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딸로 태어났다-7화 (7/185)

제7화.

아, 이것은 시험이 분명했다.

네 각오를 보겠다는 그런 시험.

".......”

"그러고 보니 성문 밖을 나가면이 날씨에도 가끔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보인다더구나. 다만… 이 밤에 너 혼자 성문 밖을 나서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클로에가 다시 한번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리고 후~ 하고 다시 하얀 연기를 내뱉으며 묻는다.

"야생 동물이 돌아다닐 수도 있고, 혹 밤길을 잃은 몬스터들이 돌아다닐 수 있지."

그녀가 겁을 주려는 듯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무엇보다 어두운 길을, 그 춥고 험난한 길을 혼자 돌아다녀서 꽃을 찾아와야 하는데."

클로에의 표정이 조금 전처럼 다시 연기에 가려졌다.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뒤에 이어질 말은 알 것 같았다.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것인지 모르지만, 클로에는 내게 기회를 주려고 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가는 꽃을 찾으려다가 비명횡사할 수도 있단다. 그래도 내게 줄 꽃을 가져오겠니? 이왕이면 붉은색 꽃으로.”

“꺾어 오는 꽃도 상관없다면 얼마든지요.”

그리고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내 단호한 대답과 함께 뭉실뭉실 떠다니는 하얀 안개가 그녀의 입가를 살짝 비추어 주었다.

그 입가에는 아주 만족스러운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내가 한 말이 정답이었다는 듯 클로에는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옆의 소년은 아니었나 보다.

"어머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 밤중에 어디로 보낸다고요?"

창백한 얼굴의 소년이 필사적으로 말리는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나를 경멸하지 않고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을 처음 봐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시선을 눈치챈 그가 잠시 당황하더니 괜히 헛기침하며 다시 클로 에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다른 조건으로 걸어 주세요. 이 아이 정말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데…. 정말 잘못하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어요. 요새 숲도 흉흉하고….”

“다프네의 선택인데 왜 네가 왈가왈부하니?”

클로에의 말에 갑자기 소년의 입이 딱 다물렸다.

그리고 금세 억울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리더니 나를 내려다본다.

정말 할 것이냐 묻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경악하는 목소리로 소리를 높였다.

“고작 다섯에서 여섯 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잖아요!"

“난 일곱 살이고, 잘 뛰어서 여기까지 왔는데요."

내 단호한 대답에 그가 내가 아닌 클로에를 질린다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뭐가 문제냐며 말했다.

“다프네가 불을 질렀으니 성문으로 나가는 것도 생각보다 쉬울 테고, 의지가 충만한데 문제될 것 없다.”

클로에는 소년의 머리를 한 번 거칠게 쓰다듬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만 나는 기다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거야. 동이 트기 전까지는 가져오거라.”

조건까지 확실하게 부여한 뒤 클로에는 연기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지금은 그걸 구경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떠올리며 당장 성문을 향해 나가려고 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재빠르게 실행에 옮겨야 하니까!

“......."

힘차게 나갈 준비를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나는 금세 준비 자세를 풀고서 천천히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나 성문이 어디 있는지 몰라요."

"........"

"거기까지만 안내해 주면 안 돼요?”

“......."

소년은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이내 한숨을 쉬고서 말했다.

“우선 신발부터 신어야 할 것 같으니 잠시만 기다리렴. 내가 성문까지 데려다줄 테니."

* * *

녹색 머리의 소년, 레녹스는 지금껏 만나본 사람들과 다르게 내게 꽤 친절했다.

“다프네라고 했지? 내 이름은 레녹스 베네디토라고 한단다.”

레녹스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려는 나를 기다리게 하더니 작은 신발 하나를 들고 왔다.

아마도 그가 가진 가장 작은 신발이었음에도 내게는 조금 커 살짝 헐렁였다.

그것을 보며 레녹스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를 향한 경멸이 아닌 걱정을 품고 있는 연두색 눈동자는 굉장히 낯설었다.

‘…신기한 사람이네..'

원래 동정심이 많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악녀의 딸이 아닌 어린아이에게 베푸는 친절은 처음 받아 봐 조금 손끝이 간질간질했다.

레녹스는 복잡한 눈으로 내가 신발을 신는 것을 바라보다가 다시 무언가를 내밀었다.

"밖은 추워. 그 상태로 돌아다니 다가는 분명 감기에 걸리고 말 거야.”

그는 내게 작은 로브를 걸쳐 주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네. 이번만 조금 참아 보렴.”

친절하게 다음을 기약하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까지는 조금 걸리는데, 손을 잡고 걷는 게 좋겠지?”

조금 전의 나처럼 그의 손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녹스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쥐고서, 내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성문까지 함께 가 주었다.

“성문 밖은 정말 위험할 거야.

그러니 무섭고, 포기하고 싶어진다면 관두고 다시 돌아와도 괜찮아.”

“그럼 꽃을 못 구하잖아요.”

“그렇지만 정말로 밖은 위험하단다. 생각보다 더.”

그 말에 내가 해 줄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지금껏 살면서 내게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었어요. 걸어왔던 길이 가시밭길이었으니까, 앞으로 걷는 길이 조금 위험하다고 해서 달라질 것 없어요.”

그가 내게 따뜻하게 대해 주는 것은 참 좋았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하는 척하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이게 연기일지 아닐지 모르잖아.

울리네를 떠올리며 괜히 말에 가시를 세웠다.

그리고 일부러 고개를 숙여 레녹스를 외면했다.

그 뒤로 우리 사이를 잇는 말은 없었다.

* * *

공중에서 들려왔던 목소리처럼 정말로 성문 앞에는 경비대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작 불 한 번에 이러다니. 이러다가 수도에 큰일 나면 어떻게 하려고..'

“경비대는 일도 제대로 못 하나 보군.”

레녹스가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이없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뭔가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 괜히 잡은 손을 한 번 꼼지락거렸다.

“조심히 돌아와야 한다.”

우리는 성문을 넘어섰다.

성문 앞을 밝히는 램프의 불을 제외하고서는 숲은 정말로 어두컴컴했다.

멀리 보이는 보육원이 불에 잡아먹히고 있다면, 숲은 캄캄한 어둠에 잡아먹힌 것 같이 보였다.

괜히 그 어둠에 몸을 움찔하며 떨자 레녹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역시 여기서 그만두는 게…."

“…아뇨. 싫어요.”

저게 진심 어린 걱정이든, 아니면 걱정하는 척이든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해서 물러날 곳이 없었으니까.

레녹스의 얼굴은 찌푸려져 있었지만, 더 이상 나를 말리지는 않았다.

"보이는 길만 따라 걸으면… 될 거야.”

어둠 속에 가려진 길을 가리키는 듯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레녹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서서히 숲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앞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둠이 마치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입을 떡하고 벌리고 있는 것 같아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어두워….’

차가운 공기 때문에 그런지 벌레우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희미하게 달빛이 보이기는 했지만….

조용한 숲의 적막 속에서 사박사박하는 내 발소리와 스쳐 지나가는 수풀의 소리만이 들렸다.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것 같은 그 고요함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조금… 무서울지도.'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려서 빨리 꽃을 찾아야 해.

다행히도 길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고 있어 길을 찾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어둠 속에 비치는 붉은색이 보이기를 바라며, 나는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휙휙 움직였다.

꽃은커녕….

풀이 자라나 있는 게 다행일 정도잖아.

로브로 몸을 감싸 추위를 잊으려 하며, 깨끗하게 다듬어진 길을 걸어가는데 한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

내가 움직이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숲속이었다.

그렇기에 그 작은 소리도 마치.

귓가에 직접 들려주듯 확실하게 다가와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으르르릉~

동물의 울음소리, 그리고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소리.

침을 꿀꺽하고 삼키며 그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내 시선이 향한 곳에서부터 소리는 점점,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마른 수풀 가지를 뚫고 커다란 동물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분명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망설임 없이 뻥 뚫린 길이 아닌 수풀사이를 마구잡이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짐승이 짖는 울음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뒤를 돌아볼생각도 하지 않고 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 다리로 얼마나 도망갈수 있을지 모르지만......

멈출 수가 없었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뛰었다.

한참을 뛰었을까?

거친 숨이 목까지 차올라 턱턱막혀 오고,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가 한계라고 비명을 질렀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지난번에 다친 발이 버티지 못하고 삐끗하면서 넘어지고 말았다.

쿠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넘어지고 나서 뒤를 돌아봤을 때는 다행히도 나를 쫓아오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며 주위를 돌아보았을 때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어둡고 삭막한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욱신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억지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심지어 길을 비춰 주던 달빛마저 사라져 버렸다.

정말로 어둠 그 자체인 이곳을 보니 나는 그제야 내가 처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오로지 어둠이었다.

수풀과 빼곡한 나무들로 뒤덮인 숲에는 달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세상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빛 하나 없는 이 어둠이 너무 싫었다.

난 이런 어두운 색이 싫어.

나를 싫어하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색이니까.

그래서 너무 싫어.

내 옆을 떠도는 어둠은 그와 같이 차가운 기운을 내뿜으며 나를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난도질할 것 같았다.

머리로는 어서 발을 움직여야 한다고, 얼른 가야 한다고 힘껏 외쳤다.

하지만 머리를 따라 줄 생각이 없는지 움직이지 않는 발이 야속하기만 하였다.

'움직여, 움직여!’

살고 싶어서 뛰쳐나왔잖아.

이미 모든 것을 되돌리기에는 늦었잖아.

아, 더는 못 참을 것 같아.

눈가에 서서히 눈물이 고였고, 방울방울 맺힌 눈물방울이 금방이라도 땅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제야 희망에 가려져 있던,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도, 적막한 공간도, 길을 잃어버린 이 상황도.

나를 억죄는 이 어둠도 내 피부에 올곧게 와닿았다.

“무서워..."

이 어둠이 결국 나를 삼켜 버릴 것 같아서, 어떻게든 내 죽음을 완성해서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 같아서.

결국, 행복한 결말을 위해 내 존재를 거부당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

욱신거리는 발의 통증이 없었다면 적어도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참혹한 어둠 속.

고개는 저절로 숙여지고, 희망은 아래로 떨구어졌다.

짙은 어둠 속에서 더 이상 내려앉을 곳도 없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가는 느낌.

희망을 지워 버릴 포기라는 단어가 등장하려고 할 때.

흐릿한 시야 너머로 살랑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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