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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57화 (157/172)

#157화. 나쁜 옵바야!

머쓱한 표정을 한 채로 방 밖을 빠져나와, 신하연이 있다는 방으로 갔다.

내가 있던 게스트룸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도 몇몇 필요한 것들이 추가된 방.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살펴보던 그녀가 이쪽을 돌아봤다.

“어, 일어났구나……?”

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내가 취했던 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평소와는 다른 그 태도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뭔 짓을 한 거냐 나는.

“일어난 고애오…….”

“아, 나, 어…… 그러니까, 에휴…… 모르겠다. 기억 안 나겠지?”

“머가여?”

얼핏 희미하게 떠오르는 몇몇 편린들이 있었으나, 곧바로 고개를 저어 그것들을 털어내 버렸다.

이따금 진실은 모르는 게 아는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는 법이니까.

물론 그에 신하연은 딱히 동의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렇게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보다 못한 신하연의 그 ‘유모’가 침묵을 먼저 깼다.

“하연이, 너도 아직 밥 안 먹었지? 내려와서 같이 먹어.”

“아, 그래. 같이 갈게요, 유모.”

식사 얘기를 꺼내자, 그제야 한숨 돌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유모가 슬쩍 자리를 비켜 주자, 신하연은 기다렸다는 듯 내게 슬쩍 다가와서 추궁하듯 물었다.

“너…… 기억나? 어제 일.”

“어제……여?”

어제?

그러면 내가 내리 하루를 잤다는 소리인가.

“아…….”

순간 의문에 창밖을 쳐다보자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바깥의 따사로운 풍경과 함께 비춰 오는 6월의 햇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조금 있으면 이제 방학이 될 테고, 그러면…….

“딴 데 보지 말고.”

“호에엥.”

그렇게 말해 봤자, 어차피 내 대답은 하나뿐인데.

어제 일이 기억나도 아니라고 할 테고,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당연히 아니라고 할 테니까.

그것을 신하연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잠시간 나를 망연히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내게 손을 내민다.

“됐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내가 잘못이지. 앞으론 절대…… 안 먹일 거야.”

“미아내여…….”

“뭘, 기억도 안 난다면서. 사실 별거 아니었어.”

……진짜 뭔 짓을 했기에 저러지?

자포자기한 듯한 그 모습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신하연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저런 식으로 행동할 만한 위인이 아니다.

주연 등장인물은 물론이고 빌런들보다도 음험한 게 이 여자인데…….

그냥 넘어가 주는 걸 감사히 여겨야 하나.

나는 슬쩍슬쩍, 그녀의 눈치를 보며 뒤를 따랐다.

*    *    *

나는 지금껏 주연 등장인물의 가족 중 형제들을 만나 본 경험이 없었다.

장선우는…… 애초에 그 형제들을 만날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다.

나츠키의 경우에는 위로 형제가 있기는 하나, 터울이 너무나 크다.

그리고 일리아는 외동이었고.

그러니까 그 형제자매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이다.

“와, 니가 그 걔구나?”

“말, 진짜 예의 없이 하네. 형, 얘 좀 닥치게 해 봐.”

“너도 다물어. 지금 불편해하시는 거 안 보여?”

“호에에에에…….”

각각 두 살 터울인 남자 형제가 위로 5명.

그중 집에 있는 첫째와 셋째 그리고 넷째가 나와 인사를 하려 들었다.

신하연 같은 경우에는 그 독점욕 비슷한 것이 발동해서, 이 상황을 막으려 들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지금 멀쩡해져서, 딱히 명분이랄게 없지 않은가.

신씨 가문 자식들은 모두 상당히 뛰어난 각성자이니, 물리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전무했다.

“하연이랑 같이 아래층 내려가서 식사하시고, 편하게 있다 가세요.”

“고, 고마운 고애오…….”

“아니, 왜 형이 잘난 척은 다 해? 우리는 여기 집 주인 아니야?”

“……아니긴 하잖아.”

얼굴도 비슷하게, 뭔가 각각 나이만 든 것 같은 이들끼리 왁자지껄하게 말싸움을 하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신하연의 옷소매를 꽉 붙들었다.

그러자 그 압력을 느낀 그녀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채로.

“으흥.”

무언가 기분 좋아 보이는 발걸음.

신하연이 나를 데리고 내려가자, 뭐라 더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셋째와 넷째가 입술만을 달싹인다.

내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한참 멀어지고 난 후에야, 형제들끼리 다시 말싸움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원래 저런 고애오?”

“가끔……이라기에는 자주긴 해. 그런데 또 맨날 그런다면 그건 또 아니고…….”

실상 거의 격일제로 저런다는 말이었다.

내가 알기론 신씨 가문 형제들 모두 점잖은 이미지인데…… 어째 대중한테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도 신하연과 판박이인 모양이었다.

물론, 신하연의 경우가 가장 심하기는 하지만…….

본래 타고난 그 성질에 더해 특수한 트라우마까지 가지고 있으니.

“왜? 얼굴에 뭐 묻었어?”

“암것두여.”

슬쩍 그 얼굴을 올려다보자 순수한 어투로 물어온다.

어쩌면 내가 신경 쓰지 않았음에도, 주연 등장인물 중 변화한 정도가 가장 큰 이가 신하연이 아닐까.

길드에서 이따금 일리아를 마주쳐도, 그녀는 더 이상 피하거나 숨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거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끄러운 것인지, 밝게 인사하는 그녀에게 담담한 화답밖에 못 하긴 하지만…….

덜컥.

그렇게 생각을 하던 사이 어느새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화려한 탁자들과 식기, 그 위에 차려진 음식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무슨 연회장이야?

“여기…… 마자여?”

“그럼 아니겠어? 내가 길 잃기라도 했을까 봐?”

이런 데서 살면 잃을 만도 하지 않을까…….

역시 한국 길드 중에서도 그 자본이 굉장히 부유하다는 신씨 가문답다고 해야 하나.

식당도 더럽게 커다랬다. 무슨 왕궁인가 싶을 정도의 스케일.

물론 진짜 왕궁에 가 본다면 이것보다 더 좋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알 압둘 어쩌고인가…….

중동 쪽 왕자라는 그 친구가 자기 왕궁에 초대 한 번 하겠다며 추파를 던진 적이 있는데.

물론 그에 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기분도 더러웠기에 곧바로 대련 신청을 걸어 박살을 냈었지만…….

지금이 되니 조금 궁금해진다.

만약 갔으면 어떤 광경을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자, 앉아.”

“호에에.”

앉아, 하는 소리가 무슨 강아지한테 하는 소리같아서 순간 흠칫했다.

물론 너무 곡해한다 싶어 그대로 쪼르르 달려가기는 했다.

마음에 드는 자리, 홀에서 제일 낮은 좌석에 가서 앉자, 신하연이 그 옆에 앉는다.

맞은편도 아니고 굳이 옆에 앉아야 하나 싶었지만, 오늘은 그녀에게 그다지 딴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술 취한 동안 뭔 짓을 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식기에 보온 마법이 걸려 있으니까, 식지는 않았을 건데…… 혹시 음식 온도 안 맞으면 말해. 바로바로 교체해 주시거든.

딸랑딸랑.

옆에 있는 종을 슬쩍 흔들어 보이자, 집사인지 아니면 주방장인지 모를 차림의 남성이 나와 신하연에게 깍듯이 인사한다.

“아니에요, 잘못 불렀어요.”

“아, 네, 그럼.”

간단히 응대하는 신하연에게,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남자.

나는 그녀가 왜 펜타곤에서 내심 안하무인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런 환경에서 컸는데 그리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완전 공주님이네여…….”

“공주…… 흐흥, 좀…… 그렇지?”

그다지 칭찬으로 한 말은 아닌데,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신하연의 양 볼이 발그레 달아오른다.

생기있는 표정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꽤나 아름다웠다.

꼬르륵…….

물론 아름답고 말고, 그런 감상보다 당장의 배고픔이 더 우선이기는 했다.

내가…… 먹은 거 다 게워 냈었나?

원래라면 이렇게 배고플 리가 없다 싶어 생각해 보니, 그랬던 것도 같다.

이거 대충 뭔 진상짓을 했는지 알 것 같은데.

……생각하지 말자.

굳이 죄책감을 느끼기 싫어, 나는 곧바로 손을 바삐 놀렸다.

처음 집은 것은 육즙 가득한 소시지.

입맛이 애들 입맛으로 바뀌어 버렸는지, 손이 자꾸만 그런 쪽으로 갔다.

“호에에…….”

입안 가득 터지는 육즙에 행복한 신음을 흘리며…….

10분여간 나는 음식들을 마구 입에 집어넣었다.

작은 입안에 우겨 넣으며, 볼이 빵빵해질 정도로.

“……다 먹었어?”

“네. 마싯섯서여…….”

물론 그건 내 기준으로 많이 먹었단 것이지, 다른 이들의 기준은 아니었다.

신하연이 반씩만 썰어 먹고 있는 저 소시지의 1/4만 입에 집어넣어도 내 입은 꽉 차니까.

나는 그 뒤로 그녀가 밥을 먹는 광경을 관전했고, 신하연은 그게 불편했던 모양인지 이쪽을 슬금슬금 쳐다보며 입에 무엇을 묻히는 것조차 극도로 경계했다.

“나도 다 먹었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물론 내 식사량의 3배 이상을 먹었다) 식기를 내려놓는 그녀.

뒤이어 신하연은 천장의 샹들리에를 찬찬히 뜯어보며 침묵을 유지했다.

“…….”

딱히 할 말이 없는 탓일 거다.

솔직히 그다지 나랑 많이 친한 사이도 아니거든.

아무 일상에 관한 주제나 하나 잡고, 몇 시간이고 떠들어대는 나츠키나 일리아와는 달리 그녀는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저기…….”

“왜여?”

“아니야.”

벌써 세 번째, 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끊기길 반복했다.

평상시라면 내가 대화를 이끌어 줬을 텐데, 그 모습이 꽤 귀여워서 그냥 내버려 뒀다.

불의의 사고로 인한 것이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곳의 손님인 나.

딱히 집에 손님을 초대해 본 적도 없는 모양인지 이 상황이 어색하기만 한 것 같았다.

“어, 누구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신하연을 구원해 주는 이가 나타났다.

우물거리는 그녀의 모습을 빤하게 지켜보며, 상황을 즐기고 있을 때.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남자.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보며, 슬쩍 인상을 굳혔다.

“오빠네, 벌써 임무 끝났나……?”

“언냐야, 누구에여?”

“누구냐고? 아, 우리 둘째 오빠야.”

참고로 신하연은 다른 형제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냥 이름으로 부르거나, 제일 취급이 안 좋은 셋째 같은 경우에는 아예 ‘야’, ‘너’ 따위로 부른다.

정작 여동생을 제일 아끼는 게 그 셋째란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일이었다.

“오빠! 벌써 왔어?”

“어, 금방 끝나서…… 바로 밥이나 먹으려고 왔더니. 하연이 너도 있었네.”

하지만 저 둘째는 예외적으로 오빠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가 형제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부르는 것이 싫고 말고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저 둘째라는 작자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면 그러했다.

빌런이나 비리에 찌든 히어로 따위가 아님에도 그랬다.

“어…… 이쪽은?”

그의 호선을 그리던 눈매가 이쪽을 향할 때, 나는 최대한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항상 실실거리는 내 안면 근육은 화난 표정이란 것을 몰랐고, 이어 이상하게 일그러진 표정이 완성되었다.

“……왜 저러니?”

그 물음에 신하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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