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딸로 태어났다-3화 (3/185)

제3화.

뒤에서 터진 웃음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보육원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너희 엄마 죽었다며?"

"......."

“다들 잘됐다고 그러더라! 너네 엄마 되게 나쁜 사람이었다며!"

주홍 머리를 가진 귀여운 여자애는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잔인한 말을 쉽게도 꺼냈다.

'짜증 나.’

짜증이 나지만 여기서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됐어. 그냥 들어가자.'

평상시처럼 무시하고 돌아가는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뒤에서, 야! 야! 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꿋꿋이 무시한 채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여자애가 덧붙인 말에 옮기려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너희 아빠가 너희 엄마 죽인 거라며.”

“…뭐?”

“너희 아빠가 네 엄마 첨탑에다 죽을 때까지 가둬 둔 거라며! 너희 아빠가 너희 엄마랑 너 버린 거라며!”

"......"

그 말에 주변에 있는 아이들이 그렇다며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얼마나 미웠으면 버렸을까!"

“나쁘니까 죽였겠지!”

“그럼 너도 나쁘겠네! 엄마가 나쁜데 네가 착할 리가 없잖아!”

악의가 있든 없든 그 말은 흉기가 되어 안 그래도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찢어질 마음도 없는 것 같은데, 더 이상 힘들어질 수도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억울해서 화를 내고도 싶었고, 울면서 소리도 지르고 싶었다.

여기서 화를 내면 안 되니까, 여기서 화를 내면….

'…왜 안 되는데?'

먼저 엄마를 욕보이고, 나를 할 뜯는 것은 쟤네들이잖아.

'아냐, 그래도 아직 어린애들이니까..'

악의로 하는 말은 아닐 테니까 잘 타이르자, 그러자.

아직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모를 수 있으니까….

“정말, 꼴좋다~”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여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머리에 무언가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꼴좋다고?' 정신을 다잡으며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했건만 의문이 든다.

정말로 이 아이들이 선악을 구분하지 못해서 이러는 걸까?

단순히, 정말 단순히 몰라서 그럴 리가…..

없잖아.

이것은 분명한 악의였다.

그들은 고작 내가 악녀의 딸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 것이다.

평소보다 한층 더 죽은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의 눈빛에는 잘못을 했다는 생각 따위는 전혀 없었고, 당연히 그에 따른 죄책감 또한 없었다.

언뜻 보면 즐거워 보이는 그 표정이 조금 전 보았던 기사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검게 변한 아이들이 입꼬리를 찢어 올려 웃는다.

나를 한껏 비웃는다.

그리고 조롱한다.

마치 그래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는 듯이 그리했다.

그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천천히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언제부터 내 세상이 이리 회색이 되었을까.

화창하고 맑기만 한 하늘인데.

내게는 밝은 빛 한 줌 없이 검은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어두운 하늘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끝이 다가왔다는 듯한 그 광경에 어이없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 하하.”

내 웃음소리에 아이들이 움찔하더니 다시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다.

나는 들어 올린 고개를 내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차갑게 죽은 내 시선에 잠시 멈칫했으나 금세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기에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너희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

“…뭐?!”

작은 목소리였지만, 주변이 조용해져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었다.

비웃음이 섞인 내 목소리에 아이들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곧 모욕을 당했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난 엄마가 죽으면서 고아가 된 거지만 너희는 아니잖아.”

“야!"

“너희도 나와 같은 고아인데 왜 나에게 화풀이를 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갸웃하고 고개를 숙이니 그들의 얼굴이 마치 터질 듯 더욱더 붉어졌다.

수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문 모습.

혹은 고개를 숙인 모습.

서로 다른 표정으로 기가 죽은 모습에 난 한숨을 내쉬고는 그 아이들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네도 이런 말 듣기 싫으면 그렇게 말하지 마."

차갑게 벼려진 시선에 아이들은 조금 전과 다르게 기세를 꺾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받아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어째 조금 당황하는 것도 같았다.

다들 우물쭈물하며 난감해하기 시작했다.

그저 나를 괴롭힐 생각만 가득한 아이들과 더는 말싸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 적을 만들어서 뭐해.'

내가 어떻게 죽는지 모르니 사람과의 관계도 조심해야 하는 게 맞겠지.

나는 아무런 말 없는 아이들을 뒤로한 채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과 다르게 세상은 나를 쉽게 방으로 돌려보내 줄 생각이 없나 보다.

잊고 있었던 울리네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나를 붙잡았다.

깜짝 놀라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가 험악한 얼굴로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너 친구한테 그게 무슨 못된 말이야!"

“......."

조금 전까지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으면서.

'이제 대놓고 모른 척하고, 같이 학대라도 하겠다는 거네.'

내숭 따위 집어던지고, 아주 작았던 편애도 던져 버리겠다는 것을 이리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못된 말을 배웠어!

어쩜! 제 엄마를 닮아서 이리 성격이 못됐는지….”

뒷말을 흘렸지만 나뿐만 아니라 뒤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닿을 수 있는 소리였다.

내가 움찔하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자 그녀가 듣기도 싫다는 듯 다시 훈계하기 시작했다.

"반성하는 태도도 안 보이니 어쩔 수 없네! 다프네, 네가 무얼 잘못했는지 반성하기 전까지 밥은 없는 줄 알렴!”

"......"

"대답해야지!”

“네.”

대답하지 않으면 절대 놔주지 않겠다는 어조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 대답에 풋 하고 웃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평소와 다르게 울리네가 내가 아닌 자기들 편을 들어주니 다시 기가 산 아이들이 신이 난 듯 나를 보며 비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리네는 그 모습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럼 네 방으로 가서 네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도록 해! 내가 나중에 가서 확인할 테니까!"

"네."

내가 체념하듯 대답하자 그녀가 나를 놔주었다.

뒤에서 쿡쿡하고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비웃음 어린 시선을 뒤로한 채 내가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 * *

끼익 하고 듣기 싫은 소리가 나는 문을 힘을 주어 닫았다.

문틀과 제대로 맞지 않아 삐걱거리는 문은 몸으로 힘을 주어 밀어야 간신히 닫히고는 했다.

아주 작고, 낡은 방.

아니 창고를 바라보며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딱딱한 침대에 머리를 묻었다.

악녀여서 죽은 엄마, 나를 자식으로 생각도 않는 공작.

'고아가 되어 버렸네.'

어차피 정해진 이야기였고,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가슴이 이상했다.

울렁울렁하고, 또 울컥울컥하는 게 누군가가 잘못 건드리면 팡 하고 터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올라오는 감정을 욱여넣기 위해 다시 침대에 얼굴을 파묻었다.

"결국, 내 세상은 회색빛이고 점점 어두워져 죽음을 맞이하겠지.”

악녀의 딸이라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

순수한 악의 모습을 보여 주는 보육원 아이들.

이제는 대놓고 학대를 즐길 것 같은 보육원의 직원들.

모든 것을 묵인할 보육원장.

‘과연 누구에 의해서 죽게 되는 걸까?'

'자세히 생각이 안 나.'

빌어먹게도 허술한 원작 소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 또한 이 이야기 대로 흘러가 죽어야 한다고….’

죽음을 떠올리자 조금 전 보았던 싸늘하게 굳은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싫어.'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살고 싶단 말이야.

마치 시한부처럼 내일이 죽을 날이라 생각하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싶지 않았다.

소설의 흐름처럼 진짜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도 내가 그리 죽기를 바라지는 않을 거야.'

비록 대화도 한 번 나눠 본 적없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았을까?

내가 죽기를 바랐다면 어릴 때 젖을 먹이거나 안아 주는 최소한의 돌봄을 해 주지도 않았겠지.

내 죽음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 앞날에 희망이 비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한들, 나는 다시 한번 엄마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고개를 들었다.

생각이 길었는지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겨울의 해는 짧으니 이제 대략 여섯 시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시간을 자각하자마자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두세 명 정도 되는 발걸음 소리에 빳빳하게 긴장하고 있는데 큰 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반성은 좀 했니?"

“......."

나는 그저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울리네는 뒤에 있는 그녀의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평소에 나를 학대하던 여자들과 시선을 마주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제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 해 줬던 거네요. 선배님들 말씀이 다 맞아요. 이렇게 버르장머리 없는 애는….”

나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울리네를 올려다보았다.

"아주 혼쭐을 내줘야겠어요."

살벌한 말에 그녀의 선배들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제 엄마를 닮아서 불길한 보라색이네. 보기 싫다~"

“보아하니 여전히 반성하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되겠다. 너 내일 나랑 어디 좀 가야겠다.”

그 말에 몸을 움찔하고 떨었다.

“혼내 줄 사람이 잔뜩 있는 곳으로 가면 너라도 정신 차리겠지!”

울리네는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끼어 하하 호호 함께 웃으며 그들을 이끌고 나갔다.

그리고 나올 생각은 말라며 문을 못 열게 막아 놓고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데려간다고?

마치 겁을 주듯 위협하는 표정으로 말한 것을 보니 무서운 곳인가?

“…그 어디론가에 데려갔다가 내가 맞아 죽나 보네."

이딴 상황을 겪어 보니 내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난 오늘 이곳을 벗어나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정해진 대로 죽지 않을 테니까.

살아가기 위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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