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의수….”
“아가씨께서 빤히 보실 만큼 좋은 게 아닙니다.”
“하지만, 윈스턴의 손이 되어 주잖아. 그게 왜 나빠?"
그냥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했을 뿐이지,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시선을 돌리고서 다시 수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옆에서 지긋이 따라오는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프를 다 먹어 감에도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휙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아가씨, 이 손이 징그럽지 않으세요?"
"안 징그러워.”
“의외네요. 보통 어린아이들은 이 손을 보면 싫다고 하던걸요."
윈스턴의 허허실실한 웃음에 내 눈이 세모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니니까."
“…그런가요?”
“응. 어린애가 아니니까 안 징그러운 거야.”
“하지만 다 큰 성인들도 징그러.
워하던걸요?”
그 말에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예의가 없는 거잖아.”
"…그렇죠. 아가씨 말이 맞아요.
그 사람들은 제가 왜 의수를 차는지 설명도 듣지 않고서 그런 시선을 줬는데 말이죠.”
“못됐네.”
“…괜찮다면 아가씨께 의수를 차게 된 원인을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갑자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윈스턴은 쓰고 있는 안경을 치켜 올렸다.
동그란 안경알 너머 빙긋 웃는 눈매가 참으로 선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 나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무서울 수도 있지만."
“아니라니까.”
바로 나오는 내 대답에 윈스턴은 뭐가 좋은지 후후, 하고 웃었다.
그리고 소매를 접어 올리고서는 손목에 연결된 의수를 보여 주었다.
“아주 예전, 처음으로 상단주님을 만났을 때부터 시작해 볼까요?
상단주께서는 아직 후계자 자리에 있으셨고, 제가 좀도둑이었을 때였죠.”
어째 내 생각보다 더 오래된 일이고, 어두운 이야기 같은데.
'들어도 되는 것 맞나?'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일 텐데, 처음 보는 어린애한테….
하지만 그 생각은 금세 저 멀리 사라졌다.
“그 당시 클로에님은 차기 상단 주가 되기 위한 시험을 받고 계셨습니다. 이 도시에서 본인에게 가장 귀한 것을 찾아오라는 시험을 말이죠.”
그 말에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내 눈빛이 반짝이자 뭐가 재미있는지 윈스턴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고개를 갸웃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며 입가를 가리고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상단주님의 지갑을 제가 털었답니다.”
“…진짜?"
“진짜로요. 그 후로 추격당하다가 아깝게 잡혀 버렸지요.”
“…그때의 엄마는 연기술사로서의 능력이 없었어?”
내 물음에 윈스턴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그 연기를 피하느라 죽기 살기로 뛰었는걸요."
“…대단한데.”
엄마의 능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 봤기에 실력이 굉장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무리 과거라고 해도 그 당시에도 훌륭했을 게 분명했다.
'단순한 좀도둑이 아닌 것 같은데.'
내 의심 서린 시선에 그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상단주님과 똑같은 눈빛을 지니고 계시네요. 그때 저를 이런 눈빛으로 쳐다보셨거든요. 그러고는 말씀하셨죠.”
“뭐라고?"
"이 새끼 진짜 좀도둑 맞아? 라고 말입니다.”
역시, 어제 내가 본 모습이 거짓은 아니구나.
입이 거친 모습도 왠지 엄마다운것 같네.
"그러고선 대가를 치르라며 저를 억지로 끌고 다니셨습니다."
윈스턴이 힘들었다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면 이런 짓을 다시 안 하게 될 것이라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열심히 부려먹으셨죠.”
“그리고?”
“그 지갑의 돈을 모두 월급으로 주셨죠. 새롭게 잘살아 보라고 응원도 해 주셨었죠."
그가 정말 짜릿했다면서 크큭 웃더니, 정신을 차리고서는 큼큼 헛기침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치안대의 단장이 그 돈을 훔친 것이라고 단정 짓고서 저를 끌고 가더군요. 도둑놈 손목을 잘라 버리겠다.
면서 말이죠.”
"......."
그 말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설마 그래서 손이 저렇게 된 것일까?
내 표정에 그가 아니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침 단장 녀석이 추문에 싸여 있었기에 저를 적당한 먹잇감으로 삼으려고 했던 겁니다.”
윈스턴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 더 몰입이 되었다.
“…그래서?”
“광장 한복판으로 끌고 가서 제 손목을 잘라 버리려는 그 순간, 상단주님이 나타나셔서 그 돈은 자기가 합당하게 지급한 봉급이라고 말해 주셨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도 나섰는데 손이 왜 그렇게 된 거지?
그 말을 끝내고 나서 윈스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놈은 그것을 믿지 않았어요. 외국인 아가씨가 겁도 없다면서 상단주님도 공범으로 몰고 갔죠.”
“엄마는 외국인이 아닌걸?"
“외국에서 오래간만에 돌아오신 거라 당장 증명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따라 주지 않는 그 상황에 듣고 있던 나까지 답답해졌다.
내가 가슴을 콩콩 치자, 그가 진정하라며 비어 있는 물 잔을 채워 주며 말을 이어 갔다.
“그것도 모자라 상단주님을 희롱했습니다. 더러운 입으로 천박한 말을 내뱉었지요. 그 많은 사람이 모인 광장에서요.”
윈스턴이 그날을 회상하듯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내려쳤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정말 억울하다면 직접 저의 손목을 자르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런 궤변이 어디 있어!
“우습게도 상단주님이 어떤 말을 해도 들어 주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대들었다며 화를 냈습니다.”
못난 어른이었다.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렇지 않으면 상단주님의 손목을 먼저 자르겠다며 으름장을 놓더군요. 그 순간 든 감정은…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설마.”
“그분과 함께한 시간에 많은 것을 깨달았거든요.”
윈스턴이 눈을 감고서 진심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새롭게 살아갈 희망을 주신 분이니까요. 그분이 그런 취급받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윈스턴은 후련해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제가 제 손목을 직접 잘랐습니다.”
윈스턴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그때는 오로지 제가 쌓아 온 업보로 그분까지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랬다며 그는 빈 식기를 치웠다.
그러면서도 얘기는 멈추지 않았다.
“모여 있는 모두가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리고, 욕을 하던 그때 상단주님은 치안대 단장이라는 놈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려쳤죠.”
“…얼굴을 주먹으로?"
“그때 저 멀리서 치안대 기사가 달려오더군요. 상단주님의 정체를 알게 된 자가 당장 말리려고 뛰어오고 있었던 거죠.”
모든 것이 다 끝나가고서야 등장하다니.
이 세상은 그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윈스턴은 손목을 잃은 게 억울하지 않아?”
너무 오래돼서 억울함이 사그라 들기라도 했나?
아니야, 나라면 저렇게 사그라지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도대체 뭘까?
“상단주님은 수도의 의사와 신관을 데리고 와 저를 치료하게 했습니다.”
아마 엄마라면 모두를 데려와 당장 치료에 매달리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윈스턴의 손목은 낫지 않은 거겠지.
“그럼에도 제 손목은 원상 복구 될 수 없었죠. 그런 제게 그분은 의수를 건네주시며 사과를 하셨죠.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그가 작은 푸딩을 가져와 앞에 놓아 주었다.
후식으로 먹으라는 듯 친절하게 뚜껑도 열어 주는 그 모든 동작에 어색함이라고는 없었다.
“그리고 저를 데리고 전대 상단 주께 가서 말하더군요. 이 도시에서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보물이라고.”
“어…."
갑자기 이게 어떻게 흘러가는 흐름인지.
이해가 안 돼서 푸딩을 잡은 채 놀란 눈으로 그를 보자 그가 푸흐흡, 하고 웃는다.
“제 옆에 둘 수 있는 믿을 만한서 말이죠.”
사람이 자신에게는 큰 보물이라면
“…그럼 엄마는 시험에 합격했어?"
“합격하셨죠. 그 후로 직접 저를 채용하셨고, 그렇게 비서 일을 하게 된 지 벌써 15년이 지났네요.”
아, 저 의수는 윈스턴에게 창피하고 부끄러운 결점이 아니었구나.
제가 직접 선택한 인생의 첫 시작이 되었던 거야.
그렇기에 억울하지 않았던 거다.
“어쩐지 오늘 초면이지만, 직접 얘기해 드리고 싶었어요. 혹시 궁금해 하실까 봐?"
그가 장난스럽게 윙크를 했다.
“그래서 저는 아가씨도, 아가씨다리의 상처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윈스턴의 말에는 뼈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았다.
"아가씨께서 직접 선택하신 일이고, 그래서 이 자리에 있게 되셨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아가씨께서 만들어 가는 삶이 되었지요.”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그가 줄어들지 않는 푸딩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어린애에게 하기에는 차가운 말일 수도 있으나 나는 오히려 저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나를 존중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으니까.
“윈스턴.”
“네?”
"나 윈스턴이랑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저희 마음이 통했나 보네요."
윈스턴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 손에서 푸딩을 앗아 갔다.
그러고는 직접 떠서 내 입 앞으로 가져왔다.
“그럼 저희 관계의 시작을 이 푸딩으로 해 볼까요?”
“…왜 얘기가 거기로 흘러가?"
"저는 도련님께서 짜 주신 식단에 맞춰 제공해 드릴 뿐인걸요.
부디 제가 제 임무를 다 수행하게 도와주세요.”
여기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받아먹을 수밖에 없잖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벌렸고, 뜬 푸딩을 입안에 넣어 주었다.
마치 새 모이를 주듯이 그가 작게
“단 것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점심 간식은 코코아랍니다."
기어코 다 먹은 푸딩 그릇을 노려보다가, 들려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으….”
"분명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 코코아니 잘 챙겨 드려야 한다고 듣고 왔는데… 아닌가요?"
리카르다 도련님이 잘못 알고 계셨다며 짓궂게 웃는 것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리카르다가 코코아를 제일 자신 있어 하는데. 너무 달아서 싫어.”
“직접 말은 못 하셨나 보네요?"
"만들어 주는 표정이 너무 신나 보여서….”
내가 마치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푸욱 한숨을 내쉬니 그가 갑자기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잠시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서요. 이제는, 큽… 괜찮습니다."
괜찮은 것 맞겠지?
여전히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아 물어보려는데 그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이 더 빨랐다.
“식사도 다 하셨는데 어디 가 보고 싶은데 있으세요?"
"어디든 가도 돼?”
“여기서 아가씨께서 못 가실 곳은 없으세요.”
“그렇다면 숲속의 작은 감옥으로 가고 싶어.”
내 말에 윈스턴이 멈칫하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곳에 가시겠습니까? 정말로요?”
“응. 정말로, 그 아이를 만나 볼래.”
윈스턴은 그 대답에 망설임 없이 뒤돌아 옷장 구석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알 수 없는 장치가 잔뜩 달린 그것의 정체는 휠체어였다.
"이상하군요. 분명 아가씨께서 바로 쓰실 수 있게 준비해 두었는데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네요."
"다들 날 속였구나.”
내 휠체어는 만들어지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더니.
왜 내 휠체어가 저기서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