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유니스가 눈에 띄게 동요하자 옆에 있던 마리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마리아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유니스를 불렀으나 그녀는 마리아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여전히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을 목격한 듯한 눈빛이었다.
‘확실히 놀랄 만하지.'
내 외모가 내 친엄마를 빼닮았다.
고 했으니 프레이르를 닮은 외모에 놀랐을 것이다.
유니스는 프레이르의 외모를 잊으려 해도 절대 잊을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까지 당황한 모습이라니.
'조금 이상한데?’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피어올랐으나 그것을 겉으로 티를 낼 수는 없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마리아와 카스토르도 당황한 눈으로 유니스를 바라보았다.
세 쌍의 시선이 느껴지자 유니스가 곧 정신을 차리고서는 화사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반가워요.”
하지만 꺼내는 말과 다르게 그녀의 입가는 애처로워 보일 정도로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마주 웃으며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 선배. 죄송해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많이 놀라셨죠.”
“아닙니다, 공녀님. 저야말로 직접 찾아봐야 했었는데 이곳까지 방문하게 하여 너무 죄송할 뿐인 걸요.”
“흥. 당연한 소리를 하는군. 애초에 우리가 왜 여기에 와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
카스토르는 제 불만을 토해 내다 마리아의 매서운 눈길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게. 도대체 왜 온 걸까.'
나 역시도 궁금하였는데 아쉽게도 그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정작 가장 먼저 만나 보자 청했던 유니스는 나를 관찰하기 바빴고, 마리아는 미안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카스토르는 팔짱을 끼고는 불만스러움을 아낌없이 표출해 냈다.
결국 이 자리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나였고, 가장 불만스러운 사람도 나였다.
차마 말로 꺼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를 버텨야 하는지.'
우리 사이로 계속해서 침묵이 흐르자 결국 눈치를 보던 마리아가 입을 열었다.
"엄마, 아카데미에서 제게 정말 잘해 주던 선배예요. 덕분에 아카데미 생활이 후회 없을 정도로 너무 즐거웠어요.”
“그, 래?”
"네! 던전에서도 크게 도움을 받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내가?' 영문 모를 소리에도 좋은 이야기니 그저 조용히 웃고 있자 유니스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애써 미소를 짓고 있으나 흔들리는 두 눈빛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자고 한 이유는…
상단주가 마리아와 카스토르의 아카데미 생활을 도와줬다고 들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고맙다니요. 분에 넘치는 인사네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이었는걸요.”
카스토르가 뻔뻔하다는 듯 나를 보았으나 나는 거리낄 것 없기에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공녀님과 공자님이 워낙 훌륭하셔서 분명 제 도움이 없었어도 아카데미 생활을 잘하셨을 거예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식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좋은 후배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어서 저야말로 너무 기뻤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환히 웃었다.
“선배, 정말요?"
“그럼요.”
“저도, 선배가 제 선배여서 너무 즐거웠고 또….”
마리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가려고 했으나 유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무래도 상단이 많이 바쁜 것 같으니 다음 기회에 만남을 갖는 게 좋겠어요.”
“엄마?"
“그렇죠, 상단주?”
“다시 초대해 주신다면 저야말로 감사하죠.”
마리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으나 카스토르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돌아가죠.”
“차 잘 마셨어요.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공작저에서 차를 한잔 대접할게요.”
"영광입니다.”
유니스는 불편한 기색으로 다시 나를 한 번 훑어보다가 방을 나섰다.
카스토르가 재빠르게 뒤따라 나갔고 마리아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으로 뒤에 서 있다가 내게 다가왔다.
“선배, 죄송해요.”
“저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해 주셨나 봐요. 공녀님께서는 제 칭찬만 하신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죄인처, 럼 구세요.”
“바쁜 와중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어머니의 무례를 대신 사과할게요.”
“..…괜찮아요. 다행히도 다음에는 찾아오시지 않을 것 같거든요."
내 말에 마리아는 씁쓸한 표정으로 무어라 말을 더 이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저희는 이곳에서 더는 선배와 후배가 될 수 없는 거군요."
“그렇죠.”
깔끔하게 답하니 마리아가 서글픈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제가 더 주의할게요. 그러니 다음번에 볼 때 꼭 인사해 주셔야 해요.”
마리아는 그 말을 마치고 민망한 듯 재빠르게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세 사람이 빠져나간 응접실은 참고요했고, 지독한 침묵으로 가라 앉았다.
여러모로 굉장히 불쾌했다.
* *
유니스는 허겁지겁 베네디토 상단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엄마, 엄마!”
마리아가 황급히 따라붙었으나 유니스는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조금 전까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엄마, 갑자기 왜 그렇게 뛰쳐나가는 거예요?”
뒤늦게 따라온 마리아가 유니스를 붙잡았으나 그녀는 그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엄마!”
“마리아. 저 상단주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
“다프네 베네디토라고 했잖아요.
오늘 엄마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혹시 어디 아프세요?”
마리아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유니스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머리가 조금 아픈 것 같네.”
“정말이지. 아프면 말하고 쉬면 되는데….”
마리아는 걱정 섞인 타박을 하며 유니스의 팔에 팔짱을 꼈다.
“어서 돌아가서 쉬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마리아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었다.
"아. 라그나르 씨.”
".......?"
마리아가 막 저택에 들어가려는 라그나르를 발견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 불렀다.
"어디 갔다 오세요?"
“잠시 외출을 했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지?”
“다프네 선배를 잠깐 보려고 왔다가… 바빠서 다음을 기약하고 나오는 길이에요.”
마리아의 대답에 라그나르가 움찔했다.
무어라 말하고 싶은지 그의 입술이 달싹거렸으나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서는 그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리아를 무시한 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갔다.
마리아는 아쉬운 듯 라그나르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틀었다.
그러다 시야에 들어온 엄마의 표정에 다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유니스는 두 눈을 더 커질 수도 없을 정도로 부릅뜨고 있었다.
안색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유니스의 시선은 라그나르의 등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세상에나. 엄마! 이렇게 많이 아프면서 어떻게 참은거예요! 어서 집으로 돌아가요! 카스토르!"
마리아가 황급히 카스토르를 불러 유니스를 부축하도록 도왔다.
유니스는 마차에 오르기 전까지 표정을 갈무리하지 못하다. 이내 마차 안에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나는 턱을 매만지며 창문 밖에 펼쳐진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유니스가 라그나르를 보자마자 나를 본 것만큼 크게 놀랐다?
“역시 수상한데.”
단순히 프레이르와 닮은 사람을 보고 나서 보이는 충격과는 엄연히 달랐다.
'내가 모르는 뭐가 있다는 건가.'
"알아낼 수 있을까.”
당장은 급한 일 때문에 저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는데 직접 궁금증을 던져 주고 가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숨기고 있는 게 뭘까.”
“누가 뭘 숨겨?”
작게 중얼거린 혼잣말에 답변이 돌아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어?”
“조금 전에. 나 보고 싶었어?"
“글쎄.”
미소를 지으며 얄궃게 말하자 라그나르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왜 글쎄야?”
“너무 바빠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런데 혼자인 집은 좀 조용하네….”
나는 일주일 동안 홀로 있었던 숲속 집의 생활을 떠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외로웠던 것 같기는 해."
“역시 가지 말걸 그랬나.”
“하고 싶은 게 있어서 요제프 씨를 보고 온 것 아니야?"
라그나르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지 아직도 말 안 해 줄 거야?"
“보고 싶다고 말하면 해 줄게."
“보고 싶었어, 라그나르."
단번에 내뱉은 말에 라그나르는 미소를 짓고는 내 곁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그러고는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부족해. 안아 주면서 진심으로 말해 줘."
“어린애야?”
타박하면서도 라그나르를 꼭 끌어안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보고 싶었어. 이제 됐지?"
“응.”
라그나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제 품에 꼭 끌어안았다.
“요제프가 끈질기게 안 놔주려고 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어.
외롭게 해서 미안해.”
막상 품에 안기고 있자니 어째 내 쪽이 더 어린애처럼 칭얼거린 것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생각해 보니 안 외로웠던 것 같아."
"오늘부터는 같이 집에 돌아가자.”
“곧 엄마도 올 텐데 뭐."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으나 확실히 조용한 집은 익숙하지 않았다.
라그나르와 함께 생활을 하고 나서부터 느끼지 못했던 고요이기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왜 놀랐지?'
아. 생각보다 라그나르가 내 생활에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 놀랐었다.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가족과 가까운 감정이려나.
라그나르의 품에 안긴 채 내 감정을 정의하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깊게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플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요제프에게 조금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 이름으로 재단 하나를 만들었어.”
“…재단이라니?”
천천히 말해 보라며 그를 이끌고 소파로 향하려는데 그가 나를 내 의자에 앉혀 주고 자신은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지금껏 신경 안 써서 몰랐는데나 그림 그리는 걸 꽤 좋아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확실히 뛰어난 실력이기는 했어. 그런데 그게 재단이랑 무슨 상관이야?”
“예술 재단에 정식으로 소속해야 예술가 등록이 되더라고. 다른 곳에 소속되기는 싫어서 새로 하나 만들었어.”
재단 하나를 만들려면 꽤 많은 돈이 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요제프의 레어에 안 쓰는 재화들이 많아서. 대부 좋다는 게 뭐야."
라그나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것에 나는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나한테 말하지.”
“언제나 도움만 받고 있으니까 스스로 이뤄 내고서 놀라게 해 주고 싶었어.”
그런 것 치고는 요제프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면서.
나오려는 뒷말을 아끼고서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물었다.
“그럼 계속 그림만 그리려고?"
“아니. 예술 재단을 유지하려면 정식으로 다섯 명 이상이 소속되어야 하더라고.”
“그럼 네 명을 더 채워야 해?”
라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주변에 예술 쪽으로 실력이 있는 이가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으음. 우리 주변에는 딱히 없지 않나?"
“걱정하지 마. 안 그래도 생각해둔 방법이 있거든.”
라그나르가 시계를 흘긋 보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바쁜 건 알지만 내게 잠시 시간을 내주겠어?”
벌써 네 시를 향한 시계는 아직 퇴근하기에는 일렀으나 책상에 쌓인 서류야 밤에 해도 충분할 것이다.
‘밤에 잠을 조금 줄이면 되겠지.'
안 그래도 요새 일만 하느라 답답했고, 오래간만에 라그나르와 만났으니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네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내 대답에 라그나르가 환히 웃으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검은 베일과 어두운 드레스였다.
"도착하기 전에 갈아입고 가자.”
“도대체 어디를 가려는 거야. 장례식장이라도 가니?"
나는 의문을 가졌지만 도착하고 나서 알려 줄 것이란 말에 주저않고 옷을 입었다.
목적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