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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븝미쟝이 되었다-168화 (168/172)

#168화. 전쟁은 납바요……

트롤든 부족의 장, 그는 이따금 종족이 제국으로부터 쫓겨나던 날을 떠올렸다.

단지 그 특성이 일부 몬스터와 닮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디찬 북방의 땅으로 쫓겨나던 그 날.

그는 복수를 다짐했다.

언젠간, 빌어먹을 제국을 부숴버리고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겠다고.

그리고 자신들을 내쫓았던 이들을 반대의 입장으로 만들어주겠다고.

그것은 단지 그 개인만의 생각이 아니오, 종족 전체의 사명과도 같았다.

그들과 같은 취급은 아니었으나, 역시나 소외받던 종족들 또한 그들과 함께하기로 이미 약속이 되어 있었다.

트롤든 종족 전체와 인간, 그리고 드워프들의 일부.

그렇게 모인 세력은 물론 제국보다는 뒤떨어지지만, 기회를 잘 노린다면 거사가 성공할법한 전력이었다.

숨죽여 그 시일만을 노리고 있던 날들의 연속.

최근, 그는 그 시간이 도래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제국 전역에서 몬스터들이 창궐했다는 소식이…….’

‘자신을 악마라고 칭하는 의문의 괴한이 일부 도시를 붕괴시켰다고…….’

최근 제국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상 현상.

그에 제국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더 기다려봤자, 지금보다 좋은 시기는 나타나지 않는다.

마침 이쪽 상황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니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결국 연합세력은 지금으로부터 3주 뒤를 거사 일로 정했고, 그는 그 시일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어느 쪽이건 결과가 나오게 될 것이었으니까.

오랜 염원이 빛을 볼 것인가, 아니면 처참하게 패망해 제국의 역사서 속 한 줄의 문장으로서 마지막을 맞이할까…….

“호에에에…….”

그런 상념들을 하던 족장의 머릿속에, 하이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순간 흐트러진 정신에 다시금 평정을 유지하려던 때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온다.

“옵바야들!”

“허어.”

자꾸만 이렇게 생각을 방해하는 이가 누구일까.

그것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특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최근에 길을 잃었다며, 족장이 이끄는 부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인간들.

그들을 찾아온 한 인간 여자애가 바로 이 목소리의 주인이었다.

족장은 탄식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 무위로 보나 무엇이나, 상당히 쓸만하다고 생각하여 받아 주었으나…… 정신이 사나워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제발, 조용히 좀 해 줬으면 좋겠네.

그 말을 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가는 트롤든 족장의 얼굴에, 뭔가가 날아왔다

퍽!

안면과 부딪히며 나는 둔탁한 소리.

그에, 시끄럽던 바깥의 소리가 뚝 하고 멎는다.

“호에에에……?”

“야, 어떤 놈이…….”

개중 몇몇은 심하게 당황하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는데, 그들의 손에는 남들의 것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눈덩이가 손에 들려 있었다.

이들은 눈싸움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물론 일견 그들이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이유는 없어 보였다.

눈덩이를 얼굴에 맞췄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실수였고 족장은 그래도 꽤나 너그러운 쪽에 속했으니.

“……어떤 놈이 돌 넣었어?”

하지만, 족장의 얼굴에 날아간 눈덩이는 그냥 눈덩이가 아니었다.

후웅.

한차례 바람이 불고 난 뒤, 흩어진 눈덩이 사이에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것은 상당히 각이 져 있는 돌멩이.

“꿀꺽.”

아마도 그것을 넣은 장본인인 모양인지, 침을 삼키는 한 트롤든.

그 모습에, 어느새 그와 친해져 있던 패스파인더 길드원 중 하나가 핀잔을 줬다.

“차라리 칼을 던져라, 미친 새끼야.”

그날, 트롤든 제 3부족은 뒤집혔고.

눈싸움에서 돌을 넣고 술수를 썼던 트롤든 부족원은 밤새 설원 위에서 하룻밤을 지내야만 했다.

*    *    *

삼 주라…….

나는 트롤든 부족으로부터 그들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제국에서 이른바 하위 종족이라고 멸시받던 이들끼리 뭉쳐, 제국을 치러 간다는 이야기.

충분히 예상할법도 한 이야기였지만, 동시에 나는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적어도 그 계획의 실행자들 외에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

그것을 우리에게 굳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었다.

설마, 그동안 우리를 억류해 두겠다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건 반절만 맞는 이야기였다.

“허심탄회하게 말하겠소. 도와주시오.”

“호에에에?”

그 이야기 이후, 고개를 숙이는 족장의 모습에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어제만 해도 눈덩이에 맞고 길길이 날뛰는 모습을 봤던지라 그 괴리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물론 맨입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오. 충분한 대가를 줄 것이니, 부디 도와주시오!”

연거푸 내게 부탁을 하는 족장.

나는 그에게 딱 잘라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과거의 환상이라고는 하나, 어쨌건 내 눈앞에서는 그가 이곳에서나마 실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으니까.

사실 이런 부탁이 아니라, 반 협박조로 얘기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내게는 상당히 당황스럽기까지 한 태도였다.

“븝미쟝은…… 할 일이 있는 고애오…….”

“할 일이라, 다른 일행들은 어떻습니까?

“옵바 언냐야 들은…… 없기는 해여…….”

사실 엘프들을 찾는 데에 패스파인더 길드원들의 도움은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내가 남부까지 날아가는 속도를 따라올 만한 사람도 없었고…….

대부분이 육체계열 특성을 갖고 있는 이들인지라, 이동수단이라 하면 뛰는 것밖에는 없었는데 아무리 잘 뛴다고 해 봤자 지팡이의 속도를 따라오기엔 무리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길드원들을 전쟁에 참가시킬 생각도 없었지만.

일단 그들이 내가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맞았다.

“그럼…… 일행분들이라도 남게 해 주시죠. 대가는 그대로 드리겠습니다.”

“그거는여…… 어…….”

물론 거절할 이유야 많다.

일단 가장 큰 이유만 생각해 봐도, 그냥 위험하니까.

이곳이 가상으로 구현된 세계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죽으면 진짜로 죽는다.

물론 이곳의 평균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 사서 사지에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무사하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거기에 나만 빼놓고 나머지 길드원들끼리 활동하는 것도 좀 그렇고…….

“이거는여, 근데…… 옵바 언냐야 들 말을 들어봐야 할 것 가타여.”

그렇기에 최대한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밝혔다.

무슨 머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길드원들이 나서서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할 리가 없으니까.

“아, 그런 문제라면…… 이미 저희가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들 머리에 총 한 대씩을 맞은 모양이었다.

“당신만 괜찮다면 전쟁에 참여해도 된다더군요.”

“호에에에……? 븝짓말 아니구여?”

“네, 당장 가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이 사람들, 미친 거 아니야?

나는 순간 당황스러운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가서 확인하고 오실 건가요?”

“아, 아니여…… 그래서 일어난 건 아니구여…….”

슬쩍, 다시 자리에 앉으니 족장의 얼굴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보며 길드원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을 한 건지, 잠시간 고민했다.

진짜로 머리에 나사가 하나씩 빠진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잠시 이 트롤든들이랑 지내는 동안 정이라도 든 건가?

생각해 보니, 그새 경비대장이니 단원이니 직함씩을 하나씩 달게 된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았다.

“하와와와와…….”

어쩐지, 어제 어색하게 나를 쳐다보더라니.

무언가 머뭇거리던 길드원들의 모습이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 허락만 내려 주신다면 말씀드렸던 대로 이행하도록 하지요.”

“……잠시만여. 생각할 시간을 주는 고애오.”

정말 이게 맞나?

사실 깊게 생각하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긴 했다.

삼 주라는 시간은 사실 내 상정 내였으니까.

내가 엘프들을 찾고, 이곳을 빠져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었다.

사실 잘만 된다면 3주가 아닌 3일 만에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기 전에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되는 게 아닌가.

이 트롤든 부족, 아니 단지 이 부족뿐만이 아니라 전체 종족의 호의와 도움만을 받고,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였다.

다만 내가 고민하는 것은 만에 하나의 경우.

3주가 흐른 뒤에도 이곳을 나가지 못하는 경우인데…….

그 경우에도 사실 길드원들이 다치거나 죽을 확률은 굉장히 적었다.

……내가 너무 전쟁이라는 단어에만 정신이 홀렸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나쁠 것이 없어 보였다.

되려 거절한다면 이들에게 빈축을 사게 될 뿐이니.

“아랏서여…… 그렇게 해여!”

“정말입니까?”

화색이 만연해지는 족장의 얼굴에, 되려 내가 미안했다.

이득만 쪽 빨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생각인데. 이쪽은.

“대신에여, 뭐 좀 알려 주는 고애오…….”

“뭘 말인가요? 저희가 아는 거라면 뭐든 알려 드리겠습니다.”

가슴을 치며 장담을 하는 그의 모습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들은 족장은 순식간에 얼굴 표정을 바꿨다.

“어…… 음…….”

매우 불편하다는듯이.

*    *    *

“어…… 죄송합니다. 그냥 저희는 별 생각 없이 했던 얘기들인데.”

“그러며는 생각 없이 결정을 했다구여?”

“아니, 그건 아니고요.”

평소에, 그냥 다나 다나 하며 반말을 하던 길드원들이 다들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진지하게 나오니 다들 심각성을 느낀 모양이었다.

물론 개중에서도 뒤에서 실실 웃고 있는 초기 멤버들이 눈에 들어오긴 하는데…… 저 사람들이야 내가 뭐라고 해도 의미가 없을 테고.

사실 내가 그리 화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길드원들은 굉장히 납작 엎드렸다.

항상 실실거리고 다니던 내가 이렇게 나오니, 무서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외양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직책이 주는 분위기라는 게 있는 법이다.

“다나…… 아니, 길드장님. 이쯤이면…… 봐주자.”

……존대를 하려면 하고, 반말을 하려면 반말을 하던가.

뒤에서 슬쩍 어깨를 토닥이는 강혜원.

그녀의 얼굴에는 웃음이 희미하게 떠올라 있었다.

아마도 지금 결사적으로 참는 중이겠지.

“……뭐, 그래여.”

내가 딱히 길드원들 기강이나 잡으려고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이쯤에서 표정을 풀고(물론 별 차이는 없었다) 길드원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내가 준비했던 진짜 용건.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알려 줬다.

“이거는, 꼭 지켜 줘야 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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