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애기븝미쟝이 되었다-172화 (1부 완) (172/172)

#172화. 변화

“으윽…… 도대체 무슨 일이…….”

“엘린, 카르토! 자네들은 괜찮은가?”

“갑자기 뭔가 이상한 빛이 보이나 싶더니…… 이게 무슨.”

각자 신음성을 내지르며 깨어나기 시작하는 이들, 특이하게도 그들은 전원 엘프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로 장로직을 가지고 있는 이들,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나이가 많은 엘프들은 어린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세리아는 챙겨지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한 장로의 손길에 겨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잠시 낮잠을 자고 있던 상태였기에 작금의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리엘……?”

일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부르는 이름은 친우인 ‘렐’의 본명이었다.

어째서인지 마을 내에서는 렐이라는 가명으로 그녀를 부르지만, 이따금 그녀와 세리아 둘만 있을 때는 본명으로 부르곤 했다.

다만 그 음성에 화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어 자신을 깨운 장로에게 다가갔다.

“장로님,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으음…… 나도 모르겠구나. 마을 전체에 갑자기 붉은 빛이 번쩍이던것까진 생각이 나는데…… 광장 쪽에 다들 모여 있었던 것도 생각이 나고…….”

장로는 그 시점에서 머리를 긁으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왜 모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단 말이지. 세리아, 너는 기억이 나니?”

“저는…… 그냥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요.”

세리아는 그저 천진하게 웃어 보였다. 그게 사실이었으니 뭐라 답해 줄 수가 없었다.

장로는 그 모습을 보더니 피식하고 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답구나.”

“그리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데요.”

“칭찬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니 다행이고.”

장로는 껄껄 웃으면서 다른 엘프들을 챙기러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세리아는 그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다가 주변을 살폈다.

“어디야?”

이곳은 분명 숲이었다. 하지만 세리아가 기억하는 그 모습은 아니었다.

그녀의 태생은 지구. 나고 자란 곳은 엘프들이 자리 잡은 예의 그 숲.

외부로 돌아다녀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거의 일생의 대부분을 위그드라실의 곁에서 떠나 본 적이 없었다.

일견 같은 숲으로 보일지언정, 세리아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곳은, 원래 살던 마을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쁜 느낌이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세리아는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구름을 거니는듯한 몽환감.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청량감이 몸속 가득 들어찬 느낌이었다.

“하아아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이어 내쉰다.

한 차례 호흡만으로도 이곳이 얼마나 정결한 장소인지 알 수 있었다

공기뿐만인가.

찌르르르…….

날아드는 풀벌레와 바람에 흔들거리는 초목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물론 원래 살아가던 숲 또한 위그드라실의 축복을 받았기에, 일반적인 지구의 숲보다는 훨씬 생기가 넘쳤으나 그뿐이었다.

지금 이곳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아마도 다른 엘프들도 그것을 느끼고 있음일까.

그녀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엘프들은 다들 녹아내린 듯한 행복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비교적 나이가 많은 이들은 무언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던 고령자 그룹은, 이내 하나둘씩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표정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것은 순수한 환희였다.

“돌아왔다…… 돌아왔어……!”

“기적을 내려주셨음이다!”

눈물을 흘리며, 저들끼리 얼싸안고 있는 그 모습에 세리아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엘프의 덕목이라며 매번 그녀를 꾸짖던 장로들의 모습이 작금의 광경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꺄악!”

“세리아.”

“아리…… 아니, 렐! 놀랐잖아.”

“좀 놀라보라고 한 거예요. 의도대로 잘됐죠? 우흐흐.”

“……실없어.”

렐은 어느샌가 나타나 세리아의 옆에 얼굴을 디밀었다.

아무래도 방금의 장난으로 토라진 듯한 그녀에게, 렐은 팔을 쿡쿡 찌르며 말을 걸었다.

“왜?”

“겨우 그거로 삐지기에요? 진짜 너무하네요, 세리아…….”

“안 삐졌어…… 그것보다. 장로님들 왜 저러시는 거야?”

“그걸 모르나요? 세리아는 역시 바보예요…….”

“바보는 무슨……”

“그래서 귀여운 거예요, 세리아.”

렐은 후후, 하고 웃음을 흘리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세리아, 저게 뭔지 알아보겠어요?”

“저게…… 뭘 말하는 거야?”

“저기 봐요, 나무 사이로 보이는 거 말이에요.”

“……샘물?”

“음,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하네요. 어머니 나무에서 나온 수액, 그게 고여 있는 거예요.”

“뭐어?”

세리아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분명 최근 몇 년간 위그드라실은 상당히 쇠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최근 들어 그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고는 하나, 저렇게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은 수액이 흘러나온다면 분명 큰 문제가 생길 것이었다.

“진정해요, 세리아.”

“아니, 렐! 하지만……”

“어머니는 멀쩡하세요. 마을에서 보던 시절보다 훨씬 건강해요. 아니, 지금 시점이라면 애초부터 상태가 나빠진 적도 없었죠.”

“지금…… 시점?”

세리아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상태가 나빠진 적이 없었던 시점, 그것은 애초에 그녀가 태어나기도 훨씬 이전의 일이었다. 심지어는 이주 직후에도 이전보다 훨씬 그 힘이 약해진 상태였다는 걸 분명히 장로들한테 들었는데…….

잠깐만…….

“설마?”

세리아는 눈을 부릅뜨며 옆의 렐을 쳐다봤다.

“여기가 혹시…….”

“네, 카르마디아예요. 우리들의 고향.”

“하지만 어떻게? 카르마디아는 망했잖아. 정확히 말하면…… 그냥 사라졌잖아! 애초에 이주할 때 모습도 이렇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그거야 저도 모르는 일이죠?”

렐은 어깨를 으쓱하며 저도 그땐 없었는 걸요…… 하는 말을 덧붙였다.

……확실히 렐 또한 이주 이전의 세대는 아니었다.

바스락.

생경하게 들려오는 풀을 밟는 소리.

세리아는 천천히 주변을 거닐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지고,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지금,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좋은 일을 한 것 같네요.”

그 뒤에서, 렐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모두들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선행을 한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충만해졌다.

물론 그건 단순히 뿌듯함이라던가 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모쪼록, 즐겨 주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그 모든 만족감과 행복을 부정적으로 뒤바꿀 순간.

그 순간을 상상하며 느끼는 카타르시스, 그것이 그녀의 감정의 전부였다.

*    *    *

이쪽 세계의 배경에서는 산적들이 튀어나온다든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법보다 주먹이 훨씬 앞서는 세계니까.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현대세계에서의 각성자와 일반 인간의 비율만큼은 아니지만, 이쪽에서도 무력을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차이가 굉장히 컸다.

“호에에에.”

그렇기에, 상행을 하고 있는 상인 무리에게 산적이 덮쳐드는 상황은 그리 보기 힘든 광경도 아닐 것이었다.

“납븐 아조시들이애오…….”

상공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영 험악했다.

어떻게든 상단의 물건을 빼앗아 가기 위해 혈안이 된 산적들 그리고 그에 맞서는 상단의 호위병들.

아직까지 유혈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나, 아마 조금만 있으면 곧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으로 보였다.

“하와와와…….”

그냥, 무시할까.

어차피 이 허상 속의 인간들은 실체도 아니었다.

그저 과거의 형상을 본뜬 일종의 심령체와 같은 것들.

그러니 그냥 무시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납븐옵바언냐야들은 혼내줘야해여!]

감정적으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딱히 내 신념이 정의를 구도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몸은 기본적으로 불의를 참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내려간다.

저 악한들에게 선을 집행하기 위해…….

“호에에에에……”

순식간에 완성되는 스펠, 그와 동시에 손에 마력이 맺힌다.

물론 몸에 무리는 없다. 이전과는 달리 해치워야 할 대상이 너무나도 나약하니까.

산적이나 해 먹는 수준이라면 뻔하다. 해 봤자 현대 기준으로 하위권 히어로 수준의 실력이겠지.

적당한 크기의 불덩이를, 산적들에게 던져 낸다.

열기를 뿜으며 달려가는 그 위세는 분명 대충 조형한 것이라고 해도 쉬이 막아 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 한방으로 산적들은 궤멸할 것이다…….

“……머라구여?!”

이게 말이 되나?

순간 산적들 쪽에서 무언가 마력 반응이 느껴진다 하더니, 대응 사격된 하나의 빛줄기가 내 마법을 파훼해 버렸다.

허무하게 바스러지는 내 화염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을 쏘아 낸 장본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호에……?”

가라앉는 불씨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얼굴…….

나는 그것을 보며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저 사람은…….

“다나?”

……아무래도 저쪽에서도 날 알아본 모양이었다.

*    *    *

내가 다나 크리스틴이 된 이후로 꽤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흘렀다.

다만 내 체감상으로는 절대적으로 긴 시간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원래 현생을 살았던 기억이 점점 흐릿해져 갔기에…….

만약 당장 내 눈앞에 그 시절의 친우를 들이민다면 나는 곧바로 알아보지 못할 공산이 컸다.

하지만 이후에 생긴 인연.

이를테면 일리아를 비롯한 아카데미 동기들부터 패스파인더 길드원들까지.

나는 그 전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자신한다. 1년 반이라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이 지나더라도.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더라도.

그렇기에 지금 눈앞의 날카로운 인상의 소녀가, J라는 것에 무언가 이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드디어…… 왜 이제 온 거야!”

……아닌가.

이견을 제기할 사람이 꽤나 많을지도 모르겠다.

눈물을 글썽이며, 무언가 무너져 내리듯 내게 안겨드는 그 모습은 일전에 보아 왔던 그녀의 모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러는 거지.

“켁…… 븝…… 언냐…… 햐악…… 조금 살살…….”

“끄윽…… 흐어어엉…… 내가 여기서…… 몇 년 동안…… 흐으윽…….”

“몇 년이여?”

몇 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심장이 멎을 듯 아려왔다.

이런 환상류 결계…… 물론 그것보다 훨씬 고등하지만…….

아무튼, 이런 곳에 빠지는 사람들은 이따금 시간 흐름을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느끼고는 한다.

그러니까 결계 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시간은 30분 정도라도, 그 안에선 10년분의 체험을 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시간 축과 공간 축을 뒤틀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두려워했었고.

시간의 흐름을 빠르게 느끼는 것 또한 가능하지만, 느리게 느끼는 것 또한 가능하다.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바깥에선 수십 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그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는 하다.

“언냐야…… 혹시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어여?”

“끄윽…… 흑…… 모, 모르겠어…… 대충…… 7년?”

“호에에에에에!”

7년.

나는 그 말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는 없었다.

“븝된 고애오! 븝된 고애오오오!”

아무래도, 내 계획에 굉장한 차이 생길 것 같다.

-1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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