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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62화 (162/172)

#162화.

아껴 뒀던 마력들까지 동원한 결과, 나는 모래 더미를 파헤칠 수 있었다.

이어 그 안에 있던 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호에에.”

역시나 그 정체는 사람이 아니었다.

특징적인 그 신체 부위의 모습으로 보아 아무래도 엘프인 것 같았다.

딱히 신체 부위를 보지 않더라도 그 미형의 외모만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카르마디아의 주민과 조우하라

남은 제한시간: 08:12:07

결과 - 성공

잔여 시간과 결과에 따른 보상이 정산됩니다!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빛무리들이 떠올라 내 몸을 감싼다.

“이건…….”

마력을 동원해서라도, 빠르게 모래를 파헤친 것이 맞는 판단이었다는 증거였다.

내가 빙의하고 난 이후에는 보지 못했지만, 게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던 광경.

마력과 체력이 시스템에 의해 전체 회복될 때 나타나는 이펙트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들했던 몸에 힘이 차오른다.

반쯤 익어 가던 살갗에 따끔할 정도로 시원한 냉기가 퍼져 나가고, 어질어질하던 머리 또한 원래대로 돌아간다.

“하와와와…….”

후우…… 덤벼.

조금 전까지 제발 몬스터는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빌었으면서, 지금은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사실 어쩔 수 없긴 하다.

마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내 전투력은 코끼리와 개미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하니까.

그렇게 몇 차례 내 몸을 돌던 빛무리는, 주변으로 응집되더니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기다랗게 뻗어 있는 나무 재질의 그것은 내가 아까까지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호에에에! 반가운 고애오!”

위그드라실의 가지로 만든 지팡이.

가상현실 속에 복제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이쪽에 전이된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명확하지 않았지만, 성능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지팡이까지 손에 쥐고 나니, 진정으로 누구든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차오른다.

물론 지금에서야 그런 자신감은 쓸모없는 것이었지만…….

모래 더미에서 빠져나오긴 했으나 여전히 의식이 없는 엘프 소년.

나는 그에게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마나 씨!”

지팡이를 매개로 해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

그것은 소년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잠시 뒤 희미했던 그 생체반응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한다.

“쿨럭!”

“호에에에, 효과 븝대로인 고애오!”

모래 먼지를 뱉어 내며 자리에서 의식을 되찾는 소년.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몽롱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아, 악마!”

“호에에?”

아니, 무슨…….

물에 빠진 사람, 아니 모래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악마 같은 소리를 해?

어이가 없어 입꼬리를 뒤트니 그것이 더욱 두려웠던 모양이다.

“사, 살려 주세요! 저는 본디 말라서 먹을 것도 없습니다!”

“안 먹어여……!”

“그럼 그냥 죽인다는……?”

“안 죽인다구여!”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만들겠단……?”

“아니라고 말했잖아여!”

재차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데에 지쳐 성질을 부리니 아예 나를 쳐다보지도 못한다.

다시 모래 속으로 파고 들어갈 기세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는 모습.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하는 옵바야애오?”

모래 속에 갇혀 있던 충격 때문에 정신에 이상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 상념을 떠올리던 때, 어디선가 마력이 느껴졌다.

그 수준만 보면 위협적이지는 않으나, 상당한 적의를 내뿜고 있는 마력.

몬스터 같지는 않은데…… 왜 그런 거지?

이어 그 마력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나는 이마를 한 차례 더 짚을 수밖에 없었다.

“악마가 저기 있다!”

“미친, 함밀을 잡아먹으려고 하고 있어!”

아니라고 이 시발.

*    *    *

카르마디아에 대한 이야기는 앞서 말했지만, 나도 잘 모른다.

게임 속에서 언급되지 않은 지역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냥 인간이 제일 하위 종족이며 다른 이종족들이 많이 살아가는 통념상의 판타지 세계관이라는 정도.

그게 내가 아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사막 지역에서 유목하며 살아가는 엘프들과 같은…… 이질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도…… 착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에여, 괜차나여…….”

그 사막 지역 엘프 부족의 장로 하나가 내게 고개를 숙인다.

아까 전 나를 악마라고 부르며 위그드라실을 찾던 엘프들 중 한 명이 바로 그였으니까.

다행히 나는 그에 대해 해명을 할 수 있었다.

물론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한 것은 아니고, 단 하나의 징표를 통해 해명할 수 있었다.

전투 상황 때 내가 불러낸 사대 정령들.

개중 바람은…… 아직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지 응답하지 않았지만.

어쨌건 녀석을 제외한 셋이 나타나는 순간 엘프들의 적의가 사라졌다.

기초적인 상식 중 하나.

악마는 물론이고 마족 혹은 마인들은 마계 생물 이외의 소환체를 가질 수 없다.

그에 엘프들이 의심을 거둔 것이었다.

“외모가 워낙 비슷하셔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얼굴도 아니다 보니,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은인을 오해하다니…….”

“그만해도 대는 고애오, 옵바야.”

처음에는 상당히 황당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그들로서도 나를 오인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더란다.

얼마 전에 흑마력을 사용하는 이 하나가 자신을 악마라고 지칭하며 인근의 사막 부족들을 차례로 멸절시켰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외모를 기억하여 몽타주를 그렸다는데, 그것이 나와 너무나도 똑 닮았단다.

실제로 그 그림을 본 결과…… 나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특징적인 요소들 하나하나가 나와 완전히 똑같이 닮아 있었으니까.

“교만…… 인가여.”

나는 엘프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교만의 마왕이 벌인 짓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어떤 악의를 지닌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공간으로 나를 납치한 이후 타살하려는 계략을 펼친 것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렇다면 엘프들은?

이곳, 그러니까 내 주변에 있는 엘프들이 아닌 실제로 현실에 존재했다가 교만의 마왕이 가상현실로 끌고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엘프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혹여 이미 마왕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나는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엄청나게 큰 전력은 아니지만, 어쨌건 앞으로 있을 싸움에 상당한 부분을 일임해 줄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내게도 큰 부담이었다.

“다 왔습니다. 저기가 저희 부족들이 생활하는 곳입니다.”

내가 구한 그 엘프 소년.

녀석은 알고 보니 이곳 부족장의 외아들이라고 한다.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모래 폭풍에 휘말려 날아갔는데, 내가 우연히 발견해서 구해 준 것이란다.

그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부모님의 원수를 쳐다보는 듯, 살벌했던 엘프들의 눈길이 너무나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 극명한 변화에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나는 교만의 마왕으로 추정되는 그놈의 패악질이 상당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내가 구해 준 부족장의 외아들이 상당히 중요한 녀석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도 같이 가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오해한 부분에 대해 사과드리고 감사를 드릴 시간은 필요하니까요.”

“악마일 수도 있는데?”

“아니란 걸 아까 보시지 않았습니까.”

……영 싸가지가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나는 삐딱한 녀석의 태도에 슬쩍 그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식겁하며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정정한다. 싸가지가 없는 것에 더해 심약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였다. 이놈은.

그 철없는 소년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엘프들은 내게 은근한 기대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으나 내가 순간적으로 끌어 올린 마력의 양을 모두 본 탓이었다.

실제로 이 엘프들과 내가 싸웠으면…… 5 대 5 정도의 승률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동급이나 그 이상의 강자를 상대로는 그리 강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상대하지 못하는, 다수의 약자들을 상대로는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할 수 있다.

대체로 마법사들이 그런 경향이 강하기도 하지만 나는 개중에서도 심한 편이었다.

약자멸시라고 해야 할까.

내가 독학한 학파가 애초부터 그쪽에 쏠려 있었던 탓이 아마도 클 것이었다.

불사신선 폼으로 변하면 그런 경향이 완전히 반대되긴 하지만…….

내 개인의 힘을 그렇게 시험해야 할 만한 상황이 잘 나오진 않았다.

“마음껏, 몇 달이고 쉬고 가셔도 괜찮습니다.”

물론 엘프들로서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알았다 하더라도 지금과 별반 다를 것 같지는 않지만.

이들은 지금 내가 오래간 마을에 머물러 주길 바라고 있었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들을 도와주길 바라면서.

물론 몇 달이고 그런 오랜 시간 동안 여기에 죽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법을 알아내는 것이 내 목적이었다.

“고마오요!”

하지만 그런 내색이야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떠나기 전까지 대접은 제대로 받아야지.

이들에게는 물어볼 것이 정말, 정말 많았으니까.

“흐억! 저기, 저기 봐.”

“뭐야? 저 얼굴은…… 그 악마 아니야?”

마을 내부로 들어가지 예의 악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다음이다 보니 그다지 별생각이 없었으나, 옆에서 엘프 소년이 깝죽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거, 보라니까. 마을 엘프들도 불안해하는데…….”

“다들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굳이?”

좀 닥치면 좋겠는데.

장로는 나와 그 소년에게 시선을 돌려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마음 같아서야 한 대 패고 싶은데…… 그랬다간 지금 이 우호적인 분위기도 깨어질 수 있었으니 참았다.

“마나 씨.”

대신, 나는 자그맣게 속삭이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그 마력에 의지를 담았다.

저거 좀 닥치게 해 줘.

“으븝……?”

내 의지를 담은 마력은 그를 착실하게 수행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입이 완전히 틀어막힌다.

“으브읍? 으브브븝!”

“……조용히도 해 주세여.”

대충 눈치 좀 채라.

입이 틀어막히니 더 발광을 하는 녀석의 주위로 음막을 쳤다.

이제는 그 으브븝, 하는 소리도 밖으로 퍼져 나오지 않는다.

“하와와와…….”

조용하니 좋네.

나는 엘프들의 걸음 속도에 맞춘 지팡이에 누워, 잠시간 고요를 즐겼다.

*    *    *

한 편 일리아들은 아카데미 내에 모여 문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학년들에겐 초회 문자가 날아가지 않았으나, 타 길드원들과 2학년 생도들의 눈치를 보며 알아서 회동에 참여했다.

“무슨 일일까요? 저희는 문자가 오지도 않았는데…….”

“너희는 전투조가 아니니까 그렇지. 무슨 15등급 괴수도 허덕거리는 녀석들이…….”

“……힝.”

상처받았다는 듯 찌그러지는 1학년 생도를 무시한 채 이어지는 대화.

하지만 그 해답은 딱히 나오지 않았다.

펜타곤에서는 이렇게 길드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상당히 단호한 편이었으니까.

“왜 연락이 안 오는 거야.”

연락이 오지 않는 다른 길드원들에 대해, 괜히 원망을 하는 일리아.

결국, 그들은 상당히 온건한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주말이 되고, 펜타곤 밖으로 나가게 되면 그때 좌표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찾아가 보기로.

물론 그 과정에서 1학년 생도들은 다시 한 번 배제되었다.

“너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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