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딸로 태어났다-43화 (43/185)

제43화.

모두의 말처럼 대공 저의 음식은 굉장했다.

“다프네, 이것도 먹어."

그리고 어째서인지 몰라도 악셀리우스와 시몬이 계속해서 내 접시에 음식을 쌓아서 배가 터질 때까지 먹게 되었다.

보다 못한 집사가 더 먹으면 체한다는 말에 겨우 멈췄다.

'그거밖에 못 먹냐는 눈빛이었어.’

오히려 그렇게 많이 먹는 게 대단한 거 아닌가?

나는 보통이라고.

산뜻한 과일로 입가심을 한 뒤 완벽하게 저녁 식사가 끝났고, 시.

몬은 이만 돌아가야겠다며 대공저를 나섰다.

“다음에도 만날 수 있지?"

“전하가 안 바쁘다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황태자이니 공부하느라 바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몬은 어떻게든 나와 만나고 싶은 모양이었다.

“많이 바쁘기는 하지만, 친구랑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시몬은 씨익 웃으며 개운한 표정으로 대공 저를 나섰다.

비가 오는데도 자꾸 뒤돌아봐서 끊임없이 손을 흔들어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프네, 새로운 친구가 생겼네.”

"그러게요.”

마차가 떠나도 시몬이 떠난 자리에서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서 기쁘기는 하지만 어쩐지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괜찮겠지.'

소설 속에서도 생각보다 비중 있는 인물이어서 그런지 막상 헤어지고 나니까 불안해진 걸까?

내 침울한 표정을 어떻게 느꼈는지 몰라도 악셀리우스가 등을 도닥여 주었다.

"다음에도 만날 수 있을 거야.

시몬이랑 좋은 친구가 되면 좋겠다."

“저도요.”

시몬의 배웅이 끝나고 돌아온 방은 분위기가 변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분명 평범한 손님방 같았는데 지금 보니까 분홍빛의 아기자기한 침구로 바뀌어 있었다.

침대 위에도 귀여운 인형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어때, 급하게 꾸민 거기는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낫지?"

"고작 하루 머무르고 가는데.”

뭘 이렇게까지 했냐며 한숨을 푹내쉬었다.

그러한 내 반응이 뭐가 재밌는지 악셀리우스가 퓸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단 하루라도 이곳에서 다프네가 좋은 기억을 쌓고 갈 수 있다면야.”

악셀리우스가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어깨너머 힐끗 고개를 내밀자 집사와 하녀장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진짜로 자장가 불러 줄거예요?”

“다프네가 원한다면 불러 줘야지.”

대공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망설임 하나 없이 바로 나설 수 있을까?

내가 신기한 눈으로 대공을 바라보자 그가 왜 그러냐며 빙긋 웃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큰 침대는 조금 무서웠지만, 폭신하고 부드럽게 감기는 침구 덕인지 아니면 계속 내 손을 잡아주는 악셀리우스 때문인지 몰라도 금방 괜찮아졌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라는 듯 갑자기 창밖으로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내리쳤다.

우르르 쾅쾅하고 내리치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고작해야 엄지손가락을 겨우 잡을 정도였지만.

“진짜로 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줘야 해요?"

“물론이지. 아, 그전에.”

악셀리우스가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작은 리본이 매달린 선물 상자였다.

“아저씨 집에 놀러 온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받아도 돼요?”

“다프네 주려고 샀어. 안 받아주면 아저씨 속상해서 울지도 몰라.”

"그게 뭐야.”

악셀리우스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며 우는 시늉을 했다.

내가 작게 웃음을 터트리자 그가 만족했다는 듯 씨익 웃는다.

"그럼 풀어 볼게요."

리본 끈을 서서히 잡아당기고, 감싸인 포장지를 풀고, 그리고 상자를 연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아저씨. 이거….

상자 안에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나비다.”

나비 모양의 핀은 색색의 보석들로 아름답게 세공되어 있었다.

"어때? 마음에는 드니?"

“…이거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내 물음에 악셀리우스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장에서 한번 스치듯 보고 지나갔었는데.

‘언제 본 걸까..'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챙겨 준다는 것도 이렇게 기쁜 거구나.

“진짜 기뻐요.”

“.…정말로?"

"응!”

나는 나비 핀을 품에 끌어안고서 기쁨을 담아 환하게 웃었다.

악셀리우스가 잠시 멈칫하더니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갑자기 터진 눈물에 당황하며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아저씨, 괜찮아요?”

“큽. 괜찮아. 그냥, 그냥. 나랑 있을 때 다프네가 이렇게 환하게 웃는 걸 처음 보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만.”

횡설수설 이유를 덧붙이는 것에 부끄러운 것도 잠시 나는 다시 웃으며 물었다.

"내일 집에 하고 가도 돼요?"

“물론이지.”

악셀리우스가 소맷자락으로 자신 으 눈가를 거칠게 쓸었다.

그리고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이마를 간지럽혀 꺄르르 웃자 그도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꼬마 아가씨는 잠들 시간이네.”

“옆에 있어 줘야 해요.”

“물론, 자장가도 불러 줄 건데.”

장난스러운 웃음소리 뒤로 듣기 좋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악셀리우스의 낮은 목소리와 다정한 자장가는 의외로 잘 어울려서, 그리고 또 잡은 손이 너무 따뜻해서.

비가 오는 깜깜하고 무서운 밤이지만, 굉장히 낯선 곳이지만.

기쁜 마음으로 꿈나라로 떠날 수가 있었다.

***

아침이 찾아왔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끊임없이 쏟아지던 비는 거짓말이라는 듯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갔는지.

“날씨 좋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햇볕은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가씨. 머리도 정리해 드릴게요.”

“이거, 이걸로 해 주세요.”

어제 선물 받은 핀을 꺼내 들자 하녀장이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예쁜 핀이네요. 아가씨랑 너무 잘 어울리는걸요.”

“진짜요?”

“저는 솔직한 사람이라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답니다."

하루의 시작을 밝게 밝혀 줄 만큼 기분이 좋은 말이었다.

“이렇게 어여쁜 아가씨를 이제 못 본다니 너무 슬프답니다.”

"아쉬워도….”

어쩔 수가 없는데.

괜히 눈을 도록도록 굴리는데 하녀장은 언제 슬퍼했냐는 듯 방긋 웃으며 무언가를 가져왔다.

“주방장이 특별히 만든 쿠키랍니다. 꼭 전해 달라고 했어요.”

“선물이에요?”

"마음에 드실까요?”

고급스러운 쿠키 상자를 품에 안아 들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선물 받은 것은 처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눈을 깜빡이다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황급히 입을 열었다.

에 .

“고, 고맙습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놀러 와 주세요.”

하녀장의 맑은 눈이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어쩐지 부끄러워져 제대로 답하지 못하니 인자한 웃음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푹 숙였다.

잠시 후 악셀리우스가 나타났고, 부끄러움에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서 숨는 것은 덤이었다.

“금방 도착할거야.”

악셀리우스의 말처럼 마차는 열심히 목적지를 향해 달려갔다.

한참을 비에 젖어 축축한 길을 지나고, 진득거리는 진흙 길을 지나서, 긴 나무들의 행진이 끝나는 순간 익숙한 우리 집이 보였다.

내가 돌아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몰라도 모두가 문 앞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마차 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뻗었다.

"이런, 조심히…!"

넘어질 듯 튀어나가는 나를 보며 악셀리우스가 놀라 황급히 잡으려고 했으나.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엄마가 나를 안아 드는 것이 더 빨랐다.

엄마는 나를 안은 채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아가, 잘 있다 왔니?"

쪽하는 소리가 간지러워 꺄르르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 잘 있다 왔어요."

그런 내 대답에 레녹스가 다가와 볼을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비가 왔는데 무섭지는 않았고?"

"아저씨가 자장가도 불러 주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줬어.”

있는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의외로 꽤 가정적이시네요.”

"어째서 아이도 안 키워 봤는데 자장가를 아는 거지.”

레녹스의 말을 리카르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조카가 있어서 그렇다."

악셀리우스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흘겨보았다.

이내 셋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죽도 참 잘 맞는다며 엄마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럼에도 입가에 지어져 있는 미소는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라그나르가 안 보였다.

“라라는요?”

"나 여기 있어.”

익숙한 목소리가 아래에서 들려 고개를 내려다보자 그제야 라그나 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 잤어, 라라?”

"아니, 못 잤어.”

"왜?"

라라의 목소리가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침울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서 엄마에게 내려 달라고 말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못 잤어?"

“다프네가 걱정돼서. 혹시 무섭다고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라그나르가 우물쭈물하는 것을 보며 리카르다가 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마법진으로 올지도 모른다고 그 앞에서 거의 밤을 새웠어.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아, 하지 마.”

라그나르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어도 리카르다는 멈추지 않았다.

엉망이 된 라그나르의 머리를 정된 정리해 주다가 여전히 시무룩한 눈이 보여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저씨랑 친하면서 왜 그렇게 걱정했어.”

“그렇지만…."

“그렇지만?”

라그나르가 우물쭈물하다가 중얼거리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네 집이 너무 좋아서 돌아오기 싫어지면 어떻게 해."

"난 앞으로도 계속 다프네랑 같이 살고 싶단 말이야."

라그나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고개를 따라 시선을 더 아래로 내리니 꽉 쥐고 있는 주먹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보여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의 주먹을 펴고서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아저씨네 집이 되게 크고, 넓고, 모두가 친절해서 너무 즐거운 것은 맞아.”

“그래도 우리 집보다는 아닌걸."

“진짜?"

울망울망한 눈빛이 귀여워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진짜로 안심했다는 듯 내쉬는 큰 한숨에 결국 뒤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라그나르가 휙 고개를 돌렸고, 리카르다가 황급히 자신의 입을 꾹 틀어막았다.

하지만 차마 참지 못하겠는지 거친 웃음이 튀어나왔고, 약이 오른 라그나르를 피해 리카르다는 집으로 도망갔다.

“거기 서!”

라그나르가 붉어진 얼굴로 리카르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두 명이 사라지자 엄마와 악셀리 우스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사라진 두 사람의 뒷모습을 허망하게 보며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귀엽네.”

"막내아들이 생긴 기분이라니까.”

두 사람의 훈훈한 분위기를 틈타레녹스가 나를 안아 들었다.

"이제 혼자서도 잘 서 있네?"

“응. 그런데 좀 전에 힘들어서 넘어질 뻔했어.”

“그랬어?”

레녹스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응했다.

계속 내 다리만 보면서 안절부절못한 표정이었으면서.

나는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편하게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으쌰하고 나를 안아 든 그가 내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못 보던 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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