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호에에에……
트롤든 부족에서, 나는 결국 빠져나왔다.
나 혼자만 나오다 보니 길드원들을 볼모로 남겨 둔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지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조금 지나면 다 같이 나올 텐데, 뭔 상관이야.
잡생각을 멀리하고 엘프들부터 찾는 것이 먼저였다.
고개를 한 차례 흔들고, 품속에서 푸른색 오브를 꺼낸다.
이건 아까 트롤든 부족에서 받아 낸 물건이었다.
이 북쪽 지방의 칼바람, 그것 때문에 오면서 상당히 고생했기에 해결할 방법을 묻자, 준 물건.
“마나 씨…….”
슬며시 그 오브에 마력을 불어넣는다.
그러자 그 주위에 일순 빛이 나더니, 몸 주변에 투명한 마력의 막이 씌워진다.
쉴드와는 상당히 다른 마력 구조를 가지고 있는 막.
그러니까…… 정확히 이 북방에서 부는 바람만을 주위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호에에.”
이거, 신기하네.
이미 설명을 들었음에도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응용 사파 마법에 상당한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나도, 전혀 떠올리지 못한 방법이었다.
이게 템발인가.
새삼 좋은 방어구니 무기는 다 사용하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지금에서야 느끼고 있었다.
후우웅.
어쨌든 이제는 불어오는 바람에도 중심이 흔들린다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본래 사용하던 마력의 1/10 수준을 소모하고도 효과는 더 뛰어났으니, 이제 어떤 속도로 비행을 한다 해도 상관이 없었다.
왜인지 들뜨는 듯한 기분.
나는 그에 속력을 올려, 엘프들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호에에에에…….
목소리가 바람에 흩날리며 사라져 갔다.
* * *
한편 일리아 일행은 엘프들의 숲으로 가는 입구까지 와 있었다.
본래 엘프들의 숲 같은 경우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금기시되고 있던 곳이었으니, 대부분 이 광경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물론 J는 일전에 이 근처에 와 본 적이 있었다.
주기적으로 다나를 따라다니던 중에, 우연히 엘프들의 숲으로 가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허락받지 않은 손님이니만큼, 숲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숲 안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꺼림칙한 기운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딘가 상당히 위화감이 드는 마력.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양수의, 자연에 존재하는 마력과는 그 본질이 다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다들 준비…… 아, 하고 있구나.”
“당연하지.”
일리아는 경고를 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이미 다들 나름의 무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녀가 보는 것을 다른 이들이 못 볼 리도 없는 일이었으니.
다들, 되게 많이 달라졌네.
그 모습들을 보며 일리아는 새삼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먼저 나츠키는 본래 사용을 하던 세검에서, 조금 더 날이 무거운 검으로 무장을 바꿨다.
이전의 규격은 그녀의 본가에서 선대, 그러니까 조부가 사용하던 검에 맞춰 제작한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존경하는 조부와 같은 검.
그것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그녀이니만큼, 절대 이를 바꿀 생각은 없다고 항상 공언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녀도 다른 형태의 검이 자신에게 더 맞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성격대로라면 그것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았을 테지만, 시간이 지나며 성격이 유해진 탓일까.
나츠키는 순순히 길드 대장간에 다른 규격의 검을 주문했다.
“……왜, 왜?”
물끄러미 바라보자, 당황한 듯 시선을 돌리는 신하연.
무기로도 다른 내면적으로도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건 이쪽이 아닐까.
무식하게 거대한 둔기를 고집하던 이전과는 달리 분명 그 크기가 크긴 하지만 정상적인 범주의 워해머를 들고 있었다.
분명, 일전에는 언제 누구에게나 자신의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연기하던 신하연.
무슨 계기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자신의 감정이 충실해진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그냥, 너 나중에 한번 보자고.”
“……윽!”
입술을 달싹거리다, 혀라도 씹었는지 입을 감싸 쥐는 신하연.
……아무래도 성격만 바뀐 게 아니라 하는 짓도 좀 푼수가 된 것 같았다.
이어 시선을 돌린 쪽은…… J였다.
이쪽 같은 경우에는 일리아가 딱히 아는 바가 없었으니 달라졌니 마니를 판별할 만한 근거가 없었다.
“으흠?”
다만, 싱긋하고 미소를 지어 오는 그 모습에서는 일전의 그 알 수 없는 음울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저 손에 있는 맹독이 발린 단검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음울해 보였지만.
그 모습들을 보고 나니, 혹여 괜히 안에 들어갔다가 역으로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스스로가 조금은 우스워졌다.
길드 공대의 다른 이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멤버도 충분히 강한 전력이었다.
‘어차피 진짜 위험했으면 비켜 주지도 않았을 테고…….’
협회가 아무리 막장이라고는 하나, 정말 이 엘프의 숲의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했으면 위에서 압력이 들어오든 뭐든 통행을 금지했을 것이다.
분명 알 수 없는 위험성이 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 정도가 크지는 않다.
그렇게 판별했을 것이다.
“으으음…….”
나는 원래 이렇게 머리를 쓰는 캐릭터가 아닌데 말이지.
일리아는 신음하며 숲을 향해 걸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리에, 눈을 감고 관자놀이에 양쪽 검지를 대며 고민을 이어 갔다.
그렇게 가다 보니 뭔가 소리가 점점 잦아든다.
고요함이 찾아오고, 머릿속에 난립하던 생각들이 점점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와!
아와? 이게 무슨 소리지?
고요함 속에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일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설마, 이게 경지에 이른 강자들이 겪는다는 무아의 경지가 아닐까…….
“돌아오라고!”
“어, 어?”
하지만, 그것은 단지 망상일 뿐이었다.
명확하게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일리아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어…… 엉?”
하지만 결국 그 소리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온통 검은색으로 점철된 공간뿐이었다.
“……뭐야?”
시야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어디가 벽인지, 천장인지, 바닥인지 구분되지 않는 검은 공간 속에 그녀 혼자만이 오롯이 서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공간.
일리아는 곧바로 주변에 손을 휘저어도 보고, 마력을 흩뿌려도 봤다.
적어도 이 공간의 생김새가 어떤지는 파악해야 할 것이 아닌가.
“아니, 이거 왜 안 되는데, 뭐야?”
하지만 이어 퍼져 나간 마력이 부서졌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가로막혔는지.
다시금 파동을 일으키지 않음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리아가 당황스러운 상황에 직면해 있을 무렵.
“어떤 씨발 새끼야?”
“……이건 무슨 장난인지.”
“이상한 곳이네.”
다른 일행들도 모두 같은 공간에 떨어져 있었다.
어느 순간, 이상한 검은색 연기가 빠르게 주변을 감싼다 싶더니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당황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상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는 생각을 했으나…… 이런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는 떠올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녀들은 기껏해야 이상한 몬스터나 나오겠지, 하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좀비라도 나오나?”
최근에 그런 장르의 영화 따위에 심취해 있던 J는, 혼자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상황을 굉장히 꺼리겠지만 오히려 그녀는 기대하고 있었다.
텅텅.
J는 발을 구르며, 앞으로 걸어가 보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 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어떻게 돌아다니다 보면 출구건 벽이건 나오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은 꽤나 유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곳을 볼 수 있었다.
“빛이 아닌가?”
아니, 정확히는 빛 보다는 ‘밝다’라는 느낌을 주는 무언가였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치는 느낌이 아닌, 검은색 화지에 하얀색 물감을 칠한 듯한 느낌을 주는 무언가.
그것에 어느덧 근접했을 때, 벽면에 그와 똑같은 무언가가 글씨로서 자신의 형태를 표현하고 있었다.
시험을 시작하겠나.
뜬금없이 나타난 이상한 문구, J는 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시험을…… 시작하겠다
문구는 또다시 나타났고, 그와 동시에 J 한 명뿐 아닌 모두의 상황이 바뀌었다.
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 * *
오브 덕분에 남쪽까지 쉬지 않고 곧바로 날아갈 수도 있었으나, 나는 중간에 휴식을 취했다.
애초에 트롤든 부족에서 나온 것도 오후였으니, 다시 제국 영토 내로 들어오자 벌써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가야는 편하게 자야 해여…… 코오 하는 고애오…….”
웬만한 히어로들이야 잠을 자지 않아도 되었지만, 나는 꼭 잠을 자야만 했다.
그래야만 몸이 온전히 버틸 수 있었으니까.
수면조차 거의 유희로 여기는 히어로들은 이해가 안 되는 일이겠지만…….
똑똑똑.
나는 일전에 방문했던 도시 중 한 곳에 입성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여관 중 가장 큰 곳의 문을 두드렸다.
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잠겨 있던 여관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나온 것은 덩치가 꽤 있는 남자였는데, 아무래도 이 사람이 여관 주인이겠다 싶어 그에게 말했다.
“혹시 방 있는 고애오?”
“방? 허허, 이 시간에 문을 잠가 놨으면 방이 다 찼다는 말 아니겠나? 별 이상한 년이 다 있군.”
어이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 모습에, 나는 얼굴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말 한번 개같이 하네 이거.
애초에 말부터가 이상했다.
방이 없어서 문을 잠가 뒀다.
그런 소리는 정말이지 처음 들어 봤으니까.
내가 단순히 이곳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원래 세계의 상식으로 따져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다만 내가 그런 말을 논리적으로 해 봤자 씨알도 안 먹힐 사람 같았으니…….
빠른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어디 갔나여…….”
나는 제국 황성에서 받은 증표를 찾기 위해 품을 뒤적거렸다.
위조할 수 없는 1급 공훈자의 증표.
그것을 내민다면, 아마 이 태도도 곧바로 바뀌겠지.
더 빠른 방법으로는 무력을 행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악!”
“……?”
그런데 내가 패를 꺼내기도 전에 누가 무력을 사용했다.
순간 빡 하는 소리와 함께 단말마를 지르더니 머리를 감싸 쥐는 남자.
그 뒤로 꼬장꼬장해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소리를 빽 질렀다.
“당신이 주인이야? 뭘 맘대로 나가선 애한테 헛소리나 빽빽 질러 대고…….”
“아, 아! 그만하소! 아지매.”
손을 버둥거리면서 실내로 뛰어가는 사내를 나는 멍하니 쳐다봤다.
이건 또 뭔 상황이래.
잠시 얼떨떨한 채로 굳어 있는데, 아까 전까지 그 남자의 조인트를 까던 중년의 여성이 목소리를 바꾸며 내게 말했다.
“숙박하러 오셨나용?”
“호에에에…….”
무슨, 20대의 관능적인 여성이 연상되는 목소리.
나는 그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여관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