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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내일도 너를 사랑해-17화 (17/79)

제17화

내 여자라고 도장 찍은 건데.

다 먹은 피자가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새봄이 연우의 손바닥에 약을 바르고, 붕대 대신에 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일부러 그 부위를 꾸욱 눌렀다. 연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제 괜찮은가 보네?’

“이제 다 됐어. 다음부턴 이런 거 하지 마. 오빠 아프잖아.”

새봄이 연우의 손을 꽉 잡고 밴드 붙인 부위를 또 한 번 후우. 불고 뽀뽀도 해 주었다.

연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왜 이렇게 귀엽지? 좋다. 이 여자를 보면 볼수록 좋다. 귀엽다. 우리 봄이 너무 귀여워. 널 다시 만나서 참 다행이야.’

연우가 새봄이가 잡은 손을 빼고 난 후. 깍지 끼우고 턱을 기댄 채 엄청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새봄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새봄은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연우는 계속 새봄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뻐서. 한새봄. 너무 예뻐서.”

“치. 어디서 수작이야?”

연우가 좋아 죽겠다는 미소를 짓고 깍지를 풀고 새봄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새봄은 그런 연우의 시선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리자 연우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근데 봄아. 너 나한테 15년 만에 처음 만났을 때 엄청 적극적이었잖아. 그 새봄이 어디 갔어?”

“무슨 소리야?”

“나한테 결혼부터 하자고 했잖아. 보자마자 갑자기. 그러면서 나 때문에 울고. 아프고.”

“그건. 장연우가 먼저 나한테…….”

“그래, 인정. 내가 못된 짓 한 거. 근데 난 적극적인 새봄이가 좋은데?”

“그날은. 오빠랑 약속 지키려고…….”

“결혼이 쉬워? 우리가 한다고 맘대로 되는 거 아니잖아.”

“알아. 천천히 해. 오빠가 하고 싶어질 때.”

사실 연우는 지금 당장 하고 싶다고 말할 뻔했다. 그러고 싶었다. 먼저 새봄이를 알아봤다면 먼저 결혼하자 했을 거다. 누구인지도 몰랐던 사람이 결혼하자고 하는 말에 새봄이 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보니 새봄에게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빠지고 있었다.

또다시 이유 모를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에 연우는 피자 상자를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현관 앞 구석에 대충 던져 놓았다. 나중에 버릴 생각이었다. 연우는 다시 홈바 식탁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봄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 나 너 못 보내.”

“……뭐?”

이런 식으로 또 같이 자고 같이 살자고 할 생각인가 보다. 새봄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너 몸도 안 좋은데 오늘 나랑 여기서 자자. 내일부터는 안 와도 되는데. 네가 계속 그렇게 잔다고 하면 내 맘이 안 편해.”

“오늘만 자고 갈게. 대신 나 오늘 건들지 마. 막 이상한 거 하지 말고.”

“진짜 안 할게.”

진짜 자고 가기 싫었지만, 연우를 믿을 수는 없었지만, 연우가 새봄을 걱정하는 마음을 잘 알기에 오늘은 그냥 딱 하루만 자고 그다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 * *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다 마친 연우가 현관 앞에 놓인 전신거울을 보며 넥타이를 한 번 가다듬고 새봄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시계를 봤는데 좀만 더 자도 늦을 거 같다. 새봄이 데려다주고 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지금은 출발해야 했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는데 다행히도 그 순간 새봄이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켜는 그 모습도 귀여워 죽겠다는 연우다. 제대로 빠져 버렸다. 연우가 저도 모르게 풋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귀여워 순간적으로 웃어 버렸다. 뒤늦게 연우를 발견한 새봄이 민망한 듯 팔을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모습을 연우한테 보여 준 게, 괜히 부끄러웠다. 잘 자고 일어나니, 연우네 집이라는 걸 순간 잊어버렸다.

“아직 안 갔어?”

새봄이 물었다. 한참이나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연우가 아직 안 가고 있는 게 이상했다.

“너 데려다주려고 기다렸어.”

“……나를? 그냥 가도 되는데?”

“어디로 가면 돼? 할머니네 가게로?”

“……치킨집.”

“가자.”

그냥 가도 되지만 그래도 기다렸다고 하니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직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 대답은 했다.

* * *

연우의 차 안에서, 연우가 힐끔힐끔 새봄을 쳐다보았다. 새봄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연우가 손을 뻗어서 새봄의 손을 꽉 잡았다. 손을 잡는 거에도 부끄러워진 새봄은 연우의 손을 빼려고 했다. 연우는 새봄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새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연우는 미소를 지었다. 새봄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사이 치킨집 앞에 도착했다. 연우는 아쉬운 듯, 새봄의 손을 놓았다. 새봄은 내리려다가 말고 연우를 바라보았다.

“오빠, 미안한데 나 할머니한테 데려다줘.”

연우는 차 안의 시계를 바라봤다. 이미 출근 시간은 지나 있었다. 고민하던 연우는 차를 돌렸다. 연우는 다시 새봄의 손을 꽉 잡았다. 잠깐이라도 더 잡고 싶었다.

“오빠. 어젠 악몽 안 꿨어?”

“꿨어. 아주 괴로울 만큼. 그래서 일찍 잠에서 깬 거고.”

새봄은 괜히 어색해 물었다가, 또 할 말이 없어졌다. 괜히 물은 거 같았다. 연우는 새봄의 손만 잡은 채, 말없이 국밥집 앞에 도착했다.

연우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더니 새봄이 바로 안전벨트를 풀려고 했다. 연우는 새봄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새봄이 대신 안전벨트의 버튼을 눌러 주었다. 그리고 그대로 새봄을 가까이서 보고 있었다.

“왜 그래?”

새봄은 민망해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뒤로 얼굴을 빼고 싶으면서도, 의자가 움직여지지를 않았다. 그 순간은 뒤로 의자를 젖힐 수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새봄이 당황해서 곁눈질로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는 새봄에게 살며시 더 다가가 새봄의 입술에 키스가 아닌 뽀뽀를 했다. 새봄이 당황한 표정으로 연우를 쳐다보았다.

“뭐 하는 거야?”

당황했는지 새봄의 목소리가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연우는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오며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내 여자라고 도장 찍은 건데?”

새봄은 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키스도 하고, 이깟 뽀뽀 때문에 지금 부끄러운 거야?”

연우의 말에 새봄은 고개를 푹 숙였다. 키스 던 뽀뽀 던 맨날 이렇게 당황스럽게 갑자기 와서 한다. 새봄을 바라보던 연우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언제든 마음 바뀌면 우리 집으로 와. 난 네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면 더 좋을 거 같고.”

새봄이 아무 대답 하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내리고 나니 조금 전 연우의 뽀뽀에 기분이 이상해서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여자라고 도장 찍은 건데.’

그 말을 생각하니 새봄은 기분이 좋아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리고는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연우도 한참 그 자리에 차를 세우고 정신을 놓고 새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차 안의 시계를 확인했다가 늦은 걸 보고 그 자리를 떠났다.

새봄은 연우가 간 후에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멍하게 서 있었다. 뒤늦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조금 진정시키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국밥집 안으로 들어갔다.

며칠째 할머니 가게는 안 와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가 새봄에게 곧 화낼 거 같았다.

“어디를 가서 안 온 겨?”

“미안해. 할머니.”

“장기복이 손자 만나고 다니는 건 아니지?”

할머니의 물음에 새봄은 뜨끔 했다. 새봄은 마음을 가다듬고 할머니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할머니는 왜 장연우가 싫은데? 연우 할아버지가 도대체 뭘 했는데?”

“나중에 알게 될 겨. 앞으로 네가 국밥 만드는 거 배워서 해.”

“갑자기 왜? 할머니?”

“네가 해야지. 이 할미는 언제 갈지 몰러.”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해야지. 갑자기 하라고 하신다. 난 아직 배울 것도 많은데. 아직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데 언제 다 할지도 걱정이었다. 사실 새봄은 여기보다 언니네 치킨집을 돕는 게 더 좋았다. 연우를 할머니 때문에 자주 못 볼 거 같고 계속 연우를 보려면 치킨집이 좋았다.

* * *

연우는 집무실에서 패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봄이가 보고 싶은 건지, 패드 화면에 새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잠시 미쳤나 생각하다가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도 새봄의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연우가 휴대전화를 들어 깨톡을 켰다. 채팅창에서 새봄이부터 찾았다.

가장 최근에 보내서 맨 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

- 봄아. 봄아. 봄아.

연우가 깨톡을 보내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도 숫자 1이 사라지지 않는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뭐 하는데 내 톡을 안 보는데?”

연우는 계속 휴대전화만 바라보다가 치킨집에 전화했다. 누군가 받기는 했는데 보미 같았다. 다급한 연우는 다짜고짜 새봄이부터 찾았다.

“한새봄. 몇 시에 거기로 가?”

- 누구시죠?

보미가 저번에도 그러더니 연우의 목소리를 모르나 보다. 누구인지 말도 안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장연우야. 새봄이 언제 와?”

- 한 시 정도?

보미가 하는 말에 연우가 패드 화면에 시계를 한 번 바라보았다. 11시였다. 아직 시간이 한참이나 남았다.

“그럼. 지금 갈 거면 국밥집 가면 돼?”

- 아마도?

“알았어. 고마워.”

끊고 나서 국밥집으로 가려던 연우는 또 할머니가 내쫓을까 봐 갑자기 불안했다. 어차피 새봄이랑 저번에 블로그에 올려 주기로 약속도 했는데 못 먹고 나온 것도 미안했고,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다. 욕은 먹어도 어쩔 수 없었다.

연우가 일어나 옷을 챙겨 일어났다. 집무실 밖으로 연우가 나오자 비서가 벌떡 일어났다.

“전무님 어디 가시게요?”

“오늘 스케줄 좀.”

비서가 달력을 보고 오늘 일정을 확인했다. 달력 빽빽이 뭔가가 메모가 되어 있는데 이게 다 연우 스케줄이고 연우 관련된 거다. 한참을 바라보던 비서가 연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병원 가는 일정 잡혀 있어요. 전무님 약도 받아 오셔야 하구요.”

“그거 말고 없지? 내일까지 하루만 미루자. 오늘 내가 꼭 갈 때가 있어. 나 지금 나갈 테니까. 박 비서는 안 와도 돼.”

“어디 가시는데요?”

“그냥. 나 혼자 좀 갈 때가 있어서.”

연우가 재킷을 대충 몸에 걸치고 나갔다. 비서가 그대로 풀썩 다시 앉았다. 연우도 나가버리고 나니 안 그래도 조용한 비서실이 더 조용해졌다.

* * *

연우가 콩나물국밥집 앞에 도착했다. 연우는 바로 앞까지 오니 불안한 마음이 더 컸지만, 한숨을 길게 쉬고 국밥집 앞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손님도 없고 조용했다.

새봄을 부를까 말까 하는데 새봄은 할머니가 알려 준 데로 육수를 만드느라 바뻤다.

“할머니 이거 넣어?”

새봄의 목소리가 들리고 연우가 그 자리에 서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소리에 할머니가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연우와 순간적으로 눈이 마주쳤다. 연우는 당황해 시선을 피했는데, 어디서 국자 하나가 날아왔다. 할머니가 연우가 반갑지 않아서 들고 있던 국자를 던져 버린 거였다.

“나가지 못해?”

연우가 순간적인 반응으로 국자를 피했다. 다행히 아무 데도 맞은 데 없이 국자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옆에서 새봄이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그러지마아.”

새봄는 부엌에서 나와 연우가 다치지는 않은 건지 연우의 몸부터 살폈다. 그 순간 왜인지는 모르지만, 연우가 뽀뽀하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내 여자라고 도장 찍은 건데?’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새봄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연우를 쳐다봤다.

“장연우 여기 어떻게 왔어? 안 다쳤어?”

“보고 싶어서. 나 괜찮아.”

할머니가 연우를 내보내려고 쫓아왔다. 새봄이 연우 앞에 팔을 쫙 펼치고 할머니를 막아섰다. 새봄의 키가 작아서 그러나 마나였다. 새봄은 그래도 꿋꿋이 팔로 막아서며 할머니를 보고 말했다.

“할머니 연우 오빠. 엄청 유명한 사람이야. 오빠가 여기서 밥 먹고 가면 사람도 많아져.”

연우가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그러건 말건 연우가 온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아 내보내려고 했다.

“썩 나가지 못해?”

“할머니. 내가 처음으로 만든 거 연우 오빠한테 제일 먼저 먹어 보라고 하고 싶어.”

할머니는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새봄이 부탁을 하니 잠시 고민을 하는 거 같더니 아무 말 없이 부엌으로 가서 국밥 한 그릇을 퍼왔다. 그리고는 연우가 서 있는 바로 옆 테이블에 던지듯 그릇을 내려놓았다.

“먹어. 새봄이가 한 겨. 먹고 다시는 오지 마.”

연우가 할머니께 감사하다는 듯 꾸벅 인사하고 테이블에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

“……이게 네가 만든 거야?”

“응. 처음부터 육수랑 다. 완전히 내가 한 건 아니고. 어쨌든 먹고 냉정히 평가해서 블로그에 솔직하게 올려줘.”

한 숟갈 떠서 먹던 연우는 무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떠서 몇 번 먹더니 연우는 다 먹지 않고 남겼다. 새봄은 연우의 무표정이 괜히 불안했다. 연우는 말없이 나가 버렸다.

‘치, 내가 한 게 맛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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