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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딸로 태어났다-153화 (152/185)

제153화.

“신께서도 용서해 주지 못할 만큼 끔찍한 죄이므로 시하브 프리다에게 누하스에서의 무기 징역을 선고한다.”

재판관의 판결에 시하브 프리다가 제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어찌나 처절하게 울부짖던지 없던 동정심도 불러일으킬 만큼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하긴, 누하스는 악명 높은 교도 소니까 필사적일 만도 하지. 차라리 사형 선고가 나을지도.’

“또한, 그를 제외한 보육원 직원들 전원은 누하스 5년 형에 처한다.”

시하브 프리다의 통곡과 함께 보육원 직원들의 눈물 어린 호소가 이어졌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재판관님! 저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저희는 잘못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학대한 증거들이 충분함에도 무고하다고 주장하는 저들의 모습이 참으로 형편없다 느껴졌다.

재판정은 소란스러워졌고, 재판 관은 죄인들을 호송하라며 엄히 말하였다.

결국, 죄인들은 기사들의 손에 억지로 끌려 나갔다.

엄마는 그 모습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부릅뜨며 지켜보았다.

엄마의 눈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지만,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사형이 아니라니 조금 아쉽구나."

“하지만 누하스에서 무기징역이라 하니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워낙 흉악범들이 가득하고 열악해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곳이라 들었다.

교도관들도 죄인들도 모두 무시무시한 곳에서 시하브가 어떻게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살고 싶으면 버티겠지."

엄마는 시하브를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혀를 찼다.

"누하스로 호송되기 전에 황실 감옥에서 이틀 정도 있을 거라고 들었어요. 가시겠어요?”

"그럼. 비참함으로 물드는 그 얼굴을 마지막으로 봐 줘야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구나.”

내 제안의 엄마는 옳다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안내해 줄게.”

악셀리우스는 금방이라도 달려나 갈 것 같은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서는 천천히 이끌기 시작했다.

나는 검은 베일이 내 얼굴을 잘 감추어 주고 있는 것을 확인한 뒤 라그나르와 함께 둘의 뒤를 쫓았다.

* * *

시하브 프리다는 양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비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엄마는 시하브의 초라한 모습을 한참이고 바라보더니 화가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국, 이렇게 죗값을 받게 되는구나, 시하브.”

“클로에!”

엄마의 목소리에 시하브가 정신을 차린 듯 번쩍 고개를 들었다.

“보육원 동기들을 팔아넘긴 네가 발 뻗고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았어?"

“아니야! 그건 오해야, 클로에.

그때의 나도 다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야.”

“오해? 네가 직접 나를 노예 상단으로 끌고 가서 던져 넣은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데 오해라고?"

엄마의 목소리는 참으로 차분했다.

지금껏 몇십 년을 마음속에 품어 왔으면 저런 일을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

오히려 옆에서 듣고 있던 악셀리 우스의 안색이 점차 어두워져 가는 것이 보였다.

엄마만 아니었더라면 몬스터를 대하듯 시하브를 깔끔하게 세상에서 떠나게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대체 그 서류는 어떻게 찾은 거야? 응?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계획한 거냐고!"

"그게 중요하니? 이제부터 네가 누렸던 모든 것을 잃은 채 비참하게 살아가야 할 네 앞날을 걱정하는 게 좋지 않겠어?”

엄마의 말에 시하브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런. 클로에, 나 진짜 네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동기간의 정을 생각해서 네가 나 좀 꺼내 주면 안 될까?"

"내가 왜?”

"내가 아니었더라면 네가 상단에 들어갈 일도 없었고, 지금처럼 상단 주의 자리에 있을 일도 없었을 거잖아! 결국, 다 내 덕분 아니야?”

뻔뻔하기도 하지.

시하브의 헛소리에 엄마가 큰 소리로 그를 비웃었다.

“애초에 네가 그걸 가져가지만 않았어도 나도 그렇게 빌빌거리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 네가 모든 걸 알게 된다 해도 바뀌는 건 없어.”

이어지는 그 말에 시하브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애원했다.

하지만 엄마는 냉담한 시선으로 그를 내려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사면 같은 건 꿈꾸지 마. 내가 죽을 때까지 네가 죗값을 받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볼 테니까."

시하브가 필사적으로 다시 매달렸으나 그녀는 시선 한 번 건네지 않고 악셀리우스와 함께 감옥을 빠져나갔다.

엄마가 나가는 것을 바라본 나는 라그나르를 이끌고 시하브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인 채 계속해서 눈물을 터트리던 시하브는 자신의 시야에 구두가 보이자 번뜩 고개를 들어올렸다.

"재, 재단장님? 그리고…."

시하브의 시선이 라그나르를 지나쳐 내게 머물렀다.

잠시 굳어 버린 표정 뒤로 무언가 빠르게 계산이라도 한 건지 그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제가 정말 두 분을 뭘 면목이 없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써서 보육원의 명예를 더럽히고, 아이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고 말았으니!”

그가 포박되어 있는 손 대신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외쳐댔다.

“정말 염치 불고하고 부탁드립니다. 두 분께서 제발, 제발 저를 이곳에서 꺼내 주십시오. 아이들이 너무나 걱정되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청산유수처럼 내뱉는 말은 아무것도 모르는 이가 들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였다.

“그럴 걱정 없네. 새로 뽑힌 보육원장이 직원들도 직접 고용했으니까.”

내 목소리에 그가 내리치던 머리를 멈추고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피가 묻은 얼굴 뒤로 얼빠진 표정과 상황파악을 하려는 듯 이리 저리 굴러가는 눈이 참으로 가증스러웠다.

“새, 새로운 보육원장이라니요?"

"바로 앞에 있지 않나.”

내가 손짓으로 라그나르를 가리키자 그가 피식 웃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답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나를 새로운 보육원장으로 직접 임명해 주셨지."

"무, 무슨.”

“멍청하기는. 아직도 모르겠나?

처음부터 너를 끌어내리려 접근했다는 것을?”

라그나르의 비웃음에 시하브가 철창 쪽으로 몸을 거세게 부딪쳤다.

“이 연놈들!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내게 접근한 거구나! 내가, 내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오른 건데!"

“아이들을 학대하고, 동기들을 팔아넘기면서 뇌물을 바치는 등 더러운 수단으로 올랐겠지."

라그나르의 냉담한 목소리에 시하브는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

붉게 충혈된 눈을 보아하니 여간 억울해 보였다.

“도대체 내게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애초에 스텐 그 자식은 왜 죽지를 않아서!”

시하브는 지치지도 않는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던전에서 스텐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이렇게 끝날 일이었어.”

하지만 분노한 그에게는 닿지 않는 모양이었다.

라그나르의 말에도 여전히 씩씩 거리는 시하브를 보며 나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다프네,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그나르의 걱정에 짧게 답하는데 갑자기 시하브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선 멍한 눈빛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베일이 가로막고 있음에도 서로 눈이 마주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프네?”

기억이 날 듯 말 듯 복잡해 보이는 표정에 나는 친절히 베일을 거 두어 주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소개가 늦었군.

내 이름은 다프네 베네디토라고 하는데.”

그리고 드러난 내 얼굴에 시하브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왜 그런 표정을 짓지?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인데."

“다, 다프네? 저, 정말 그 다프네라고? 그것보다 베네디토라니?

아니 그 전에 그 머리색은 뭐고?"

“날 기억할 줄은 몰랐는데.”

영광이라며 비꼬듯 웃자 그가 기겁하며 손발이 구속된 몸을 끌고 뒤로 물러나려고 발버둥쳤다.

필사적으로 도망가려는 모습에 내 기분이 한껏 고양되었다.

마치 쥐를 쫓는 고양이처럼 눈앞에 먹잇감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날 기억하고 있다면 잘 알겠지.

내가 도와줄 리 없다는 걸.”

"어, 어떻게! 분명 넌 10년도 전에 죽었는데!”

나는 피식 웃고는 그날의 참상을 떠올렸다.

"화재.”

“누가 일으켰을까?"

그 짧은 말에 시하브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서, 설마 네가! 네가!"

나는 답하지 않고 그저 빙긋 웃었다.

"어떻게 그날 사라진 서류가 증거가 되었다 했더니! 네가 그걸 클로에에게 넘겨준 거구나! 이 도둑고양이 같은 년!”

나는 시하브의 욕설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맞아. 내가 창고에 불을 지르고, 네 방에서 서류를 훔쳐갔어.

그런데 그게 뭐?"

웃음이 참아지지 않았다.

“그런다고 네 죄가 사라지기라도 하나?”

"이, 이 년이!"

시하브가 다시 철창에 자신의 몸을 거세게 부딪쳤다.

나는 미소를 지우고서는 말했다.

"네가 받을 벌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방법은 하나야.”

"뭐, 뭐지?”

놀란 와중에도 제게 내려진 동앗줄을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것이 우스웠다.

"서랍 속에 서류와 함께 있던 도장. 그건 누구의 도장이지?"

하지만 도장의 이야기가 나오자 시하브가 표정을 딱딱히 굳히고서는 입을 다물었다.

"몰라.”

"네가 적극적으로 협조해 준다면 형을 줄여줄 수도 있는데.”

물론 거짓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도장의 정체를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서류는 기재된 내용이 실제로 발생했던 인신매매라는 것이 증명되어 증거로 채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류 아래 찍혀 있던 도장의 정체는 밝혀내지 못해 결국 도장은 증거로 제출하지 못했다.

'분명히 시하브의 뒷배가 쓰는 도장일 텐데.’

뒷배의 정체에 관한 유일한 단서이니 분실되지 않도록 일단 보관해 두고 있었다.

‘뒷배마저 잡아낸다면 엄마의 숙원은 보다 완전히 풀리겠지.'

하지만 시하브는 두려움에 덜덜 떨며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리 달래 보아도 입을 다무는 것이 정말로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일은 시몬에게 맡길까.'

교도소에서 고문하든, 아니면 심문을 하든 어차피 보육원장이 아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탈탈 털어 댈 것이 분명하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아저씨를 생각하면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었다.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서 아쉽네."

나는 라그나르를 이끌고 감옥을 빠져나가려 했다.

“네, 네가 살아있는 걸 모두에게 밝힐 거야!”

갑자기 시하브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것이다.

"악녀의 딸인 네가 멀쩡히 살아남아서 모두를 기만하고 있다고!"

더 지껄여 보라는 듯 잠자코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려 주었다.

그 모습에 내가 겁이라도 먹었다.

고 생각했는지 시하브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베네디토에 들어가서 사는 모양인데! 나도 들은 소문이 있는데 이 정도 되면 모를 리가 없지! 네가 바로 새로운 상단주인 거지? 그렇지?”

시하브는 당당하게 말하는 것과다르게 참으로 초조해 보였다.

내가 표정을 굳히자 그가 다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모두가 속았다고! 감히 악녀의 딸이 정체를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고 말할 거라고! 그러면 네 상단이 어떻게 될 것 같아?"

베네디토 상단을 물고 늘어지다니 정말 끝까지 최악인 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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