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뭔가 이상해.”
“뭐가?"
나는 라그나르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라그나르는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둘러싼 철창 감옥 안을 둘러보았다.
푹신하게 털이 채워진 두꺼운 러그, 찬 바람도 막아 줄 만큼 두툼한 이불과 의복.
베기만 해도 잠에 푹 빠질 것 같은 몰랑몰랑한 베개와 큰 곰돌이 얼굴이 그려진 인형.
확실히 철창만 없다면 감옥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라그나르가 위험해 보이지는 않나 봐.’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라는 게 밝혀졌으니 뭐.
라그나르가 계속 자신의 감옥을 둘러보더니 나를 따라 하듯 고개를 갸웃했다.
"나 여기 갇힌 거 맞지?"
“맞지.”
“…내가 있던 곳보다 더 좋은데.”
라그나르가 옆에 놓인 곰돌이 얼굴이 그려진 인형을 품에 안고서 폭 기댔다.
몽글몽글한 인형이 라그나르에게 꾸욱 눌리며 뭉개지더니 표정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기분이 좋은지 볼을 비비적거리는 모습 아래 얼굴이 구겨진 곰돌이가 살려 달라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싫어?"
“너무 좋아서 그래."
나는 괴로워하는 곰돌이를 보다가, 라그나르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행복하다는 듯 웃음을 아끼지 않는 게 처음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곰돌이는 괴로워 보이지만 라그나르가 좋아 보이니 괜찮겠지?
계속 쳐다보면 민망해 할지도 모르기에 고개를 들었다.
리카르다의 마법이 이곳까지 확장되어 눈이 와도 춥지 않았다.
'벌써 일주일째네.'
우리가 서로 통성명을 한 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레녹스가 열심히 만들었을 자백제는 아쉽게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냄새가 이상해….”
냄새를 맡더니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말하는데 먹기 싫다는 것을 억지로 먹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나에게도 라그나르에게도 적합한 방법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 오늘의 질문 놀이 시간이야.”
서로 궁금한 점을 하나씩 물어보는, 놀이라는 이름의 심문이었다.
지금껏 알게 된 정보는 라그나르의 이름, 그리고 암살자를 이곳으로 보낸 집단의 위치였다.
이미 늦었는지 말해 준 집단은 잠적해 잡을 수 없었지만.
엄마는 더 이상 관련 정보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었기에, 오늘은 조금 사적인 것에 관해 물어보기로 했다.
로 .
“좋아!"
놀이의 시작이라는 말에 라그나 르가 눈을 반짝이면서 나와 마찬가지로 내 앞쪽으로 다가왔다.
우리 사이에 두꺼운 철창이 없다.
면 정말로 얼굴이 닿았을지도 모르겠네.
오늘의 보호자로 따라온 레녹스의 못마땅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모른 척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다행히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위협을 가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허락된 거리였다.
철창 너머 보이는 눈빛에 생기가 가득하였으니 더는 시간을 끌지 않기로 했다.
"나는 다프네.”
"나는 라그나르.”
정말 놀이처럼 보이기 위해 만든 간단한 규칙, 서로의 이름을 소개한 뒤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오늘은 내가 먼저야! 다프네의 다리는 왜 다친 거야?"
“꽃을 꺾으려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졌어.”
“꽃이 뭐야?”
깔끔하게 나온 답에 라그나르는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엄마가 내 휠체어에 달아준 보라색 꽃을 떼어내 라그나르의 귀에 꽂아 주었다.
“이게 꽃이야.”
“…이걸 꺾으려다가 다친 거야?
아프겠다.”
“괜찮아. 다들 낫게 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나을 것이라는 말에 라그나르가 울망거리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내 차례.”
"응!”
“라그나르는 왜 그곳에서 자랐는지 알아? 가족은 없어?"
'없을 것 같지만.' 가족이 있다면 진작에 원작에서 풀어 내 주었겠지.
하지만 그 대답에 돌아온 것은 강한 긍정을 보여 주는 끄덕임이었다.
“있어?"
"응! 형이 있어!”
"어디 있는데?”
“…그건 몰라. 분명 기다리고 있다 보면 데리러 올 거야.”
진짜로 데리러 올 생각이었으면 그곳에 두고 가지 않았을 텐데.
엄마는 일부러 말을 흐렸지만, 얼핏 들어 보면 그곳은 본격적으로 암살자를 키우는 곳 같았는걸.
내 미간이 찌푸려지는지도 모르는지 라그나르는 해맑게 말을 이 어갔다.
“꼭 온다고 했어!”
“언제?"
"내가 아주 어릴 때…?"
두루뭉술하게 말하는 것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그나르는 자기가 몇 살인지 모른다고 했으니까.'
모를 수 있지.
배운 게 그런 것밖에 없다고 했는걸.
“그럼 오늘의 질문 놀이 끝."
“질문 놀이 끝!”
그 말이 끝나자 레녹스가 다가와 우리 앞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새빨간 색을 가진 탐스러워 보이는 딸기가 다섯 개씩 담긴 접시가 각자 앞에 놓였다.
“그럼 놀이도 끝났으니까 오늘의 간식 시간을 가지자."
"와, 딸기!"
라그나르가 신이 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눈치도 안 보는 것이 나름이 상황이 적응된 것 같았다.
야금야금 잘 먹는 것을 보니 이상하게 내가 다 배부르다.
여전히 곰돌이의 얼굴을 꼭 껴안은 채 딸기를 냠냠 먹고 있는 라그나르를 빤히 보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는 레녹스가 포크로 과일을 폭 찍어 내게 내밀었다.
“다프네, 아.”
“아.”
내가 익숙하게 받아먹자 레녹스가 뿌듯하게 웃었다.
"맛있어?”
“응.”
딸기는 새콤 달콤 맛있었다.
처음 딸기를 먹었을 때, 오래간만에 눈앞이 반짝거리며 또 주르륵 눈물을 흘려서 소란이 있었는데.
‘엄마랑 레녹스랑 리카르다가 그러는 것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지만….’
어느새 비어 버린 깨끗한 접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직은 낯선 시선 하나가 더해졌다.
내 바로 앞에 있는 라그나르가 딸기를 먹던 것도 잊은 채 나를 빤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그나르는 무언가 굳은 결심이라도 하는 듯, 침을 꼴깍 한 번 삼켰다.
그리고 스윽 자신의 접시를 내쪽으로 밀었다.
접시에는 딸기 한 개가 남아 있었다.
“이것도, 이것도 먹어.”
"내 건 다 먹었는?"
"아냐, 그것도 먹고 이것도 먹어.”
자기는 괜찮다며 말하면서도 딸기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에휴우, 한숨을 쉬면서 포크로 딸기를 푹 찍었다.
여전히 시선은 떨어질 줄을 모른다.
분명 내가 포크를 들어 올리는 그 순간, 혹은 입안에 넣을 그 순간까지 따라올 것이다.
바보같이 착한 라그나르를 위해 나는 철창 속으로 포크를 내밀었다.
그리고 조금 전 레녹스가 했던 것처럼 말했다.
"아.”
“…아.”
라그나르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천천히 딸기를 받아먹었다.
그의 볼이 딸기처럼 예쁜 붉은색이 되었다.
음, 아주 보기 좋았다.
"맛있어?"
"응, 맛있어!”
첫 일주일 동안은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하면 혹시 맞지 않을지 두려움에 벌벌 떨었는데.
맛있으면 맛있다고 말하라고 했더니 정말 말을 잘 듣는다.
차오르는 뿌듯함에 나는 레녹스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에 잠겼다.
내 접시에 담겨 있는 딸기는 모두 사라졌다.
내 뱃속으로,
다섯 개를 다 먹었으니 오늘치 간식은 끝이겠지.
뭔가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시 는데 옆에서 스윽하고 그릇이 밀려왔다.
“자, 다프네. 나는 괜찮으니 너 먹으렴.”
"간식 많이 먹으면 리카르다가 싫어하던걸. 저녁을 조금 먹는다고 혼나.”
밥을 조금 먹는다고 혼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내 뚱한 표정에 레녹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하나 정도는 더 먹어도 돼."
레녹스의 몫으로 접시 위에 놓인 딸기 하나.
그 딸기를 먹을까 말까 고민하며 빤히 바라보다가 용기 있게 포크로 쿡 찍어 입으로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새콤 달콤 맛에 입가가 저절로 위로 올라가려 한다.
만족스러워 하며 고개를 드니 라그나르가 나 대신 웃고 있었다.
'쟤는 그런 곳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웃지.'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야무지게 딸기를 씹고 꿀꺽 넘기니 레녹스가 옆에서 잘했다며 짝짝 박수를 쳤다.
“다프네, 잘 먹는다.”
"? 잘 먹는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다고 칭찬을 들었다.
레녹스를 따라 하듯 라그나르도 박수를 치며 칭찬을 해 주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몰랑 몰랑한 느낌에 나는 후우, 숨을 내뱉고서는 레녹스의 팔에 폭 기대었다.
"맛있었어, 고마워.”
"다음에도 또 나눠 줄게.”
어색함을 조금 덜은 내 인사에 레녹스가 부드럽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같이 지낸 지 시간이 좀 지났고, 이제 레녹스랑 리카르다에게는 말을 편히 하니까 어색함이 덜어진 것 맞겠지?
잠시 쓸데없는 생각으로 고민을 하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 냈다.
커다란 손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나쁜 느낌이 아니었으니까.
이 부드러움과 다정함에 집중할래.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이곳을 즐기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간식 잘 먹었어?"
잠시 외출하겠다고 떠나갔던 리카르다가 돌아왔다.
리카르다는 손에 무언가 바리바리 싸 들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를 나와 라그나르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
“뭔지 궁금하지?”
리카르다가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들고 온 것들을 우리 앞에 우르르 내려놓았다.
유리병에 담긴 물약과 무언가 반짝이는 가루들,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나뭇가지?
리카르다를 올려다보자 그가 나뭇가지 위로 물약을 쏟았다.
"짜잔, 마법이 부여되었습니다."
"???"
다시 영문 모를 표정을 하자 리카르다가 내 손에 나뭇가지를 쥐여 주었다.
"자, 오빠 따라서 이거 그려 보자?”
리카르다가 바닥에 영문 모를 반짝이들을 뿌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짝이 가루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법진?
리카르다의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 레녹스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나뭇가지로 반짝이를 따라 그릴 수 있도록 몸을 숙여 주었다.
'그림 그리기 놀이 같아.'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안에 이상한 선들을 따라 그린 다음에 미리 알려 준 대로 가운데에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물러났다.
별것 아닌데 완성하고 나니 무언가를 해낸 기분이었다.
“우와! 다프네가 도와줘서 빨리 끝났네?”
“다프네 덕분에 리카가 일을 빨리 끝냈네. 리카, 고맙다고 해야지.”
"고마워, 다프네.”
마치 유치원 선생님께 교육을 받는 기분인데?
어린애 취급받는 기분이라 다시.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 겉보기에는 어린애 맞겠지.
나는 에휴우, 한숨을 쉬면서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둘에게 나도 고맙다고 말을 했다.
그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레녹스와 리카르다가 뿌듯하게 웃는다.
“자, 그럼 주목!"
리카르다가 박수를 짝 치고서 이 목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