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58화 (158/172)

#158화. 렐 언냐야……?

세계관 내에는 악인이 굉장히 많다.

되레 선인보다 더 많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그것은 단지 빌런에 국한된 것이 아닌 히어로 중에도 존재한다.

누누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새기며 명심하고 있는 사실이다.

빌런보다 더 썩어 있는 히어로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하와와…….”

나는 웃는 낯으로 신하연과 나를 배웅하는 그녀의 둘째 오라비를 쳐다봤다.

물론 저 남자는 그 ‘썩어 있는 히어로’에는 속하지 않는다.

그 본성도 딱히 나쁘지 않으며 실제로 그가 잘못한 것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여타 빌런과 부패한 히어로들보다, 세계관에 더 악영향을 미친다.

미리 그냥 죽여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놈이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저택에서 빠져나와 차에 탑승했을 때.

나는 앞에서 운전하는 기사의 귀에는 들리지 않도록, 음파를 막는 막을 쳤다.

얇게 퍼져 나간 푸른색의 마력이 운전석과 뒷좌석의 경계에서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걸 막는다.

그제야 나는 신하연에게 질문했다.

“언냐야, 아까 그 옵바야 있져…….”

“어? 둘째 오빠?”

“네, 그냥 무러볼 게 있는데여…….”

차를 타기 전까지 나누던 대화랑은 사뭇 다른 분위기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안면 근육을 슬쩍 굳히는 신하연.

그러고는 이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연다.

혹시 뭐 집히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으응, 그래…… 다나 너라면…… 나도 이해할 수 있지. 올케 시누의 관계가 된다고 해도…….”

이건 뭔 씹소리래.

나는 신하연을 도끼눈으로 쳐다봤다.

*    *    *

엘프들의 마을.

그곳에서는 한창 장로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 원인은 물론 악룡의 알 때문이었는데, 현재까지 구해진 재료들로 어떻게든 정화하려는 시도를 거듭하였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재료가 부족해서 그렇다, 하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장로들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쯤 되면 그래도 작은 반응 정도는 이미 일어났어야 정상이니까.

세계수의 대리자이자 전언을 전달하는 사도.

그 사도에게 의식에 필요한 물건 조달을 다 맡겨 놓은 바에야,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녀를 볼 낯이 없었다.

그렇기에 장로들은 의식에 능한 다른 엘프들에게도 도움을 청했다.

살아온 삶의 기간과 그 경지 간에는 분명 관련이 있었으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었으니까.

“하나, 이 아이는 부를 수 없습니다. 너무…… 외부에 오래 나가 있었어요.”

“그렇다 한들 어찌할 것입니까? 만약 이 일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사도님께서도 실망하실 테고, 그것은 우리 어머니 나무께서 실망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진척이 영 나아지지 않자, 장로들은 지금껏 도움을 청하지 않은 이에게도 손을 내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엘프의 이름은 렐.

생애 절반 이상을 마학(魔學)을 위하여 마을 밖에서 살아온 엘프.

장로들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삶을 살았으나 그 경지만큼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이였다.

“이번 한 번만 도움을 청하도록 하지요. 그 아이 또한 일찍이 편의를 제공받았으니…… 거절하진 않을 겁니다.”

“2장로님의 말이 맞습니다. 단지 마을에서 오래 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불신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고요.”

그에 꽤나 많은 반대가 있었다.

마을 밖에서 활동하는 엘프들은 분명 꽤나 있으나, 그들은 모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엘프 본연의 성질과는 다른 개방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이들.

그들은 대부분 자신들을 꺼리는 마을을 떠나 인간사회에 녹아들어 살고 있다.

물론 여타 차별적인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지만, 경직된 마을 안에서 살기보다는 그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렐은 조금 달랐다.

그 꺼림칙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꼭 일정 주기로 마을에 돌아왔고 다른 엘프들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았다.

“저도…… 찬성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일부 엘프들은 감명받아 그녀와 같은 길을 걷길 바라기도 했다.

이를테면 정령을 다루지 못하는 엘프, 세리아가 있었다.

장로들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

“그럼……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였으니…… 지금 곧바로 전언을 보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불편함까지도 감내해 가며, 그녀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사안의 심각도도 높았고, 진척이 되질 않고 있었으니까.

장로들의 회의 이후, 그 전언은 렐에게 전해졌다.

자신의 집을 찾아온 어린 엘프에게 이야기를 전달받은 그녀는, 슬쩍 웃음 지었다.

“그럴 줄 알았지.”

마치 이전부터 일이 이리될 줄 알았다는 듯, 미소를 띠는 렐.

그녀의 등 뒤로 무언가가 꾸물거리며 튀어나왔다.

흐흥, 그럴 줄 아라떠.

그것은 다나가 일전에 그녀에게 붙여 놓고 간 바람의 정령이었다.

녀석은 딱히 숨길 생각도 없이 몸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것은 이제 딱히 숨어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다나가 임무를 맡긴 첫 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은신술을 사용하며 기척과 마력의 흔적을 지운 바람의 정령.

하지만 렐은 그것을 순식간에 간파해 냈고, 그 뒤로는 계속 이렇게 대놓고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흐음…….”

흐우웅…….

턱을 괴며 잠시 생각에 빠진 렐을 따라하는 바람의 정령.

렐은 그것이 못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딱히 제재하기도 뭐했으니 내버려 뒀다.

“악룡의 알…….”

악룡의 알.

현대에는 단 한 번도 강림하지 않은 악룡이 부화하게 될 알.

렐은 그것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역사 사료에서 찾아봤거나 다른 나이 든 엘프에게서 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었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이상한 말 같으나 사실이 그러했다.

“원래 부화시기는 이미 지났고, 그걸…… 봉인이라. 딱히 내키지 않는데.”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이레귤러, 다나 크리스틴이라고 했었나?

그 애가 아니었더라면 원래 일어났어야 할 악룡의 학살…… 그것이라면 분명 꽤나 재밌는 유희였을 텐데.

안타깝게도 빅 이벤트는 이미 지나가 버린 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그 장단에 맞춰 줘야 할까, 아니면 한 번 뒤틀어 버릴까…….

“……지금 찌르기엔 너무 이르겠죠?”

너무 이르거등!

그 뜻도 모르고, 단지 기억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을 따라 하는 바람의 정령.

이것도 그 애가 붙여 놓은 것이겠지.

아니, 정확히는 애가 아닐 수도 있나? 아무튼…….

“장로님들한테 곧 도와드리러 가겠다고 전해, 생각을 좀 하느라, 세워 둬서 미안해.”

“아니에요! 저…… 누나라면 몇 시간이건 기다릴 수 있거든요.”

“어머.”

엘프 소년의 당찬 고백 비슷한 말에, 렐은 슬쩍 웃었다.

소년은 그녀를 동경하고 있었고, 그 동경의 대상인 여자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 주니 기분이 좋네.”

다음 장난감은 아마도 네가 될 것 같기도 하구나.

*    *    *

나는 학교생활을 어떻게든 지속하고 있었다.

당장 지금에 힘을 내야하는 것은, 재료의 9할 가까이를 수급한 내가 아닌 의식을 실행해야 하는 엘프들이었으니…….

그동안 빠진 수업들을 벌충하고, 그러면서도 길드의 사무를 관리하고 남은 재료들의 수급을 찾아본다.

도대체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것 같은 생활을 나는 어찌어찌 버텨 낼 수 있었다.

그에는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물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피로 회복을 돕는 포션과 음식들은 물론이고, 관련 장비들까지 둘둘 둘러 가며 나약한 몸을 보조했다.

[꿈나라 작은 요정의 특제 수면 양말]

착용 후 수면을 취할 시, 피로가 더 빨리 회복됩니다.

4시간 이상 착용했다면 효과가 배가됩니다.

폭신하고 따뜻한 수면 양말.

자그마한 발 사이즈에 맞춰, 주문제작을 했다.

원래라면 애들 사이즈로 주문했을 텐데…… 무슨 애들은 피로도 없나.

어른 사이즈밖에 없다는 의류사이트 ‘꿈나라 작은 요정’의 답변에 직접 사측에 연락을 했더니, 지나치게 굽신거리며 제작해 줬다.

“하와와, 너무 편한 고시애오…….”

처음에는 그 이유를 몰랐는데, 배송 이후 그 대표에게서 부탁을 받고는 알아챌 수 있었다.

계약금을 얼마든 줄 테니, 제발 광고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광고를 포함해 방송에 출연한 적이 없다.

예능 프로그램 펜타곤이야 어쩔 수 없이 나오긴 했지만…… 내가 직접 나오는 분량은 굉장히 적었다.

의도적으로 그것을 피했으니까.

명성도는 이미 제한까지 모두 찍었고, 보상도 다 받았다.

굳이 내가 tv에 나와 설친다고 얻는 이득은 없었다.

그로서 얻는 출연료나 광고비는 요즘 소득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고.

“해시태그…… 호에에…… 해시태그…… 븝면양말…… 이거는 아닌가여?”

하지만 이 제품은 내가 수락했다.

직접적으로 그 효과를 체감한 데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으니까.

수면 관련된 제품만 10년을 넘게 연구했다더니, 그게 헛으로 한 말은 아닌 듯했다.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라이카와 김수혁, 그리고 연금술사 세 자매도 이것보다 괜찮은 것은 만들지 못했다.

물론 시간이 좀 더 주어진다면 가능하겠지만…….

굳이 그런 일에 시간을 뺏기지 않는 편이 더 이득이었다.

“올린 고애오.”

나는 SNS에 광고를 올렸다.

어느새 870만 명까지 늘어난 팔로워들.

내가 피드 하나를 올릴 때마다 분석하고 파헤치려는 관심들이 너무나도 많아, 요새는 잘 하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런 공간에 최초로 광고랍시고 사진을 올렸으니…….

아마 오늘 하루 그 사이트가 불타지 않을까 싶었다.

“하와와…….”

참고로, 광고비는 받지 않았다.

그 돈 받아 봤자 딱히 의미가 없으니까.

지금 한국에 남아 있는 금싸라기 땅들은 내가 죄다 긁어모으는 중이었고,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유동자산만 수천억이 넘어갔다.

거부……라고 불릴 수 있을 수준의 돈을 단 수 개월 만에 벌어들였는데, 광고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뭔가 뿌듯했다.

내가 이 나약한 몸에 빙의되지 않았을 적,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경험이 있는가?

그 질문에는 단언코 아니라고 답할 수 있었다.

정말 몸이 부서져라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아다닌 결과 이렇게 될 수 있었다.

“그러니까아…… 좀만 쉴래여…….”

나는 침대에 드러눕고는 손에 들린 폰을 집어 던졌다.

그것은 벽면을 향해 날아가 떨어지는 듯하더니, 내 마력에 붙잡혀 근처 탁상에 사뿐히 착지했다.

일리아는 2시간 뒤에나 수업을 마치니, 그때까지 잠시 눈이라도 붙이고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던 때, 갑자기 내부에서 울컥하고 치미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 아……?”

속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 마치 누군가가 내 내장으로 빨래를 하는듯한 격통이 느껴졌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끄에…… 으으…….”

꺼억, 하는 소리를 입박으로 뱉어 낸 나는 곧바로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나! 이러나!

―왜 그래에엥…….

―음…….

마지막으로 들린 것은 소환한 적도 없는 정령들이 재잘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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