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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64화 (164/172)

#164화.

성벽 아래에는 사막 몬스터들의 시체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다리와 팔 하나씩이 잔뜩 익어 버린 채로 날아간 그 시체의 모습을 나는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호에에에…….”

다만 병사들은 넋이 나간 듯 멍청하게 성벽 아래만 바라보고 있었다.

개중 정신을 차린 이들은 그 시체들을 수습하기 위해 뛰쳐나갔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무얼 하는 건가!

그 분위기를 깨트린 것은 귀가 쟁쟁하도록 울리는 경비대장의 목소리.

마력이 담긴 그 함성은 병사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고, 이내 제국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살아남은 몬스터들을 처치해 냈다.

“……자네는 누군가?”

그 모습을 잠시간 구경하고 있으니, 경비대장이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경계심이 드는 모양인지 긴장을 빼지 않을 채였다.

만약에 내가 조금만이라도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대로 칼이 날아오겠지.

그런다고 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기서 그런 식으로 나갈 필요는 없겠지.

“븝미쟝이애오!”

“븝…… 그게 뭔가?”

“……마탑 소속 외부 마븝사인 고애오.”

“아, 그렇군……요?”

경비대장의 말투가 순간 존대로 바뀐다.

마탑 소속의 외부 마법사.

외부와 소속이라는 말이 일견 어울리지 않을 수 있으나, 해당 마탑에서 길러 내지 않았으나 그곳에 소속된 이들을 모두 일컬어 외부 마법사라고 한다.

비교적 제국 마탑 같은 곳들은 외부 마법사들보단 자신들이 길러 낸 이들을 더 위로 쳐주지만…… 그것도 정도란 게 있는 법이다.

이쪽 세계는 엄밀히 지구보다 로우 파워(low power)세계관이다.

몇몇 강자들은 지구의 최강자들보다 강할지 모르나, 전체적인 무력 수준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그런 곳에서 나 정도의 힘이라면…… 적어도 어디가서 꿀리지는 않을 정도였다.

이런 변방 도시의 경비대장이 반말을 할 상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수도에서 파견되어 오신 겁니까? 공문을 받지 못 했는데…….”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던 고애오.”

“……아하! 그렇군요. 저희 입장에서는 천운이었습니다.”

약간의 의심이 묻어 나오는 말에, 패를 꺼내어 보여 주자 얼굴에서 완벽하게 의문이 가신다.

“마법사님이 아니셨더라면 화를 면치 못했을 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호에에에, 븝미쟝. 조금 븝끄러운 고애오…….”

면전에 대고 아부를 떠니,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는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아래의 상황을 다시금 살펴봤다.

용케도 피했는지, 아니면 중심에서 벗어난것인지.

비교적 건재한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있는 병사들.

나는 그들의 수준을 대략적으로 가늠해 봤다.

저 정도면…… 지구 히어로 기준으로 대충 중하위?

아니, 그거보다 더 약한 것 같은데.

사막 몬스터들의 평균 등급은 17~20등급 정도인 것으로 보아 정면으로 붙었다면 이쪽이 떡이 됐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헤헤…….”

아까 전, 그 사자후를 지를 때의 위엄은 어디 가고 그저 비굴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경비대장.

그래도 대충 느낌을 보니 악인은 아닌 것 같은데…….

환상 속이라지만 실제 있던 인물을 구현한 것이다 보니 동정심이 들었다.

이런 곳에 있다 보면 정말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갈 텐데.

“하와와…….”

에휴.

나는 경비대장이 저렇게 구는 이유가 대강 뭔지 알고 있었다.

어쨌든 몬스터의 부산물은 이곳에서도, 아니 이곳에서 더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었다.

원래라면 다 자기들이 막아 내었을 테니 그 몫도 본인들 것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지 않은가.

아무래도 경비대장은 그것이 심려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다 내놓으라면 꼼짝없이 다 줘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저…… 마법사님?”

그 어색한 호칭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너네 다 해라.

어차피 난 따로 챙길 곳이 있으니까.

제국의 도시 하나를 지켜 내었습니다!

보상 목록

1. bp 5000

2. 소유하고 있던 아이템 중 택 1

3. 전체 회복 및 마력 +1

*    *    *

공적치를 채워 제국 수도로부터 서신을 받으십시오.

공적치 454/3000

눈 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보고,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불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당장 막막했던 찰나에 직관적인 목표가 세워지니 안심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까 전의 그 일이 ‘454’밖에 안 되는 일이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 이런 공성전을 6번 정도는 더 치뤄야 한다는 뜻 아닌가.

물론 다른 방법으로도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겠지만, 그편이 가장 빠를 것이었다.

‘최근에 몬스터들이 난립하는 지역이 많아졌습니다. 저희도 그렇지만…… 아마 변방의 영지들은 다들 같은 현상을 겪고 있지 않을까 싶군요.’

경비대장이 해 준 말에 따르자면 그러했다.

당장에 엘프들의 흔적에 대한 단서도, 다른 무엇을 할 근거도 없으니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쪽 방향인가여…….”

경비대장이 준 나침반과 지도.

나는 그것을 이용해 다음 목적지인 도시로 날아갔다.

지팡이의 속도로도 대략 6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도 했다.

그래도 사나흘 정도 걸리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려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호에에? 여긴 어디애오……?”

그 생각이 깨진 건 대략 4~5시간 뒤.

도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지역에 도착한 뒤, 내가 지도를 잘못 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    *    *

한편 마을에서 같은 현상을 겪은 뒤 공간 이동을 하게 된 패스파인더 길드원들.

그들은 칼바람이 불어오는 북쪽 지역에 떨어진 상태였는데, 비교적 다나의 처음보다는 상태가 훨씬 나았다.

순간 이동에 대해 유난히 내성이 없는 한 길드원들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력이 충분히 남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딱딱딱딱.

물론 비교적 상황이 낫다는 것이지,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연신 이를 부딪치며 온몸을 떨고 있는 예의 그 길드원.

하지만 일행들은 그녀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마법사가 한 명도 없지?”

“우리 공대 마법사 길드장 하나잖아, 원래.”

단순히 저체온증이었다면 사제가 치료해 줄 수 있었을 터다.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 마력을 이용해 온기를 전해 주면 그만이었을 테고.

하지만 지금 불어오는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음의 마력이 섞여 있는 바람.

그것이 마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의 체력을 서서히 갉아먹고 있었다.

“하아…… 답이 없네.”

마력이 온전한 이들에게는 별것 아니었다.

이런 바람 정도야 그저 저항해 버리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타인을 보호해 줄 방법이 전무했다.

대부분 근접 계열 히어로들, 그렇지 않더라도 주술사와 사제가 나머지 인원이었는데 주술사는 지금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였고, 사제는 전투 계열이었다.

“……다른 축복도 미리미리 익혀 둘 걸 그랬어요.”

울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사제, 나엘.

그의 등을 강혜원이 툭툭 두드렸다.

“이게 네 잘못인 것도 아니고. 표정 풀어.”

“하지만…….”

새파랗게 질린 표정의 길드원을 바라보며, 나엘은 고개를 떨궜다.

막상 도와줘야 할 사람을 돕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처음부터 이런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길드원 또한, 근접계열 히어로였으므로 기본 체력으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설원 속에서 헤맨 지도 벌써 체감상 반나절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어떻게든 걸음을 옮기고는 있으나, 체력에 한계가 올 수밖에는 없었다.

“놔두고…… 가…….”

“지랄.”

희미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를 보며, 강훈은 욕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그녀의 몸에 덮었다.

어차피 그에게는 입으나 안 입으나 차이가 거의 없었으니까.

푹 하고 덮이는 천의 느낌에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혹시 그 모습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일까.

“할배 냄새나…….”

“시발련이?”

강훈은 순간 덮어 준 옷을 다시 입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너무 좀생이 같아 보일까,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도대체 주민이 살기는 하는 거야?”

길드원 중 한 명의 의문스러운 외침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급작스럽게 눈앞에 떠오른 이상한 문자열.

그것에 따라 이 지역의 주민을 찾으려 돌아다니고는 있으나, 그 모습이 영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여기서 다 얼어 죽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그들을 잠식하고 있던 때였다.

“어, 저기!”

현재 길드원들 중 유일한 사수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그와 동시에 다들 그 방향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희미한 지평선뿐이었다.

“어…… 어?”

그러나 순간 불어오던 눈보라가 조금씩 잦아들었을 때.

다른 이들의 눈에도 사수가 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발, 저건 뭐야!”

물론 그것이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것 또한 같은 시점이었다.

꾸어어엉!

예티(YETI)

거대한 몸집을 가진, 설원에 사는 유인원.

물론 지구에도 존재하나 극지방 혹은 산 정상에서만 사는지라 흔히 만나 보지 못하는 몬스터.

그것이 지금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물론 그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놈들이었다.

해 봐야 8~10등급 정도의 전력밖에 되지 못하는 몬스터니까.

하지만 그 수가 얼핏 봐도 서른은 넘어 보였고, 이쪽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었다.

“저것도…… 주민으로 쳐주지는 않겠지?”

“그러면 정말 좋았겠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여전히 변하지 않은 문구를 쳐다보며 헛웃음을 흘리는 강혜원.

그녀는 조용히 손을 올렸고, 그 뜻을 알아들은 길드원들은 하나같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눈을 파헤치며 달려오는 예티들.

놈들을 향해 길드원들의 첫 공격이 시작되려던 때였다.

우와아아아아!

“엉?”

“에에……?”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무리의 함성.

길드원들은 그에 예티들이 달려들던 목표물이 자신들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저기로, 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짐승의 털가죽을 몸에 두른 무리들.

야만인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법한 차림새의 무리로 예티들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이어 야만인들과 예티들이 서로 얽혀 피 튀기는 싸움을 시작했고, 길드원들은 그저 멍하니 그 광경을 구경했다.

카르마디아의 주민을 발견하셨습니다!

북방 세력 ???과 합심하여 예티를 무찌르십시오!

그들이 정신을 차린것은 새로운 메시지가 눈 앞에 나타난 직후였다.

강혜원은 겨우 정신을 다잡고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 사람들부터 도와야겠는데.”

콰지지직!

그 순간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하늘로 솟아오르는 예티의 머리.

강혜원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우리 없어도 이길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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