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그만 돌아갈 시간이다.”
나와 함께 엄마의 임종을 지켜보던 기사가 내 손을 억세게 잡아 이끌었다.
'아냐, 아직 엄마를 눈에 다 담지 못했어!'
끔찍하고 처참한 모습일지언정 끝까지, 볼 수 있을 만큼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이게 마지막인데, 앞으로 더는 볼 수 없을 텐데!
'조금만, 조금만 더!'
적어도, 엄마의 눈에 고인 눈물은 닦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필사적인 반항은 기사에게는 그저 작은 귀찮음거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기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시체를 처리하고 싶어 했다.
나는 억지로 끌고 나가려는 것을 몸에 힘을 주어 버텼다.
그러자 기사는 내 팔을 억세게 잡은 채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화를 참지 않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것이 보여 그가 화를 내기도 전에 황급히 물었다.
“엄마는 이제 어떻게 돼요?”
"......."
그 물음에 순간 기사의 시선이 묘해졌다.
아주 약간의 당황함이 맴도는 것을 보니 그가 이제야 내가 일곱살의 어린아이라는 것을 떠올린 것 같았다.
그는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그저 입을 달싹일 뿐이다.
그야 나는 이제 겨우 일곱 살 된 어린아이인 걸.
죽는다는 것도 제대로 이해 못할 나이일 텐데 이제 어떻게 설명해 줄 건데?
기사는 몇 번이고 입을 달싹이더니 이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그의 눈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네 엄마는 이제 벌을 받게 될 거야.”
벌이라니… 이때까지 첨탑에 갇혀 있었던 건 벌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 위로해 주는 건 바라지도 않았었다.
그들에게 나는 일곱 살의 어린아이가 아닌, 드디어!
이제야 죽은 악녀의 딸이니까!
기사의 눈이 힐끗하고 뒤를 향했다.
엄마의 몸 위에 조금 전보다 더 큰 하얀색 천이 덮여 있었다.
차갑게 식은 엄마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는 듯 분주한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기사는 끔찍하다는 시선을 그쪽으로 던진 뒤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혐오스러운 눈빛은 엄마를 바라볼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네 엄마는 나쁜 짓을 저질러서 지옥에 가 벌을 받는 거야."
“…나쁜 짓?”
“그래, 나쁜 짓! 그러니 너는 나쁜 짓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기사는 무어라 말을 덧붙이고 싶은지 입을 달싹이다가 공, 소리를 를내며 고개를 돌렸다.
아마 그렇지 않으면 네 엄마처럼 될라, 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기사는 다시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꼿꼿한 뒷모습 뒤로 조금 전 보였던 경멸 어린 눈빛이 지워지지 않는다.
기사의 빠른 걸음을 힘겹게 따라 가면서 나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높은 계단 위로 회색빛이 가득한 좁고 낡은 첨탑이 보였다.
'사는 게 지옥 같았는데, 죽어서도 지옥에 가라는 거야?'
엄마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그랬을 뿐인데, 저런 곳에 죽기 전까지 가두어 놓았으면서.
우리 엄마가 당신들한테 뭘 그리 잘못했는데?
나는 당신들한테 뭘 그리 잘못했는데?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작은 체구는 이제 기사의 손에 질질 끌려가고 있다.
뒤에서 시선들이 느껴진다.
악의적인 시선일까, 아니면 비난하는 시선일까.
확실한 건 그중에 엄마를 잃은 딸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동정 어린 시선도 위로의 시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현실이었다.
소설에서는 악녀와 그 딸의 죽음을 자세하게 다루지 않았다.
행복한 결말에 그런 어두운 이야기는 한 줄로 슬쩍 언급만 해도 족했으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애초에 여자 주인공이 부부의 사이를 방해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아내가 있는 남자를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다른 서브 남주와 사랑에 빠졌었다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록된다고 하였다.
우리 엄마는 패자가 되어 결국 영원히 불에 타 죽어도 시원치 못할 악녀로 기억이 되겠지.
그리고 나도 비참하게 죽은 한 명의 엑스트라로서 이야기에 기록될 것이다.
'그건 싫어.’
엄마의 죽음은 이 소설에서 예정된 결말이었다.
내 죽음 또한 예정되어 있다.
나는 소설의 흐름에 따라 내일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맞아 죽게 될 것이다.
'악녀의 딸이라서?'
그런 우스운 소리가 어디 있어?
고개를 들어도 내게 향하는 고운 시선은 어디 하나 없다.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이제 막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인데도.
문뜩 드는 억울함에 자리에서 멈추려 몸에 힘을 주었다가, 억지로 끌고 가는 기사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꽤 큰 소리를 내면서 넘어졌기에 다시 주변의 시선이 몰리는 것이 느껴졌다.
따끔따끔하고 부정적인 시선에 넘어진 몸을 추스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늘은 참 맑았는데 이상하게도 유독 회색빛이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회색빛 가득한 세상 속에서 까맣게 물든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갈기갈기 찢어 버리 기라도 하고 싶은지 마치 칼을 품은 듯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마치 내가 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하지만 내게 괴물은 이들이었다.
* *
“세상에나! 다프네!"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상냥한 목소리와 함께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보육원에서 유일하게 내게 잘해 주던 여자가 나를 향해 빠르게 뛰어오고 있었다.
'…이름이 울리네였던가.'
굳어 버린 머릿속을 뒤져 이름을 기억해 내고서 그녀의 이름을 밖으로 내뱉었다.
“..…울리네.”
“그래, 다프네. 세상에나. 애가 이렇게 쓰러졌는데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
화가 난 목소리에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서 나를 일으키며 부축하는 울리네의 뒤에서 나를 노려본다.
마치 네 잘못으로 넘어진 건데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는 듯한 눈빛에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상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세상에나. 무릎이 다 까져 버렸네.”
"......"
"얼른 돌아가서 치료해야겠다.”
돌아가야 할 곳이라면 보육원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잠깐만.'
생각해 보면 보육원에서 계속 살아가게 될 텐데, 도대체 나는 어떻게 맞아 죽는다는 걸까?
내 죽음은 소설 속에서 단 한 줄로 표기되었을 텐데.
도대체 어떻게 죽는 거지…?
“어쩜, 다프네. 많이 아픈가 보구나. 어떻게 하면 좋아.”
'나는 왜 보육원 밖에서 그렇게….' 내 상처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목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고, 평소보다 유독 반짝이는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참, 돌아가기 전에 만날 분이 있단다."
"만날 분?”
내 물음에 울리네가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우리의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졌다.
나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체격에 밤하늘이 물든 듯 어두운 남색 머리, 그리고 날카로운 눈매와 어울리는 날렵한 턱선.
내가 바로 주인공이라고 알려 주는 화려한 외모 위로 유독 하나가 눈에 띄었다.
거울 속에서나 보았던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사람이 내 아빠라는 사실을.
나는 아빠와 눈이 마주치기도 전에 빠르게 고개를 숙여 버렸다.
불쾌감이 가득 섞인 시선이 내게 향할 것 같아서 몸이 덜덜 떨렸다.
엄마도 죽고, 이제 내게 남은 것은… 내 존재는 신경도 쓰지 않던 아빠뿐인데.
아빠한테마저 버려진다면, 나는 정말로 내일….
나는 긴장감에 땀에 젖은 손을 낡은 옷에 닦아 냈다.
“이 아이는 누구지?"
그 물음에 기사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조금 난감해하는 기색이었다.
그 틈을 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울리네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는 공작님의 따님입니다.”
“딸?”
어이없는 목소리였다.
울리네를 뒤로한 채 옆에 있는 기사에게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짜증이 가득한 그의 목소리에 괜히 몸을 움츠리는데, 망설이던 기사가 답을 하였다.
“악녀 프레이르의 딸입니다."
“…하.”
어이없는 한숨 소리, 그리고 명백하게 느껴지는 불쾌감.
나를 향해 내려오는 차가운 시선.
'…그렇다고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어떤 방법인지 몰라도 난 내일 죽을 것이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마치 인형이 움직이듯 삐걱거리는 팔을 올려서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뻗었다.
"아… 빠….”
그리고 아빠를 부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뒤의 말도 듣지 않고 오히려 옷자락을 붙잡으려는 내 손을 피하듯 뒤로 물러섰다.
"내 아이가 아니다."
"......."
그의 시선이 내 눈을 거쳐 푸석푸석하고 짧은 머리카락으로 향했다.
보라색 머리카락, 엄마가 물려준 색.
그것을 보며 엄마를 떠올렸는지 그의 미간은 조금 전보다 더욱 찌푸려졌다.
“그럴 리가 없지.”
단호한 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유니스를 해치려고 사람까지 고용했던 여자다. 돈이 없었을 테니 그중 하나에게 몸을 내어 주기라도 했겠지.”
"......."
“사랑보다 권력과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며 패악을 부린 여자니 그럴 만하지.”
지독한 정적이 흘렀다.
“누구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는 더러운 아이를 감히 내 아이라 함부로 입에 담지 말아라.”
그 말이 끝나자 우리의 뒤로 엄마의 시체를 든 기사들이 내려왔다.
아빠, 아니 공작은 내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그쪽을 향해 걸음을 옮겨 갔고, 곧이어 사륵하고 천을 들어 올리는 소리가 들렸다.
“확실하게 죽었군. 시체는 알아서 처리해라.”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미련 하나 없는 발걸음으로 공작은 이곳을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도 제 부인이었던 여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니.
악녀의 죽음은, 엄마의 죽음은 끝까지 비참하였다.
모두가 기뻐하는 죽음이었다.
* * *
나는 울리네의 손에 이끌려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가는 동안 울리네는 그녀답지 않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이상함을 느꼈겠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챌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울리네는 보육원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공작이 그리했듯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울리네?”
내 작은 목소리에도 항상 귀 기울이며 웃어 주던 울리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진짜.”
평상시와 같은 친절한 목소리가 아닌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
거칠게 제 머리를 쓸어 넘긴 그녀가 나를 내려다본다.
“인생 좀 펴 줄 황금 줄인 줄 알고 붙잡고 있었더니, 썩은 줄이었잖아.”
짜증이 배인 목소리 위로 이제는 경멸 어린 눈빛이 따라왔다.
“좀 따라가서 공작가의 유모로 편히 살아 보려고 했더니."
그제야 그녀가 왜 내게 친절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 진짜 짜증 나는데 어쩌지.”
화를 참지 못하는 목소리,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함께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