘종말의 서’나 ‘악마 66계’ 같은 것들이 가장 위험한 것들인데…… 읽기 힘든 거라고 했으니 조금 생각을 전환해 봐야 할까?
“지침서”
“호에에……?”
하지만, 이어 뒤에서 들려오는 라이카의 피곤한 어투.
나는 그에 황당해할 수밖에 없었다.
뭐, 지침서?
지금 무슨 넌센스 퀴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게…….
쿠르르르릉……!
“모, 모에오……?”
“뭘 뭐야. 따라와, 여기로 들어가면 돼.”
솟아올랐던 바위가 다시금 땅으로 들어가고, 원래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 눈앞에 나타난다.
뭐야, 지침서.
그게 정답이라고?
“아조시들 너무하는 거 아니에여……?”
* * *
그 황당했던 첫 번째 시험 이후로도, 이어지는 것들 또한 내용이 비슷했다.
이를테면 세 번째 시험의 내용은 ‘술을 먹을 때 같이 먹으면 안 되는 안주는? 이유까지 서술하시오’였고 라이카는 너무나도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들깨. 들깨를 먹으면 술이 들깨니까.”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끔찍한 대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라이카.
그제야 나는 왜 라이카가 이곳에 오기 싫어했는지 대강 알 수 있었다.
지금 몇 번 들은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이…… 얘기들을.
하루 종일 듣고 있어야 했을 것 아닌가.
“정신 나갈 것 같은 고애오, 정신 나갈 것 같은 고애오, 정신 나갈 것 같은 고애오.”
나는 연신 경악을 했고, 라이카는 되려 그에 반응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관문들을 뚫어 나갈 뿐이었다.
“아조시드른 진짜로 이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건가여……?”
“아니, 당연히 아니지…… 원래 광산 입구부터 수상한 사람들은 거부를 하게 되어 있어. 이건 그냥…… 자기들 나름에 재밌다고 생각하고 설치한 거고.”
“전혀 안 재밌는데여…….”
“그래, 그게 좆같다는 거야.”
스트레스가 올라온다는 듯, 꼬리의 털을 자꾸만 쥐어뜯는 라이카.
몽실한 털들이 몇 가닥씩 풀풀 날릴 때마다 내 머리도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관문들은 모두 뚫어 내 버렸고, 드디어 제 1광산.
진짜 드워프들의 보금자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깡……! 깡……! 깡……!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이곳이 진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원래라면 상당히 가슴 벅차고 두근거리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엘프나 라이칸스로프들, 이들이 아무리 폐쇄적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바깥 활동을 하는 이들이 몇몇 있기는 했다.
실제로 최근에 경찰청에 특수 범죄 수사(대부분 히어로들의 범죄를 수사한다)과장으로 임명되어 화제였던 인물이 라이칸스로프였고, 엘프들을 더 말할 것 없이 그냥 히어로로서도 가끔씩 보인다.
하지만 드워프들은 아예 바깥을 나다니지 않는다.
아마…… 그것에는 외모적인 것도 한몫을 차지하기는 했을 것이다.
비교적 인간과 거의 비슷한 외양을 가지고 있는 수인과 엘프와는 달리, 드워프들은 언뜻 저거 몬스터 아닌가 싶은 외양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이종족들이 지구로 이주한 초기에는 그런 일이 왕왕 있었더란다.
그런 만큼 굉장히 설레는 순간이어야 했을 텐데…….
앞에서 이미 그들의 추악한……까지는 아니라도 끔찍한 심연 속을 들여다보고 온 참인지라…….
“가자, 다나.”
“네…… 언냐야…….”
어느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나와 라이카.
앞으로 만나게 될 드워프들의 면면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거로 치자면 나도 어디 뒤처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취향이나마 타지.
이쪽은 호불호를 가릴 것도 없이 100이면 99는 다 불호일 것이었다.
100 중 나머지 하나는 드워프일 테고.
“븝미쟝은 불호에엥 없이 호에엥인 고애오…….”
“음, 잠깐 시끄러워서 못 들었는데. 나한테 말한 거야?”
“아, 아니에여.”
드워프식 개그가 전염이 됐나.
입에서 나온 헛소리에, 나는 손바닥으로 입을 몇 대 후려갈길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