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딸로 태어났다-45화 (45/185)

제45화.

"우와.”

“턱 빠지겠다.”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라그나르가 감탄을 숨기지 못하고 내뱉었다.

크게 벌린 입을 닫아 주자 헤실 헤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같이 나오기를 잘한 것 같아.’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안타까워해야 할지 몰라도.

신전에 처음 와 본 라그나르는,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웅장한 광경에 놀라 눈을 떼지 못했다.

외부인 출입 금지라던 악셀리우스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신관들마저 평소보다 드물게 보였다.

우리도 악셀리우스가 아니었다면 들어오지도 못했을 게 분명했다.

“성녀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가 볼까?”

구경은 천천히 해도 좋다며 악셀리우스가 익숙하게 팔을 벌렸다.

안기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어쩐담.

"내가 있는데 네게 안길 리가 없잖아.”

내 느린 발걸음은 악셀리우스를 지나 뒤에 있는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의 다리를 끌어안으니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나를 달랑 안아 올렸다.

“다프네.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니.”

선택받지 못한 충격이 컸는지 악셀리우스가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했다.

'음, 어울려 줄까.'

다 큰 어른이 내게 맞춰 주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내 눈빛을 어떻게 읽었는지 몰라도 악셀리우스가 더욱더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할 수 없지. 그럼 나는 라그나 르를 안아야겠다.”

“우왓!”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려 라그나 르를 휙 낚아챘다.

라그나르가 놀란 목소리를 내다가 이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성녀가 기다리기 때문에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신전으로 들어왔다.

내게는 익숙한 복도가 라그나르에게는 새로운 곳이라 그런지 호기심 많은 라그나르가 뒤처지기 시작했다.

미리 사전에 안내가 되었는지 지나가는 신관들도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안 그래도 네 몸 상태를 직접 듣고 싶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기회가 생겼네.”

“항상 전해 듣는데 뭐가 다른가요?"

“직접 들어야 안심이 되거든. 엄마는 다 이렇단다."

"그렇구나.”

엄마에게 이렇게 관심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몰랐어.

어쩐지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어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마주 안아 주는 이 느낌이 너무 좋아서, 가끔은 멍청하게도 이대들 때도 있다.

로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바로 지금처럼.'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갔다.

성녀에게 도착한 것이 방금 같은데 어느새 치료가 끝이나 있었다.

“다프네, 모두가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성녀의 말에 엄마를 쳐다보았다.

“성녀님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먼저 가 있을래? 악셀도 라그나르도 거기 있을 거야.”

“네.”

계속 함께 있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성기사가 가져온 휠체어에 올라 타 안 보일 때까지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문이 닫혔고, 웃는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자 바로 멈췄지만.

몇 번 가 봤다고 익숙한 길을 눈에 담으며 이 고요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치료가 끝나도 방문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전의 고요함과 우아함, 그리고 웅장함은 시끄러운 속마음을 잠재워 주는 데 정말 도움이 되었으니까.

'으음. 나이를 조금 더 먹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확실하게 자리 잡는 게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응?"

그때, 고요함을 깨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전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성기사의 말을 들어 보니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지금껏 꽤 자주 왔음에도 이런 적은 없다.

심지어 저 시끄러운 곳이 내가 가야 하는 곳이어서 불안해졌다.

혹시 안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문을 활짝 연 그 순간.

보이는 광경에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넌 누구지? 분명 오늘은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 들었는데.”

"너야말로 누구야?"

서로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릴 기세로 시몬과 라라가 으르렁대며 싸우고 있었다.

"오, 이런….”

라그나르와 시몬 뒤로 악셀리우스가 팔짱을 끼고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시몬은 왜 여기 있고, 라그나르는 왜 시몬과 싸우고 있는 건가.

금방이라도 치고받을 것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원작에서도 사이가 안 좋기는 했지만.’

분명 오늘 처음 만났고, 만난 시기도 다른데 왜 저렇게 둘 다 화를 내는 걸까.

내 걱정스러운 표정을 읽었는지 악셀리우스가 둘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켜, 대공!”

“아저씨, 비켜요!”

그러자 시몬과 라그나르의 불만이 악셀리우스에게 향했다.

"자자, 진정하고, 왜 어린애들처럼 싸우고 그래.”

'진짜 어린애들 맞는데.' 하지만 그 말이 듣기 싫은지 진짜 어린애들이 빽 소리를 질렀다.

“누가 어린애입니까!"

“어린애 아냐!”

시몬과 라그나르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가 같은 의견을 내뱉었다는 것에 또 둘 다 노골적으로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너희 진짜 애들 맞잖아.

어느새 나를 안내해 준 성기사는 문을 닫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나마 문이 닫혀서 소리가 덜 들렸던 거구나.

두 사람이 싸우며 지르는 소리에 귀가 아플 정도였다.

그때 악셀리우스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한참을 서로 왁왁대며 분노를 드러내는 두 사람을 향해 그가 손을 움직여 한쪽을 가리켰다.

손가락의 끝은 내게 향해 있었다.

드디어 조용해졌다.

"둘 다 왜 싸우고 있는 거야."

우리는 꼬맹이가 아니니까 조용히 이야기를 해 보자고 해야지.

“다프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내 착각이라는 듯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두 사람이 내 이름을 외쳤다.

“넌 뭐야! 네가 다프네를 어떻게 알아!”

“넌 뭔데!”

어째 데자뷰 같은 걸.

처음 들어왔을 때도 이렇게 싸우고 있지 않았나?

내 표정이 이상해지자 악셀리우스가 머리를 짚고서 고개를 저었다.

못 말리겠다는 듯한 모습에 이게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다프네와 정식적으로 친구 관계를 맺고 있다.”

“내가 다프네의 첫 친구야! 그리고 너 같은 친구 있다고 들은 적없어!”

“웃기는 소리! 다프네의 첫 친구는 라라라고 하는 여자애야!"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시몬의 말이 끝나자 악셀리우스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았다.

이마에 가득 주름이 져 있었고, 파들파들 떠는 게 어딜 보아도 웃음을 참는 모양새였다.

라그나르와 말다툼을 하느라 정신이 없는 탓인지 시몬은 악셀리 우스의 이상한 기색을 눈치를 채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다프네의 첫 남자 친구야!"

“…난 남자야!”

라그나르도 지지 않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 다 그만.”

여기서 유일한 어른인 악셀리우스는 웃음을 참느라 정신이 없고.

나보다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꼬맹이들은 싸우기 바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중재를 해야 이 시끌벅적한 상황이 끝이 날 게 안 봐도 선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당장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치워 달라는 듯 이글이글 불타는 시선에 오해를 풀자 싶어 빨리 입을 열었다.

“라라. 시몬은 내 친구가 맞아."

“...!”

라그나르가 그럴 리가 없다며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시몬, 라라는 내 친구가 맞아요."

“...!”

시몬도 그럴 리가 없다며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입을 벌린 채 굳어 버린 두 사람 사이로 들어가서 살펴보니 충격이 어지간히 컸나 보다.

나는 오른손으로는 라그나르를, 왼손으로는 시몬의 손을 꼭 잡았다.

라그나르와 다르게 시몬은 갑작스러워 깜짝 놀라는 듯했지만 다행히도 예의 없다고 내려치는 일은 없었다.

“다프네… 나 말고 친구가 있다는 소리는 없었잖아.”

색안경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지만, 라그나르는 분명 울망울망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라라가 물어보지를 않았으니까.”

그러다 보니 말할 틈이 없었는 걸.

“라라가 어떻게 남자애야.”

시몬이 자길 놀린 것이었냐며, 속상하다는 말을 했지만 이건 오히려 내가 더 억울했다.

“전 여자애라고 한 적도 없는걸요.”

두 사람 다 말문이 막혔다.

이게 뭐냐고 억울해하는 표정이지만 어쩔 수 없지.

틀린 말이 아닌걸.

이 틈에 둘을 화해시키고, 다 같이 친해져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아차 하는 사이 움직여 준 덕에, 손은 라그나르와 시몬이 악수를 하는 모습으로 만들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내 친구니까. 사이 좋게 지내기로 악수.”

그건 너무 희망적인 사항이었을까.

라그나르와 시몬이 3초 정도 굳어 있다가 서로 질색하며 손을 떼어 냈다.

“싫어. 내가 왜 저딴 놈이랑!”

"나도 싫어! 저딴 놈!”

그 말과 동시에 결국 참다 참다 못해 악셀리우스의 웃음이 폭발했다.

“푸하하하.”

두 꼬맹이의 충격 받은 표정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서 휠체어를 뒤로 밀었다.

그와 동시에 두 꼬맹이들은 악셀리우스에게로 튀어나갔다.

"악! 도와 줘, 다프네!"

곧이어 악셀리우스의 작은 비명이 울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둘을 말릴 생각은 없었다.

'비명을 지르면서도 웃고 있으니 더 저러는 거지.'

다 자업자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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