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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너를 사랑해-14화 (14/79)

제14화

내가 만나 여자 중 네가 최고야.

새봄이는 이미 가 버리고 연우와 태민이만 남았다. 키스해 버리면 새봄이가 기분 좀 풀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연우의 생각일 뿐 새봄에게는 전혀 아니었다.

새봄이 문밖에 나간 후에도 연우는 현관을 한참을 쳐다보았다. 새봄이 기분을 풀어주고 싶은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우가 마시던 커피도, 새봄을 주려던 커피도 다 식어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태민에게 주고 태민의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네가 그냥 마셔야겠다. 봄이 주려고 했는데 그냥 가 버려서.”

태민이 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연우를 신기하다는 듯이 한참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이번엔 진짜 진심인 거 같네. 내가 지금까지 너 이러는 거 한 번도 못 봤으니까.”

“내가 뭘 어쨌는데?”

“어제 토한 거, 원래의 너는 쳐다도 안 볼 텐데. 치운 것도 그렇고. 네 눈빛이 진심을 말해 주고 있어.”

연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일은 연우 스스로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나 죽는 줄 알았어. 헛구역질하고.”

“어쨌든 대단해. 장연우가 그걸 참으면서 한 거.”

연우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말했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난 아무것도 모르는 그런 매력이 좋더라. 내가 막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태민은 연우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연우가 절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커피를 단숨에 원 샷 해 버린 태민이 물었다.

“그럼. 너 칼 못 만지는 건 알아?”

“알아…….”

더 이상 물을 말도 없었다. 어제 있던 일을 이미 어느 정도 알았으니 장연우가 어디까지 간 건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이번엔 그 어떤 여자와 다르게 진심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연우가 어제 한 행동들은 절대 연우가 진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걸 태민이도 잘 알기에 연우의 마음이 진심인 걸 말 안 해도 알 거 같았다.

* * *

새봄이 치킨집에 와서 울고 있었다. 보미도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고 있었다. 옷도 그대로 인 걸 봐서는 분명 어제 연우와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보미는 콜라 한 캔을 들고 새봄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왜 그래? 장연우랑 싸웠어?”

“언니이이이이. 장연우가. 으아아아아앙.”

새봄은 울먹이는 소리로 어제 일을 이야기했다. 보미는 팔짱을 끼우고, 연우가 괘씸하다는 표정이었다.

“……진짜야? 장연우가 진짜? 그럼 다 봤…….”

보미가 말을 하다가 멈췄다. 더 말하면 새봄이 기분만 상하게 할 거 같았다.

지금까지 남자도 만나 본 적이 없고 남자는 연우가 처음인데 순진한 새봄이를 그렇게 이용했다고 생각하니 화가 났다. 대체 새봄이를 얼마나 가지고 놀 생각인지 모르겠다.

“장연우가 나쁜 놈이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 순진한 내 동생한테…….”

새봄은 정말 서럽게 울고 있지만, 보미가 도움이 못 되어 미안했다.

“됐어. 일단 콜라나 한 잔 마시고, 뚝 해. 내가 장연우 그놈을 아주 그냥.”

보미가 새봄에게 콜라를 넘기자, 새봄은 그 콜라를 꿀꺽꿀꺽 한 번에 마셔 버렸다.

* * *

집무실에 앉아 있는 연우는 패드를 켜고 블로그도 들어가 보고 이것저것 서류들을 보기도 했다.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어제 일 생각에 웃다가도 너무 미안했다.

새봄이 마음을 아직 모르니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혹시나 새봄이가 블로그에 댓글이라도 달아 두었을까 열심히 찾기도 했다. 오늘은 어디에도 새봄이의 댓글을 볼 수가 없었다. 어제 연우랑 계속 같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해봐도 어제 있던 일은 새봄이한테 미안했다. 새봄이한테 너무 상처를 준 건 아닌가 생각했다. 어떤 핑계를 대던 새봄이한테 사과는 하고 다시 관계를 돌려놓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화면이 꺼진 패드를 두드리며 한참이나 고민했다. 비서를 부르려고 전화기 앞 버튼까지 손이 갔다가 멈췄다.

‘이건 내가 직접 해야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연우가 직접 치킨집으로 갈까 하고 몇 번을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연우는 다시 앉아서 패드 화면만 계속 두드렸다. 연우는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패드 옆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었다.

* * *

새봄은 계속 울었다. 오늘은 할머니 가게도 가지 않았다. 새봄이 소리 내어 큰소리로 엉엉 울자 보미가 어떻게 해줘야 하나 보고 있었다. 새봄의 기분을 풀어 줄 방법이 뭘까 고민하던 그때 가게 안의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시간을 확인해 봐도 단골손님 시간도 아니었고, 배달 올 시간도 아닌데 무슨 전화일까 생각했다. 일단 보미가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는 보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가 펴졌다.

보미가 전화를 받고 난 후.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보미는 조심스럽게 새봄에게 다시 왔다.

새봄이 너무 울고 있어서 말도 못 꺼내고 눈치를 보던 보미가 어쩔 수 없이 말을 했다.

“장연우가 직접 전화 왔어. 너랑 이야기하고 싶다고. 치킨도 가지고 와 달라고.”

“싫어어. 안가!!”

새봄은 진짜 연우한테 화가 나도 단단히 화가 난 거 같았다. 그래도 보미는 전화상으로 연우가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져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너한테 엄청 미안해하는 거 같은데. 지금 빨리 오라고 그래서.”

보미도 연우가 새봄이한테 이렇게 오라 가라 말하는 것도 맘에 안 들었지만, 연우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걸 알기에, 그냥 받아들이고 싶었다.

* * *

연우의 집무실로 박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우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그쪽으로 걸어오는 박 비서를 바라보았다. 비서는 또 무슨 일로 불렀나 싶어 들어 왔다. 연우가 패드를 손가락으로 탁탁 치며 시계를 한 번 확인 하더니 비서를 보고 말했다.

“치킨 올 거야. 아무 말 말고 무조건 들여 보네. 여자일 거니까. 박 비서도 알고 있는…….”

“네 ”

“나가 봐.”

비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연우는 벌써 왔나 싶어 고개를 들었다. 새봄이가 아닌 저 여자는 이세연이다. 비서도 세연을 보자마자 눈이 커졌다.

저 여자라면 연우가 2년 전 만난 여친이라는 걸, 비서도 알고 있었다. 어제 분명 말한 거 같은데 또 찾아온 게 못마땅한 연우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박 비서 잠깐 들어 와.”

연우는 비서가 들어오자, 이해를 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박 비서. 왜 이 여자를 들여보내?”

“전무님이 여자일 거라고 무조건 들여보내라고. 저도 잘 아는 사람 일 거라면서요.”

너무 당당한 비서의 말에, 연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연우의 눈에는 화가 잔뜩 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비서한테, 아니 세연이한테 뭐라도 집어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 비서. 나랑 장난해? 치킨이 없잖아. 눈이 나쁜 거야? 멍청한 거야? 생각은 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비서는 그제야 뭔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박 비서는 일을 그따위로밖에 못 해? 내가 한 말을 왜 제대로 안 듣냐고!!”

연우는 비서에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세연은 연우를 유심히 바라봤다. 눈싸움이라도 해야 할 듯, 서로가 서로를 독기를 품고 바라보고 있었다. 연우는 세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박 비서 나가.”

연우의 목소리가 중저음으로 가라앉은 걸 보니 심각한 상황인 걸 눈치챈 비서가 뒷걸음치며 얼른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연우는 여기까지 하필 지금, 이 시점에 찾아온 세연이 맘에 안 들어서 세연을 계속 째려보다가 세연 쪽으로 걸어갔다. 이러다 새봄이라도 와서 보면 큰일이었다. 그러기 전에 빨리 세연이를 보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연우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헤어진 이유 설명하면 안 오겠다며. 뭐가 더 필요한 건데?”

“손은 왜 다쳤어?”

세연이 들어 올 때부터 연우의 손을 보고 있었다. 연우도 세연의 말에 손을 한 번 바라보았다. 손을 다쳤다는 걸 잠시 잊었다. 며칠 사이 이에 손이 익숙해져 있었다.

“별거 아니야. 네가 신경 쓸 일은 더더욱 아니고.”

“장연우. 난 너랑 이렇게 못 헤어져.”

“2년 전 일이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다시 하자고.”

“싫어. 그러니까 꺼져.”

“너 또 여자 생겼어?”

“어. 그러니까 꺼져. 너랑은 달라.”

연우가 한 저 말이 싫다. 세연이랑 헤어진 후 2년간 수없이 많은 여자를 만난 건 알지만 연우가 자기 말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싫었다. 연우가 자신만을 사랑해 주기를 바랐던 세연이 연우에게 다가가 키스를 했다. 당황한 연우가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눈을 감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버렸다. 이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 새봄이가 오면 분명 오해라도 할 상황이었다.

세연과 한참 키스를 하는 그때. 역시나 예상대로 새봄이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우가 사과하는 마음이 있는 걸 안 새봄은 아무것도 모르고 집무실 문을 열었다.

“장연…….”

진짜 마음이 조금은 풀려 밝게 웃으며 연우의 이름을 부르면서 들어 온 새봄은 그 자리에 몸이 굳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잘 못 본 거라 믿고 싶었다. 연우가 다른 여자와 키스 한 장면을 본 새봄은 들고 왔던 치킨을 떨어뜨렸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놀라 손에서 치킨을 놓쳐버린 거였다.

그 소리에 연우가 새봄 쪽으로 눈만 돌렸다. 입을 떼어 보려고 하는데 세연이 놓아 주지를 않았다. 미치겠다. 변명이라도 해서 사과하려다가 일이 커져 버렸다.

새봄이 그대로 뛰어나갔다. 연우가 너무 싫고 너무 미웠다. 새봄이도 여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왔다. 너무 울어서 붉게 충혈된 눈을 보고 연우가 어떤 말을 할까. 그냥 오지 말까 몇 번을 고민했다. 다른 여자랑 키스하는 걸 봤으니 화 날만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연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연우가 소파 쪽으로 세연을 유인해 그대로 밀어 버렸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다. 새봄이 오기 전에 새봄이가 오해하지 않게 진작 그랬으면 새봄이가 좀이라도 덜 오해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장연우!!!”

소파에 그대로 앉아버린 세연이 기분 나쁜 표정으로 연우를 보았다. 정확히 연우를 째려보았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래?”

“미안한데 좀 가줘. 아니야. 내가 먼저 갈게.”

연우가 새봄을 따라 나갔다. 지금이라도 가면 새봄을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소파에 남은 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그저 한숨만 푹 쉬며 연우가 어떻게 하면 다시 저한테 올까 고민 중이었다.

연우가 새봄이를 찾아 뛰었다. 새봄이는 이미 가고 난 후였다. 하지만 아직 멀리 가지는 못했다. 멀리 새봄의 자전거가 보였다. 연우가 뛰어가 앞을 막았더니 새봄이 급정지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연우에게 들이박을 뻔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비켜. 나 갈 거야.”

“봄아. 내가 사과할게. 그게…… 그러니까. 조금 전 상황은 설명도 다 할게.”

“……됐어. 뭘 더 설명할 건데.”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연우가 진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밉다. 너무도 싫다.

“……울었어?”

자세히 보니 새봄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딱 봐도 좀 울었구나 싶었는데 방금 울었던 얼굴은 아니다.

“장연우. 너 진짜 나빠. 나한테 그렇게 해 놓고. 내꺼 다 보고. 어떻게 그래? 어떻게 다른 여자랑…… 오빤 늘 이런 식으로 여자 가지고 놀았어?”

“아니야. 내가 만난 여자 중 네가 최고야. 저 상황은 그런 게 아니야. 설명 다 할게.”

“싫어. 장연우 다신 안 볼 거야. 너 진짜 나빴어.”

새봄이 연우를 피해 옆으로 돌아 자전거 페달을 다시 밟고 사라졌다. 연우는 새봄을 잡지 못했다. 진작 옆으로 연우의 옆으로 돌았다면 더 빨리 이 자리를 빠져나갔겠지만 왜인지 미쳐 생각하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어떤 핑계를 댄다고 해도 연우가 잘못 한 거다. 세연이가 키스한 게 물론 잘못이지만 그걸 막아내지 못하고 새봄이가 올 걸 알았으면서도 계속했으니 새봄이가 화가 나는 게 이해가 갈 만도 했다.

치킨집으로 돌아간 새봄은 구석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펑펑 울었다. 연우가 정말 너무 싫었다. 사과하러 갔다가 더 울고 와서 속상했다. 손님도 많은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새봄은 손님들에게 방해될까.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울었다.

보미는 손님들이 좀 빠져나가고 새봄 쪽을 향해 걸어왔다.

“왜 그래? 장연우가 또 속상하게 해?”

“어떻게 그래? 나한테. 장연우가…….”

보미는 새봄이 연우와 사과하지 못하고 왔다는 걸 느끼고, 눈빛이 이글거렸다.

“왜? 장연우 연락처 줘 봐. 내가 혼내주게.”

“하지마아.”

“그래도 장연우가 좋은가 보네. 푹 빠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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