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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60화 (160/172)

#160화. 교만(驕慢)

으으응…….

"그러지 말구여, 말을 해바여."

기력이 어느 정도 돌아온 후에, 몸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가 상비하고 있는 비약들은 길드의 연금술사 자매들이 만든 것.

당장 시장에 매물로 내놓으면 단순 회복 포션도 수억은 가볍게 나갈 물건들이었다.

정신이 제대로 돌아온 직후, 나는 곧바로 바람의 정령을 소환해 냈다.

아무래도 내 몸이 순간적으로 충격을 받은 게 이 녀석 탓 같았으니까.

나는 소환한 즉시 추궁해서 이유를 캐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듯 벌벌 떨고 있는 녀석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하와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형체를 흐뜨러뜨리며 구석에 박혀선 도리질만 친다.

아무래도 그 ‘렐’과 함께 붙어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그동안 중간중간 녀석의 상태를 체크했을 때는 분명 멀쩡했다.

소환자와 정령의 관계로서 거리가 떨어져도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대부분은 긍정적인 감정들.

당장 어제 확인했을 때만 해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하루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안 되겠어여."

역시, 마을에 직접 가 봐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물론 그 렐한테 직접 따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그녀의 몸에 정령을 붙여 놨었다고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바람 녀석이 입을 열지 않는지라, 들켰는지 들키지 않았는지도 나는 모른다.

다만 내가 이 정도 반동을 받을 만한 대미지라면…….

적어도 의도하지 않고서는 가할 수 없을 터다.

그 공격자가 렐이건 아니면 제삼자이건 간에.

"……아까도 말했는데, 지금은 못 나간다?"

"저도 알아여…… 내일 갈 고애오."

내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일리아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입을 연다.

그녀는 내가 분개하는 모습을 처음 본 탓인지 계속 저런 태도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위험한 건 아니지?"

"호에에, 아니에여! 븝미쟝은 아가야라 그런 거 모태여……."

차라리 앞에 해 왔던 일들에 비하면, 딱히 위험한 것도 아닌 것 같으니…….

틀린 말은 아니겠지.

정말 렐이라는 그 엘프가 바람 녀석을 이렇게 만든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떠돌아다니는 정령들 중 하나처럼 보였을 텐데 왜 다짜고짜 공격부터 한 것일까.

그런 의문이 난립했지만, 그다지 두려움은 없었다.

명백하게 파악 가능한 렐의 전력, 그것은 분명 나보다 한 수 아래였으니까.

……수틀리면 친구 불러오지, 뭐.

*    *    *

목요일 아침, 펜타곤을 나가는 학생은 나뿐이다.

애초에 웬만한 사유로는 허가조차 받지 못하는게 펜타곤에서의 외출이니…… 당연한 일일 터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비교적 세속적인 이유로 펜타곤에 들어온 교관들은, 되레 내 눈치를 보기도 했다.

이제 내 길드의 영향력으로만 따지자면 중견 길드라고 부르기도 어색한 수준에 다다랐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교관들이 더 많기는 하다.

정말로 후대의 히어로들을 올바르게 양성하기 위해, 이곳 펜타곤에 지원한 이들.

개중 한 명인 양대수 교관이 나를 바라보며 이마를 짚었다.

"요즘은 잠잠하더니, 또 병이 도졌나?"

"하와와와……."

이 사람은 내가 외부로 나도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아마 내가 이런 행동을 하면서, 그 실력이 동시에 진일보하지 않았다면 외부로 나도는 것을 결사반대했겠지.

하지만 펜타곤에서 조용히 수업을 받는 것보다, 외부에서 경험을 쌓는 편이 내게는 더 좋다라는 사실을.

그 또한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 때문에 하루에도 몇 놈씩 찾아와. 자기는 왜 안 내보내 주냐고. 웬만해선 자제 좀 해 줘라……."

"미아내여……."

물론 그것을 인정하는 것과, 내 외출을 흔쾌히 허락하는 것에는 큰 간극이 존재했다.

내가 펜타곤에서의 수업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도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쯧, 됐다. 알아서 하겠지…… 내일 수업 전까지 알아서 기어 들어와."

"아라써여!"

임시 외출증이라고 써져 있는 종이를 내미는 그.

나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어…….

그리고 그 모습을, 마침 이쪽으로 오던 한 생도가 목격했다.

그는 잠시간 얼빠진 소리를 내더니 이어 양대수 교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 생도와 교관간의 대화가 들려왔다.

―넌 안 돼 이 자식아.

―아니, 왜요? 왜 저는 안 되는데요?

……대충 저런 식인 거구나.

나는 그 교실을 향해 슬쩍 고개를 숙였다.

거, 조금만 수고해 주십쇼.

나는 교문 밖으로 나가, 지팡이를 불렀다.

이어 내가 있는 곳으로 저 멀리서부터 날아오는 지팡이.

항상 펜타곤 인근에 대기시켜 놓는지라 채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으쌰아."

나는 이어 지팡이에 올라탔고, 목적지를 지정했다.

마치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 같지만, 이 지팡이에는 에고(ego)가 없었다.

내가 자세한 좌표를 지정해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빨리 가는 고애오!"

정확히, 엘프들의 숲에 찍은 좌표.

지팡이는 그와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그곳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호에에에에에……."

그때 안면에 마주 불어오는 바람.

나는 순간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동시에 마력을 끌어 올렸다.

손을 타고 피어오른 마력의 막이 내 주위를 둘러싸며 이어 나 또한 균형을 찾았다.

"모하는 고애오……."

당연히, 방어막을 펼쳐야 하는데.

그 당연한 것도 순간 까먹어 버렸다.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꽤나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이유는…… 역시 이 불길한 예감 때문인가.

어제부터 계속해서 느껴지는 이 불길한 감각 때문에, 악몽까지 한 차례 꿔야만 했다.

역시, 안 되겠다.

나는 곧바로 지팡이 위에서 폰을 꺼냈다.

그리고 어디론가 연락을 걸었다.

"븝닝콜이애오!"

내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있게 해 줄 사람에게로.

*    *    *

다시 찾은 엘프들의 마을.

그곳은 여느때처럼 고요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조용하고 수수한 삶을 영위하는 종족이라고는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이렇게까지 고요하지 않다.

"다들 어디 갔나여……?"

여느 때와 달리 스산하게까지 느껴지는 숲을 지나, 마을 안으로 들어갔을때.

주변에는 그 아무도 없었다.

단지 엘프들뿐만 아니라, 흔히 날아다니던 풀벌레와 새들.

심지어는 정령들까지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듯했다.

어째서?

그런 의문이 마음 속에서 샘솟았다.

혹시 무슨 대규모 약탈 내지는 침략이라도 당한 건가…… 하고 생각하기에는 마을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그러했다면 한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일이니…….

정부 차원에서나 어디서건 모를 수가 없었다.

일단 엘프들의 마을이 위치해 있는 이곳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야 했을 테니까.

그 무력이 뛰어나진 않다고 하나, 그래도 장로들은 상위 히어로들과 비교에도 밀리지 않는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옵바야들…… 언냐야들……."

"븝미쟝이 온 고애오."

누구라도 있으면, 대답해 보세요.

아무리 외쳐 봐도 엘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스산한 기운만이 한층 더 강해질 뿐이었다.

진짜, 뭐 사고라도 났나?

생각나는것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혹시나 진짜 엘프들이 알에 관해 취급을 잘못해서 부화가 되어 버렸다든가…….

"그거는 안 대여!"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타국 영토에서 발생한 일임에도 동아시아 전체가 거대한 타격을 입었는데, 이 좁은 땅 안에서 악룡이 태어난다면…… 적어도 이 반도가 무사하지는 못할 터다.

나는 지팡이에 올라타, 마을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일단 평소에 가던 곳들부터 엘프들이 모이던 그 광장까지…….

한참을 둘러본 끝에, 나는 그나마 엘프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었다.

"머에여…… 무슨 일이에여……?"

세계수 인근에 위치한 그 넓은 공터.

그곳을 확인했을 때 나는 일단 최악의 가정 하나는 지울 수 있었다.

반으로 부서진 채 속이 텅 비어 버린 악룡의 알.

그것에 부화의 흔적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재료를 전부 가져오지 않았음에도, 엘프들끼리 봉인에 성공해 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주변에 숱하게 퍼져 있는 그을음과 마력의 흔적들이,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알려 주고 있다.

어디 뭐 폭탄이라도 터뜨린 줄 알겠네.

바람 녀석은 저 상황에 휩쓸려서 그렇게 된 거였나…….

"옵바야…… 언냐야……?"

하지만 여전히 의문 하나가 풀리지 않는다.

어디 집단으로 떼 몰살이라도 당했다면…… 시체라도 있겠지.

여전히 엘프들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이어지는 흔적도 없는지라 여기가 마지막 도착 지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텐데.

우웅…….

"호에?"

의문스러운 마음에 내가 발을 내딛던 때.

갑자기 내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파문을 일으킨다.

이건…… 왜곡(歪曲)인가?

순간 머릿속에서 번뜩 기억이 떠오른다.

분명 나는 이와 비슷한 현상을 게임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칠죄종(七罪宗).

그 각각의 죄를 담당하는 악마들 중, 교만의 마왕이 사용하는 주특기.

"말도 안 대여!"

제발, 지랄하지 마.

무슨 지금 시점에 교만의 마왕이 나와?

나는 왜곡된 공간을 탈출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것은 역부족이었다.

좌표 설정, 카르마디아. x: 216.000862 Y: 45.57001

공간 전이가 시작됩니다.

단지 눈 앞에, 이상한 문자들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어 세상이 뒤집혔다.

*    *    *

"최근 엘프들의 거주지로 알려진 강원도 인근의 한 산지에서 거대한 마력 방출이 감지되어, 정부 당국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이번 마력 방출의 크기는 일전에 있었던 대규모 포탈 발생 사건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엘프들이면 뭐, 관계도 없는 종족들인데…… 알아서 하던가 하겠지.

일리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아암……."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에는 일전에 봤던 엘프 히어로의 태도도 한 몫을 했다.

‘약소 종족 주제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던 그 엘프.

아마도 중상위권 히어로로 기억하는데…… 어쩌면 지금은 내가 더 강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꽤 강해졌구나.

"다나, 빨리 돌아와……."

지금 그녀의 신경은 모두 그쪽에 쏠려 있었다.

어째선지 자꾸만 불안감이 드는 하루.

빨리 다나가 돌아와야만이 이 감정이 해소될 것 같았다.

매일 오던 대로, 내일 아침이면 돌아와 있을까.

일리아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그래, 나보다 훨씬 강한 앤데.

보기에는 여려 보여도, 은근히 굳센면이 있는 친구이자 길드장인 다나를.

꽤나 신뢰하고 있었다.

"……그냥 잠이나 자자."

일리아는 그에 억지로 눈을 붙였다.

하지만 그 탓에 자신에게 온 한 통의 메시지를 곧장 받지 못했다.

[단체 예약 문자 발송 (이미지) 해당 좌표로 길드 전투조 모두 집합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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