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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78화 (77/185)

제78화.

철창 밖을 빠져나온 크세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들어왔던 곳에는 경비가 있었으니까 그쪽으로 나가지는 못할 테고, 다른 출구를 찾아보자."

내 말에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서 고민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미안. 우리는 매일 갇혀 있어서, 이곳의 지리를 잘 몰라."

“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

“괜찮아. 우리는 몰라도 키키는 알 테니까.”

"여우가?”

크세스와 플뢰르의 의문을 뒤로한 채 나는 키키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키키. 지난번에 본 경기장 입구찾아갈 수 있겠어?"

키키가 작은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기도 하고, 코를 몇 번 움직이더니 곧 가벼운 걸음으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좋아, 따라 가자.”

“정말 여우를 따라가면 출구가 나온다는 거야?”

“키키는 길을 아주 잘 찾거든.”

두 사람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내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이곳 직원들을 만나면 어떻게 해?"

말하기 무섭게 갑자기 키키가 멈춰섰고, 꺾어진 곳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우왓!”

처음 보는 사내는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에 놀랐다가 손가락으로 두 사람을 가리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너희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사내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기 전에 나는 가방 속에서 작은 물약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그의 얼굴에 뿌려 버렸다.

“퉤, 퉤. 이게 뭐야….."

사내는 물약을 거칠게 닦아 내리다가 갑자기 두 눈을 스르르 감고서 바닥에 쓰러졌다.

“뭐, 뭐야?”

“잠들게 하는 물약이야.”

“효과가 엄청나네….”

플뢰르의 감탄에 어깨가 으쓱으쓱 올랐다.

“그보다 물약을 자연스럽게 꺼내 드는 폼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써 보는 건 처음이야.”

“그래? 정확하게 목표물을 확인하고 맞췄잖아. 꽤 순발력이 뛰어난 것 같아.”

크세스와 짧은 대화를 하는 사이 플뢰르가 쓰러진 남자의 품에서 장검과 단검을 찾았다.

“이 정도면 쓸 만하겠다.”

"아, 플뢰르, 단검은 내게 줘.”

"아프다면서 움직일 수 있어?”

“여기서 나갈 수 있다니까 오히려 힘이 나는데.”

크세스는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검을 양손에 쥐었다.

검을 쥔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나는 것이 과연 허투루 휘두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플뢰르와 크세스의 무기도 챙겼겠다, 우리는 쓰러진 남자를 한쪽에 숨겨 놓고서는 다시 움직이는 키키의 뒤를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이곳이랑 같은 층에 직원들이 머무는 곳이 있을 거야. 조금만 더 조심하자."

크세스의 말을 들으며 걷다 보니 확실히 우리가 가려는 길 반대쪽에 환한 빛이 비추는 게 보였다.

아마도 저쪽이 사무실인 거겠지.

“사장도 저기에 있어?”

“그러지 않을까? 직접 가 본 적은 없고 들어만 봐서….”

크세스의 자신 없는 말에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움직이려는데 플뢰르가 소곤소곤 물어왔다.

“정말로 이 방법이 괜찮을까? 붙잡히면 어떻게 하지?"

“플뢰르.”

크세스의 말에 플뢰르가 의기소침해졌다.

플뢰르의 걱정도 이해는 되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자기보다 조그만 여자애에게 자신의 운명을 건 것이나 다름없으니 두렵기도 하겠지.

"괜찮아. 다시 붙잡혀도 어떻게든 내가 구해 줄게.”

"......"

"난 뱉은 말은 지켜.”

“그래. 우리는 빠져나갈 생각만 하자.”

내 말에 동조하듯 크세스가 플뢰르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짧은 대화에 기운이 좀 낫는지 플뢰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러고 보니 다프네 너는 어느 집 애야? 평범한 관광객은 아닌 것 같은데.”

“엄마가 상단을 하나 운영하고 있어.”

내 설명에 두 사람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궁금했나 보다.

어차피 가는 길에 사람도 안 보이는 것 같으니 물어보는 것은 조금씩 답해 주어야겠다.

“나이는?”

“열셋.”

“왜 오스왈드에 가는 거야?"

“여러 이유가 있는데. 나중에 알려 줄게.”

설명하자면 길다고 말하면서 뚜벅뚜벅 걷다 보니 계단이 보였다.

키키는 총총 계단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멈춰 서서 빤히 그 계단을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기다리면 돼?"

“응. 이곳에서 기다리면 오빠들이 데리러 온다고 했어.”

우리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갔다.

드디어 도착한 것은 좋았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자물쇠도 따로 없네. 손잡이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

마법으로 작동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작동 방법을 모르니 이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잠시만."

나는 두 사람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귀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마력이 없는 나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 귀걸이가 작은 빛을 내더니 곧 무언가와 연결된 듯한 소리가 들렸다.

'다프네?'

레녹스의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레녹스, 조금 문제가 생겼어. 경기장 입구는 찾았는데 문을 열 방법이 없어.”

'뭐?' 당황에 빠진 그 목소리에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것 같아. 손잡이는 보이지 않고, 원격 조종인 걸까?”

레녹스는 잠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더니 빠르게 말했다.

'네가 말한 것 좀 설치하느라 조금 늦었네. 리카가 마도구로 조종하는 것 같다니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거의 다 도착했다는 레녹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빠져나온 거 곧 알 텐데, 가만히 있다가 공격당하면 어떻게 해?”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미 들켰다. 꼬맹이.”

나는 깜짝 놀라 헉 소리를 내면서 황급히 아티팩트를 껐다.

뒤를 돌아보니 플뢰르와 크세스가 밀려온 사내들을 향해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갑자기 감옥이 비어서 얼마나 당황한 줄 아냐. 사장한테 깨지면 네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말이야!"

나를 때려서 기절시킨 놈이 뒤에 있는 놈들에게 손짓했다.

“꼬맹이는 포박하고, 플뢰르랑 크세스는 죽기 직전까지 냅다 패.”

사내가 말하기 무섭게 뒤에 있는 덩치 큰 남자들이 우르르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프네! 우리는 어떻게 할까?"

“응?”

“네가 우리의 주인이 될 거잖아!

명령을 내려 줘!"

플뢰르의 말에 당황한 정신을 바짝 차리고서 나도 힘껏 외쳤다.

“움직이지 못하게 모두 기절시켜버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이 빠른 움직임으로 달려들어 공격하는 이들을 가볍게 물리치기 시작했다.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기절하여 큰 소리를 내며 쓰러지는 모습은 꽤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새 홀로 남은 사내가 당황스러운 눈으로 쓰러진 부하들을 내려다보더니 으아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세스가 날린 단검에 다리를 맞고 금세 쿠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말았다.

뒤따라간 플뢰르가 그의 목덜미를 내리쳐 확실하게 기절시켰다.

"이제 어떻게 할까?"

“…아까 본 사무실 쪽으로 가 보자. 이곳에 가만히 있으면 붙잡힐지도 몰라.”

분명히 그쪽에는 나갈 수 있는 직원용 통로가 따로 있을 것이다.

“키키. 위험하니까 이제 이리로와."

키키가 가볍게 튀어 올라 내 품에 안착했다.

놓치지 않기 위해 키키를 꼭 껴안고는 둘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소란스럽게 빠져나갈 것 같은데. 괜찮아?"

둘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사무실 쪽으로 이어진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낼 정도로 조용한 복도를 걷다가 인기척이 느껴져서 바로 몸을 틀어 숨었다.

그곳에서 에밀이 빠져나오는 것이 보였다.

“뭐? 감옥이 비었다니 무슨 소리야!"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틀어막고서 최대한 벽 쪽으로 붙었다.

키키도 얌전히 있으니 이대로만 넘어가면 참 좋을 텐데.

“그 꼬마애뿐만 아니라 플뢰르와 크세스도 함께 탈출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됐어. 두 사람은 어차피 족쇄가 있어서 멀리 도망가지 못했을 거야!”

'족쇄?' 에밀의 말에 의문이 들었다.

두 사람의 발목은 얼핏 보기에 채워진 것 없이 깨끗해 보이는데.

에밀이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르더니 씩씩거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 버튼을 꾹 누르자 갑자기 옆에 있는 두 사람이 앓는 소리를 내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둘을 내려다보자 그들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발목을 붙잡았다.

자세히 보니 발목에 갑자기 검은 띠가 하나 생겨났는데, 보아하니 마법으로 만든 족쇄인 것 같았다.

“어디서 익숙한 소리가 들리네."

에밀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싱글벙글한 웃음을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발걸음 소리에 두 사람이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다프네. 어서 도망가.”

“우리는 괜찮으니까, 어서!"

두 사람이 필사적인 표정으로 나를 반대쪽으로 떠밀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져 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꽉 깨물고는 그쪽을 향해 뛰어갔다.

"여기 있었구나. 이런! 꼬마가 도망간다! 가서 잡아!”

“저리 비켜, 이놈들아!”

뒤를 힐긋 돌아보니 두 사람이 고통을 참으며 필사적으로 쫓아오려는 직원을 막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죽을힘을 다해서 뛰었다.

경기장 입구로 오고 있을 오빠들을 데려와야 했다.

그래야 두 사람도 함께 탈출할 수 있을 테니까.

필사적으로 달리면서 아티펙트를 작동시키려는 순간, 갑자기 튀어 나온 팔이 나를 확 잡아당겼다.

“앗!”

나는 비명을 지르다가 입을 막는 커다란 손에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나를 붙잡은 손의 주인은 나를 자신의 품으로 가두더니 망토로 감쌌다.

“쉿.”

익숙한 목소리에 긴장을 풀고서 '흡하고' 숨을 참았다.

곧이어 직원이 이쪽을 향해 뛰어왔고, 구석에 숨어 있는 우리를 그냥 지나쳤다.

그가 저 멀리 사라지자 내 입을 가린 손이 천천히 떼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올려 나를 구해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위험하다고 했었잖아.”

걱정이 담긴 타박에 나는 놀란 눈을 깜빡이며 그를 빤히 바라볼수밖에 없었다.

나스, 그가 날 구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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