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도 내일도 너를 사랑해-9화 (9/79)

제9화

누군가의 댓글에 답글을 달아 본 건, 처음이야.

“그거 말고. 댓글 말이야. 너처럼 나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많은데, 그중 네가 처음이니까. 제일 먼저 만난 소감.”

새봄은 그 말에 대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냥 궁금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나를 만났을 때 기분. 넌 다를 텐데. 내가 괜한 걸 물었네.”

연우는 괜히 물어본 거에 민망해, 패드를 켰다. 아까 사실 급하게 하느라, 해야 할 일이 좀 남아서, 패드로라도 일을 좀 더 해야 했다.

연우가 패드만 보고 있으니 마주 보고 있는 연우와 새봄은 매우 어색했다. 연우는 붕대가 감겨있는 불편한 손으로 패드를 들고 열심히 일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새봄은 그 옆에서 뭘 할지 몰라 휴대전화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폰으로 뭐 할 것도 없었다.

일찍 퇴근하고 온다더니 기껏 여기까지 와서 연우랑 있어 보려고 했더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게 새봄은 맘에 안 들었다. 차라리 차에나 있으라고 할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보미는 새봄과 연우의 어색한 관계를 한참 동안이나 힐끔힐끔 쳐다보며 커피 3잔을 타고 있었다. 키스도 했고 그렇게 좋다고 하더니 왜 저렇게 어색할까 싶었다.

연우가 저렇게 바쁜 것도 신경이 쓰였다. 둘 사이를 눈치 보며 언제 갈까 생각하던 보미가 커피 3잔을 가져와 연우와 새봄에게 한 잔씩 건넸다. 한잔은 제 앞에 내려놓았다.

“새봄이야 그랬다 치고 연우 넌 이런 커피믹스 스타일은 아니지? 이런 거밖에 없어서.”

“아니. 먹을게.”

연우는 보미가 내려놓은 커피는 보지도 않았고, 감각으로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아직 패드를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보미가 새봄과 연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보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꺼냈다.

“장연우. 새봄이한테 신경 좀 쓰지 그래?”

그제야 연우는 패드를 한쪽으로 치우고 새봄을 바라보았다. 패드로 일하느라 새봄이를 신경 쓸 시간도 없었다. 이제야 그런 새봄이에게 미안해 졌다. 대충 어느 정도 한 거 같으니 이제 내려놔도 될 거 같았다. 보미 역시나 새봄을 앞에 두고 이런 게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너 새봄이 진짜 좋아해? 새봄이가 너 만나고 올 때마다 엄청 자랑하던데.”

연우가 새봄을 한 번 쳐다보았다. 새봄이 보미한테 와서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당황스럽기도, 놀랍기도 했다. 그리고 보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봄은 보미가 하는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거 같았다. 뭘 그렇게 보는지 아직도 휴대전화만 보고 있었다.

사실 새봄이는 정확히 말하면, 좀 전에 연우에게 좀 삐졌다. 자신을 앞에 두고도 신경을 써 주지 않아서 실망을 했다. 이왕 보미가 물어본 김에 일부러 모른 척 연우가 어떤 대답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래서 괜히 더 일부러 열심히 보는 척이었다.

“너랑 키스하고 온 날도 그렇고. 네가 새봄이만 있으면 된다고 한 것도 그렇고 뭐 아무튼 매일 와서 네 자랑만 했어.”

“그랬는데?”

연우는 새봄을 좋아한다는 걸 아직 보미에게 말하기 싫었다. 어차피 알고 있겠지만, 아닌 척하고 싶었다. 정말 새봄이를 많이 좋아한다고 확신이 들었을 때 말하고 싶었다. 아직 서로 알아야 할 거도 많고 적응할 시간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우의 반응에 당황한 보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다. 굳이 연우도 그렇게 자세히 말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반응에 당황한 건 새봄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렇게 말했는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 뭐 그냥. 네가 새봄이한테 정말 진심인 건지 궁금할 뿐이야.”

“너한테 내가 왜 말을 해야 해?”

“나 그래도 새봄이 언니거든. 15년 동안 엄마처럼 키운…… 때로는 친구 같기도 했고. 그래서 묻는 거야. 너 여자 가지고 놀기로도 유명하고, 지금도 새봄이한테 관심도 없는 거 같고.”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보미의 마음을 알 거 같았다. 연우가 떠나갈 그 무렵 보미와 새봄의 엄마가 돌아가신 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 보미가 어떤 마음으로 새봄이를 키웠는지, 그 마음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미에게 최대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참을 생각한 연우가 말했다.

“내가 새봄이한테 차였어. 오늘부터 1일 하자 그랬다가.”

“뭐? 네가?”

연우가 차였다는 게 조금 의외이긴 했지만, 연우가 한 말이 진지하다는 걸 알았다. 진심인 걸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새봄이 표정도 점점 굳어져 갔다. 새봄의 표정을 살피던 보미가 새봄이 폰을 슬쩍 보니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보미가 모른 척 새봄에게 물었다.

“진짜 그랬어? 무슨 이유로? 연우 기다렸잖아.”

“몰라아.”

“왜? 뭐가 맘에 안 들어서?”

“별거 아니야. 그냥…….”

여기서 보미에게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갔는데, 보미 덕에 문제가 심각해진 것 같았다.

“둘이 이야기해. 난 닭 좀 손질해야겠다.”

보미가 일어났다. 그냥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어나서 가려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아 참. 나 궁금했는데, 연우 너 손은 어디서 다친 거야? 설마 새봄이한테 차였다고 주먹질했어?”

연우가 보미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연우를 뭐로 보는 건지, 그럴 리는 없다고 하고 싶었다.

“주먹질은 안 했어. 새봄이 구하려다 그런 거고.”

보미는 더 이상 말하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다시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보미가 부엌으로 가는 걸 본 연우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새봄의 팔을 내렸다. 새봄이 보고 있던 휴대전화가 떨어졌는데 그냥 메인 화면이었다. 연우가 약간 화난 표정으로 새봄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다 듣고 있고 보미의 말에 대답도 했으면서 고작 아무것도 안 보고 있었다. 그게 괜히 화났다. 새봄은 연우의 시선을 피했다. 말하지 않아도 연우의 표정을 보고 지금 심정을 알기에 괜히 미안했다. 먼저 삐져 버린 건 맞지만, 연우도 아마 민망한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보니 한참이나 정적이 흘렀다.

그때 보미가 닭을 손질하느라 주방에서 ‘탁탁’ 소리가 들렸다. 보미가 칼을 들고 닭 손질을 하고 있었다. 주방이 뻥 뚫려 있는 데다 연우와 새봄이 앉은 자리에서 주방이 매우 잘 보였다.

소리도 매우 신경 쓰이고, 보미가 칼을 들고 있는 것도 신경 쓰이는 연우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마치 새봄이한테 어떻게 해 달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새봄은 그런 연우를 바라보다가, 언니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우가 힘들어하는 건 알지만, 언니한테 직접 말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언니한테도 진작 말을 하지 못해 연우에게 미안한 새봄이 순간 아차 싶어 보미에게로 달려갔다.

닭을 반으로 자르려는 보미의 손을 새봄이 꽉 잡았다. 순간 보미가 깜짝 놀라 새봄을 쳐다보았다.

“언니!!!”

새봄이 다칠 뻔한 위험한 상황이었다. 새봄이가 갑자기 팔을 잡는 바람에 칼을 위로 들고 내려치려다가 보니 칼이 새봄의 얼굴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새봄이 보미의 팔을 얼른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안 그래도 연우가 칼에 트라우마도 있는데 새봄이 이 상황에 소리를 냈다면 연우가 더 놀랄 거 같아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새봄이 혹시나 다쳤다면, 걱정하고 마음 아파했을 텐데 다치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

“괜찮아? 미안해.”

보미가 칼을 조심히 내려놓고 물었다. 새봄이 먼저 칼을 잡았으니 언니에게 뭐라고 따질 수도 없었다.

“괜찮아 난. 언니 그게…….”

새봄이 말을 하려다가 연우가 괜찮은지부터 봤다. 여전히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관자놀이를 양손으로 누르고 있는 게 계속 신경 쓰였다.

“언니 이거 지금 해야 해? 닭이 많이 부족해?”

“왜?”

“장연우. 칼에 트라우마가 있는 거 같아. 오빠 앞에서 칼은 쓰지 마.”

“쟤 C&J 전무이기도 하지만 셰프 아니야? 그 레스토랑…….”

보미도 연우에 대해서는 인터넷을 통해 접했기에, 충분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연우가 칼에 트라우마가 있었다는 말은 본 적이 없었다.

“맞아. 근데 뭔가 있어. 칼만 봐도 힘들어하니까. 아직 많이 남은 거지?”

보미가 뒤에 한 트럭 정도 쌓인 닭들을 가리켰다. 딱 봐도 한참 걸릴 거 같은데 연우를 저렇게 계속 둘 수도 없었다. 새봄이 연우를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며 말했다.

“그럼 일단 해. 나 좀 나갔다 올게.”

새봄이 냉장고 안에서 물을 꺼내 연우에게 갔다. 여전히 힘들어하는 연우를 보니 괜히 마음이 아팠다.

새봄이 어떻게 데리고 나갈까 고민하다 보니 연우가 여전히 머리를 감싸고 괴로워하는 게 눈에 보였다. 새봄은 고개도 들지 못하는 연우에게 가져온 물을 내밀었다.

“오빠. 이거 좀 마셔.”

연우가 팔을 내리고 새봄이 주는 물을 마셨다. 보미는 연우를 위해 잠시 멈추었다. 가게 안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새봄은 연우가 물을 마시는 동안, 연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연우의 얼굴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계속 있다가는 연우한테 무슨 일이 날 거 같았다.

“오빠. 좀 답답한데 산책하러 가자.”

“어딜?”

“그냥. 근처 아무 데나.”

새봄이 갑자기 나가자고 해서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지금 나가면 저 소리도 칼을 보는 것도 신경 쓰이지도 않아 괜찮을 거 같았다.

듣고 보니, 연우의 목소리도 좋지 않았다. 빨리 연우를 이 자리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 새봄의 생각이었다.

* * *

새봄은 연우를 무작정 데리고 나가다 보니,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도착했다.

“산책하자는 곳이 여기야?”

연우는 겨우 놀이터라는 사실에, 실망한 듯 말했다. 새봄이 연우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며, 그네에 앉았다. 연우도 이곳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옆으로 따라서 앉았다. 그네에 앉고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새봄이 그네를 흔들거리며 말했다.

“예전에 오빠가 막 그네 밀어주고 그랬는데.”

“그랬지…….”

연우도 옛날 생각이 나는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빠 괜찮은 거지? 나 신경 쓰여 그런 거야?”

“뭐가?”

다 아는데, 괜히 모른 척이다. 새봄이한테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오빠 얼굴. 엄청 하얗게 질려 있어. 언니가 칼 써서 그래?”

“……그냥 모른 척해줄 수 없어?”

그거만큼은 모른 척해주기를 바랐다. 새봄은 연우의 마음을 이해한 듯,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모른 척해 달라고 하니 더 이상 말할 수도 없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관자놀이를 누르던 연우가 말했다. 오늘은 왠지 컨디션이 좋지가 않았다. 새봄은 뭐가 미안하고 뭐가 고마운지 말 안 해도 알 거 같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연우를 바라봤다, 그 의미가 뭔지 알기에 연우도 웃었다. 그러면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정적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바람도 쐬고 칼 소리도 안 들리고 칼을 들고 있는 보미도 안 봐서 그런지 연우의 상태도 점점 제 모습을 찾았다.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 그 2년 전 여친…….”

“왜?”

“진심이었어?”

그날 이후 신경 쓰였다. 한 번은 묻고 싶던 말이었다. 연우가 그 여자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했었다. 지금이 아니면, 말을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

딱히 무슨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냥 단지 여자를 장난감으로 생각하는 연우에게 진심인 여자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날 잠깐 봤지만, 연우는 그 여자를 보는 표정이 왠지 이상했다.

진심이라며 꺼지라고 말할 이유도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냥…….”

새봄이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자, 연우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조금. 그 칼 아니었으면 아마도. 내가 일방적으로 헤어지자 했고, 지금은 미련 없어. 왜 헤어진 지 납득이 안 가서 찾아온 거고.”

“혹시 그 여자가 와서 다시 만나자고 하면?”

“생각 없어. 널 안 만났으면 모를까.”

그 말이 어떤 의미인 줄 정확히는 모르지만 지금 연우의 마음이 짐작이 갔다. 연우가 지금까지 여자들과 그렇게까지 즐긴 건 저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아.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연우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늘 컨디션은 안 좋은데, 새봄이한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다.

“뭔데?”

연우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뜨고 말했다. 두통 때문에 힘들었지만, 가서 쉬더라도 새봄이에게 아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아까 내가 물었던 거. 나를 만나고 무슨 기분이었냐고. 나도 늘 네 댓글 보면서 답글 달고 싶었어. 너일 거로 생각했어. 근데 아니면 어떻게 하지. 늘 고민했고.”

“…….”

“누군가의 댓글에 답글을 달아 본 건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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