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콜로세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 다~! 아, 여러분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오늘의 경기는 무엇이냐!"
큰 목소리가 콜로세움 내부 경기 장에 울렸다.
경기장을 둘러싼 관객석에 앉은 채 가만히 박수를 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콜로세움은 외관은 물론 내부까지 꽤 깔끔하고 잘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다만 조금 특이한 사항이 있다면 나와 같은 어린아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오늘은 누구한테 걸었나?"
"당근 도끼 휘두르는 놈이지! 거대한 덩치를 보면 쉽게 질 놈은 아니야!”
"에잉. 보는 눈도 없는 놈! 차기 에이스에게 안 걸었단 말야?"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자니 도박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엄마가 달가워하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해.”
“다프네.”
리카르다가 살포시 미간을 구기며 저런 놈들은 보는 게 아니라는 말과 함께 내 시야를 가렸다.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경기장으로 돌렸다.
사회자로 보이는 자가 커다랗게 외친다 싶더니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커다란 선수들은 마치 전쟁터에서 구르기라도 한 듯 험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곧 살벌하게 자신들의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한참을 치고받던 두 선수 사이로 곧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잔인한 소리가 들렸다.
경기는 금세 끝이 났다.
“우욱.”
나는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고, 리카르다가 황급히 내 귀를 막아 주었다.
선수 중 한 명의 죽어 가는 듯 앓는 소리가 울리자 관객들은 기뻐하며 날뛰었다.
누군가는 자신의 도박이 성공했다며 웃고 있었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잔인한 경기를 보며 사람들은 쾌락을 느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과연. 왜 위험하다는 소문이 난 건지 알겠어.'
그들은 마치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죽기 살기로 전투에 임했다.
이 잔인한 경기를 눈에 다 담자니 저절로 속이 안 좋아졌다.
'이만 가야 하는 걸까.'
이렇게 무작정 경기를 보는 것보다 콜로세움 내부에 요청해서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다프네. 보기 힘들면 나갈까?"
마침 타이밍 좋게 리카르다가 물어 왔다.
이대로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될 텐데 아쉬움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은 그 순간.
“이번 경기는 우리 콜로세움의 차기 에이스들의 경기입니다! 몰락 귀족 플뢰르와 도끼 전사 로기온!!!”
그 안내가 있자마자 조금 전은 마치 맛보기였다는 듯 커다란 함성이 경기장을 덮쳤다.
이제야 본 경기라는 듯 열띤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지금 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리다 싶으면 바로 말해. 알겠지?”
“응.”
걱정이 가득한 리카르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대답했다.
곧 두 선수가 등장했다.
검을 들고 있는 작은 여자애와 도끼를 들고 있는 성인 남자였는 데, 두 사람이 등장하자 경기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멀리 있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로기온이 얄미운 표정으로 플뢰르에게 무어라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플뢰르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 무시로 일관하며 검을 들었다.
“검에 비해 도끼가 너무 큰 것 같은데.”
"저 여자애가 불리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
“무기 차이가 너무 많이 나잖아.”
리카르다가 인상을 쓰면서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누가 보아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한쪽에게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는 그런 불리한 경기였다면 사람들이 이렇게 열광을 할 이유가 있을까?
로기온이 먼저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묵직한 도끼를 아무렇지 않게 휘두르면서 웃는 모습은 멀리 있는 관중석까지도 잘 보였다.
그리고 플뢰르는 너무나도 가벼운 몸짓으로 공격을 하나하나 피하기 시작했다.
"오.”
공격할 의사가 없는 것인지 도망가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습에 사람들이 더욱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서 한 대라도 맞춰!"
“약 오르지도 않냐!"
“죽여라! 죽여!”
누군가의 목숨을 유희거리로만 여기는 분위기에 경기와 별개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플뢰르가 저런 방식의 경기를 펼치는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닌지 사람들의 반응은 광기에 가까워 보였다.
피하는 것도 무작정 도망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공격이 어디선가 날아올 것을 아는 듯이 여유롭고 또 우아한 움직임이었다.
로기온은 맞추지도 못하면서 마구잡이로 공격을 하다가 순간 멈칫하며 휘청였다.
그리고 플뢰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여태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플뢰르의 검이 로기온의 오른손을 힘을 실어 내려쳤고, 바로 다리 쪽으로 검을 휘둘러 발로 차그를 넘어트렸다.
넘어진 로기온은 무기력하게 목에 닿는 검날을 느끼며 항복 선언을 하였다.
“와아아!”
사람들의 열띤 함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맙소사. 검등 부분으로만 공격한 거잖아?”
리카르다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고, 나는 한 손으로 입을 막으며 터져 나올 것 같은 감탄사를 삼켰다.
콜로세움이 잔인하고, 급이 낮은 도박장과 같았다면 그녀의 검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품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경기로 알 수 있었다.
'저 여자애구나.'
플뢰르라는 저 여자애가 미래에 마리아의 기사가 될 사람이었다.
가 .
“플뢰르를 만나고 싶다고?"
경기가 끝나고 우리는 콜로세움의 내부 직원을 찾아갔다.
“플뢰르는 콜로세움에 팔려 온 전투 노예라서. 만나려면 주인의 허락이 필요해.”
“보통 용병들이 주로 참가한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리카르다의 물음에 직원이 참 순진한 사람을 다 본다는 듯 크게 웃었다.
“옛날이야기지. 메이슨 왕국이 오스왈드에 패한 이후로 전투 노예가 등장했거든. 그들을 사들여서 경기를 이어 간다고, 잔인하게.
그게 돈벌이가 되니까.”
직원은 설명을 이어 갔다.
“그래도 가끔 호전적인 용병들이 몸값을 높이려 참가하기도 하지만 드물지.”
직원의 말이 끝나자 리카르다가 맞장구를 쳐 가며 대화를 이어 갔다.
“하긴. 경기가 생각 이상으로 잔인하기는 하더군.”
“보통 전투 노예들이 필사적이거든. 가치가 없어지면 죽임을 당하니까.”
“그럼 그녀를 보려면 누구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
리카르다의 물음에 직원은 피식 웃었다.
"이 콜로세움의 주인이지."
“콜로세움 주인은 어디 있는데?"
“출장 갔는데.”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직원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동그란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돈을 주면 들여보내 준다는 신호에 리카르다가 품에서 금화를 하나 꺼내어 건네주었다.
“오. 통이 큰 양반이구먼."
직원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 주었다.
"여기 갇혀 있는 놈들은 다 전투 노예니까 관심 주지 말고, 아, 사갈 거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직원의 말에 내가 리카르다를 잡고서 작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노예가 많은 것 같지?”
“그러게. 오스왈드는 노예 제도가 합법이라더니. 그래서 그런가.”
철창 속 한두 명씩 앉아 있는 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마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보기 힘들어 고개를 돌렸다.
"자. 여기야. 너무 길어지면 내 입장이 곤란하니까 적당히 알지?"
직원이 철창을 거칠게 내려치며 플뢰르의 이름을 불렀다.
“무슨 일이지?”
곧이어 구석에 있던 플뢰르가 우리 앞으로 나왔다.
마치 장미꽃처럼 예쁜 붉은색 단발머리의 여자아이였다.
가까이서 보니 나보다 몇 살 더 많아 보였다.
눈매는 부드러웠으나 우리를 쳐다보는 붉은색 눈은 차가워서 야생 동물이 적을 살펴보는 눈빛과 같이 보이기도 했다.
“잠시 대화를 하고 싶어서 불렀는데. 이야기 가능할까?"
날카로운 반응에 리카르다가 앞장서서 대화를 끌어내려 했다.
"나는 너희들과 할 이야기 없어.
그러니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
하지만 플뢰르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잠시면 돼. 네게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제안?”
“이곳이 좋아?”
“하."
내 물음에 플뢰르가 미간을 와그작하고 구겼다.
침착해 보이는 얼굴에 불쾌함이 서렸고, 곧 표정만큼이나 차가운 말이 튀어나왔다.
“좋기는, 살기 위해서 억지로 이곳에 있는 것뿐이지.”
"살기 위해서라니?”
내 물음에 돌아오는 답은 우리를 안내해 준 직원의 입에서 나왔다.
“귀족은 보통 몰락한다 해도 평민으로 계급이 내려가지만 플뢰르네 집안은 쫄딱 망했거든."
“그래서?”
“쫄딱 망하다 못해 왕국에 미움까지 사서 플뢰르를 제외한 가족모두가 처형당했지. 플뢰르는 노예가 된다는 조건으로 살아남은 거고.”
직원의 입에서 자신의 과거가 나오자 플뢰르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런 플뢰르를 우리 사장님이 샀지. 보니까 플뢰르를 데려가고 싶은 모양인데. 막대한 돈을 얹어 주지 않는 이상 힘들걸.”
직원은 플뢰르를 보며 킬킬 비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무려 귀족이! 그것도 자부심이 대단한 기사님께서 이곳에서 살기 위해 검을 휘두르는 꼴이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
감당하지 못할 거라면 그녀에게 헛된 희망만 주게 되는 거란 뜻이겠지.
나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곳이 싫다는 것은 확실하네.”
“그렇기는 하지만."
플뢰르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도르르 굴렸다.
내 말에 리카르다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플뢰르를 데려가고 싶어.”
“그래?”
“어이. 조금 전에 내가 한 말 못들었어? 적어도 만 골드, 아니 10만 골드 이상은 내야 살 수 있다.
고!”
직원의 말에 리카르다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 말했다.
"여기 사장은 언제 돌아오지?"
"아, 아니. 10만 골드라니까?”
직원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거칠게 내려치며 말했다.
하지만 리카르다는 어이없는 목소리로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프네가 데려가고 싶다고 하는데 그깟 10만 골드가 문제야?"
돈은 문제없으니 이렇게 쉽게 해결되는 듯싶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은 플뢰르의 입에서 나왔다.
"나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