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븝취한 고애오!
“진짜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니 가져가게.”
“호에에에…… 감사한 고애오.”
막상, 광물을 가져가기 위한 마지막 허락을 받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족장은 굉장히 흔쾌히 광물들을 줬고, 그것들은…… 길드원들이 나눠 들었다.
“아니 무슨 짐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나한테 들게 할 수도 없잖아.”
“미아내여…….”
내 지팡이에 매달아 묶기에는, 광물의 무게가 너무 많이 나갔다.
직접 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고.
차라리 원석이 아니라 주괴가 필요했던 거면 녹여서 들고 가면 될 일일 텐데.
저마다 짐을 짊어진 길드원들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따라온 내가 바보지.”
강훈은 맞아서 부풀어 오른 뒤통수를 매만지면서, 자신에게 할당된 짐을 들었다.
전체의 4할가량, 실상 근력 스텟으로만 따지면 그가 제일 높았으니 어찌 보면 합리적인 분배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나 죽네, 시발.”
그렇다고 그게 무게가 안 무거운 게 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낑낑대는 강훈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그건 고생하는 그에 대한 동정의 시선 따위가 아니었다.
“나중에도 들어 달라고 해야겠어여…….”
저거, 엘프들이 사는 숲까지 배달하려면 골 좀 아플 것 같은데.
나중에도 좀 도와 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 *
엘프들이 내게 가져와 달라고 한 것들.
상당수는 발품을 뛰어 찾아보니, 내가 그래도 금방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프르모 같은 특수 광물들 같은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했기에 직접 구하러 갔었고.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한 양의 재료들을 전부 모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걸 가지고 확실히 악룡의 알을 어찌할 수 있느냐 하는 건데…….
“모르겠네여…….”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악룡의 알 말고도 문제가 될 만한 사건들이 지천에 널려 있는데.
그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다 보니 만성적인 두통을 달고 살았다.
최근에는 악몽까지 꾸다 보니, 옆에서 같이 자던 일리아가 깜짝깜짝 놀라곤 한단다.
“아니, 갑자기 막 자다가 호에에에, 하고 소리 지르고 그러니까…… 난 깨서 들킨 줄 알고 막 놀라 가지고…….”
“미아내여…… 응? 근데 뭘 들켜여?”
“어? 뭐가? 내가…… 무슨 말 했었나? 들키긴 뭐가.”
“……하와와.”
그 과정에서 뭔가 수상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지만…….
어쨌건 그렇게 신경에 날이 서 있다 보니, 나는 어떻게든 날 선 신경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음에 적극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여기 온 거기도 하고.
“하와와…… 너모 조은 고애오.”
내가 그나마 이쪽으로 오고 나서 생긴 몇 없는 낙 중 하나가 바로 식도락이었다.
물론 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식도락은 아니었다.
경양식집 어린이 세트 하나도 다 못 먹는 위장을 지녔으니까.
오로지 내가 먹는 건 군것질이었다.
초콜릿, 과자, 사탕, 젤리…….
본래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것들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먐…… 먐…….”
오물거리면서 판 초콜릿 한 조각씩을 집어먹자,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인생이지 씨팔…….
“이게 우리 요식업 브랜드들 중에 하나인데, 벨기에 쪽 제과 회사 하나를 인수하면서 원래 없었던 메뉴 중에 하나…….”
“헤으응…….”
앞에서는 신하연이 뭐라고 떠들어 대고 있었다.
물론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는데,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이야기였던데다 당장 입안에 모든 감각이 쏠려 있었다.
혀로 스며드는 달콤한 맛이 마치 뇌까지 침범하는 느낌이었다.
몸이 달콤하게 달아오르고, 등허리가 저릿해졌다.
“……그중에서도 여기 본점은 말이지? 아, 그러고 보니까 본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으헤엥…….”
이미 앞에서 설명하는 신하연의 몸짓조차 흐느적거리는 하나의 형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초콜릿과 과자를 하나씩 집어 먹으며 전율할 뿐이었다.
이건 그냥 마약으로 금지를 해야 하는 수준이 아닐까?
물론 단 한 번도 손에 댄 적은 없지만, 지금 느낌이 마치 마나를 가공한 신마약을 투여한 것 같은…….
“야, 다나. 왜 그래?”
“호에에……?”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 막 열도 나고. 어디 아파?”
“흐에에엥…… 아나 파여허어어…….”
“너 침 흘러……!”
침이야, 씨팔. 뭐 다시 삼키면 그만이지.
흐르건 말건 참견이야, 개년이.
“신켱 안 쑤눈 고애워…… 헤에엥…….”
“진짜 왜 이래……?”
뭐가 이래.
자꾸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는 바람에 좋았던 기분들이 슬슬 날아가기 시작하자, 열이 뻗친다.
나는 그 손을 쳐 내려고 했으나, 그 힘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이익…… 잇…… 끄응…….”
“야, 너 무슨 술 취한 사람처럼…… 잠깐만…….”
신하연은 탁자에 놓인 메뉴판을 바라봤다.
거기에 적혀 있던 것은 이 제과점에서 파는 과자나 초콜릿 등의 성분표.
그것을 한참 동안 뜯어보던 그녀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그 표정이 뭔가 기분 나빠서, 나는 신하연의 손목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아하아아앙!”
물론 깨물어 봤자 그녀에겐 아무 타격이 없었고, 되려 이 악물고 씹으려던 내 잇몸만 시큰하게 아파 왔다.
신하연은 고개를 흔들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여기…… 초콜릿에 도수가 약간 있기는 한데…… 이거로 취하는 사람이…… 있구나?”
“헤에엥……? 무슨 서리애여허어…….”
초콜릿에 도수 뭐 어쩌고…….
대강 들리는 단어들로 머리에서 문장을 만들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세상에 초콜릿 먹다가 취하는 사람이 어딨나.
그것도 판 초콜릿 절반 정도밖에 안 먹었는데, 아직…….
끼익.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당당하게 신하연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치려고 했다.
봐, 이년아. 나 존나 멀쩡하지?
“호……에?”
하지만 그건 단지 뇌 내 망상일 뿐이었고, 순간 일어섬과 동시에 현기증 비슷한 감각이 머리를 윙, 하고 울리게 만들었다.
나는 곧이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고, 그와 동시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몰렸다.
“흐헤에…….”
넘어져서 창피하다는 생각보다는,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바닥의 차가운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시원한데 여기 좀 더 앉아 있다 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주변 손님들에게 손가락을 브이로 만들어 들어 보였다.
“일어나, 다나!”
쑥, 당겨지는 느낌과 함께 신하연이 나를 황급히 일으킨다.
평소에 나를 보며 대하던 그 소극적이고 음침한 태도는 어디 갔는지, 그 모습이 학기 초의 그녀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내가 아는 신하연은 이런 느낌이지.
드디어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분이 영 좋았다.
“으하우움…….”
“어, 여기. 밖에야. 다나…… 으흥……?”
품속으로 파고들자 향수 향기가 푹, 하고 풍겨져 나왔다.
아닌가, 옷에서 나는 냄새인가. 잘 구별이 되질 않는다.
내 얼굴이 붉다고 하더니, 되려 귀까지 붉게 물들인 신하연을 보니 역시나 아까 취하니 마니 했던 소리가 헛소리였구나 싶다.
그와 동시에 점점 눈이 감긴다.
그 품이 따뜻해서였던가, 아니면 식곤증인가.
나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수마가 찾아옴에 그저 까무룩, 고개를 숙였다.
* * *
어, 이…… 시팔.
순간 나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물론 속으로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되게 끔찍한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인데.
“아흐으…… 아픈 고애오…….”
쨍하게 찾아오는 두통에, 나는 마력을 일깨웠다.
요즘 찾아오던 그 신경성 두통과는 명확히 궤가 다른 것이었다.
상당히 익숙한 종류의 그것이었는데…… 내가 이런 감각을 언제 느껴 봤더라.
잠시간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분명 이건 내가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분위기에 억지로 주량도 모른 채, 숙소에서 마구 술을 퍼마셨다가 일어날 때 느꼈던 그 감각과 비슷했다.
분명 숙취다.
이 몸에서 풀풀 나는 알코올 냄새도 그렇고…….
아니, 근데 무슨 과실주 냄새가 나냐.
“호에?”
잠깐만, 숙취라.
나는 섬뜩한 감각이 등을 타고 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 전에 꿨던…… 그 생생한 개꿈이 혹시 꿈이 아닌 것은 아닐까?
“설마여…….”
에이, 설마.
……하고 되뇌며 주변을 둘러보자, 내가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긴…… 어디야?
상당히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놓여 있는 방 안.
하지만 그 방 주인의 취향이 담긴 개인적인 물건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편의를 위한 몇몇 것들만 비치되어 있었다.
당연하지만 여긴 내 방이 아니었다.
내가 사용하는 공간은……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꽤나 난잡하니까.
클린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오물을 날려 줄 뿐, 정리 정돈을 도와주진 않는다.
“납치인 건가여……?”
혹시 자는 사이에 어디 납치라도 당했나?
……라고 생각하기에는 몸에 어디 구속된 곳 하나 없었다.
나를 그동안 납치해 올 사람이라면 분명히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들일 텐데, 그렇다면 이렇게 자유로운 상태로 놔뒀을 리가 없다.
웬만큼 그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꿀꺽.
침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갔다.
물론, 그렇다곤 해도 작금의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건 분명했다.
나는 옷매무시가 흐트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내가 입고 다니던 외출복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복장이었다.
누워있던 킹사이즈의 침대 옆에 지팡이도 얌전히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적어도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은 사람은…… 내게 적의를 가지고 있진 않은 모양이었다.
조금은 안심을 해도 되려나.
“호에.”
그때, 하얗게 칠해진 방문 밖에서 누군가가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나는 그와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바깥에 있는 사람은…… 그리 강하지는 않은가.
분명 각성자임이 분명하나 히어로로 따지자면 중위권 수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도의 마력이었다.
덜컥.
문이 열리고, 이내 그 정체가 드러난다.
다짜고짜 공격할 수는 없으니, 수비를 위한 스펠을 외고 있던 내 입이 순간 멈춘다.
“호에에……?”
“아, 일어나셨군요…… 친구분.”
들어온 것은 대략 5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푸근한 인상에 미소로 물어보니, 경계심이 확 누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친구……여?”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하자, 그녀는 입을 가리고 소리 죽여 살짝 웃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우리 하연이 친구분 아니신가요? 어제 직접 안아 들고 들어오셨는데…….”
“하연…… 언냐야여?”
하연…… 신하연?
그러면 진짜 그게 꿈이 아닌 건가?
“호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