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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61화 (60/185)

제61화.

나는 키키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데리고 간다고 해서 원작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미 라그나 르가 내 옆에 있는 것부터 이야기가 비틀렸지만….

분명히 내가 아는 2부의 원작과는 다르게 많은 것들이 바뀌기는 했다.

라그나르는 베네디토 상단의 따뜻한 분위기에 잘 녹아들었다.

따뜻한 배려를 겪어 전과 달리 다정한 성격이 되었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악셀리우스와 관계를 맺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야 만나게 될 시몬과 마리 아와도 이미 만났다.

심지어 사랑의 라이벌이어야 할 시몬과 라그나르는 절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지 않았나.

'무엇보다 악녀의 딸인 내가 살아 있어.'

이렇게 많은 것이 내가 살아남으면서 비틀리고 바뀌었다.

고작 키키를 만났다고 원래대로 변하지는 않겠지.

'응, 그럴 거야.'

나를 삼키려고 했던 추운 계절이 돌아와서 이렇게 불안한 것일 거다.

나는 불안감에 콩닥콩닥하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아까부터 시야에 가득 찬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이건 뭐예요?"

"음, 우리도 발견한 지 얼마 안돼서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악셀리우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위험한 것을 살펴보는 듯한 행동에 덩달아 바짝 긴장했다.

다른 이들을 대표해서 리카르다가 다가가서 마법을 써 보았다.

"음, 역시 마법이 안 통해요."

“정말 그건가…?"

“그게 맞나 보군.”

리카르다의 말에 악셀리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문하고, 엄마는 심각한 목소리로 받아들인다.

“설마 했지만 진짜로 그거일 줄이야.”

“그러니까 그게 뭐예요?"

레녹스까지 껴서 심각한 상황을 토해 내니 이건 궁금증이 생겨날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답이 나오기도 전에 라그나르가 감옥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며 키키를 안은 채 빤히 바라보았다.

“라그나르, 위험하니까 가까이 다가가지 말렴.”

엄마가 라그나르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잠시 커다란 감옥을 바라보던 리카르다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숨겨진 마력이 미미하게 느껴져요. 역시 이게 전설로 내려오는 그 용의 감옥이 맞는 것 같아요.”

가면 갈수록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뿐이었다.

“용의 감옥이 뭐야?"

라그나르의 질문에 리카르다는 말을 해도 좋을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산맥에는 아주 오랜 옛날 드래곤이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오는데 들어본 적 있어?"

“동화책에서라면 조금?"

책에서 황제와 드래곤이 친구가 되는 내용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는지 설명이 이어져갔다.

“맞아. 그 동화처럼 클레멘스를 지켜 주는 드래곤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이 있어. 다프네랑 라그나르는 그 동화의 끝을 기억해?"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재미있어서 다 같이 두 번이나 읽은 책이었으니까.

“제국을 괴롭히는 악당은 벌을 받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

“맞아. 그리고 이 감옥이 그 악당을 벌해 준 감옥이지.”

“동화에는 자세히 안 나오지만."

악셀리우스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철창을 만지작거렸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는 용의 감옥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용의 감옥을 찾으면 이 제국의 위상은 더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감옥이랑 위상이 높아지는 거랑 상관이 있어요?”

"당연히 없는 게 맞겠지만….”

악셀리우스는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래도 어린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는 이야기라도 되는 걸까?

용의 감옥이 어떤 곳이기에 다들 이렇게 심각한 표정인 거지?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 엄마가 입을 열었다.

“우리 사고뭉치들이 또 이곳을 찾아올 리는 없겠다만…. 호기심에 찾아올지 모르니 언제나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좋겠지."

다른 이들도 엄마의 선택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감옥은 한 번 들어가면 용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란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지금이야 문이 열려 있지만 단히는 순간 죽을 때까지 평생을 이곳에 갇혀 지내야 하지.”

“......."

그렇다는 건 악당은….

에 갇혀서 죽음을 맞이했을 거야.

“동화에 나오는 악당은 이 감옥들어간 이상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을 테니까.”

동화에서 표현되지 못할 만했다.

이 어두운 숲속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은 분명히 참혹했겠지.

차라리 한 번에 죽여 주는 것이자비로운 벌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대한 크기도, 두꺼운 철창도, 이제야 와닿는 꺼림칙함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까이 안 갈게요."

"좋아.”

아마도 저 감옥이 이 숲에서 제일 위험한 것이지 않을까?

다시는 이곳으로 발을 들이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데 라그나르가 갑자기 발을 내디뎠다.

손에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옷자락에 황급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라라? 라라!”

“…어, 어?”

다행히 리카르다가 바로 붙잡았지만 지금 라그나르의 표정도 반응도 이상했다.

마치 무언가에 혼이라도 뺏긴 듯 멍했다.

이상함을 느껴 재차 부르자 돌아오는 반응도 그답지 않았다.

"괜찮아? 어디 아파?"

혹시 오는 길에 나 때문에 무리한 것은 아닌가 싶어 묻자 라그나르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닌데….”

키키마저 기분 나쁜 것을 느꼈는지 감옥에서 멀리 떨어졌다.

그럼에도 라그나르는 그 감옥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이 감옥, 어쩐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어.”

“낯설지 않다니. 위험하니까 뒤로 가야지.”

악셀리우스가 가볍게 꾸짖듯 말했고, 나는 혹시 라그나르가 감옥으로 들어갈까 봐 황급히 그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친근한 느낌….”

하지만 손에 쥐여진 옷자락은 빠르게 빠져나갔다.

라그나르가 멍한 표정으로 다시한 걸음 내딛자 리카르다가 기겁하며 그를 잡았다.

그리고 리카르다는 라그나르를 번쩍 안아 들고서는 코를 꼬집었다.

“위험하니까 다가가지 말라고 한 말 못 들은 거야?"

"아야!”

리카르다의 말에 라그나르의 멍한 눈빛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둘이 투닥거리는 것을 보다가 다시 용의 감옥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이한 느낌.

내려오는 이야기들처럼 정말로 이 감옥이 그러한 힘을 갖고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지.

키키는 아까부터 감옥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야생 동물의 감이 위험하다고 말해 주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라라의 반응도 이상했고, 앞으로 이쪽으로는 절대로 오면 안 되겠다.'

하지만 이때의 나는 몰랐다.

이 결심이 순식간에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날카롭게 부는 바람은 곧 매서운 추위가 올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초겨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내일은… 벌써 친엄마의 기일이 찾아왔다.

기일이 다가올수록 떠오르는 궁금증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친엄마의 시신은 어디로 갔을까.’

그날 공작은 그녀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처리하라 명령했었다.

'빈민가에 던져지기라도 했을까?'

잔인한 악녀의 최후에 어울린다며 사람들이 낄낄 웃었을 것을 떠올리니 끔찍하게 느껴졌다.

끊어질 듯 가느다란 숨을 간신히 이어 가다, 창백하게 굳은 안색으로 낮은 곳까지 가라앉았던 그 모습.

하얀 천에 감싸진 채 어디론가 사라지던 것이 마지막이었다.

기일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선명해져 가는 불편한 심정을 더는 피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

고롱고롱 잠든 키키를 지나쳐 엄마의 방으로 향했다.

"엄마. 잠시 방에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렴.”

문을 두드리자 다행히도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류를 보고 있었는지 엄마가 앉은 채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래. 우리 아가가 무슨 일일까.

잠이 안 오는 거니?"

“그건 아니고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서 문 앞에서 뭉그적거리는데 엄마가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엄마도 오늘 일은 여기까지 할까? 이리 오렴."

엄마의 손짓에 쭈뼛쭈뼛하며 다가갔다.

“우리 아가가 평소답지 않게 왜 이러는 걸까.”

요새는 이름으로 잘 불러 주시더니 마음 약해지게 이럴 때만 아가라고 부르시고, 이럴수록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데,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다정했다.

“잠이 안 오면 코코아라도 타 줄까? 리카의 솜씨만은 못하겠지만….”

"아니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코코아는 코코아다.

자기 전에 그렇게 단 걸 먹으면 잠이 달아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이 얘기를 하기로 결심한 순간 잠은 다 달아나 버렸지만.'

하지만 더는 엄마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으니 뻣뻣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니까…!”

마치 무언가가 틀어막힌 것처럼 목이 메어서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으음. 우리 따뜻한 우유라도 한 잔할까?”

엄마는 나를 한쪽에 자리한 소파에 앉혀 놓고서 잠시 방을 비웠다.

그리고 잠시 후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머그잔 두 개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 밤에 코코아는 너무 달지.

우유에 꿀을 조금 넣었는데 괜찮을까?"

나는 따뜻한 잔을 받아 들고 호호 불어 홀짝하고 조심스럽게 우유를 마셨다.

혀끝에 도는 희미한 단맛이 어쩐지 용기를 불어 주는 것 같았다.

“사실은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그래. 뭐가 궁금하니?"

“친엄마의 시신이 어디 있는지…. 혹시 알고 있으세요?"

“…정말이지.”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나를 꼭 안았다.

"어린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이런 말을 하게 하는 이 세상이 원망스럽구나.”

엄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한 번씩 닿는 부드러운 손길에 엄마의 복잡한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의 입가가 달싹였다.

할 말이 있는데 차마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아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게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시신은 우리 쪽에서 보관 중이란다.

유골을 가까스로 찾아내서 화장까지 마쳤지.”

"네?"

그 점까지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니 엄마가 안타까워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너도 알아야 하는 게 맞겠지.”

엄마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힘겹게 입을 여셨다.

“프레이르의 죄에 대해 이상한 부분이 많아서 따로 조사도 해 보고 있어.”

"네? 따로 조사도 하셨다고요?"

그리고 뒤에 이어 나오는 말에는 가까스로 진정시킨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 오스왈드의 황녀인 것치고는 너무 가혹한 처벌을 받았으니까.”

나는 엄마가 뱉은 말에 놀라 쥐고 있는 컵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네? 오스왈드의 황녀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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