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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143화 (142/185)

제143화.

상황은 꽤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입장에서 말이다.

공작은 전혀 즐겁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기 바빴다.

“전하의 말씀이 맞아요! 저는 정령술도 할 줄 알고, 던전의 경험도 있어요! 제가 참가하는 게 맞아요!”

“마리아, 던전이 네게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을 해 보거라! 분명히…!"

“던전은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위험하다고요!”

마리아와 헤로니스 공작은 주변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언성을 높이며 다투고 있었다.

마리아가 이런 태도를 보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공작은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라 있었다.

“마리아!"

“제 의견을 물으러 부르신 거잖아요! 그래서 제 의견을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마리아의 말에 헤로니스 공작은 씨근덕거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만. 둘 다 내가 앞에 있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야.”

그리고 그런 둘 사이를 시몬이 나서서 중재하였다.

시몬의 말에 헤로니스 공작은 화를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 털썩 앉았고, 마리아는 자기 뜻을 표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전하. 저는 이 던전 공략에 참가하고 싶어요. 물론 제 실력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게 말을 한 마리아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스며 있었다.

“그렇죠, 선배?”

'너는 이런 상황에서도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구나.' 여러모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아이다.

“맞아요. 공녀님이 함께라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다면 제 생각은 변치 않아요.”

“마리아!"

헤로니스 공작의 외침은 마리아에게 소용이 없었다.

마리아는 내게 다가와 내 두 손을 잡고서 처음 던전에 참가했을 때와 다르게 결연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서 합류할 게요. 그러니 맡겨 주세요."

“그래요.”

깔끔한 대답에 마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고, 시몬은 우리를 빤히 지켜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피식 웃었다.

'못 말리겠군.'

입 모양을 읽고서 나 또한 시몬을 따라 미소를 지었다.

* * *

회의가 끝이 났다.

다프네 베네디토를 중심으로 던전 공략 조가 꾸려졌고, 그 일원에는 마리아 헤로니스 또한 포함되었다.

"누님.”

“왜?”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카스토르.”

카스토르는 간단하게 짐을 싸고 있는 마리아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 돌아가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꼭 가셔야 합니까? 들어보니 굉장히 위험한 던전이라던데요."

“위험하니까 없애기 위해서 가는 거지. 그대로 두면 더 위험해지잖아.”

“꼭 누님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아닙니까. 아버지께서도 그리 반대하시는걸요.”

카스토르의 말에 마리아가 움직이던 손을 멈추었다.

그 말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카스토르가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누님의 정령술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무래도 공격하는 수단이 적지 않습니까. 그러니 저는 가족으로서 걱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

마리아가 묵묵히 다시 짐을 싸자 카스토르는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결국 익숙한 대안을 꺼내었다.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그 말에 마리아가 고개를 휙 돌려 카스토르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보다 더 격한 반응이었기에 카스토르는 이것이 정답이었다.

고 생각해 씁쓸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위험한 일은 제게 맡겨 주세요.

누님이 그런 일을 겪으신 건 한번이면 충분해요.”

“카스토르.”

카스토르는 평소와 같이 가까이 다가가서 이야기하려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마리아의 눈빛에 불쾌함이 가득차 있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기에 그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열수가 없었다.

마리아는 카스토르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네가 해 줄 필요 없어.”

“…"

“하지만….”

“지금까지 네가 나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주었단 것 알고 있어.”

지난번 던전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나 카스토르는 미미하게 인상을 썼다.

그러고 보니 그날 이후로 마리아가 이상해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스토르.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날 배려하지 마. 날 위해서 노력도 하지 마."

"누님."

“나를 위해서 움직이지 마. 네 인생을 살기도 바쁜데 왜 내 인생까지 살려고 해.”

마리아의 담담한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카스토르의 표정이 점점 더 묘하게 변했다.

"누님. 예전과 달라지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데?"

“글쎄요.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만 예전보다 더 멀어진 느낌이에요.”

카스토르의 말에 마리아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웃고 있음에도 어쩐지 씁쓸해 보이는 표정에 카스토르는 혹시 자신이 말실수한 것인가 싶으면서도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오스왈드에 다녀온 후로 이상해 지셨어요. 갑작스러운 가출도 그렇고, 누님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데?"

“누님은….”

카스토르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달싹이다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주인공 같은 사람이죠.”

그 말에 마리아는 슬프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행복한 아가씨였지. 불행도 고통도 나를 향한 미움도 몰랐어. 부정적인 감정을 겪을 틈이 없었으니까. 그게 어떻게 주인공이겠어.”

마리아는 자신을 가두었던 세상을 깨고 벗어난 기분에 개운하였으나 그녀의 가족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하다고 느끼며 걱정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카스토르를 위로하기 위해 말을 꺼내었다.

“앞으로는 나를 향한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고 싶어. 그러니까….”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고요?”

카스토르는 주먹을 꽉 쥐고서는 마치 울 것처럼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저를 위해서 살라고요? 그렇다면 저는 더더욱 가야겠습니다."

카스토르의 말에 마리아가 화를 내려고 했으나 곧 그의 표정을 보고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카스토르의 표정이었다.

서러워 보이기도 하고 억울해 보이기도 했다.

마리아는 카스토르의 이런 약한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저는 지금껏 누님의 행복을 위해서 그 고생을 했는데 지금에서야 그만두라고 하면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데요?”

“그게 무슨 소리야."

“웃기게도 이런 생각이 드네요.

만약 제가 누님처럼 던전에 가겠다고 했다면 아버지께서 저를 말리셨을까요?”

하지만 마리아가 답하기도 전에, 카스토르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스스로 답했다.

"아니요. 오히려 가라고 떠미셨을 겁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제가 다치든 말든 크게 신경 쓰시지 않을 테니까요!”

카스토르의 말에 마리아가 깜짝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쉽게 부정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카스토르는 자신과 다르게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그때는 그저 그가 기사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애초에 부모님의 명이 없었으면 카스토르가 마리아의 뒤에서 그녀를 위해 손을 쓰지도 않았을 터였다.

마리아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카스토르는 기가 찬다는 듯 웃더니 방을 박차고 나갔다.

마리아는 갑작스러운 카스토르의 행동에 당황함을 숨기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은 그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무언가 크게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카스토르….”

마리아는 잠시 망설였으나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동생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에 더는 시간 낭비를 할 수가 없었다.

짐을 모두 챙기고 부모님께 인사를 올리고 나가는 데만 해도 꽤나 큰 시간을 소비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마리아의 생각은 잘 들어맞았다.

콘란드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리아를 쳐다도 보지 않았다.

한참 동안 적막이 이루어졌고 이를 참지 못하고 마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기어코 가겠다는 거냐?"

콘란드는 화가 난 듯 미간을 꾹꾹 누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리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거라."

콘란드는 마리아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서 강하게 말했다.

“네가 그곳에 가서 위험해지면?

심각한 상처를 입거나… 그 이상으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차마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구나."

콘란드는 마치 애원이라도 하듯 마리아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강한 마리아의 태도를 보면서 참다못해 다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 저 던전의 위력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곳에 가서 네가 무얼 하겠다고!”

“뭐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죠!”

하지만 콘란드가 화낸다고 해서 마리아가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인 거냐! 널 걱정하는 가족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지? 난 널 그렇게 키운 적이 없다!”

마리아는 끝까지 자신을 말리려는 콘란드를 보며 무언가 속에서 감정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겠죠. 저는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는 끼어들면 안 되고, 뒤에서 보호만 받아야 하는 존재였으니까요.”

마리아는 울컥 올라오는 감정에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만약에 카스토르였다면 아빠가 이렇게까지 막으려고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요. 아빠는 막으려 하지 않았을 거예요. 분명히.….."

금방이라도 눈물이 타고 흐를 것 같았기에 마리아는 웃었다.

“덤덤히 보내 주시겠죠."

카스토르의 말을 떠올리며 꺼낸 말에 콘란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 반응에 마리아는 그저 웃었다.

"안 다치고 무사히 돌아올게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저를 기다려 주세요.”

콘란드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그가 답답한 듯 시선을 돌리자 마리아는 애써 웃으며 방을 나왔다.

이제 유니스에게만 인사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 들어갈게요!"

조금 전과 다르게 쾌활한 목소리를 내며 마리아는 노크와 함께 문을 열었다.

하지만 유니스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어디로, 어디로 간 거야. 도대체"

“엄마?"

“고작 그 작은 책이 어디로 사라졌냐 말이야!”

“엄마!"

유니스가 답지 않게 소리를 높이자 마리아가 깜짝 놀라 그녀를 불렀다.

그 소리에 유니스는 정신을 차리고서 고개를 돌려 마리아가 방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아아. 마리아. 무슨 일이니?"

“던전을 공략하러 떠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인사를 하러 왔는데….”

마리아는 말을 꺼내면서 잔뜩 어질러진 방을 쭉 훑어보았다.

“책을 잃어버리셨어요? 안 보이면 하녀에게 시키면 되잖아요."

“음…. 엄마의 일기장이다 보니 남에게 보여 주기 부끄러워서 말이다.”

유니스는 부끄럽다는 듯 웃으며 마리아를 꼭 끌어안았다.

"내 소중한 딸. 세상은 언제나네 편일 테니… 걱정하지 말고 무사히 다녀오렴.”

“네.”

마리아는 유니스의 인사를 받고서 방을 빠져나왔다.

콘란드와 다르게 유한 분위기로 빠른 허락이 이루어지자 마음이 한결 더 가벼워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평소랑 많이 달랐지.'

마리아는 유니스가 불안함에 덜 덜 떠는 목소리로 저를 끌어안자 묘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를 찾아온카스토르를 보면서 표정을 굳힐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께서 저도 함께 다녀오라 더군요.”

“뭐?”

“제가 가지 않는다면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과 함께 카스토르는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아버지는 저보다 누님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요."

"카스토르."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세상의 주인공인 누님만을 위해서 살다보면 저도 언젠간 진정한 자식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테죠.”

카스토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에 책 하나가 숨겨진 것을 마리아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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