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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77화 (76/185)

제77화.

오늘은 마지막 날이니 일부러 전보다 늦은 시각에 방문하였다.

처음 보는 직원이 나를 보며 놀라더니 씨익 웃었다.

“요새 플뢰르의 친구가 찾아온다더니. 진짜였네.”

어디서 어떤 정보를 잘못 주워들었는지 몰라도 그가 나를 안내하면서 꾸짖듯 타이르기 시작했다.

“여기는 너 같은 꼬마가 오기에는 위험한 곳인데. 푼돈으로는 플뢰르를 살 수도 없고.”

귀찮은 사내의 말을 무시하니 그는 뭐가 좋은지 킬킬 웃으면서 흥얼거림을 멈추지 않은 채 안내를 도왔다.

그런데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누군가 우는 듯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이 플뢰르임을 알게 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친구가 우니까 잘 달래 줘. 아저씨가 잠시 자리 좀 비켜 줄게.”

사내는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 자리를 떠났다.

"왜 울어?”

플뢰르는 무릎을 꿇은 불편한 자세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 가득 눈물이 번져 있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그녀의 얼굴을 훔쳤다.

"혹, 흐윽.”

눈물을 닦아 주려 했는데 다시 펑펑 울기 시작해 당황스러웠다.

“왜 우는 거냐니까."

내 물음에 답한 건 처음 보는 갈색 머리의 남자였다.

“네가 플뢰르를 데려가고 싶다고 했던 아이지? 그렇다면 당장 플뢰르를 데려가 줘!"

사내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나는 그 사내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

"내 이름은 크세스라고 한단다.

플뢰르랑 아는 사이지.”

“크세스?”

나는 그를 가볍게 살펴보았다.

마치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듯 창백한 인상의 사내였다.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그가 거센 기침을 터트렸다.

'아, 이자구나.'

보자마자 느낌이 왔다.

이자가 플뢰르가 이곳에 남아 있고자 하는 이유인 게 분명했다.

크세스는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고만 있자 무릎을 꿇고 큰 소리가 날 정도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부탁한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플뢰르를 데려가 줘!"

플뢰르는 눈물을 거칠게 훔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고, 크세스는 간절하게 내게 그녀를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일단 무슨 이야기인지 듣고 싶은데."

데려가는 것을 둘째 치고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내 물음에 크세스가 입을 열려는 그 순간 그가 갑자기 뒤를 가리켰다.

“왜 그래?”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를 강하게 내려쳐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욱신거리는 고통에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떴다.

'무식하게 머리를 내려치다니'

눈을 뜨고 보니 내가 있는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옥?”

“오, 일어났구먼.”

내가 눈을 뜨자 오늘 나를 안내해 준 사내가 일그러진 얼굴로 히죽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참 겁 없는 꼬마야. 너 같은 애가 오기에 위험한 곳이라고 했잖아. 아저씨가 충고도 해 줬는데 얼른 도망갔어야지."

“뭐 하자는 거야?”

돈은 돈 대로 받아 놓고서는 갑자기 공격을 해?

내 표정이 찡그려지자 그가 무서워하는 척 뒤로 물러났다.

그래 봤자 감옥 밖이어서 손도 닿지 않을 텐데.

"사장님에게 들켰거든. 네가 자꾸 들락날락하는 거."

“그게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

그 대답은 사내의 뒤쪽에서 들려 왔다.

검은색 머리의 커다란 사내가 다가오더니 철창 안으로 손을 뻗어 내 턱을 쥐고서는 휙휙 돌려 가며 나를 살펴보았다.

“상관있지. 예쁘고 어린 여자애가 이런 위험한 곳에 홀로 드나드는데. 어떻게 이런 훌륭한 상품을 그냥 지나치려 하겠어.”

“지금 내가 상품이라는 건가?"

“플뢰르를 사고 싶다고 놀러 오는 애가 있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어린애일 줄은 몰랐거든. 아, 내 이름은 에밀이야. 이곳의 주인이지.”

에밀이 활짝 웃더니 내 턱을 잡은 손을 거두었다.

“딱 보니까 친구는 10만 골드도 없는 것 같은데.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제부터 못 본다고 생각해야 할 거야.”

“날 어떻게 할 생각이야?"

“당연히 팔아야지. 예쁘고 어린 여자애가 얼마나 비싼 값에 팔리 는데. 일주일 뒤에 열리는 경매에서 비싸게 잘 팔아 주마."

에밀은 뿌듯한 얼굴로 뒤에 있는 직원에게 수고했다며 돈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에밀과 그 직원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고, 나는 황망한 웃음을 내뱉었다.

"괘, 괜찮아?”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눈가가 붉어진 플뢰르가 안절부절못하며 내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몇 대 맞기라도 했는지 상태가 나빠 보이는 크세스도 보였다.

“미안하다. 말리고 싶었지만 무리였어.”

“미, 미안해. 나 때문에. 내가 진작에 허락만 했었어도."

내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으니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크세스도 플뢰르도 내게 미안하다며 계속 사과를 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다가 우선 플뢰르의 입부터 손으로 막았다.

“웁?”

갑자기 입이 막힌 플뢰르가 나를 바라보았고, 크세스 또한 따라서 조용해졌다.

“정작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두 사람이 사과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진작에 허락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플뢰르가 죄책감이 가득한 목소리로 바닥을 내리쳤다.

“설마 에밀이 일반인까지 납치해서 노예 매매를 할 줄이야!"

플뢰르의 분이 가득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주위를 살펴보았다.

차가운 감옥 안에는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었고, 나가는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게 잠겨 있다.

“잠시만 기다려 봐.”

나는 플뢰르를 크세스에게 맡긴 채 감옥의 문을 살펴보러 갔다.

혹시 몰라 목을 빼어 주변을 살펴보아도 똑같은 감옥들만 있을 뿐 감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허술하네.”

노예를 잡아 둔다더니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몇 시야?”

“아마 오후 열 시가 조금 지난 것 같은데.”

“확실해?”

"경비가 교체된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맞을 거야. 열 시가 교체 시간이거든.”

그 말에 나는 문을 살펴보다 말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그럼 아직 이르네."

"뭐?"

“오빠들이랑 오후 열 한 시에 만나기로 했거든.”

두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키키. 나와도 돼.”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내 가방이 꾸물꾸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 여우?”

키키를 처음 보는 크세스가 놀란 목소리로 어버버거리며 말을 겨우이었다.

“여우가 왜 가방에 들어 있는 거야?”

“잠시 숨어 있으라고 했으니까.”

키키는 가방끈을 물고는 내게로 도도도 달려와 가방을 내려놓고 내 무릎 위에 가볍게 앉았다.

나는 가방에서 사과 하나를 꺼내 키키에게 물려 주었다.

곧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감옥 안을 채웠고, 두 사람은 우리의 평화로운 모습에 눈물도 뚝 그쳐 버렸다.

“사실 이렇게 될 거라고 짐작하긴 했어. 머리를 때려 기절시킬 줄은 몰랐지만."

“무, 무슨 소리야?”

플뢰르의 물음에 키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며 웃었다.

그날 나스에게 조언을 듣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았다.

왜 수상한 사람들이 내 뒤를 쫓는 걸까에 대해서 말이다.

답은 금방 내릴 수 있었다.

'나를 납치하려고 하는 거구나.'

허술한 원작 속에서는 불법 노예매매가 그저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고만 서술되어 있었다.

'설마 콜로세움에서도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지.'

만약에 나를 노리는 것이라면 오히려 이걸 역이용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같은 상인으로서 불법 노예 매매를 혐오하는 쪽이었고, 나 또한 엄마와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그들이 정말로 저를 노예 매매에 내보낼 거라면 물리적 위해는 가하지 않을 거예요. 다치지 않게 조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 계획을 들은 엄마는 달가워하지는 않았으나 결국 늦은 시간의 외출을 허락해 주었다.

“누가 자꾸 나를 쫓아다니더라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제 마지막이라는 말을 강조했더니 역시나 이런 일을 벌였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알면서도 찾아온 거야?”

플뢰르가 믿기지 않는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도대체 이런 무모한 짓을 한 거야! 저놈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잔인한 놈들인데!”

버럭 화를 내는 플뢰르에게 나는 방긋 웃어 주었다.

“그렇지만 플뢰르가 이유를 알려 주지 않았잖아.”

“설마….”

“콜로세움을 뒤엎는 것 말고는 널 데려갈 만한 방법을 모르겠는 걸 어떻게 해?”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크세스가기가 차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대단하구만.”

지금 이 상황을 계획한 것이냐는 감탄에 나는 피식 웃었다.

“솔직히 나는 이 상황이 무섭지 않아. 오히려 조금 신나졌어. 불법 노예 매매가 엄청난 중죄라 처벌이 무섭다고 들었거든."

뒤엎는 것도 모자라서 완전히 망해 버린다면 더 좋을 텐데..

‘한 건 가지고는 어려우려나..'

아쉬움을 삼키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한 시간이 좀 남았는데. 이번에는 너희 이야기를 좀 해 줄래?"

* * *

모든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한숨을 삼켰다.

'역시 에이스가 되려는 이유를 쉽게 넘겨 버리면 안 됐었어.'

조금 더 캐물었으면 이렇게까지 일을 키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내 눈치를 보는 플뢰르를 보아 하니 아무리 물었어도 답해 주지 않았을 것이 뻔히 보였다.

"나가기 전에 확실하게 해 둘 게 있는데.”

두 사람이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에게 확실하게 내 의견을 전달했다.

"난 두 사람 다 데려가고 싶어.”

"어, 어?"

플뢰르도 크세스도 대화 주제를 따라가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두 사람의 입을 잘 닫아뒤에 다시 말했다.

"두 번 말 안 할 거야. 플뢰르, 크세스 두 사람 다 내가 데려가고 싶다고 했어.”

"어, 어째서?”

“플뢰르만 데려가도 괜찮다. 나는 어차피…! 콜록, 콜록.."

크세스가 거친 기침을 토해 내는 것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데려가고 싶어서. 단지 그 뿐이야.”

플뢰르는 자신을 보호해 준 크세스를 위해서 이곳에 남고자 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함께 데려가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내 파격적인 제안에 두 사람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여 다시 말했다.

“크세스에게 의사를 붙여 줄게.

어떤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아끼지 않고 치료도 받게 해 줄게.”

“저, 정말로?”

플뢰르가 오늘 중 가장 기쁜 목소리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 그렇게 미안한 짓을 할 수는 없어. 돈도 많이 들 거야.”

“나 돈 많아.”

내 단호한 말에 크세스가 쩔쩔매는 태도를 보였지만 이미 플뢰르의 눈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같이 나갈 수 있기만 하다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 거야.”

기쁜 마음으로 너를 따라갈게! 이

"드디어 허락했네. 좋아, 내 이름은 다프네야. 잘 기억해 둬."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중 크세스가 끼어들기 민망했는지 조용히 손을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거야, 다프네?"

"아니. 오빠들이랑 만나기로 한 장소가 있어.”

슬슬 약속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키키가 꼬리를 살랑이며 나를 졸졸 따라왔다.

“여, 열 수 있어? 마법으로 잠갔다고 들었는데.”

나는 가방에서 얇은 핀 하나를 꺼내어 밖에 있는 열쇠 구멍에 꽂았다.

“뭐 하는 거야? 그런 거로 문은 못 열어. 마법이 걸려 있어서.”

보통 핀이라면, 고작 이런 것으로 열기에는 가당치도 않았겠지.

하지만 레녹스가 만들어 준 이 물약과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다.

나는 가방 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어 자물쇠에 부었다.

그리고 핀을 움직이자 달그락 달각하고 작은 소리가 몇 번 울리더니 곧이어 철컥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린 자물쇠는 바닥에 큰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럼에도 무슨 일인지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어, 어떻게 한 거야!”

“마법을 잠시 무효화시키는 물약을 부었어.”

“그런 물약이 있어?"

"없어도 만들어 내는 사람이 내 오빠라서.”

다행히도 문은 소리 없이 열렸고, 키키를 안아 들고는 두 사람에게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리 이제 함께 나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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