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악녀의 딸로 태어났다-62화 (61/185)

제62화.

다행히도 엄마가 연기를 날려 떨어지는 컵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갑작스러운 정보에 내 머릿속은 떨어진 컵 대신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 오스왈드요? 제가 아는 그 오스왈드요?”

“그래. 네 친엄마의 이름은 프레이르 헤로니스. 그리고 처녀 적이름은 프레이르 오스왈드란다.”

내가 읽은 엉성한 원작에서는 그저 악녀라 칭해졌을 뿐, 프레이르의 성조차 제대로 서술되지 않았다.

'그저 아주 높은 사람이라고만 언급되었지.’

믿기지 않는 사실에 목소리가 덜 덜 떨려 왔다.

아니, 목소리뿐일까 온몸이 충격적인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리고 있었다.

“오스왈드라면…. 바다를 건너가면 있는 그 오스왈드 제국을 말하는 건가요? 아니죠?"

재촉하는 질문에 제발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 오스왈드가 맞아. 대제국 오스왈드. 네 친엄마는 그 오스왈드의 황녀였단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잔혹했다.

'황녀, 황녀 출신인데 도대체 왜…?'

그리고 저 멀리 묻어 놓았던 궁금증이 폭발하듯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화, 황녀 출신인데 도대체…. 도대체 왜 그런 대우를 받았어요?

왜… 왜 가만히 벌을 받기만 했어요? 아니, 오스왈드는 왜 돕지 않은 거죠?”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은 엄마의 모습이 또렷한데.

한미한 가문도 아닌 대제국의 황녀 출신인 엄마가 도대체 왜 그렇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단 말인가.

“도울 수 있었잖아요. 나와 다르게 그들은 도와줄 수 있었잖아요!"

너무 화가 나서, 그리고 답답해서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아직 주변 나라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배우지 않았지. …오스왈드는 현재 내전 중이란다.”

"내전….”

엉망진창이 된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원작의 내용이 떠올랐다.

2부의 주인공 마리아가 오스왈드로 여행을 가려 하지만, 그곳은 위험한 던전이 많은 데다 내전까지 터져 가족의 큰 반대가 있었다고….

“오스왈드 황실의 두 형제가 지독한 황권 싸움을 하고 있지. 아마 그녀가 첨탑에 갇히고 나서부터 본격적으로 일어났을 거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를 둘러싼상황은 최악이었다.

“심지어 오스왈드 제국은 던전이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병력이 많아도 언제나 부족한 곳이니까. 그 와중에 내전이 터졌으니 국외로 시선을 돌릴 여유가 없었던 거겠지.”

엄마의 설명은 원작과 일치했다.

맞다. 그런 이유로 부모님이 반대하자 마리아가 동생과 함께 가출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이 2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가족이잖아요.”

분노에 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엄마도, 레녹스도, 리카르다도 같은 피가 흐르지 않는 나를 이렇게나 아껴 주는데.

정작 같은 피가 흐르는 그 둘은 왜 프레이르를 외면한 걸까요.

또르륵하고 뜨거운 눈물이 한줄기 떨어졌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이 아픔이 친엄마의 고통에 비견할 수 있을까.

잔인한 질문에 스스로 부정적인 해답을 내리며 스스로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어했는데.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매일 매일 남편만 그리워하고 언젠가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그리고 그때 오스왈드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해 주지 않았다.

오스왈드에서 도와주는 시늉만 했어도 내 주위의 입 싼 경비대들이 비아냥거리며 소문을 냈을 테니 내가 모를 수가 없었다.

첨탑에 갇힌 그때도, 내가 보육원에 있던 그때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여전히 모든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친엄마의 죄가 그렇게 잔혹한 벌을 받을 만큼 컸던가.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애초에 원작에서는 그저 주인공들을 괴롭히며 패악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하지만 원작에서의 내가 맞아 죽었을 정도로, 빈민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한다.

엄마와 빈민가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내가 모르는 건 도대체 뭘까?

도대체 빈민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무언가를 알게 된다면 나도 다른 이들처럼 그녀를 미워하게 될까?

분명히 따뜻한 우유가 가득한 머그잔을 들고, 따뜻한 방 안에 있는데 어째서 나는 아직도 탑 안에 있는 듯 이렇게 추운 걸까.

'추운 걸까, 아니면 두려운 걸까.'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진실과 맞닿을 용기가 나지 않는 건 아닐까?

'…아냐, 아무리 힘들어도, 나만큼은 엄마를 잊어선 안 돼.

잊지 않으려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그녀의 죽음을 기뻐할 때 나는 슬픔과 함께 그녀를 기억해야 한다.

다시금 각오를 다잡고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는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다.

“.…제 친엄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

엄마의 입이 꾹 다물렸다.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할 만큼 심각한 내용이라는 걸까?

불안한 마음만 더 커져 갔다.

“지금으로부터 약 8년 전, 언젠가부터 빈민가의 주민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단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맞아 죽어야 했던 곳.’ 죽음을 떠올리자 오싹하게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방은 따뜻한데 왜 이렇게 춥게 느껴지는 걸까.

따뜻한 방은 차가워진 마음을 데워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빈민가의 주민을 납치하고 그들을 죽여 그 피로 황가를 향해 저주를 내렸으며, 마찬가지로 현 헤로니스 공작 부인에게도 저주를 내렸다고 했어.”

“…납치요? 저주요?"

혼란스러운 정보에 두 눈이 이리 저리 흔들렸다.

“평상시에도 귀족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으며 아랫사람을 핍박하였고, 추악한 질투에 눈이 멀어서 모두를 저주했다고… 알려졌지.”

모두가 알고 있다는 말에 나는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저는 그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저는…!”

내 외침에 엄마가 씁쓸한 표정으로 답해 주었다.

“모두가 네 앞에서는 쉬쉬했겠지. 아무리 악녀의 딸이라 한들…

넌 어리니까. 계속 보육원에 있었다면 알게 되었겠지만….”

끔찍한 소리였다.

“…말도 안 돼요. 그럴 리 없잖아요.”

그렇게 심약한 여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나의 친엄마가 악역이 아니길 바라는, 나의 바람인 걸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어린 시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첨탑에 갇혀도 언제나 눈물 바람으로 자신의 전남편을 찾던 친엄마의 모습도.

이따금이나마 나를 안아 주던 손길도.

늘 전남편만을 찾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순간 나를 향했던 시선을 기억한다.

아주 선명하게 기억이 나 오히려 더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우리 엄마가 살인자였던 거예요?”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나는 정신을 제대로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친엄마의 죄가 사실이라면 끔찍한 처벌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엄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말했었지? 이상한 부분이 보여서 조사를 해 보았다.

고"

나는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빈민가 사건에 대해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 보았단다. 그런데 프레이르가 범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어."

“네?”

아니라고…?

“증거가 확실하지도 않은데 지나치게 빨리 재판이 끝났더구나. 누명을 씌워서 재빨리 이 사건을 덮어 버리려는 것 같았단다. 그것도 반역이라는 큰 죄로 말이야.”

엄마의 죽음은, 그저 원작의 해피 엔딩을 장식할 허술한 퍼즐 조각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담겨 있다.

하지만 엄마가 악녀가 아니었더.

라면…?

분노가 차올랐지만, 밖으로 뿜어내지를 못하니 안에서 터져 버렸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지독한 아픔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와 함께 이 원작이 너무나도 미웠다.

증오까지 느껴졌다.

만약에 유니스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친엄마는 그렇게 버려지지.

않았을 텐데.

만약에 오스왈드가 멀쩡한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모두의 경멸 속에서 괴롭게 앓다가 죽지는 않았을 텐데.

나 혼자만 행복해졌다는 죄책감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죽은 엄마의 얼굴이 생생한데…. 저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요?”

"아가.”

터진 눈물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속상하고, 또 미안하고, 그 럼에도 잊고 행복을 찾으려고 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괜찮아. 괜찮고말고, 네 엄마도 분명히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거야.”

“하지만, 하지만…!"

“정말이야. 자식이 행복하다면 엄마는 그걸로 충분하니까.”

“…흑, 흐윽. 미안해요. 엄마 미안해요.”

만약에 내 나이가 조금 더 많았더라면 친엄마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

그리고 나를 아껴 주는 새로운 엄마에게 친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며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더한 선함.

나는 왜 이렇게 못나서 미안해질 일을 만드는지.

뭐든지 해내겠다고 했으면서 내 한 일은 고작 버거워 우는 일뿐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는 나를 꼭 주었다.

차가운 분노로 얼어 버린 마음을 녹여 주겠다는 듯.

고통 속에 내던져 두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해 끌어안았다.

“엄마가 미안해. 네가 물어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냐, 아니야. 엄마는 잘못 없어요!”

내가 원해서 해 준 이야기에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네 엄마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나도 그렇고, 이렇게 자신의 탓을 하며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거란다. 응? 너무 울면 쓰러질지도 몰라.”

눈가를 닦아 주는 엄마의 손길이 따스하다.

분명히 너무 울어서 쓰라릴 텐데.

닦아 주는 손길이 너무 따뜻해서 차갑게 굳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친딸도 아니니 귀찮다고 여길 수도 있음에도.

걱정 가득한 눈빛, 파르르 떨리는 손길에 나를 걱정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니야. 내가 이렇게 말해서 미안해요. 물어봐서 미안해요."

“다프네, 넌 잘못이 없어. 그 누구도 네게 잘못했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없어. 그러니까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고, 울지도 마라. 너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아이니까.”

악녀의 딸 다프네.

하지만 지금은 클로에의 딸 다프프네.

엄마의 말처럼 정말로 친엄마도 내가 행복해지기를 바라겠지?

죽는 그 순간을 제외하고서는 함께한 순간은 아주 어린 시절뿐이었지만, 그렇겠지?

엄마의 생각이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는 그 말.

진심을 담아 나를 끌어안아 주는 따스한 포옹이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를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엄마까지 이런 일에…."

그렇기에 사과를 하고 싶었다.

나를 받아 준 것은 정말 고맙지만, 미안한 마음 또한 그만큼 컸기 때문에 말이다.

"다프네, 너는 나의 딸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지 마.”

"응, 잊지 않아요."

품에 폭 안긴 채 홀짝이는 눈물을 진정시켜 갔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에 나는 불안감을 털어 내고자 다시 한 번 물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고 하셨죠? 그럼 제 엄마는 반역죄를 저지르지 않은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반역이라니?"

하지만 궁금증을 더 이상 해결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뒤에서 처음 듣는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말하는 것을 멈췄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