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왜, 왜 우는 거야?”
"미안.”
시몬은 황급히 눈물을 닦았으나 이미 우리는 그 장면을 다 봐 버렸다.
라그나르와 눈을 마주치니 그도시몬이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며 재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온 시몬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를 위로해 주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조용히 시몬을 살펴보며 그를 도닥여 주는데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물이 가득 고인 눈과 마주쳤다.
“두려워서 말할 수가 없었어."
“뭐가?"
도대체 꼭꼭 숨기고 있는 비밀이 무엇이길래 시몬이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는 걸까.
“네 친어머니의 죽음에….”
“응?”
“황실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몰라.”
시몬의 말에 나는 그 상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어정쩡하게 허공에서 멈춘 손을 갈무리할 틈도 없었다.
그저 시몬이 한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파악하느라 머리가 팽팽돌아갔다.
'황실이 관련이 있다고?'
시몬은 용기를 내어 털어놓은 것이니 여기서 화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슴속 깊이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황급히 감정을 추슬렀으나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는 분노에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도대체 프레이르의 죽음에는 몇 명이나 관련이 되어 있는 걸까.
나는 이 상황에서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걸까.
시몬은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푹숙인 채 들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데?"
겨우겨우 꺼낸 말에 시몬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황실에서 그 문양을 봤어.”
“문양이라면… 도장을 말하는 거구나.”
시몬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구인데?"
“시몬, 범인이 누구냐니까?"
“아직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아."
시몬의 말에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디서 발견했는데?"
바뀐 질문에도 시몬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방 안에 침묵이 가득 차고, 나는 서서히 돌아오는 이성을 느끼며 조용히 시몬을 바라보았다.
나로서는 시몬이 무슨 말을 꺼내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적어도 화를 내며 그를 닦달하고 싶지 않았다.
시몬이 이 순간 크게 용기를 낸 것을 아니까.
"이런 부탁해서 염치없는 것 아는데 같은 문양이 맞는지 가져가서 확인하고 싶어.”
"......."
“무언가 큰 사건과 관련이 있다.
는 것은 맞을 거야. 그래서 보육원과 관련된 일인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깊이 관련이 있는지 알고 싶어.”
시몬의 굳은 어깨가 오늘따라 많이 움츠러들어 있었다.
“확실해지기 전까지 가족들을 의심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 정말 미안해.”
시몬이 꼭 쥐고 있는 주먹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래.”
“그게 맞다고 생각해. 나도 확실하지 않은 일로 네 가족을 의심하고 싶지 않으니까.”
“..…고마워."
모른 척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말해 줬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해 용기를 내 줬다는 걸 모르다니.
시몬은 죄책감에 계속 고맙다는 인사를 했지만, 오히려 고마운 사람은 나였다.
"나야말로 고마워.”
만약에 황실이 얽혀 있다면, 그것을 시몬이 밝히고자 도와준다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프레이르의 억울함을 풀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참는 시몬의 등을 다시 두드리다가 이내 꼭 끌어안았다.
시몬은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서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민망하네.”
한참 동안 울고 나서야 꺼낸 말에 나도 라그나르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이 일 때문에 내가 빈민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거야?"
내가 너무하다며 장난스럽게 말하니 시몬이 답지 않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에는 황태자라고 근엄하게 행동하더니 이럴 때 보니 나랑 몇 살 차이 안 나는 또래라는 것이 느껴졌다.
'무서웠겠지.’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만약에 나였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시몬과 같은 결정이 안 했을지도 모르지.'
시몬과 다르게 이기적인 선택을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시몬이 대단해 보였다.
“그럼 이제 출입 금지 풀어 주는 거야?”
“그래. 우선 범인을 잡는 게 중요하니까. 참, 오늘도 범인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설마 또 시체가 발견된 거야?"
술에 취한 스텐의 얼굴이 떠올라 황급히 물어보니 다행히도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행히 오늘은 죽지 않았다 하더라고. 다치기는 했지만, 치명상은 아니라 들었어.”
시몬은 우리에게 본격적으로 지난날 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어디서 피해자가 나타났는지, 어떤 자들이 피해를 보았는지 등 다양한 것을 듣고서 오늘 있었던 일과 종합해 보았다.
“우선 늦은 시간 혼자 돌아다니는 이를 노린 것 같네. 보통 노약자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된 것 같고.”
라그나르의 정리에 시몬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죽였는지 알 수가 없어. 수상한 이가 보여서 쫓아가도 갑자기 사라진 상태였다고 하니까.”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조금 고민하다가 둘의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
“피해자를 위로 끌고 올라가서 죽인 거야.”
“위?”
"건물 2층이나 3층 정도 되는 높이에 매달려서 거기서 피해자를 죽이고 시체를 아래로 떨어트리는 거지.”
두 사람은 거기까지 생각 못 했는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꽤 그럴싸한 가설이기는 하지만….”
시몬의 중얼거림에 내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사실은 내가 봤어.”
“뭐?”
“요 며칠 동안 몰래 빈민가를 돌아다녔거든.”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
두 사람은 똑같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몸이 안 좋아서 쓰러진 것도 있지만 범인이랑 마주쳤을 때 갑자기 기습을 당했거든.”
“어쩐지. 넘어진 것 치고는 머리의 상처가 크더라니."
라그나르가 말문이 막혔는지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나는 잘못이 없다 되새기며 꿋꿋이 말을 이어 갔다.
“술에 취한 사람이 걱정돼서 따라가다가 골목길로 들어가니 사라졌어. 그리고 한참을 찾아보는데 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그리고?”
시몬은 어서 말해 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무언가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지 조금 전과 다르게 표정에 기대가 서려 있었다.
“위를 보니까 로브를 뒤집어쓴 수상한 사람이 어떤 남자를 죽이려고 하고 있었어. 잡으려고 했는데 실패했고.”
“그 사람의 얼굴을 봤어?"
시몬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뒤에서 기습을 당해서 그 사람의 얼굴은 보지 못했어.”
“그렇구나.”
시몬의 들뜬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은 봤어.”
"뭐?"
“공범이 있더라고. 내 뒤에서 기습한 놈은 로브를 쓰지 않았었거든.”
두 사람의 시선이 오롯이 내게 집중되었다.
어서 말해 보라는 듯 재촉하는 눈길에 나는 입을 열었다.
“오벤 백작.”
“…아. 그 보육원 동기."
라그나르가 지난번 감옥 앞에서의 만남을 떠올렸고, 시몬 또한 그를 기억했는지 화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헤로니스 공작의 부관이네.”
"만약에 이 사건의 범인이 지난 번 사건의 범인과 같다면 빈민가에 있었던 일은 공작가에서…?"
시몬의 추측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니 로브를 뒤집어쓴 놈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 이제야 떠오른 것이다.
“공작은 모를 것 같아. 왜냐하면, 공범의 목소리가 공작이 아니었거든.”
“목소리를 들었어?"
“익숙한 목소리였어. 어디선가 들어 봤는데 자세하게 기억이 나질 않네.”
아무래도 바로 머리를 맞고 쓰러지느라 머릿속에서 금세 사라진 것 같다.
“굉장히 기분 나쁜 목소리였어.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 납치당했을 때 들렸던….”
어라?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을 하려는데 단순히 비슷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똑같아.”
“뭐가?”
시몬의 물음에 나는 라그나르를 보았다.
라그나르 또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 사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는 걸까.
나는 라그나르를 향해 지금껏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말했다.
라그나로, 네 형."
"......."
"분명히 그 목소리였어.”
***
내 입에서 나온 의외의 인물에 두 사람은 짜증을 숨기지 않았다.
시몬이고 라그나르고 굉장히 저 조한 기분에 심각한 표정까지 짓고 있으니 저절로 분위기가 살벌해졌다.
'베르돌트 시어볼드라고 했지.'
내 입에서 형을 가리키는 말이 나오자 라그나르는 그 상태도 굳어 버렸다.
정말이냐고 되묻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니 그가 충격 받은 표정으로 몸을 틀었다.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무언가 깊게 생각하는 모습에 우리는 라그나르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기다리기로 했다.
'정말 기가 막힌 운명이네.'
만약에 라그나르의 형이 이 사건의 진범이라면, 만약에 인신매매뿐만 아니라 프레이르의 죽음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나는 생각하는 것을 관두었다.
확실한 것도 아니고, 만약에 맞다고 한들 죄인은 따로 있지 라그나르와 시몬이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라그나르가 유지하던 침묵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만약에 형이 범인이라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 거야.”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거야?"
시몬의 질문에 라그나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 아무 래도 대부를 만나 봐야 확실히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아.”
그 말과 동시에 라그나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확실한 범인을 잡는 게 우선이니까. 범인을 잡고서 조사를 좀 해 보고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
“확실히 정보를 얻고 가면 더 도움이 될 테니까.”
다시 우리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내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우선 범인 색출에 대한 계획을 세워 볼까?"
내 말에 두 사람이 멍한 눈빛을 지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오늘 일이 밝혀진다면 진범들은 몸을 사리게 될 거야.”
“그렇겠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나설지도 모르고.”
시몬의 말에 라그나르가 눈가를 찌푸렸다.
“그럼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데.”
다시 침울해지려는 분위기에 내가 황급히 두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손을 휘저으며 나를 가리키니 두쌍의 눈동자가 내게로 향한다.
어쩐지 평소랑 다르게 의기소침한 두 눈빛을 보며 어서 빨리 진범을 잡아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나는 라그나르와 시몬을 향해 가까이 오라며 손짓을 했고, 두 사람이 고개를 숙였을 때 비밀을 꺼내 귓가에 내 계획을 속삭였다.
계획을 다 듣고 난 두 사람의 반응은 만장일치였다.