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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70화 (69/185)

제70화.

마리타 산맥 깊은 곳에서 갑자기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마치 산사태라도 일어난 듯 무거운 것이 떨어진 소리에 요제프는 단잠에서 깨어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소란인지.”

커다란 드래곤은 눈을 떠올리며 불쾌감에 투덜거렸다.

“혹시 아직도 드래곤을 잡겠다는 멍청한 놈이 있는 건가.”

환한 빛이 드래곤을 감싸더니 곧 건장한 사내로 변했다.

요제프는 오랜만의 폴리모프에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면서 자신의 레어를 나섰다.

대낮의 환한 빛이 요제프의 하늘빛 머리카락에 반사되어 신비롭게 빛이 나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본다면 그 아름다운 모습에 하던 일도 멈추고 감상할 만한 모습이었다.

"호오. 이게 뭐람.”

요제프는 자신의 레어 앞에 나타난 커다란 감옥을 보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자신의 작품에 반갑기까지 하였다.

"초대 황제 녀석에게 선물로 줬던 것 같은데.”

용의 감옥이라는 유치한 별명을 붙여 짜증을 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저 조그마한 녀석은 뭐지."

그리고 그 감옥 안에 검은 무언가가 동그랗게 말려 있는 것이 보였다.

묘하게 느껴지는 이 기운은 분명히 낯선 힘이 아니었다.

“헤츨링인가? 헤츨링이라고 하기에 인간의 모습인데.”

요제프는 단단하게 닫힌 감옥 문을 쉽게 소멸시켜 버렸다.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사라지자 동그란 꼬마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요제프는 아이를 들어 올려 가볍게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2차 각성 중인가 보군.”

감옥에 들어갔다가 남아 있는 자신의 기운에 의해서 정해진 시기보다 빠르게 각성이 유도된 것 같았다.

헤츨링이 어째서 보호자도 없이 이런 곳에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아도 명확한 답은 알 수가 없었다.

“죽었겠지.”

어차피 자신을 제외하고는 드래곤은 거의 멸종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헤츨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워 요제프는 이 작은 헤츨링에게 선심을 베풀기로 하였다.

“내가 너를 살려 주마.”

드래곤은 각성 시기에 가장 약한 생물이 되기 때문에 보호자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요제프는 이 어린 헤츨링의 보호자가 돼 주리라 생각하며 그대로 안은 채 레어로 돌아갔다.

* * *

용의 감옥 문을 닫은 후, 라그나르는 감옥의 창살을 붙잡고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머리가 지끈거려 버틸 수가 없었다.

“쿨럭.”

라그나르의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왔다.

라그나르는 자신의 손과 바닥에 흩뿌려진 많은 양의 피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이대로 죽는 걸까.'

생각보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라그나르는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통에 흐려진 시야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글씨가 보였다.

'요제프 미케일라…?'

처음 보는 이상한 글씨임에도 자연스럽게 글자들이 읽혔다.

그 순간 갑자기 용의 감옥이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뭐지?'

하지만 마력을 감지하기에는 감기는 눈가가 너무 무거웠다.

라그나르는 빛에 감싸이는 감옥의 철창을 보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었다.

라그나르는 몸이 떠오르는 부유감에 자신마저 어디론가 천천히 흘러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삶을 엿보기라도 하는 듯 눈앞으로 과거의 모습이 하나씩 지나가기 시작했다.

흐릿한 두 개의 인영이 형에게 자신을 건네주는 모습.

자신을 보면서 웃지 않던 형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웃어 주었던 순간의 모습.

마지막 웃음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형과 무서운 곳에서 마법에 걸린 채 암살자로서 살아가던 모습.

오래된 어두운 기억들이 사라지며 주변이 밝아지기 시작하더니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표정의 예쁘장한 아이가 자신을 보면서 서서히 웃기 시작했다.

황금빛 눈을 곱게 휘면서 자신이 겪은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 주려는 듯 옆에 있어 주었다.

'다프네.’

모든 행복의 시작은 다프네였는데 자신은 그런 소중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용의 감옥을 다녀온 뒤로부터 이상해진 몸을 숨긴 것이 잘못이었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자신은 다프네를 죽이려고 했고, 걱정하는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서 스스로 이곳을 찾아왔다는 것이겠지.

다프네가 자신을 보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에 오히려 자신의 마음이 찢어지게 아파 왔다는 것을 그 아이는 모를 것이다.

'알아서는 안 돼.'

다프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서, 그녀가 알고 있는 미래를 바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자신 따위를 신경 쓰게 해서는 안 되었다.

가라앉는 의식 속에서도 그녀와 함께했던 행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다프네가 보고 싶어.’

다프네의 환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어졌다.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할 테니까, 그럴 테니까.

라그나르는 닿지 않는 손을 힘차게 뻗었다.

다프네에게 닿겠다고 생각한 그 순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은 환영이라도 된 듯 갑자기 증발하여 사라졌다.

그렇게 눈을 떴고, 자신이 처음보는 공간에 누워 있는 것을 알수 있었다.

힘껏 뻗은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자신은 분명히 용의 감옥의 문을 스스로 닫았고, 그곳에서 죽을 것이라 다짐하였다.

하지만 여기는 숲속도 아니고, 감옥도 아닌 그저 조용하고 평화로운 방이었다.

“기척이 변했다 했더니. 일어났나 보군.”

라그나르는 갑자기 들리는 낯선 목소리에 허리를 파드득 세우며 주변을 경계했다.

허공에서 빛이 나더니 누군가가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텔레포트는 이제 라그나르에게도 익숙했으나 들리는 목소리는 리카르다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신을 이곳에 데리고 온 낯선 마법사는 누구란 말인가.

빛이 사라지고 곧이어 처음 보는 사내가 등장했다.

긴 하늘색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외모의사내 요제프는 라그나르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짧아도 5년은 잠들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지. 각성이 꽤 빠른 아이인가 보구나."

“5년이라니? 각성은 또 무슨 소리지?”

경계 어린 목소리에 요제프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물었어! 도대체 나를 어떻게 감옥에서 빼낸 거지!”

사나운 동물이 경계하는 것과 같은 모습에 요제프가 혹시나 하는 얼굴로 물었다.

"너… 네 종족에 대해서 모르는 거냐?”

“종족이라니? 난 인간이야."

"맙소사.”

라그나르의 말에 요제프가 자신의 이마를 감쌌다.

설마 이러한 상황은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는 표정에 라그나르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도대체 너는 누구야?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멍청한 헤츨링 꼬마야.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 줘야 하는지 모르겠구나.”

요제프는 귀찮은 것을 떠안았다.

는 표정을 지으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넌 인간이 아니다.”

“무슨 헛소리야!”

"인간 그 이상을 뛰어넘은 위대한 종족 드래곤. 그게 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해!"

라그나르가 목소리를 높여 보았지만, 요제프는 끄떡없다는 듯 라그나르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네가 아니라고 해도 사실이 그래. 네 눈을 봐라. 그게 어떻게 인간의 눈이냐.”

어디선가 거울이 튀어나오더니 라그나르의 얼굴을 비추었다.

파충류와 같은 기이한 눈을 보며 라그나르는 이를 악물었다.

"나, 나는…!"

“폴리모프를 완전히 완성시키지 못해서 그래. 넌 드래곤이 맞아.”

요제프는 라그나르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서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를 가져와 다리를 꼬고서는 여유롭게 말하였다.

"이제 몇 백 살 정도 되었으려나. 네 나이가 몇인지는 아느냐?”

“…아니.”

“몇 년 동안 제대로 성장도 안하고 그 상태였지?"

라그나르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암살자 집단에 넘겨지기 전에도, 그곳에 있을 때도, 또 다프네를 만나 숲속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지낼 때도 자신의 몸은 성장하지를 않았다.

그 표정에 요제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드래곤은 보통 각성이 이루어지면 성장을 하게 되지. 어째서 네가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본모습은 아닐 거다. 그러니 자라지를 않았지.”

충격적인 말에 라그나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렸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부정하고 싶은데 신비한 사내를 보고 있자니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보통은 2차 각성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할 수 있다만…. 뭐 특이 사항이니 넘어가도록 하고."

요제프는 귀찮다는 듯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꾸었다.

“평소에 건강하다가 갑자기 열이 들끓고 몸이 이리저리 쑤시고, 아팠지?”

"으, 응.”

“그 기분을 잊지 말거라. 각성의 시작을 알리는 몸의 신호니까.”

요제프는 친절하게도 하나하나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감옥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것, 갑자기 나타난 라그나르가 각성상태이니 보호자가 되어 준 것, 드디어 각성이 끝이 났다는 것까지.

요제프는 다시 한번 거울을 제대로 비추어 주며 말했다.

“보아라. 네 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라그나르는 거울을 보면서 쩌적 굳고 말았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 적응하느라 자신이 어떻게 변한 지도 모르는 모양새에 요제프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랐다.”

10대 초반의 아이로 보이던 외양이 10대 후반의 아이로 변해 있었다.

드래곤이 아니라 부정하려 해도 할 수 없었다.

“보아하니 드래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놈 같으니 내가 너의 보호자가 되어 주마."

드래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흔치 않다고 감사히 하라는 말이 덧붙여졌다.

“왜 나를 도우려는 거지?"

“동족들이 다 죽어 가 외로운 늙은이의 죽기 전의 유흥이라고 해두지.”

요제프는 무덤덤하게 말을 하고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래곤으로서 부족한 것 하나 없도록 친히 가르쳐 주마. 앞으로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르도록.”

“드래곤으로서 가르침 따위 필요 없어. 나는…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

“다프네? 그 아이가 네 반려인 거냐?”

"반려?”

"아. 반려도 무엇인지 모르겠군.”

요제프는 피식 웃으면서 별것 아니라는 듯 말을 아꼈다.

라그나르는 어쩐지 그 말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프네는 내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야. 내게 살아갈 희망을 만들어 준 소중한 인연.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야."

“그럼 반려가 맞겠군.”

요제프는 흥미가 있는 눈으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드래곤의 반려가 된 인간의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지.”

요제프는 라그나르를 힐긋 보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풀어냈다.

"반려의 인을 맺으면 그 둘은 같은 수명을 살 수 있어.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드래곤의 수명은 충분히 길기 때문에 보통 드래곤끼리는 반려의 인을 맺지 않지.

하지만 드래곤과 인간의 경우는 달라.”

“무엇이 다른데?"

“인간은 일찍 죽잖아. 반려를 잃고 나면 드래곤은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없어.”

그 말에 라그나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반려의 인을 맺으면 인간도 드래곤처럼 오래 살 수 있다는 소리야?”

“글쎄.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직접 알아보도록 해.”

애매한 대답에도 라그나르는 미약한 희망을 느끼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 방법을 알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다프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전에 자신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가능하겠지만."

“그럼 다 알려 줘.”

요제프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하였다.

라그나르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다프네가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을 테니 자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자신이 살아 있는 한 그 어떤 죽음도 다프네를 쉽게 데려갈 수 없게 할 것이다.

‘비극적인 미래를 반드시 바꿀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다시 만난 날을 기약하며 라그나르는 웃었다.

'그러니 기다려 줘. 다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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