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히어로판타지의 지구는 본래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마력이 생겨나고, 몬스터와 던전 그리고 필드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들이 진정되기 시작하던 어느 날.
타행성, ‘카르마디아’에서 왔다는 이종족들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본래 자신들의 행성에서 살던 그들은, 그 세계가 수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망가지고 나서 이주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이주라는 것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세계수를 통해서 왔느니 뭐니 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 밝혀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땅에서 솟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지구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아는 카르마디아에 대한 전부다.
“하와와…….”
그렇기에 내가 가지고 있던 카르마디아에 대한 이미지는 ‘중세 판타지’ 정도의 막연한 것뿐이었다.
한마디로 아예 모른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만 보더라도 그러했다.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원.
그것은 오로지 거석들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메마른 바람이 불어오고,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장소.
나는 이러한 곳을 알고 있다.
“하필 왜 사막인가여…….”
누가 봐도 지구의 사막과 같은 모양새였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더위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건조한 공기와 바람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다.
안 그래도 약한 호흡기 속에 모래 먼지들이 들이닥치자 숨이 턱턱 막힌다.
원래라면 주저 없이 마력을 사용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마나 씨…….”
몸 안의 마력을 대략적으로 확인해 본다.
그러자 그 결과는 상당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원래 내 마력은, 무슨 대양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적어도 커다란 호수 하나 정도라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그 호수의 바닥이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마력이 바짝 말라 있었다.
물론 그것으로도 지금 내 편의를 챙기기에는 충분하지만…… 혹여 뒤에 무슨 일이 터졌을 때 대처할 마력이 아쉽다.
그러니까 조금 불편해도 참고 견뎌야 했다.
코로 호흡하는 것을 그만두고, 입으로 조금씩 숨을 들이마셨다.
그 결과 모래바람이 들이닥치는 것을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었다.
“이게 모에여어…….”
도대체,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인지도 알기가 어려웠다.
여기가 진짜 카르마디아가 맞는가 하는 생각부터가 앞섰다.
그냥 눈 감았다가 뜨니 바로 다른 행성이더라.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행성 간의 텔레포트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인류는 우주 개발에 착수했을 것이었다.
최소한 규격 외의 존재로 통칭되는…….
그래, 신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행위인 것이다.
‘악마 따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힘이다.
종교에서 흔히 신에게 대적하는 대적자는 악마로서 그려지지만, 히어로판타지에서는 그러하지 않다.
신의 대적자는 오직 같은 신뿐.
그 격의 수준이 다른 악마가 신의 대적자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무엇인가.
혹시 마력으로 이루어진 가상현실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곳이 단순한 가상현실과는 다른 공간이라는 걸 체감할 수밖에 없다.
설사 정말 그렇다고 해도 지금 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 테고…….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가 점점 강해진다.
시계가 없으니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기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한낮이 된 모양이었다.
“헤으응…… 헤엥…….”
어느새 내 호흡기관에 파고들던 그 모래바람은 멈췄다.
하지만 작열하는 태양 빛이 신체 기능을 저하시키기 시작했다.
내 기본 신체 능력이 더 저하되었다면…… 대충 어느 상태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이럴 때, 지팡이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뭘 이동시킬 거면 물건도 같이 보내 줬으면 좀 좋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며, 나는 시스템 창을 열었다.
카르마디아의 주민과 조우하라
제한시간 - 12시간
성공 시 - (???)
실패 시 - (???)
그곳에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던 퀘스트가 떠 있었다.
이쪽으로 이동하며 받은 퀘스트인데, 나는 이것을 보고 이번 일의 주동자가 교만의 마왕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퀘스트라는 건 내가 메인 스토리에 편입될 때 주로 떠오른다.
그것이 명시되었다는 게 아니라, 지금껏 경험한 바로는 그러했다.
카르마디아는 당연하지만 메인 스토리에 해당하지 않는다.
내가 모르는 장소라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다.
적어도 게임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내가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지언정 지금과 같은 상황에는 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소 이외의 다른 요소가 개입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교만의 마왕 이외의 다른 것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딨는 고애오…….”
내 이 말은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나는 교만의 마왕이 어디 있냐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카르마디아의 주민이 어디 있냐는 뜻이었다.
지금 당장에 나는 수 시간 이내로 퍼질러질 것이 분명했다.
사실 지금도, 손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마구 떨리고 있다.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미 쓰러질 만한 몸 상태인 것이다.
어떻게든 퀘스트 보상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희망은 그뿐이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그 희망의 불씨는 점점 꺼져 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 너른 황야에 누가 산다는 것인가.
적어도 사람이 살 만한 지형이 나와야만 주민들을 조우할 수 있을 텐데…… 이놈의 사막은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 너머 저 끝까지 모두 사막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터억.
“호엑!”
그때, 나는 무언가 발끝에 채는 감각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돌부리에라도 걸린 건지 발에 억제력이 강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케헤윽…… 푸하…….”
모랫바닥에 처박은 얼굴을 들고 모래를 뱉어 냈다.
입안에서 꺼끌꺼끌한 감각이 가시질 않아, 연거푸 침을 뱉어대자 입안이 바싹 마른다.
이거…… 침도 함부로 뱉으면 안 되겠는데.
그런 생각에 쓰게 웃고 있던 그때였다.
으으.
“호에?”
내가 조금 전에 걸려 넘어졌던 지점.
야트막한 모래언덕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이어 자세히 그곳을 살펴보니…… 도저히 바위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것은 분명 사람…….
아니 사람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인간과 닮은 이종족의 손이었다.
“꺼, 꺼내 주는 고애오!”
이게 무슨 일이래.
나는 아직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잔잔하게 떨리는 손끝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전력을 다해 모래를 퍼내기 시작했다.
* * *
“아직 몇 명 안 왔나? 도대체 걔네들은 뭐 하는 거야?”
“나라고 알겠냐…… 뭐 자기들 알아서 하겠지. 솔직히 이번에는 미리 얘기했던 것도 아니니까 바로바로 안 모일 수도 있잖냐.”
“그게 맘에 안 든다는 거야. 우리 길마 외견이 만만해 보인다고 그것들이…….”
“……미안한데, 만만해 보여서 늦은 건 아니거든.”
한편 패스파인더 길드원들은, 엘프들의 마을 입구에 모여있었다.
그것은 다나가 혹여 무슨 일이 일어날까 봐, 미리 뿌려 두었던 예약 문자 때문이었다.
즉시 집결해 달라는 요청에 거의 대부분의 길드원들이 한달음에 달려왔으나…… 오지 않은 이들도 몇몇 있었다.
“그럼 뭐 하느라 늦었는데?”
“사, 사생활이라는 게 있잖아…… 나도 지금 오면 안 되는 상황인데. 아, 진짜.”
“킁…… 흐음…… 너 향수 뿌렸냐?”
“뭐, 뭐. 뿌리면 안 되냐?”
그 이유는 대략적으로 짐작이 되는 부분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뿌리지도 않던 향수를 잔뜩 뿌리고 나타난 강훈.
그것만 보더라도 아마 개인적인 시간을 한창 보내고 있던 와중인 것 같았다.
“에이 씨, 잘돼가고 있었는데…….”
“잘되고 나발이고…… 뭐, 그러면 지금 올 사람은 거의 다 오긴 한 건가?”
“네. 애들이야 펜타곤 때문에 못 온다니까 어쩔 수 없죵.”
헤헤, 하고 웃으며 말하는 길드원을 보며 전투조 부장인 강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훈 등과 함께 초기에 영입된 멤버인 탓도 컸지만, 기존에 타 길드에서도 전투조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던지라 그리 발탁되었다.
그런 만큼 그녀는 지금 굉장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전에 맡았던 전투조도 물론 전투조이지만…… 지금과 같은 화려한 구성이 아니었다.
적어도 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의 인물들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그녀와 대등하거나 되레 뛰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일단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지.”
“맞아. 언제까지고 죽치고 있을 순 없잖아.”
강혜원의 말에 길드원들이 동조한다.
그들의 길드장은 두 시간 전에 보낸 문자 이후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자율적으로 무언가 움직임을 취해야만 했다.
혹여 그 신변에 무슨 문제가 생긴 상황이라면 더더욱 빨리 움직여야만 했고.
“근데…… 이거 열 수 있는 사람 있나?”
그때 한 길드원이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사실, 지금 이들은 안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못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엘프들의 마을 외곽에 쳐 있는 방어막.
그것은 최소한 현재 마법으로는 정점의 도달해 있다는 녹색 마탑의 탑주 정도는 데려와야 해제가 가능하다는 게 정론이었다.
“근데 뭐, 평소보다 많이 약해져 있다면서…… 그러면 열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런 얘기가 있기는 했지만, 강도로만 보면 그렇게 차이가 나는 거 같지도 않은데.”
텅, 텅.
방어막의 외곽을 툭툭 두들기는 한 길드원.
그녀는 숙숙 튕겨져 나오는 그 반발력이 신기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곤 연달아 그것을 두들겼다.
통, 통, 통, 통.
“야, 그만해! 뭐, 장난하러 왔……?”
무의미해 보이던 그 행동의 반복.
그에 핀잔을 주려던 강혜원은 이어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쩌저저적.
분명 멀쩡해 보였던 방어막이, 천천히 깨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작은 균열부터 시작하여 점차 퍼져 나간 거대한 금들.
그것은 이내 방어막 전체로 퍼져나가 마침내 깨지는 효과를 불러왔다.
“오마낭……?”
그 상황을 일으킨 장본인조차, 당황스러워하는 광경.
그녀는 심각하게 자신의 오른손을 보며 고민했다.
혹시…… 내 오른손에 지금까지는 몰랐던 거대한 힘이 봉인되어 있던 것인가?
사실 나는 주술사가 아니라 무투가의 길을 걸었어야 했던 건가…….
그런 심대한 고민을 하는 그녀였지만, 사실 이 현상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성공 보상 - 외부 인원들의 카르마디아 출입 허용
외부의 힘이 아닌, 내부의 균열로 인해 깨진 결계
그것은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